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30화 (130/309)

130화. 하나만 잘 해요 (14)

“너 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그래요?”

시즌 최종 3연전을 앞두고 박한우 위원은 성운 라이온즈 더그아웃을 방문했다.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시즌을 보낸 양아들이지만 팀은 올해도 포스트 시즌 진출 무산, 녀석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민감한 질문이라 관계자들이 주위에 없는 틈을 이용했다.

“올 시즌은 어떻게 생각 하냐? 스스로 만족하냐?”

“그냥 그러네요.”

이인영은 떨떠름한 반응을 내놨다.

최고의 선수를 보유한 팀이 승리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팀이 승리하기 때문에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는 건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 올 시즌 이인영은 분명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30홈런 타자 2명 분 노릇을 해냈는데 팀은 제 자리 걸음, 내가 전진하는 동안 팀은 퇴보했다는 뜻인가.

그게 사실이라면 다른 선수들은 노력을 안 했다는 뜻인데, 이건 그렇게 성급히 내릴 판단이 아니었다.

“나는 잘 하는데 팀원들이 못해서 졌어요.”

이렇게 생각하는 선수가 어떻게 최고의 동료들을 곁에 두고 최고의 팀을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동료들이 따라주지 못하면 최고의 팀은 이뤄지지 않는다.

야구를 잘 하는 방법은 이해했는데, 팀의 주축 선수로서 앞으로 어떤 팀을 만들어 나갈 것인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팀을 꾸리는 건 단장이 할 일이지 네가 신경 쓸 일 아니다. 너는 올 시즌 충분히 잘 했어.”

“그럼 우리 동료들이 못 해서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한 건가요?”

양아들의 역습에 박한우 위원은 입을 다물었다.

감독 경력까지 포함해 야구 현장에서 20년을 보냈지만 강팀의 조건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게 답이라고 제시할 말이 없다.

감독이 선수를 잘 활용해야 한다, 팀에 좋은 선수가 있어야 한다, 운도 따라줘야 한다, 선택지는 많지만 딱 이거라고 집어낼 수 있는 게 없다.

어느 사람은 그런 조건을 모두 다 충족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팀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점이 있지만 그 때 그 때 맞춰나가는 것 뿐, 그만큼 강팀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원래 스타는 고독한 거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간 빛이 보이지 않겠냐?”

“그래요. 그게 정답인 것 같네요.”

이인영은 양아버지의 조언에 씩 웃고 말았다.

무리하게 답을 내리는 것 보다는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게 좋겠지, 올해는 이렇게 지나가지만 내년을 위해서라도 남은 3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자, 원정 팀 성운 라이온즈의 1회 초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임완수 선수, 올 시즌 타율 0.301, 홈런 6개, 50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죠.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만 해도 3할 2푼이 넘는 타격을 보여줬는데, 막판에 페이스가 뚝 떨어지면서 팀 성적도 가라앉았습니다.”

임완수 뿐만 아니라 2번 타자 홍현구도 최근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올 시즌 성운 라이온즈는 진루타 성공률 27%를 기록했다.

KBO 평균 기록은 24%,

평균을 상회하는 기록을 내고도 득점이 안 됐다는 건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89개나 되는 병살타? 그런데 병살타가 나오려면 중요한 조건이 있다.

일단 주자가 출루해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타구 속도가 빨라야 한다.

한 마디로 팀 출루율이 높고 타자가 강한 타구를 날려야 나오는 게 병살타. 올 시즌 성운 라이온즈 타선이 보여준 딱 그 모습, 이런 팀이라면 득점력이 올라가야 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왜 타선은 병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건가.

중계석에서 그렇게 많은 경기를 봤는데도 답을 못 내리다니, 나는 해설위원 실격인가.

박한우 위원은 원인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그래, 그렇지. 여기까지는 문제없어.’

임완수는 초구를 받아쳐 2루수 위를 넘어가는 안타를 뽑아냈다.

그렇다면 다음 타자 홍현구는 내야를 빠져나가는 강한 스윙을 하겠지? 여기까지도 예상은 맞아들었다.

“아!! 왜?!!”

하지만 잡아당긴 타구는 유격수 정면, 올 시즌 팀의 90번째 장타를 적립한 홍현구는 격한 화를 뿜어냈다.

잘 맞았는데도 내야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타구, 타구 질이 나쁜 게 아닌데 결과가 안 나오니 본인도 답답했다.

답답한 건 박한우 위원도 마찬가지, 역시 무사 주자 1루에서는 병살을 막기 위한 번트를 대는 게 효과적인가.

하지만 통계학에서는 그게 손해되는 짓이라고 하고,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하는 건가.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자, 이제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61, 홈런 62개, 133타점, KBO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 홈런 페이스가 최근 많이 죽었죠. 그래도 위대한 시즌이었습니다. 누가 이 선수에게 돌을 던지겠습니까?”

볼넷으로 걸어 나간 이인영은 포수 움직임에 집중했다.

보통 1루에 나가면 투수를 보는 주자가 있는데, 포수만 잘 봐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답은 나온다.

마침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우타자 돈 부머, 월드스타는 담 너머 옆집을 살피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왜 저렇게 공을 주지?’

눈에 띄는 장면이 포착됐다.

가끔 무릎을 꿇고 앉은 상태에서 투수에게 공을 던져주는 포수가 있는데, 저러면 송구가 높게 뜨는 건 둘째 치고, 주자가 뛰었을 때 신속하게 대응 할 수가 없다.

본인은 저게 절대 해선 안 될 플레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걸까.

프로라는 선수가 저러고 있으니, 오늘 경기는 절대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안 뛸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포수의 못된 버릇을 확인한 뒤 바로 2루로 눈길을 돌렸다.

