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하나만 잘 해요 (8)
[반복되는 오심 어쩌나]
[KBO 개선책 마련해야]
올스타전을 열흘 앞두고 KBO는 오심 논란에 휩싸였다.
대책 없이 넓어진 스트라이크 존, 그리고 권위만 앞세울 뿐 반성을 모르는 심판진의 태도가 문제, 위원회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과연 그것만의 문제일까.’
이인영은 이번 사건을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 않았다.
믿기 어렵겠지만 1982년 이후, 지금까지 KBO에서 감독이 퇴장당한 경우는 27회에 불과하다.
제일 많이 퇴장을 당한 건 선수로 183회, 코치가 37회로 그 다음을 잇고 있다. 그런데 선수를 보호해야할 감독이 겨우 27번 퇴장 당했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이건 미국 야구와 한국 야구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일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감독은 선수를 보호하는 존재, 선수가 퇴장당하기 전에 튀어나와 주심과 배를 부딪치며 침을 튀기며 항의를 하는 감독은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오죽하면 어느 감독은 혼자서 통산 161회 퇴장을 당했을까.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이 기록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
자기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그만큼 열심히 싸웠다는 거 아닌가.
그런데 한국은 그게 아니다.
선수가 주심과 말싸움을 주고받다가 퇴장 조치가 내려지면 그 다음에 감독이 나오는데, 이미 상황이 종료됐는데 그런 뒷북이 무슨 소용인가.
한국의 감독들은 불합리한 판정으로부터 선수를 지킬 마음이 있는 건가. 이런 소극적인 태도도 심판진의 폭거를 막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 이인영은 감독들도 적극적으로 오심에 항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0년 넘게 이어진 문화가 그렇게 쉽게 바뀌겠는가.
일단 명분이 쌓일 때까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맙소사!!”
사건은 바로 터졌다.
시즌 내내 스트라이크 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돈 부머, 바깥쪽 한참 빠지는 공에 손이 올라가자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네가 심판이냐?!! 어?!! 심판이야?!!”
여느 때처럼 나 잘났다고 떠들어 대는 심판,
분을 이기지 못한 부머는 방망이로 홈 플레이트를 내리찍었고, 부러진 배트 파편은 심판 쪽으로 튀었다.
바로 내려진 퇴장조치, 그제야 이성한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뛰쳐나와 주심과 말싸움을 벌였다.
‘참 일찍 나오시네요.’
더그아웃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인영은 고개를 저었다.
지난 술자리에서도 한 마디 했지만 우리나라 감독들은 너무 적극성이 부족,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이러니 선수들은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항의를 하는 건데, 이런 배경을 알 리 없는 팬들은 선수들이 항의하면 성깔 더럽다고 욕한다.
진짜 더러운 게 뭔지 보여줘야 되는 건가.
흥분한 돈 부머는 여전히 코치의 팔을 뿌리치며 심판에게 달려들 기세, 상황을 살피던 이인영은 더그아웃 밖으로 뛰쳐나갔다.
“말리지 마요!!”
“뭐?”
“말리지 말라고요!!”
이인영은 코치를 옆으로 밀어냈다. 코치의 손에서 해방된 돈 부머는 다시 주심에게 돌진, 이인영도 그 뒤를 따라갔다.
“Why did you XXXX call that strike?!!(그게 스트라이크라고)”
“장난 하냐?!! 너 오늘 망신당해 볼래?!! 이 XX야?!!”
곰 두 마리의 협공에 깜짝 놀란 주심은 뒷걸음질 치다 넘어졌다.
이성한 감독이 말려봤지만 힘으로 말리는 건 불가능, 두 선수는 주심의 가슴과 얼굴을 마구 밀며 구석으로 내몰았다.
‘어떻게 하지?’
겁을 먹은 다른 심판들은 감히 끼어들지도 못하고 강 건너 불구경 중, 그렇게 주심은 철저히 고립됐다.
“너 … 너희들 다 퇴장당하고 싶어?!!”
“그래!! 해 봐!! 해 보라고!!”
주심은 이때 진심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한 선수도 대응하기 어려운데 산만한 두 놈이 동시에 달려들고 있으니, 실제로 이인영은 주먹으로 심판을 치는 듯한 위협을 가했다.
겁먹었는지 움찔 하는 주심, 이성한 감독은 서둘러 이인영의 주먹을 움켜쥐었다.
“넌 왜 이러냐?!! 어?!!”
“아!! 놔 봐요!!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선수의 반란에 이성한 감독은 할 말을 잃었다.
마치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 마주한 아버지가 된 기분이랄까, 아들은 없지만 너무 서운했다.
“Thank you for your help, my friend(도와줘서 고마워 친구)”
“뭘, 겨우 이 정도 가지고”
항의를 마친 두 선수는 어깨동무를 하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이것만 보면 웃긴 장면이겠지만, 앞 장면을 봤다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었다.
“야, 너 나한테 무슨 감정 있냐?”
경기가 끝난 후, 이성한 감독은 이인영과 단독 면담을 나눴다.
딱히 서운하게 한 게 없는데 왜 그렇게까지 한 걸까. 이인영은 차분한 목소리로 반격에 나섰다.
“그걸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거예요?”
“아니 그러니까 뭐가?”
“부머 퇴장 당하기 전까지 시간이 제법 있었잖아요. 왜 그 전에 안 나가신 거예요? 감독님이 대신 퇴장당할 수도 있었잖아요?”
당신 선수인데 왜 퇴장을 막지 못한 건가, 핵심을 찌르는 말에 이성한 감독은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제가 나가서 같이 싸워준 거예요. 딱히 감독님한테 서운한 감정 있어서 그런 거 아닙니다.”
