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28화 (128/309)

128화. 하나만 잘 해요 (12)

‘한 번 더 조여 줘야지.’

경기는 어느덧 8회, 대기 타석에 선 이인영은 특이한 자세로 스윙을 돌렸다.

선수들은 연습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며 스윙을 돌릴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돌리면 그만인가. 다른 선수들은 몰라도 이인영은 대기 타석에서 다운스윙을 했다.

요즘 다운스윙을 하면 안 되는 기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이건 타격의 기본이다.

다운 스윙도 못하는 선수가 레벨 스윙에 어퍼 스윙을 구사한다? 말 그대로 언어도단, 타구의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센터 쪽인데 다운스윙을 하다보면 타구는 자연스럽게 센터 쪽으로 향한다.

직접 해봐야 깨닫는 일, 타격의 비밀은 또 있었다.

‘어깨를 잘 움직여 준다.’

인간의 머리는 무겁기 때문에 머리가 향하는 쪽의 어깨 회전은 제한된다.

장타를 치려면 어깨를 잘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는 타격 코치들, 그런데 타자는 타격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머리가 어깨 쪽을 향하게 된다.

공을 보고 치려면 타석에 선 채 머리를 투수 쪽으로 돌려야 될 거 아닌가.

그런데 이 자세에서 머리는 움직이지 말고 어깨를 회전 시켜라?

사실 제대로 된 파워스윙을 하고 싶다면 고개가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머리가 조금은 움직여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스윙이 짧고 불완전해 지는데, 이런데도 머리가 살짝만 움직여도 뭐라고 하는 코치들이 있다.

하지만 이인영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타격 론을 성립했고 이제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섰다.

‘당신이 타격을 알아?’

누가 간섭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수준, 성적을 내고 있으니 간섭할 사람도 없었다.

“자, 이제 이인영 선수의 타석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세 타석 모두 볼넷, 아직 손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만 걸리면 됩니다. 급할 거 없어요.”

박한우 위원은 이번 타석에서 뭔가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대기 타석에서 시선은 오른 쪽에 둔 채 다운스윙을 돌리던 양아들,

감독 시절, 박한우 위원이 선수들에게 다운스윙을 강조한 건 컨택 위주의 스윙을 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일단 기본을 할 줄 알아야, 그 다음에 투수 쪽으로 타구를 보낼 수가 있다.

여론은 그걸 두고 타자에게 파워 스윙을 못하게 한다고 욕을 하는데, 그것도 못하면서 무슨 파워 스윙을 하나.

55홈런을 치고 있는데도 기본을 잘 지키고 있는 선수,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건 당연했다.

[따악~!!]

“자!! 이 타구는 중견수 앞에 떨어집니다!! 이인영 선수가 4번 째 타석에서는 안타를 기록하는 군요.”

“타격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스윙이 나왔네요. 제가 감독 시절 선수들에게 그렇게 강조했던 스윙입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 하시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캐스터가 자리를 깔아줬지만 박한우 위원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화제를 넘겼다.

말로 설명해봤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팬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들도 하기 어려운 기술, 선수도 이해를 못하는 걸 일반인이 어떻게 이해하나.

팬들은 그냥 보고 즐기면 그만, 해설위원도 그 눈높이에 맞는 해설을 해야 된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해설은 뭘까.

해설경력 4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박한우 위원은 아직 그 답에 가까워지지 못했다.

‘뭔가 뚝뚝 끊어지는데’

한편, 후속 타자가 범타로 물러나자 이인영은 굳은 얼굴로 1루로 돌아갔다.

선두타자가 출루했지만 좀처럼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타선, 올 시즌 성운 라이온즈는 경기 당 4.5득점을 내고 있지만 타선의 집중력이 떨어진다.

팀 타율은 0.271로 전체 구단 중 4위, 득점권 타율도 0.267로 전체 5위다.

