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하나만 잘 해요 (13)
오후 5시 31분에 시작된 3연전 마지막 경기,
한진 타이거스의 1회 초 공격은 득점 없이 끝났고 성운 라이온즈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자, 1사 주자 1루에서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58, 홈런 55개, 117타점, 이번 3연전에서 타율이 1리 하락한 걸 제외하면 이렇다 할 변동은 없습니다.”
“최근 성운 라이온즈 타선이 전체적으로 가라앉아 있거든요. 이인영 선수가 집중견제를 받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승부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딱~!!]
“밀어 낸 타구가!! 중견수 앞에 떨어집니다!! 이인영 선수가 이번 시리즈에서 첫 안타를 기록하는 군요!! 성운 라이온즈가 1사 주자 1 - 2루 기회를 맞이합니다.”
“이건 제가 한마디 하고 넘어가야겠네요. 지금은 몸 쪽으로 바짝 붙은 공이었는데, 이걸 찍어 치면 스핀이 많이 걸려서 파울 라인 밖으로 넘어가거든요. 그런데 이인영 선수는 배트를 일찍 감지 않고 서서히 밀면서 돌려줬어요. 이게 안타와 파울을 가른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어떤 스윙을 하든, 몸 쪽에 붙어 나온 팔꿈치는 임팩트 순간에 타구를 보낼 방향으로 펴져야 한다.
그런데 공을 찍어 치면 임팩트 순간에 팔이 제대로 펴질까?
그래서 많은 타자들이 몸 쪽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는 것, 반면 이인영은 배트를 일찍 감지 않았다.
얼핏 보면 몸 쪽 공을 밀어치는 것처럼 보이는데 땅볼을 피하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 박한우 위원은 그 기술을 정확히 짚어냈다.
“야, 너는 어떻게 그렇게 치냐?”
한편, 한진 타이거스의 1루수 진상우는 이인영에게 비법을 요구했다.
주먹다짐을 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대화는 나누는 편, 커리어 내내 몸 쪽에 약점을 보이고 있는 진상우는 후배 앞에서 자존심을 굽혔다.
“코치한테 몸 쪽 공 찍어 치라고 배우셨죠?”
“어, 그런데?”
“야구를 돌팔이한테 배우셨네요.”
한진 타이거스의 1루 코치는 흠칫했다.
돌팔이라니, 그게 맞는 거 아닌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어질 대화에 귀를 슬쩍 열어뒀지만 후속 타자 돈 부머의 안타가 나오면서 이인영은 2루로 떠났다.
‘다운스윙하고 찍어 치는 건 별개의 영역이지.’
아직도 다운스윙을 찍어 치기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마디로 잘못 배운 내용, 몸은 서로 연결 됐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움직이면 다른 쪽도 움직인다.
예를 들어 스윙을 할 때, 팔을 휘두르면 손목은 안 움직일까?
팔꿈치가 먼저 돌아가고 그 다음에 손목이 풀리는 게 올바른 스윙, 그런데 손목이 먼저 풀리고 그 다음에 팔이 움직이는 선수들이 있다.
손목이 먼저 돌아가 버리니 임팩트가 일찍 이뤄지면서 깎여 맞게 되고 이게 찍어 치기가 되는 주요 이유,
반면 이인영은 박한우 위원의 말대로 배트를 일찍 감지 않았다.
손목이 먼저 돌지 않는다는 뜻, 이런데도 다운스윙은 찍어 치는 거라는 말이 나오나?
야구를 저렇게 이해하고 있으니 10년 넘게 발전이 없는 거겠지, 설명해주면 저 사람이 알아듣겠나?
본인이 직접 깨닫지 못하면 허사, 그러려니 넘어갔다.
‘어디 또 던져 보시죠. 소용없는 짓이겠지만’
경기는 흘러 3회 말, 이인영은 두 번째 타석을 맞이했다.
앞 선 타석에서 몸 쪽 깊숙한 공도 때려냈는데 또 던지겠나. 하지만 타이거스의 선발 잭 올리버는 승부를 택했다.
[따아악~!!]
“돌렸고!! 이 타구는!! 계속 뒤로!! 센 터 쪽!! 담자~~ 앙!! 위로 넘어 갑니다!!!! 이인영 선수의 시즌 56호 홈런!!!! KBO 단일 시즌 홈런 기록을 자신의 손으로 다시 써냅니다!! 스코어 3대 0!! 성운 라이온즈가 단숨에 리드를 벌립니다!!”
