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34화 (134/309)

134화. 완전체 (4)

전인규의 선두타자 3루타로 선화 이글스는 선취점을 냈다.

하지만 경기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 라이온즈 팬들은 응원단장의 구호에 맞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자, 임완수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284, 홈런 없이 6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시 우익수가 내려와 있죠. 오늘도 임완수 선수는 열심히 달려야겠습니다.”

최근 장타가 줄어들면서 시프트를 쓰는 경우는 더 늘어났다.

예전엔 넘어갈 타구가 계속 잡히고 있으니 당연한 흐름, 똑딱이 형 타자들도 시프트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임완수는 타격 후 앞발이 홈 플레이트에 붙으면서 최소한의 스윙으로 타구를 밀어내는 스타일, 우익수가 전진수비를 하는 건 당연하다.

시프트가 먹히면서 작년에 비해 약간 떨어진 타율, 그래도 임완수는 자신만의 타격을 고집했다.

저렇게 시프트를 쳤다면 바깥쪽을 던지겠다는 거 아닌가.

내가 넘겨야 할 곳은 담장이 아니라 2루수 키, 초구부터 가벼운 스윙을 선보였다.

따악~!!

“그렇죠!! 그렇죠!! 안타죠!!”

1루에 안착한 임완수는 지역 방송을 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야구장은 넓고 안타를 칠 공간은 얼마든지 있다.

그 까짓 시프트는 깨부수면 그만, 다음에도 할 테면 해보라며 어깨를 들썩였다.

“자, 이제 홍현구 선수 타석으로 이어집니다. 올 시즌 타율 0.273, 홈런 2개, 10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선수도 밀어치는 능력이 뛰어나죠. 이글스 배터리가 계속 바깥쪽 승부를 하긴 어려울 겁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 쪽을 찌르는 공, 타자는 엉덩이를 살짝 뺄 뿐 반응하지 않았다.

결정구는 바깥쪽으로 정해졌는데 몸 쪽을 노려서 뭘 어쩌겠나. 시선을 약간 우측으로 두고 스트라이크 존을 좁혔다.

홍현구는 볼넷으로 출루하면서 무사 주자 1 - 2루, 공포의 대마왕이 타석에 들어섰다.

‘던져주면 감사하고’

앞선 타자들과 달리 이인영은 몸 쪽 공에 집중했다.

우완 투수가 좌타자에게 던지는 몸 쪽 공은 대각선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눈에 훨씬 잘 보인다.

그렇다고 바깥쪽으로 던지자니 무브먼트를 살려주기 어렵고, 이래서 우완 투수는 좌타를 상대할 때 싱커나 투심을 던져야 한다.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면 살짝 가라앉는 움직임, 지금까지 무수히 봤던 패턴 아닌가.

자신만의 접근법이 확립된 타자의 배트를 유인구로 끌어내는 건 정말 어려웠다.

“음 … 다시 볼입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이인영 선수가 정말 무서운 게 뭔지 아십니까? 작년 9월 24일부터 지금까지 98타수 연속 삼진이 없습니다. 29경기에서 볼넷만 27개를 얻어내고 있어요.”

“이 정도면 정말 사기 캐릭터 아닙니까? 어떻게 이렇게 삼진을 안 당할 수 있는 거죠?”

“일단 볼이 가는 길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죠. 지금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내가 뭘 쳐야할지 알고 있는 겁니다. 이러니 볼 카운트에서 손해 볼 일이 거의 없어요.”

[따악~!!]

“말씀 드리는 사이!! 잡아당긴 타구가 우익수 앞에 떨어집니다!!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 옵니다!! 이인영 선수의 적시타!! 성운 라이온즈가 바로 추격을 개시합니다!!”

“이제 99타수 연속 무 삼진이네요. 메이저리그에도 이 정도 기록은 없을 걸요?”

“아마 야구 초창기 시절로 돌아가야 될 겁니다. 도저히 현대 야구에선 나올 수가 없는 기록이에요.”

동점타를 날린 이인영은 이글스 벤치에 손가락 세리머니를 날렸다.

친구 사이라도 빚진 게 있으면 갚아주는 게 인지상정, 덕분에 전인규도 승부욕을 끌어올렸다.

성운 라이온즈가 1회 말에 2점을 올리면서 경기는 2대 1, 워밍업을 끝낸 양 팀은 본격적인 타격 전을 벌였다.

