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하나만 잘 해요 (7)
“두 분, 여기 좀 봐 주세요.”
5월 21일, 이인호 - 이인영 부자는 카메라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앞선 경기에서 이인영은 시즌 21호 홈런이자 통산 133호 홈런을 쏘아 올렸다.
아버지의 커리어 132홈런 기록을 넘어서는 한 방, 통산 265홈런을 합작한 두 사람은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을 날린 부자(父子)로 이름을 올렸다.
“이인호 위원님, 아드님께서 본인의 통산 기록을 갈아치우셨는데 지금 소감이 어떠십니까?”
“자식은 언젠간 부모를 뛰어넘는 법이죠.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아드님에게 더 바라는 점이 있나요?”
“뭐…제 기대라기보다는 집사람의 소망인데요. 얼른 장가가서 손주나 한 명 어떻게…”
민망한지 말끝을 흐리는 아버지, 이인영은 그 옆에서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인영 선수, 아버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연애는 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글쎄요. 제가 연애를 할 수 있을까요?”
“야구에 너무 열중하시느라 연애 할 시간이 없나요?”
“그게 아니라 이상한 글을 봤거든요.”
글의 제목은 이 세상의 남성 분포도,
잘 생기고, 돈 잘 벌고, 성격 좋으면 게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완벽한 남자도 욕을 먹는 세상이라면 나는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나.
잘 생긴 건 모르겠고 일단 돈은 잘 버는 편, 그렇다고 마냥 착한 것도 아니다.
그럼 그냥 돈 잘 버는 남자인가.
돈 잘 버는 남자에겐 어떤 여자가 시집오면 되는 건가. 생각하는 것도 귀찮았다.
“당분간은 야구나 열심히 하려고요. 다른 건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도 바라는 이상형은 있지 않나요?”
“글쎄요, 야구가 아닌 다른 게 눈이 들어온다는 건 프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때부터 이인영은 논란에 휩싸였다.
정말 야구 외엔 관심이 없는 거 아니냐, 아니면 정말 모든 게 완벽한 게이인가, 별의 별 소문이 나돌았지만 당사자는 이렇다 할 반응 없이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야, 너 진짜 게이는 아니지?”
베어스의 2루수 김환희는 후배를 슬쩍 찔러봤다.
전에 여자 소개해준다고 했는데도 거절한 녀석, 뭔가 반응이라도 해 주길 바랐는데 이인영은 실없는 미소만 짓고 말았다.
“야, 그러지 말고 생각 해 봐라. 말해 봤는데 걔는 너한테 관심 있는 거 같다.”
“됐어요. 시즌 중에 무슨 연애에요.”
“야, 연애한다고 죄짓는 거 아니야. 요즘 시대에 연애한다고 뭐라고 하는 감독 없어.”
“아~ 제가 알아서 할 게요.”
부모님도 그렇고 왜 다들 날 가만두지 않는 건가, 또 쓸데없는 말하기 전에 자리를 피해버렸다.
“자, 성운 라이온즈의 1회 초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임완수 선수, 올 시즌 타율 0.322, 홈런 1개, 10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5월 들어 타율 3할 5푼 7리, 페이스가 굉장히 좋죠, 간간히 2루타도 터지고 있습니다.”
[따아악~!!]
“엇?!! 잡아당긴 타구가!! 좌측 높게!! 날아서!! 담장을~ 넘어 갑니다!!!! 임완수 선수의 시즌 2호 홈런!! 라이온즈가 한발 먼저 앞서 나갑니다!!”
“간간히 장타도 터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자마자 이러네요. 역시 최근 물이 올랐습니다.”
홈을 밟은 임완수는 타석에 들어서는 홍현구와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았다.
그 다음 목표물은 대기 타석에 서 있는 이인영,
임완수는 하이파이브를 하는 척 하다가 후배의 유니폼 단추를 풀고 도망쳤다.
‘아~ 진짜 유치하게…’
단추를 잠그려고 했는데 그 사이 홍현구는 2루 땅볼 아웃, 시간도 없고 일단 그대로 타석에 섰다.
V라인 사이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쇄골과 근육질 몸매, 방송 카메라도 타격을 준비하는 옆모습에 포커스를 맞췄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62, 홈런 21개, 44타점, 5월 들어서도 9홈런을 기록하며 좋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 지금 모습은 남자인 제가 봐도 반하겠는데요?”