입이 있으나 유구무언, 당신은 감독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이성한 감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인영은 왜 코치를 밀쳤는가?]
이 사건으로 이인영은 부머보다 더 관심을 받았다.
주심에게 힘을 가한 건 부머도 마찬가지지만, 부머는 오심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월드스타는 그런 것도 없었던 상황, 기자들의 질문 에 이인영은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심판들은 자기가 선수보다 위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좀 더 자세하게 … ”
“오심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심판이 먼저 선수에게 사과한 적 있습니까? 오히려 선수가 찾아가서 사과를 했죠. 이게 평등한 관계입니까?”
주심과 심판은 평등한 관계인가?
그렇게 묻는다면 팬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답 할 거다.
그런데 주심이 오심으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선수에게 먼저 손을 내민 적이 있는가? 오히려 선수가 먼저 찾아와 고개를 숙이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게 하나 둘 쌓이다보니 자신들이 선수 위에 군림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인영은 이번 기회에 버릇을 뜯어고쳐놔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주심과 선수는 동등한 관계입니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선수가 주심에게 항의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권리죠. 그런데 심판은 자신들의 권위만 생각합니다. 선수도 프로야구의 일원으로서 심판에게 항의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게 인정되지 않는데 어떻게 프로야구가 공정하게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이번 일에 KBO 위원회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저도 나름대로 행동에 나서겠습니다.”
이인영은 KBO 위원회가 부머에게 내린 출장정지와 벌금을 주심에게도 동등하게 적용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번 올스타전은 보이콧, 그래도 해결이 안 된다면 남은 경기는 다 보이콧 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오늘 겪은 일은 성운 라이온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언제까지 선수들이 그리고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이 오심의 피해자가 되어야 합니까? 각 구단과 선수협이 이번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오심은 경기의 일부라는 개헛소리를 들어야 할 겁니다.”
이인영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구단과 선수협을 압박했다.
항의를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권리, 이걸 지키지 못한다면 주권을 포기한 국가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내가 누려야 할 권리도 못 지키는 놈은 그냥 등신이라며 과격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선수협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 조직은 없는 셈 치겠습니다. 어떤 모임을 개최해도 참석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KBO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KBO가 주최하는 시상식엔 절대 참여하지 않을 겁니다. MVP? 골든 글러브? 그딴 거 다 필요 없습니다. 불의에 눈을 감는 그딴 조직이 주는 상은 받기 싫습니다.”
심판들과 제대로 한 판 붙어보겠다는 엄포,
게다가 얼마 전부터 오심 논란으로 여론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팬들이 이인영의 발언에 지지를 표하면서 KBO는 난감한 입장에 처했고, 일단 선수와 심판이 화해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경기를 하다보면 실수 할 수도 있고 그런 거네. 뭘 그렇게 … ”
“지금 여기에 설교하러 나오셨어요? 저 가르치겠다는 겁니까?”
여기서도 이인영은 칼날을 세웠다.
그냥 미안하다. 앞으로 주의하겠다. 이 말만 하면 선수도 미안하다고 하고 끝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마지막까지 논지를 흐리고 있는 심판위원회 회장, 이인영은 사람 가르치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원하는 건 미안하다, 그 한 마디입니다. 그 말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 …… 미안하네. 앞으로 주의하겠네.”
“저한테 하지 마시고 피해자한테 하세요. 진짜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결국 심판위원회는 공식으로 돈 부머에게 오심에 대해 사과했다.
KBO 3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 돈 부머도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하면 사건은 해결됐다.
“선수들이 항의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이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이인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여론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벌금 없는 항의를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우리도 항의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사람을 치거나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플레이를 했다면 출장정지에 벌금도 받아야겠지만, 항의는 언제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주심과 선수는 동등한 관계, 항의가 주심에 대한 무례인가? 경기를 끊는 불필요한 행동인가?
그렇게 따지면 잘못된 정책에 국민들은 아무런 항의도 하면 안 되는 건가?
서로 협의해서 실책을 줄여보자고 문제를 제기하는 건데, 그걸 국가에 대한 도전, 조직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로 여긴다면 이게 공산주의 사회지 민주주의 사회인가?
이인영은 야구뿐만 아니라 사회 각지에서도 항의하는 문화가 보장 돼야 한다며 국민적 호응을 받았다.
‘이젠 우리가 통제할 선수가 아니구나.’
성운 라이온즈 단장 차명석은 이번 사태를 통해 이인영의 입지를 확인했다.
구단에서 연봉 주는 선수니까 우리 뜻대로 다룰 수 있겠지? 실제로 구단은 연봉을 무기로 선수들을 쥐락펴락 한다.
하지만 이인영을 그렇게 다룰 수 있는가, 30년이 넘는 KBO 역사에서 심판노조의 무릎을 꿇린 선수는 이인영이 역대 최초다.
보이콧을 선언하자 팬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심판위원회를 공격했고, KBO 홈페이지는 빗발치는 팬들의 항의에 서비스가 마비되기도 했다.
그만큼 팬들의 민심을 잡고 있다는 것, 잘못 건드리거나 서운하게 하면 구단이 욕을 먹을 수도 있다.
선수와 구단은 서로 계약관계일 뿐, 이제 겨우 4년 차에 접어든 어린 선수지만, 구단도 그 눈치를 봐야 했다.
“야, 너희들 앞으로 주심에 인사하지 마.”
이인영은 이후에도 후배 선수들에게 정신 교육을 시켰다.
왜 신인 선수들은 마운드에 오르거나 타석에 설 때 주심에게 고개를 숙이는 건가.
잘 봐 달라고 아부하는 건가.
그냥 성의를 표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그걸 주심에 대한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심판이 있다.
선수는 심판과 동등한 존재, 그런 행동 다시는 하지 말라며 압력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