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26화 (126/309)

126화. 하나만 잘 해요 (10)

이곳은 대구 라이온즈 파크, 성운 라이온즈는 ST 위너스와 홈경기를 치렀다.

8월에 들어서면서 점점 치열해지는 순위 경쟁,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하던 농담도 잊고 팽팽하게 이어지는 경기에 집중했다.

현재 상황은 7회 말, 2아웃에 주자는 1-3루, 타석에는 홍현구가 들어섰다.

4대 3으로 뒤지고 있는 라이온즈가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팬들은 한 목소리로 역전 적시타를 연호했다.

[따악~!!]

“자…이 타구는!! 유격수 머리 위를 넘어갑니다!! 3루 주자는 홈으로 1루 주자는 2루를 지나 3루!! 내친 김에 홈까지 내달립니다!! 주자 모두 들어오면서 역전!! 경기를 뒤집습니다!!”

“이렇게 경기가 뒤집히네요. 이인영 선수까지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홍현구의 짜릿한 역전타로 거둔 승리,

하지만 경기 후, 여론에서 논란이 일어났다.

1루 주자 박한수가 2루를 밟지 않고 3루를 돌아 홈으로 향했다는 ST 위너스 팬들의 주장, 오심이라며 논란이 일어났지만 누의 공과는 심판이 선언하는 게 아니다.

벤치에서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할 어필 플레이, 심판은 이걸 상대 팀 선수나 벤치에 알려주면 안 된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공과를 잡아내지 못한 ST 위너스의 책임, 이 사건으로 ST 위너스는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항의도 제대로 못하는 바보들]

[코치들은 다 잠만 잤냐? 선수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집중을 전혀 안 하네. 우리도 봤는데 선수들이 못 봤다고?]

너희들이 그러고도 프로냐는 말부터 야구 때려치우라는 폭언까지, 안 받아도 될 굴욕까지 당한 ST 위너스는 설욕을 다짐했다.

‘조금 어색하지만 못 할 것도 없지, 연습 했으니까.’

한편, 경기를 앞두고 이인영은 1루 포구 훈련을 했다.

주 포지션은 좌익수지만 팀 사정 때문에 가끔 1루를 본다.

일단 투수와 호흡을 맞추는 게 중요, 오늘 선발 투수로 등판하는 이동찬과 함게 커버 플레이를 체크했다.

무사 주자 1루라는 상황을 두고 실행하는 훈련, 1루 땅볼에 이인영이 자리를 비우자 2루수 임완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1루로 가!! 1루!!”

선배의 호통에 서둘러 커버 플레이를 들어가는 이동찬, 공을 잡은 이인영은 투수에게 공을 넘겨줬다.

아무리 선수가 시야가 넓어도 공과 베이스를 동시에 커버하는 건 불가능 하다.

1루를 비웠다면 투수에게 공을 넘겨주는 게 현명, 일단 아웃은 잡아냈지만 이인영은 만족하지 못한 얼굴로 후배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너무 빨리 들어오면 안 돼, 약간 완만한 커브를 그리듯이, 알았지?”

“예“

투수가 1루로 직진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 1루수와 타이밍을 맞추며 커버를 들어가야 한다.

투수가 베이스 근처에 온 상황에서 송구를 하면 어떻게 될까.

투수와 야수의 거리가 좁혀져 있는데 1루수가 제대로 송구를 할 수 있을까. 송구를 할 각도도 안 나오고, 대부분 이 상황에서 실책이 일어난다.

TV에서 볼 때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수비를 해보면 뭐 하나 간단하지 않은 플레이,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

“선배가 빨리 들어가라고 재촉해서 얘가 타이밍을 못 맞췄잖아요.”

“또 내 책임이라는 거냐?”

임완수는 후배의 질책에 반발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빨리 움직이는 게 나은 거 아닌가.

하지만 이인영은 한 박자 여유를 가지는 게 실책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선배도 너무 빨리 들어가려 하는 게 문제잖아요. 박한우 위원님이 해설하는 거 못 들었어요?”

“아~ 알았다 알았어. 저 자식은 또 잔소리야.”

후배의 질책에 임완수는 손을 저었다.

2루수가 2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갈 땐 완만하게 커브를 그리며 들어가야 1루로 송구할 각도가 나온다.