이 와중에도 쓸데없는 말을 하는 박한우 위원, 그 옆에 앉은 이인호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초구는 예상대로 바깥쪽 빠른 볼, 초구를 지켜본 이인영은 신중하게 다음 공을 기다렸다.
[따아악~!!]
“밀어낸 타구가!! 좌측 높게!! 좌익수는 계속 뒷걸음질 칩니다!! 담자~~ 앙!!! 위로 사라집니다!!!! 이인영 선수의 시즌 22호 홈런!! 2경기 연속 홈런을 쏘아 올립니다!!”
“지금은 그렇게 크게 휘두른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냥 툭 쳤는데 교통사고가 나버렸네요.”
타구를 확인한 임선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임완수에게 맞은 홈런보다 더 어이가 없는 한 방, 홈 플레이트를 열어 둔 오건무 포수도 허리에 손을 댄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이 홈을 밟은 이인영은 타석에 들어서는 돈 부머와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더그아웃에 입성, 아리따운 아가씨가 건네 준 꽃다발은 관중석에 던져줬다.
“아!! 진짜!! 하지 말라니까요!!”
“흐흐흐~ ”
임완수는 여기서 또 단추를 푸는 장난을 쳤다.
은근 속살 노출을 싫어하는 후배, 약점을 찾아낸 임완수는 집요하게 후배를 괴롭혔지만 대가는 참혹했다.
“야!! 야!! 뭐하는 거야?!!”
“그렇게 노출이 좋으면 아예 홀랑 벗어요. 아니, 제가 벗겨드리죠.”
성난 곰은 결박한 선배의 옷을 벗겨버렸다.
힘이 너무 세서 저항은 불가능, 유니폼 상의를 빼앗긴 임완수는 러닝셔츠 차림으로 더그아웃 구석에 처박혔다.
그 사이 이인영은 풀린 단추를 재정비, 그래도 뭔가 꺼림칙했는지 거울 앞에서 옷차림을 가다듬었다.
집에서 손가락 하나 안 움직이는 게으름뱅이지만 내 몸에 붙은 먼지나 옷에 뭍은 얼룩은 용납을 못하는 성격, 그런 아들을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라 아버지는 그러려니 하는 반응을 보였다.
‘타이밍이 조금 늦었던 것 같은데.’
단장을 마치고 나서야 월드스타는 22호 홈런을 두고 분석에 나섰다.
밀어 쳐서 넘기긴 했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건 아니다. 미처 잡아당기지 못한 공을 어퍼컷 스윙으로 걷어 올렸을 뿐, 결국 공을 잘 못 봤는데 기술로 커버 해낸 거다.
하지만 다음 타석에서도 이런 기술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공을 좀 더 세밀하게 봐야겠는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 조급해 하지 않는다. 두 번째 가볍게 휘두른다.’
3회 초 1사 주자 1 - 2루,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이인영은 목표를 되새기며 배트를 움켜쥐었다.
치겠다는 마음이 강하니 선구안이 흔들리는 것, 초구는 바깥쪽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따악~!
‘아차…’
2구는 쳤지만 배트 끝에 걸리면서 파울, 왜 이렇게 성급하게 배트가 나가는 걸까.
삼진을 당하더라도 공을 끝까지 보는 자세는 유지했다.
[따악~!]
“밀어냈습니다. 파울, 카운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를 유지합니다.”
“지금은 안타를 치기 위한 스윙은 아니었죠. 올 시즌 현장에서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딱히 외국인 선수들만 차별하는 게 아닙니다. 국내 선수들도 같은 말을 하고 있어요.”
KBO 협회는 세계화를 따르고 있는 거라며 반박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MLB가 바깥쪽 공을 잘 잡아준다는 말은 옛말, 오히려 좌우 폭은 좁아지고 무릎 아래까지 내려갔던 존은 무릎 위로 올려졌다.
덕분에 높은 공은 예전보다 잘 잡아주고 있지만 그래도 스트라이크 존이 전체적으로 좁아진 게 사실이다.
예전부터 넓은 좌우폭 때문에 말이 많았던 KBO의 스트라이크 존, 그런데 여기에 위원회가 면죄부를 주면서 존은 대책 없이 넓어져 버렸다.