2회 말, 성운 라이온즈가 한 점을 더 냈지만 3회 초, 전인규가 2 - 3루 주자를 불러들이는 적시타를 때려내며 경기는 3대 3 동점,

전인규는 이에 그치지 않고 2루까지 훔쳐냈다.

홈팬들이 느끼는 얄미움 지수는 측정 불가, 이인영은 벤치에서 그 모습을 가소롭다는 듯이 지켜봤다.

‘아 … 너는 담장을 넘길 파워가 없었지?’

그러고 보니 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친구, 도루 좀 한다고 뭐라고 할 수 있겠나.

그러려니 이해해줬다.

“아, 공이 옆으로 튀었는데요. 그 사이 2루 주자는 3루까지 들어갑니다!! 전인규 선수의 연속 도루!! 선화 이글스가 다시 경기를 뒤집을 찬스를 잡습니다.”

“역시 주루 능력은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죠. 최근 방망이가 안 맞으면서 도루를 할 기회도 없었는데, 오늘은 물을 만났습니다.”

후속타자의 희생타가 나오면서 경기는 다시 역전, 홈팬들은 9번부터 시작되는 3회 말 공격에 기대를 걸었다.

선두 타자는 아웃됐지만 임완수가 연타석 안타를 치며 1사 주자 1루, 후속타자 홍현구는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2사 주자 1루가 됐다.

타석에는 이인영, 보고 싶지 않았던 그 건방진 면상에 이글스의 선발 이규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볼이 되더라도 바깥쪽으로’

이글스의 여기하 감독은 도망치는 볼 배합을 주문했다.

현재 KBO 레벨에서 저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투수는 없다고 봐도 좋다.

시프트를 해봤자 좌중간으로 밀어 칠 수 있는 선수, 아예 도망치는 게 나았다.

[따악~!!]

“자!! 밀어낸 타구는!! 계속 뻗어!! 좌중간을 완전히 가릅니다!! 임완수 선수는 2루를 지나 3루!! 계속해서 홈까지 내달립니다!! 홈에서~ 승부!! 송구가 뒤로 빠졌습니다!! 그 사이 타자 주자는 3루까지!! 이인영 선수가 다시 한 번 결정적인 안타를 때려냅니다!! 스코어 4대 4!!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지금은 홈 승부를 할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쓸데없는 플레이로 주자를 3루로 보내고 말았습니다.”

박한우 위원은 이글스의 유격수, 백승규의 송구를 지적했다.

홈 충돌방지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5년, 그렇다면 홈으로 쇄도하는 주루는 줄어들었을까?

오히려 늘었다.

이제 주루선상을 막는 행위가 위법이기 때문에 포수들은 일단 공을 받은 다음에 홈을 막아야 한다.

태그에 걸리는 시간이 늘어난 것, 거기다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면서 주자의 진로를 막는 포수의 꼼수도 어지간하면 다 잡히게 됐다.

포수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 포수의 수비 부담을 늘려버린 것, 이러니 각 구단의 3루 코치는 홈 승부 상황에서 어지간하면 팔을 돌려버린다.

차라리 주자를 2루에 묶어두는 게 나았을 텐데, 백승규는 손을 들어 동료들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아~ 넘어갔어야 됐는데, 창피하게 … ”

한편, 이인영은 3루 코치 옆에서 허풍을 늘어놨다.

홈런을 치고 고고하게 베이스를 돌았어야 했는데, 똑딱이처럼 흙먼지를 휘날리며 베이스에 몸을 던지고 있으니, 창피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저 자식을 어떻게 하지?’

이제 역전 위기, 마운드의 이규하는 곁눈질로 3루를 살폈다.

당장이라도 홈으로 파고들겠다는 저 얌체를 어찌해야 하나.

이글스 배터리는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했지만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마음껏 던지질 못했다.

후속 타자 돈 부머가 적시타를 때려내며 경기는 다시 역전,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는 5회 초 접어들었다.

“자, 전인규 선수가 오늘 경기 세 번째 타석을 맞이합니다. 오늘 2타수 2안타, 3회 초 공격에서는 주자 2명을 불러들이는 적시타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때는 몸 쪽으로 붙여야죠. 지금 사인을 내는 것 같은데요?”

나가면 골치 아픈 선수, 라이온즈의 이성한 감독은 몸 쪽으로 붙이라는 사인을 냈다.