딱 중간 정도의 화력, 작년에는 투수력이 하위권이었지만 화력만큼은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올 시즌은 투수력도 평범, 화력도 평범, 이도 저도 아닌 팀이 됐다. 상위 타선 5명을 제외하면 기대할 게 없는 하위 타선,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끌고 가야 되는 건가.

개인 성적은 뛰어났지만 이인영은 팀의 미래가 걱정됐다.

결국 8회도 득점을 내지 못하면서 스코어는 3대 3 동점, 양 팀은 정규 이닝에서 승부를 보지 못하고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그 자식이 끝내 줄 거다.’

‘우리는 루만 채우자.’

10회 말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선수들은 이인영만 바라보고 스윙을 돌렸다.

그건 관중들도 마찬가지, 마치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들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거대한 태양은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현재 상황은 1사 주자 1 - 3루, 1점만 나와도 경기는 끝난다.

여기서 만루 채우고 돈 부머를 상대로 병살을 끌어내는 게 최선이겠지, 타이거스의 포수 조익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해바라기들은 단체로 폭발했다.

이번에도 걸어 나가면 볼넷 4개, 좀 너무한 거 아닌가. 하지만 이인영은 차분하게 볼을 거른 뒤 1루로 걸어 나갔다.

‘하아~ 진짜 미치겠다.’

병살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유격수 정면으로 가버린 타구, 이렇게 10회 말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도 득점 없이 끝났다.

12회까지 승부를 보지 못하면서 무승부로 끝난 경기, 경기가 끝난 후 성운 라이온즈 팬들은 답답한 타선을 질책했다.

[후속 타선이 이러니까 상대팀이 대놓고 볼넷으로 거르지]

[진짜 타자들은 이인영 빼고 다 반성해라, 이러다간 올해도 포스트 시즌 못 간다]

-> 그러고 보니까, 메이저리그에서 타순 시험한다고 하지 않았나? 매 이닝 스타 선수 한 번 씩 나오게 한다는데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 나는 찬성, 이인영이 매 이닝 나오면 득점도 훨씬 많아질 거고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일부 팬들은 이인영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을 식물인간 취급했다.

9명을 순차적으로 돌릴 필요 없이 잘하는 선수들만 추려서 공격을 하게 한다. 그게 훨씬 역동적이고 재미있지 않겠나?

하지만 이인영은 SNS를 통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제가 아무리 잘 쳐도 그런 풀 스윙을 매 이닝 반복할 순 없습니다. 매 이닝에 타석에 들어선다? 저는 기계가 아닙니다. 매 타석, 매 공마다 집중하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이죠. 제가 매 이닝 타석에 들어선다면 비율 스탯은 엉망이 될 겁니다. 그리고 더럽게 못 친다는 여러분들의 비난은 제가 듣게 될 겁니다.]

말 그대로 선수 한 명 죽이는 일,

하위 타선이 못 친다고 아예 쓸모없는 인간 취급받아야 하나.

이 세상에 태어나 쓸모없는 인간은 없는 법,

이인영은 승리는 팀원이 각자 그라운드에서 제 역할을 했을 때 나오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제가 올 시즌 경기 수보다 많은 117타점을 올린 것도, 동료들이 출루를 해 준 덕분입니다. 그러니 너무 그들을 질책하지 마세요. 팀이 승리하지 못한 건 제게도 책임이 있는 겁니다. 저는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면 제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성운 라이온즈의 일원입니다. 팀이 지면 저도 속상하고 동료들이 욕을 먹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니 욕을 할 거면 저도 같이 욕해주세요.]

이어지는 설득에 팬들은 입을 다물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를 비난하기는 쉬운 법, 중요한 건 해결책을 찾는 거 아닌가.

이인영은 문제점은 선수들이 노력해서 찾아낼 테니, 조금만 더 지켜봐 달라는 말을 남겼다.

‘창피하게 후배한테 저런 말이나 듣다니’

비난은 가라앉았지만 성운 라이온즈 선수단은 얼굴을 붉혔다.

얼마나 선배들이 못 났으면 어린 후배가 팬들의 비난을 막아섰을까. 해답은 어떻게든 승리를 하는 것,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다.