설마 60홈런 타자가 도루를 하겠냐는 분위기, 눈치를 살피던 이인영은 1루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투구가 이뤄지는 순간, 사이드 스텝을 밟으며 포수가 무릎을 꿇은 걸 확인한 뒤 바로 뛰어버렸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도루, 깜짝 놀란 포수는 송구를 시도했지만 주자는 2루를 접수해버렸다.

유격수가 백업을 들어오기도 전에 일어난 상황, 눈 뜨고 코 베인 NA 자이언츠는 선수단은 생각 회로가 끊겨 버렸다.

“야, 네가 도루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자이언츠의 유격수 신종하는 장난 섞인 불만을 뿜어냈다.

이미 포스트 시즌이 물 건너 간 팀들의 맞대결,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건가? 하지만 이인영은 쿨 한 표정으로 응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건 야구 밖에 없거든요. 그것마저 대충할 순 없죠.”

신종하는 입을 다물었다.

야구 선수가 잘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야구, 그런데 나는 프로로서 최선을 다 하고 있나. 한 마디 했다가 100마디를 얻어맞은 충격을 받았다.

따악~!!

“그렇지!!”

“들어 와라!! 들어 와!!”

후속 타자 돈 부머의 2루타, 3루를 찍은 이인영은 타석에 들어서는 김상규와 격한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선수의 본분, 더그아웃에서도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오늘 도루 좀 많이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왜?”

“포수가 기본이 안 됐어요.”

이인영은 바로 코치에게 정보를 흘렸다.

올 시즌 도루는 거의 시도하지 않았던 성운 라이온즈, 상위 타선이 워낙 강하다보니 진루타를 위한 번트도 거의 시도하지 않았다.

가끔은 그런 플레이도 필요한데, 너무 방망이를 믿었다고 해야 하나.

거기다 2루를 완벽히 훔쳐낸 선수가 흘린 정보, 이성한 감독은 평소와 달리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를 요구했다.

‘아, 이거였구나.’

‘이걸 왜 지금 봤을까.’

그제야 다른 동료들도 뭔가를 깨달았다.

도루의 책임은 80% 이상이 투수에게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포수의 움직임을 살피는 건 중요하다.

투수에만 신경 쓰느라 정작 포수의 허점을 놓치다니, 3회 초 공격에서 1루로 출루한 박한수는 도루를 시도했다.

이번에도 성공한 도루, 그제야 자이언츠 벤치도 문제가 뭔지 알아챘다.

하지만 이미 게임 오버, 병살 위험이 줄어들자 후속 타자들은 마음 놓고 배트를 돌렸다.

[따악~!!]

“내야를 빠져 나가는 안타!!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들어옵니다!! 추가 득점!! 성운 라이온즈가 오늘은 경기를 리드 하고 있습니다!!”

“도루가 이렇게 분위기를 바꿔버리네요. 요즘 도루의 가치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있는데, 진루타가 나올 확률은 야구에서 24% 밖에 안 됩니다. 그에 비해 도루는 성공 확률이 훨씬 더 높지 않습니까? 득점을 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해야 합니다. 올 시즌 이성한 감독은 방망이를 너무 믿었어요. 내년엔 좀 더 뛰어난 리더십 기대해 보겠습니다.”

도루 2개로 탁 풀려버린 득점 길,

올해 2년 차에 접어든 이성한 감독은 그동안 자신이 생각했던 게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명장은 임기응변에 뛰어난 법, 도루가 효율성보다 해가 많다는 것 만 믿고 너무 억눌렀다.

내년에도 구단이 날 신임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 더 나은 팀을 만들 자신이 있었다.

‘일단 이 경기부터 이기고 보자.’

재계약을 끌어내려면 일단 승리가 필요, 평소 선수들을 믿고 지켜보는 편이지만 이날은 코치를 통해 이런 저런 지시를 내렸다.

이날 성운 라이온즈는 9안타에 그쳤지만 볼넷과 도루, 진루타를 적절히 활용하며 6득점,

장타는 2개에 그쳤지만 어느 때보다 효율적인 공격을 보여줬다.

[이인영 또 도루, 시즌 5호]

[홈런은 추가 못해]

다음 날 경기에서도 이인영은 도루를 추가하며 기동력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팬들이 원하는 건 홈런, 포스트 시즌 물 건너가고 70홈런도 어려워졌다고 자포자기해버린 거 아닌가.

그러나 이인영은 인터뷰에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가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뭐가 말인가요?”

“내가 왜 도루를 왜 해?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팀에서도 너는 장타만 치면 된다고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뛸 수 있는 기회가 시즌 중 30~ 40번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만 제대로 해냈어도 팀 공격이 훨씬 원활하게 돌아갔을 텐데…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기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했어야 했는데 그런 절실함이 부족했다는 내용, 이게 시즌 62홈런을 때린 선수가 할 말인가.

얼핏 들으면 장타를 못 쳐서 도루라도 했어야 했다는 석고대죄, 이인영은 내년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러다 다치면 어쩌시려고요?”

“그럴 일 없습니다. 저는 확실한 타이밍에 뛰거든요. 1루에 있다 보면 어떤 타이밍에 뛰어야 하는지 감이 옵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제 말이 허풍인지 사실인지는 내년 시즌에 보여드리겠습니다.”

도루 선언에 타 구단들은 긴장했다.

타격만으로도 충분히 스트레스를 주는 녀석인데, 이젠 볼넷으로 나가면 뛰겠다고 하고 있다.

거기다 그걸 실현할 재능이 있는 선수, 이러다 내년엔 60 - 40 해버리는 거 아닌가.

이번에도 포스트 시즌에 실패한 라이온즈, 그래도 대구 팬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변함없는 지지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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