첫 타석에서 몸 쪽 공을 잡아당겨 3루타를 때려냈지만, 전인규는 몸 쪽에 약점이 있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한 방 맞았다고 바깥쪽으로 도망가면 기분 나쁜 안타를 내줄 뿐, 초구부터 몸 쪽으로 붙였다.

[따악~!!]

“자!! 이 타구는 다시 내야를 빠져 나갑니다!! 전인규 선수는 오늘 3타수 3안타!! 앞 선 경기의 부진을 만회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몸 쪽 이었거든요. 평소의 전인규 선수라면 땅볼이나 헛스윙이 됐을 텐데, 오늘은 확실히 컨택이 되고 있습니다.”

1루를 밟은 전인규는 바로 2루 도루를 준비했다.

내가 뛰지 않으면 득점이 나오질 않는 경기, 물론 2번이나 도루를 내준 진수영 포수도 눈 뜨고 당하진 않았다.

일단 초구는 높은 빠른 볼을 요구, 다음 공은 바깥쪽으로 뺐다.

“공이 튀었지만!! 주자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지금 블로킹은 아주 좋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보통 이렇게 빠지는 공이 나오면 손만 움직이는 포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러면 공은 잡을 수 있어도 후속 플레이로 송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진수영 선수가 도루를 막은 거나 다름없어요.”

공이 튀면 잡을 게 아니라 일단 몸으로 막아야 된다.

그래야 홈 플레이트 위로 공을 떨어트리고 송구를 할 수 있는 법, 2루 진출이 무산된 전인규는 1루 근처를 맴돌았다.

그 사이 라이온즈의 선발 이동찬은 외야 낮은 플레이를 유도하며 한숨을 돌렸고, 다음 타자 알렉스 브라운을 삼진 처리하며 투 아웃을 잡아냈다.

“됐어!!”

후속 타자마저 내야 땅볼 처리, 5회를 무사히 넘긴 이동찬은 수건을 목에 걸친 채 경기를 지켜봤다.

썩 잘 던지진 못했지만 어쨌든 5회까지 던졌으면 내 몫은 한 거 아닌가.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다음 이닝에서 동료들이 득점을 내고 시즌 3승을 수확하길 기대했다.

‘이제 뛰는 건 그만’

타석에 들어선 이인영은 방망이를 몇 번 돌리며 자세를 잡았다.

마운드에는 좌완 이정진, 바깥쪽에 초점을 잡고 그대로 돌려버렸다.

따아악~!!

맑고 고운 파열음, 이 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었던 이인영은 배트를 던지며 1루로 향했다.

홈런 타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고한 런웨이, 그 꼴이 보기 싫었는지 이정진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왠지 나만 바보가 된 것 같아.’

중견수 전인규는 2루를 지나는 친구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렇게 열심히 치고 달렸는데 내 질주는 저 홈런 한 방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건가.

왠지 저 자식 손에 놀아나는 기분, 그래도 정신을 다듬고 추격에 나섰다.

[따악~!!]

“이번에는 센터 쪽에 떨어집니다!! 전인규 선수는 오늘 4타수 4안타!! 고군분투가 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7회지만 아직 경기 모르거든요. 병살을 막기 위해서라도 도루를 감행할 확률이 높습니다.”

경기 후반에 잡은 희망의 실마리, 전인규가 1루에서 멀어지자 포수도 자세를 약간 높게 잡았다.

누가 봐도 송구를 할 기세, 빠른 발에 자신이 있는 전인규는 그대로 2루로 뛰어들었다.

진수영 포수도 바로 공을 빼내 2루로 송구, 백업을 들어온 홍현구가 자동태그를 할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왔다.

“아웃!!”

“아니에요!! 이건 아니야!!”

아웃 판정에 펄쩍 뛰는 전인규, 여기하 감독도 비디오 판독을 요구했지만 원심이 유지되면서 이글스의 역전 희망은 사라졌다.

‘역시 발만으론 안 되는 거야. 더욱 정진해서 날 따라 와라.’

이인영은 친구를 동정하진 않았다.

저 자식이 노력이 부족해 좌절을 맛 봤겠나,

중심 타선이 받쳐 줬다면 무리해서 뛸 필요 없었을 텐데 그렇다고 본인이 장타력을 갖춘 것도 아니고,

열심히 뛰어봤자 장타력을 갖춘 친구를 따라잡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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