* * *

[선배, 저 좀 도와주세요.]

“뭔데?”

[저는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코치님은 그렇게 하라고 해서요.]

홈 3연전 마지막 날, 이인영은 후배의 간절한 구원 요청을 받았다.

이게 내 스윙이 아닌 것 같은데 맞다고 하는 코치, 정말 이게 맞는 건가.

타격에 일가견이 있는 선배라면 뭔가 답을 알고 있겠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는 건 일상이라 이인영은 후배의 구원요청을 받아들였다.

183cm의 키에 95kg이라는 당당한 체구를 갖춘 최지환, 올 시즌 69경기에서 주로 대타로 나와 타율 0.276, 홈런 2개, 28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절대 나쁘지 않은 성적, 그런데 뭐가 불만인 걸까.

이인영은 후배의 불만에 귀를 기울였다.

“계속 밀어 치게 된다고?”

“네, 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거든요?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하늘같은 선배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대기 타석에서 의도적으로 다운스윙을 하며 기본을 몸에 익혀두는데, 이 녀석은 지금 기본자세를 이해 못하고 있다.

결국 풀 스윙을 해서 좌측 담장을 넘기고 싶다는 건데 걷지도 못하는 자식이 뛰겠다고 날 뛰는 꼴,

그래도 일단 시범을 보여줬다.

“너 내가 대기 타석에 있을 때 어떻게 몸 푸는지 못 봤어?”

“아니요.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그제야 최지환은 선배의 연습 동작에 주목했다.

전형적인 밀어치는 다운스윙, 정말 55홈런을 치고 있는 선배가 대기타석에서 이렇게 몸을 풀었단 말인가.

믿기 어려웠다.

따악~!!

그러건 말건, 이인영은 밀어치는 타구를 몇 번 날린 뒤, 센터 쪽으로 타구를 날렸다.

지금까지 쭉 훈련을 함께 했는데 왜 이걸 깨닫지 못했던 걸까.

그제야 최지환은 코치의 뜻을 이해했다.

“타자는 강하게 치는 것도 중요한데, 일단 타구를 투수 쪽으로 보낼 수 있어야 돼. 너는 그게 안 되니까 코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한 거고, 그걸 마스터하고 나서 이렇게 치는 거야.”

후배에게 한 소리 날린 이인영은 바로 센터 쪽 담장을 넘겨버렸다.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파워 스윙, 최지환은 바로 저걸 하고 싶었다.

“와~ 지린다…난 왜 안 되는 거지?”

“지리긴 뭐가 지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연습이나 해. 네가 홈런 스윙을 하는 건 아직 5년은 일러”

“연습하면 2~ 3년 안으로 줄일 수 있을까요?”

“그건 네가 하기 나름이겠지.”

이인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노하우를 최대한 전수했다.

백스윙을 할 때 고개를 돌리는 방법, 그리고 몸을 최대한 틀어서 스윙을 몸 쪽으로 끌고 오는 방법도 제시했다.

작년에는 이게 안 돼서 장타가 안 나왔지만 올해는 확실히 해내고 있는 편, 아직 미숙한 후배가 소화하긴 어려운 과제들이지만 하나하나 미션을 던져주고 해결하도록 했다.

“지금은 왼 쪽 어깨가 너무 올라갔잖아. 그렇게 하면 파워가 분산 돼서 안 돼.”

“그래요?”

계속되는 개인 훈련, 그렇게 오전을 보낸 두 선수는 비장한 각오를 안고 경기에 임했다.

오늘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게임, 이인영은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어떻게 치는지 잘 봐야지. 오늘부터 당신의 스토커가 되겠습니다.’

최지환은 눈을 부릅뜨고 선배의 모든 행동을 머리에 새겼다.

평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준비동작부터 마무리 스윙까지,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했다.

당장은 따라잡을 수 없겠지만 나도 노력하면 언젠가는 가능하겠지, 열혈 야구 청년의 일대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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