이인영이 바깥쪽 공에 반응을 하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불리한 카운트라 그렇다고 멍하니 볼 수도 없고, 버틸 때까지 버텼다.
‘보였다.’
이번에도 바깥쪽 공, 이인영은 레벨 스윙에서 어퍼로 바뀌는 고급 기술을 선보였다.
[따악~!!]
“자!! 다시 밀어낸 타구가!! 좌익수 앞에 떨어집니다!! 이인영 선수는 오늘 두 타석 모두 안타를 기록하는군요.”
“이건 제가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공은 보통 날아오면서 가라앉는 궤적을 그리거든요. 특히 지금처럼 바깥쪽으로 날아오는 공은 더 가라앉기 때문에 마지막에 스윙 궤적을 어퍼로 바꿔주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국내 선수들은 다운스윙을 하기 때문에 이 코스의 공을 때리면 땅볼 밖에 안 되는 거예요. 하지만 이인영 선수는 이걸 마지막에 들어 올립니다. 그러니까 안타가 나오는 거예요.”
“그만큼 연봉도 높아지는 거고요. 구단은 땅볼에 안타를 주지 않습니다.”
이인호 위원은 이 와중에 깨알 같은 아들 자랑을 했다.
박한우 위원은 간결한 스윙을 강조하는 프로야구의 현실을 지적한 거지만, 달리 말하면 내 아들은 특별한 존재라는 거 아닌가.
그 속마음을 알아 챈 박한우 위원은 미소를 지었다.
‘쟤는 진짜 안 되겠다. 답이 없어’
베어스 벤치는 다음 타석부터 이인영을 철저히 걸렀다.
바깥쪽 낮은 공을 걷어 올리는데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저긴 어지간한 타자들은 건드리지도 못하는 코스고, 코치들도 절대 치지 말라고 강조하는 구역이다.
해설위원들이 가끔 기술적인 타격을 논하는데, 저 녀석이 하는 스윙은 그 범주를 넘어섰다.
결국 이인영은 이날 2타수 2안타 2볼넷으로 경기를 마무리, 성운 라이온즈는 초반에 터진 타선 덕분에 4대 2 승리를 거뒀다.
[보기 좋았는데 아쉽다.]
[그냥 단추 풀고 타격하면 안 되나?]
-> 그런데 셔츠 입고 그 위에 유니폼 입는 거 아닌가? 왜 맨 살이지?
-> 보통은 그렇게 하지, 땀 안 차나?
-> 셔츠는 몰라도 팬티는 입었겠지? 아니라면 대박 반전
경기가 끝난 후, 야구 게시판에 다양한 반응이 올라왔다.
팬들의 관심사는 풀린 단추, 특히 여성 팬들은 단추를 푼 게 더 매력 있다며 사심을 드러냈는데, 단추 하나 풀고 이렇게 관심 받는 선수가 있을까.
그러건 말건 이인영은 다음 경기에서도 속살을 철저히 감추고 경기를 준비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치는 거냐?”
타격 연습을 앞두고 돈 부머는 아기 곰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금까지 돈 부머가 거둔 성적은 타율 0.264, 홈런 4개, 21타점, 다른 건 몰라도 42경기에서 홈런이 4개뿐이라는 건 조금 아쉽다.
다른 용병들이 워낙 부진하다보니 퇴출 논란에 휩싸이진 않았지만 반등이 필요한 입장, 이인영은 나름대로 조언을 줬다.
“바깥쪽 공을 억지로 치려고 할 필요는 없어. 솔직히 나도 치고 싶어서 치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넌 치고 있잖아. 그런 말 해봤자 설득력 없다.”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데, 솔직히 어제 스윙은 이인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짓을 반복해 봤자 타격이 흐트러질 뿐, 나도 어제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답을 피했다.
“내 넘치는 사랑에 깔리고 싶냐? 얼른 안 불어?”
“아~ 귀찮으니까 이러지 마.”
돈 부머는 아기 곰 등에 달라붙어 애정공세를 퍼부었다.
키 2m에 덩치는 산만한 자식이 귀여운 척을 하다니, 이인영은 끔찍하다며 저리 가라고 밀어냈지만 아빠 곰은 나하고 놀아달라며 귀찮게 들러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