그런데 임완수는 직진으로 들어가 버리니 1루 송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2년 전 플레이오프에서도 박한우 위원에게 한 소리 들었던 문제점, 투수라고 다를 건 없다.

무조건 1루로 달려달 게 아니라 1루수와 호흡을 맞추는 게 중요, 잘 될 때까지 연습은 반복됐다.

‘이러면 내가 할 일이 없는데’

이규하 수비 코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런 지적은 보통 코치가 해줘야 되는데, 야구 잘 하는 저 녀석이 다 해먹으면 난 뭘 하라는 건가.

그렇다면 나는 선수들이 경기 중 미처 캐치하지 못한 점을 잡아내야겠지, 경기가 시작되자 이규하 코치는 눈을 부릅떴다.

“자, 오늘 성운 라이온즈는 이동찬 선수를 선발로 내세웁니다. 올 시즌 19경기에서 5승 5패 평균자책점 5.04, 96과 1/3이닝 동안 볼넷 37개, 탈삼진은 79개를 잡아내고 있습니다.”

“고교 졸업 선수치고 나름 잘 적응하고 있죠. 1년 차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것도 좋겠지만, 천천히 가서 나쁠 것 없습니다.”

“일단 선발로 계속 중용되고 있다는 것부터 팀에서 기대가 크다는 뜻이죠. 차근차근 밟아나가면 됩니다.”

주심의 콜과 함께 시작된 경기,

사인을 확인한 이동찬은 힘차게 초구를 던졌다. 구속은 142km, 평소와 다를 게 없는 구속이지만 오늘 따라 느낌이 좋았다.

딱~!

‘엇?’

1루 쪽으로 굴러가는 타구, 이동찬은 선배가 가르쳐 준대로 완만한 커브를 그리며 1루로 향했다.

호흡을 맞추겠다며 가다가 멈칫하는 선수들이 있는데 이건 오히려 독,

1루로 가는 거리가 좀 길어지더라도 송구가 날아올 때까지 완만한 보폭을 유지했다.

‘지금부터는 전력질주!!’

배송이 완료되자 이동찬은 서둘러 베이스를 찍었다.

100kg이 넘는 몸무게 때문에 다들 느리다고 오해하는데 운동 신경은 꽤 좋은 편, 한숨 돌린 이동찬은 다음 타자에 집중했다.

딱~!!

이번에는 안타를 내주고 말았다.

구위는 쓸 만 하지만 바깥쪽 빠른 볼 외엔 마땅한 무기가 없다는 게 단점, 이동찬의 약점을 간파한 타자들은 이제 대놓고 바깥쪽을 노려 치고 있다.

살아남으려면 몇 가지 무기를 더 개발해야겠지, 프로로 자리를 잡는 길은 아직 멀고도 험했다.

‘이건 또 뭐냐?’

그렇게 계속 진행된 경기,

1사 주자 1루에서 타자가 우익수 얕은 플라이를 쳤다.

1루 주자는 1-2루 사이에서 상황을 살피는 중, 그런데 우익수 박한수가 타구를 놓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웃 되는 줄 알고 있었던 타자는 1루로 전력질주, 아직 늦지 않았다고 판단한 박한수는 1루로 송구했다.

그런데 이게 완전히 빠지면서 관중석으로 들어가 버렸고, 주심은 2루를 점거한 주자에게 홈으로 들어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아니지!! 아니지!! 근처에만 갔지 안 밟았잖아요!!”

이인영은 2루심에게 적극 어필을 했다.

1루 주자가 2루로 가긴 했지만 베이스를 터치하지 않은 걸 똑똑히 봤다. 그러니 1루 주자는 3루, 타자 주자는 2루로 가는 게 맞는 상황, 공과를 알고 있었던 2루심은 항의를 받아들였다.

‘안 밟았어? 난 못 봤는데?’

2루수 임완수는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희열을 느꼈다.

누구보다 2루에 가까이 있었던 나도 눈치를 못 챘는데, 저 자식은 그걸 봤단 말인가.

하지만 공과를 발견한 사람은 또 있었다.

‘또 일 못했네.’

그건 바로 이규하 코치, 한건 하나 했는데 한 발 앞선 선수의 항의, 그 상황에 집중하는 것도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2루 주자의 공과를 잡아낸 걸까.