“지금도 손목이 먼저 감기지 않으면서 타구를 센터 쪽으로 밀어냈거든요. 이게 진짜 타격이죠.”
홈런을 허용한 잭 올리버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
그 사이 이인영은 역사적 순간을 함께한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베이스를 돌았다.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면 다음 타석에서도 넘겨버릴 뿐, 하지만 잭 올리버는 4회를 넘기지 못하고 강판됐다.
5회 말 3번 째 타석에서 마주한 투수는 조상민, 이번 3연전 첫 경기에서 이인영에게 승부를 걸었다가 조익현 포수에게 지적을 당한 젊은 투수다.
1차전에서는 벤치의 지시대로 고의사구를 택했지만 지금은 패전처리로 나온 입장, 드디어 제대로 붙어볼 수 있게 됐다.
따악~!!
“엇?!!”
가운데 약간 낮게 들어온 공을 걷어 올리는 타자, 중견수와 좌익수가 펜스 구석에서 허둥대는 사이, 이인영은 천천히 2루에 안착했다.
이게 얼마만의 한 경기 3안타인가.
볼넷만 얻어내느라 최근 멀티 히트를 기록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간만에 진짜 타격을 해 본 느낌,
가해자가 실실 웃는 동안 피해자는 정신적 피해를 수습했다.
‘내 공이 그렇게 가벼웠나?’
툭 걷어 올렸는데 여차하면 넘어갈 뻔 했던 타구, 조상민은 본인의 빠른 볼에 나름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너지다니, 왜 투수들이 도망을 다니는지 이해는 됐다. 그렇다고 이대로 무너질 순 없는 일, 다음에는 이기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따악~!!
후속 타자 돈 부머의 안타가 나오면서 스코어는 이제 9대 0, 여유가 생긴 성운 라이온즈 벤치는 웃음소리에 휩싸였다.
“야, 너 다음 타석에서는 3루타 노려라.”
“그래, 사이클링 히트는 못 해봤잖아.”
사방에서 쏟아지는 미션, 이인영은 그 앞에서 한껏 허세를 부렸다.
“제가 오늘 힘이 넘쳐서 어려울 것 같네요.”
“힘이 넘치는 자식이 왜 오늘 홈런 1개 밖에 못 때렸냐?”
“한 개도 못 친 선배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
후배의 도발에 홍현구는 입을 다물었다.
오늘 2타점 싹쓸이 적시타에 3안타 활약을 하고 있지만 홈런은 제로, 홈런에 2루타까지 친 후배한테 그런 말 해봤자 설득력이 없었다.
어쨌든 계속되는 성운 라이온즈의 맹공, 1사 주자 2 - 3루에서 이인영은 네 번째 타석을 맞이했다.
스코어도 벌어졌겠다, 1루를 채워서 뭘 할 건가.
시리즈 내내 도망 다닌다며 욕을 먹은 타이거스의 김해수 감독은 승부를 지시했다.
마운드에는 여전히 조상민, 투구 수 50개를 넘기면서 지친 기색을 드러냈다.
“바깥 쪽, 빠집니다. 지금은 공이 손에서 빠진 것 같은데요.”
“지금은 커브로 보이는데 옆으로 휘어나가지 않습니까? 이건 회전을 잘못 준 거에요.”
손에서 힘이 빠지면서 제구도 잘 안 되는 상황, 볼 카운트가 투 볼 노 스트라이크가 되자 사방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저 투수는 우리 선수를 돋보이게 해주는 도구일 뿐, 대구 팬들은 사이클링 히트를 간절히 기원했다.
따아악~!!
이번에도 센터 쪽으로 보낸 타구, 이인영은 양 어깨를 들썩이며 1루로 걸어 나갔다.
3루타가 되긴 틀린 타구, 사이클링 히트를 내심 기대했던 홈팬들은 아쉬움과 기쁨 사이를 맴돌았다.
시즌 57호 홈런, 만점 활약을 펼친 이인영은 바로 교체됐고 더그아웃에서 경기가 끝나길 기다렸다.
이날 경기는 성운 라이온즈의 12대 0 완승으로 종료, 2홈런 포함 4안타 4타점을 퍼부은 이인영은 수훈선수 자격으로 인터뷰에 나섰다.
“이인영 선수, 오늘 승리 축하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동안 잠깐 주춤했다가 오늘 멀티 홈런을 기록하셨는데요. 70홈런 달성 자신하시나요?”
“일단 최대한 먼 곳까지 가 볼 생각입니다. 그래야 돌아올 길도 멀어지니까요.”