역시 짐승은 짐승,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이게 무슨 망신이냐.’

한편, 이틀 연속 누의공과에 얽힌 ST 위너스 선수단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제는 공과를 못 잡아내서 망신을 당했는데 오늘은 공과를 저질렀다. 오늘도 지면 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상황,

2루 쪽 느린 땅볼을 굴려 선취점을 냈지만 1사 주자 2 - 3루 기회에서 낸 결과치고는 시시했다.

이어지는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리그에서 가장 높은 생산력을 내는 테이블 세터진은 이인영에게 무사 주자 1 - 2루 기회를 안겨줬다.

“바깥쪽 볼입니다. 카운트는 원 볼 노 스트라이크”

“이제는 저 공도 마음 놓고 던질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이인영 선수가 바깥쪽 공을 밀어 쳐서 시즌 45호 홈런을 터뜨리지 않았습니까. 바깥쪽 공 상대 타율도 0.335까지 올라왔어요.”

시즌이 거듭될수록 정확해지는 선구안,

바깥쪽 공이 맞아나가기 시작하자, 투수들은 이제 어떤 공도 마음 놓고 던질 수가 없게 됐다.

그렇다고 여기서 거르자니 장타 페이스를 부쩍 끌어올린 돈 부머가 대기 타석에 버티고 있다.

어느 쪽이든 걸리면 끝장, ST 위너스 벤치는 집요한 바깥쪽 승부를 택했다.

‘도망치면 쫓아가서 때린다.’

바깥쪽으로 빠진 공이지만 몸을 약간 숙이며 잡아당겨버렸다.

보통 타자들이라면 땅볼이 나왔겠지만 계속 뒤로 뻗어가는 타구, 홈런을 확신한 월드스타는 천천히 1루 베이스로 향했다.

‘밟을까? 말까?’

3루를 앞두고 이인영은 장난을 쳤다.

어제도 오늘도 ST 위너스를 괴롭히는 그 놈의 베이스, 안 밟는 척 하다가 뒷발로 베이스를 찍고 3루를 통과했다.

상대팀 입장에선 열불이 터지는 장면, 경기가 끝난 후 ST 위너스 팬들은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며 일제히 비난에 나섰다.

“그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도 되는 거 아닌가요?”

이인영은 난 잘못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내가 장난처럼 야구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정말 집중력이 떨어지는 플레이를 했다면 2루 공과를 잡아내지도 못했을 거다.

그렇게 따지면 이틀 연속 공과 논란에 휩쓸린 상대 팀은 뭔가.

날 탓하기 전에 실수를 반복한 ST 위너스 선수단을 책망하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장난을 치는 걸 따지기 전에 그걸 질책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계속 질책하신다면 앞으로 재미없게 야구만 하겠습니다. 여유 따윈 부리지 않겠습니다.”

기분이 상한 월드스타는 이날부터 절대 웃거나 장난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인터뷰를 할 때도 딱딱한 말투로 일관, 상대 팀 선수와 말을 하거나 농담을 하는 모습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인영 시즌 49호 홈런 작렬]

[423타석만의 결과]

반대로 홈런포는 연일 불을 뿜었다.

8월 2일부터 5일까지 3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리며 홈런 1위를 질주, UA 베어스의 용병 호세 페르난데스가 그 뒤를 따르고 있지만 26개에 그치고 있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존재감, 한 경기 쉬고 바로 50호 홈런을 날려버렸다.

숫자 9의 징크스마저 가볍게 떨쳐낸 활약, 8월 8일 경기에선 대형 사고를 쳐버렸다.

[따아악~!!]

“자!! 다시 한 번!!!! 이 타구는 담장 위로~ 사라집니다!! 연타석 홈런!! 순식간에 스코어는 12대 0으로 벌어집니다!! 시즌 52홈런!! 승부를 건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좀 웃었으면 좋겠네요. 언제까지 삐쳐 있을 생각이죠?”

대활약에도 불구하고 밋밋한 세리머니와 표정을 유지하는 월드스타, 조금만 웃어주면 안 될까.

관중들은 연신 이인영을 연호했지만 제대로 꼬인 심보는 풀어지지 않았다.

‘내가 진지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겠어.’

내가 여유를 부리는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가.

그럼 진지하게 야구만 하면 그만, 이후에도 묵언시위는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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