“돌아올 길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제가 올해 70홈런을 치면 팬 여러분들은 다음 시즌에도 그만한 기록을 기대할 겁니다. 그리고 내년 시즌이 되면 저는 다시 0홈런부터 출발해야 하죠. 어차피 돌아갈 길이라면 좀 더 멀리 가보고 싶습니다.”
산책을 나가면 사람들은 대부분 집 주위를 맴돈다.
한 시간만 걷기로 했는데 너무 먼 곳까지 가버리면 돌아올 길이 길어지면서 예상 운동시간을 초과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럼 야구는 어떨까.
어느 선수가 40홈런을 때렸으면 팬들은 다음 시즌에도 그 선수가 40홈런을 칠거라고 기대할 거다.
그럼 선수는 40홈런을 치기 위해 딱 작년만큼만 운동을 할까?
작년은 작년이고 올해는 올해, 작년에 40홈런 타자가 됐어도 다음 시즌이 되면 0홈런부터 시작한다.
30홈런을 치면 40홈런이 치고 싶고 40홈런을 치면 50홈런을 치고 싶은 게 선수의 욕심, 결국 먼 곳으로 갈수록 다음 시즌을 위한 노력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인영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입장, 올해 70홈런 넘겼는데 내년에 40개치면 팬들이 날 칭찬해 줄까?
멀리 가면 더 멀리 가라고 하는 게 팬들, 돌아올 길이 걱정됐지만 언젠간 한국을 넘어 미국까지 갈 몸 아닌가.
갈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이인영 시즌 60호 홈런 작렬, 아시아 야구 타이기록]
그렇게 시간은 흘러 9월 3일, 이인영은 대망의 60홈런을 쏘아 올렸다.
어쩌면 KBO 역사상 다시는 나오지 않을 대기록, 선배의 활약에 감동한 최지환은 온갖 아부를 늘어놨다.
“선배님 기록은 앞으로 아무도 못 깰 거예요.”
“웃기고 있네 없긴 왜 없어?”
최지환은 순간 심장이 두근했다. 혹시 네가 노력해서 깨라고 용기를 불어넣어주시려는 건가.
하지만 그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내 기록은 내가 깰 거야. 올해 70홈런 치면 다음은 80홈런 쳐야지.”
“제가 도전할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그것도 안 되면 근처를 얼쩡거리는 것도 괜찮은데…”
이인영은 후배가 쓰고 있는 모자를 툭 건드렸다.
감히 날 따라잡겠다고? 솔직히 건방지다고 생각했지만 암울한 팀 사정 때문에 그렇게 해줬으면 소원이 없었다.
시즌 막판에 접어들었지만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 홈런 페이스, 9월 5일 경기에서 아시아 신기록 61홈런을 넘겨버렸다.
124경기 만에 이뤄낸 금자탑, 이 선수는 남은 경기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사방에서 팬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이대로 계속 멀리 가면 그대로 미국 진출?]
-> 여권은 챙겼나 모르겠네. 라이온즈는 이대로 그냥 보내줘라.
-> 아직 4년차라 안 됨. 6년 경험치 채워야 포스팅 자격 얻거든
[우주 끝까지 가버려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도록]
-> 넌 또 뭐냐? 개그도 정도껏 해야지 선을 넘었네.
-> 그만큼 이인영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겠지, 하긴 광주 팬들한텐 와전 저승사자 아니냐? 타이거스 상대로만 홈런 18개 때렸으니, 내가 타이거스 팬이라고 보기 싫겠다.
활약이 계속되면서 메이저리그 진출론도 힘을 얻기 시작했다.
물론 이인영 한 명만 믿고 가는 성운 라이온즈 입장에선 달갑지 시나리오,
라이온즈는 이인영을 영입하기 위해 계약금만 7억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여기에 지급하는 연봉도 최고 수준, 스타성까지 갖춘 선수라 떠나가면 팀 성적은 물론 흥행에도 심각한 타격이 온다.
메이저리그에 가더라도 우승은 하고 갔으면 좋겠는데 점 점 메이저리그에 가까워지는 선수, 그에 비해 팀은 제 자리 걸음이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 차명석 단장은 팬들을 이용해 여론전을 펼쳤다.
[갈 땐 가더라도 우승은 시켜주고 가요.]
-> 차라리 우릴 밟고 가라. 우승 시켜주기 전엔 절대 못 보네
-> 더 먼 곳으로 가겠다고? 우리 버리고 가면 10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갈 땐 가더라도 우승은 시켜주고 가라는 공세, 하지만 이인영은 침묵을 지킬 뿐 이렇다 할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