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하나만 잘 해요 (6)
[공포의 스윙, 걸리면 넘어간다]
개막전 멀티 홈런을 시작으로 이인영은 거침없는 4월을 보냈다.
타율 0.352, 홈런 12개, 24타점, 세부 지표를 보면 더 경악스러웠다.
85타석에서 30안타를 때렸는데 18개가 장타, 무려 0.847이라는 정신 나간 장타율을 보여줬다.
여기에 볼넷을 27개나 골라내면서 출루율은 0.508, 이게 정녕 사람인가. 진정한 생태계 파괴 꾼으로 거듭난 이번 시즌, 예전에도 장타력은 대단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작년 시즌 기록은 0.652, 그래도 사람 냄새는 풍기는 수준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반등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월간 베이스볼에 출현한 박한우 위원은 팬들을 위해 나름대로 분석에 나섰다.
“앞으로 좀 돌려주세요. 아니, 조금 더 앞으로요.”
박한우 위원이 사인을 주자 PD는 문제의 장면을 클로즈업 했다.
앞다리를 살짝 열어둔 전형적인 타격 폼, 이게 뭐가 특별하다는 건가.
박한우 위원은 작년 시즌 자세와 올 시즌 자세를 비교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작년 시즌 이인영 선수는 바깥쪽 공을 공략할 때, 발을 홈 플레이트에 붙이면서 타격을 했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은 투수 쪽으로 발을 뻗고 있죠?”
“뭔가 차이가 있는 건가요?”
“앞발을 홈 플레이트로 붙이면 몸이 뒤틀립니다. 상체 회전을 좀 더 활용한다는 건데,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이런 식으로 타격을 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힙 회전이 안 될 수 있다는 거죠.”
작년 시즌, 이인영은 44홈런을 때려냈지만 55홈런을 쳤을 때보다 장타력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 이유가 뭐였을까.
타자가 맞이하는 공의 7할은 바깥쪽 아니면 가운데 공이다.
일반 타자도 이런데 장타력이 뛰어난 타자라면 배터리는 바깥쪽을 더 많이 던지겠지, 이인영도 바깥쪽 공을 공략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써 봤지만 이상하게 타이밍이 맞질 않았다.
‘타이밍이 문제가 아니라 자세의 문제 아닐까?’
기계를 고치려면 전체를 봐야 하는 법, 내 몸에 무슨 이상이 일어난 걸까. 이인영은 오프 시즌동안 타격 영상을 돌려보며 문제를 파악했다.
하체를 활용하는 스윙을 해야 하는데 상체가 너무 틀리다보니 그게 안 됐던 것, 그래서 올 시즌부터는 앞발 움직임을 최소화 했다.
앞발이 투수 쪽으로 향하면서 커버할 수 있는 스트라이크 존 범위는 좁아졌지만, 대신 존에 들어온 공을 담장 밖으로 날려버릴 수 있게 됐다.
한 마디로 원 샷 원 킬, 이렇다 보니 요즘 상대 팀 선수들은 이인영이 스윙만 하면 흠칫흠칫 한다.
볼넷 27개는 확실히 보내버릴 수 있는 공만 건드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기록, 도끼 스윙을 하는데 그게 정확하기까지 하다.
올 시즌은 어떤 기록을 찍어낼까.
박한우 위원은 이런 페이스가 유지된다면 KBO 역사에 남을 시즌이 나올 거라는 전망을 내놨다.
“박한우 위원님은 올 시즌 이인영 선수의 최종 홈런 몇 개로 예상하시나요?”
“지금 24경기를 했는데 벌써 12개거든요. 144경기를 다 소화한다면 72개를 때려낸다는 건데 솔직히 그건 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육 십…두 세 개 정도 치지 않을까 예상을 합니다.”
“그래도 자칭 이인영 선수의 양아버지이신데, 조금 더 높게 말하시죠?”
박한우 위원은 아나운서의 장난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양아버지면 양아버지지 거기서 자칭이라는 말은 왜 하나, 그래도 62~ 3개 정도가 될 것 같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 * *
“네가 걔 친구라고?”
“어”
이곳은 훈련을 앞둔 성운 라이온즈의 라커룸, 이인영은 통역을 옆에 끼고 제임스 맥그로브와 잡담을 나놨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지미 멘더슨이 자기 친구라고 하는데, 이인영은 알쏭달쏭한 반응을 보였다.
“이상하네. 나도 걔 인스타 가끔 들어가 보는데 너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던데?”
“어…그건…”
“그냥 네가 멘더슨이랑 친해지고 싶은 거 아냐?”
“아니라니까. 집에 같이 찍은 사진도 있어.”
당황한 맥그로브는 적극적인 변호에 나섰다.
어린 시절 야구도 같이 했고, 나름 친하다고 하는데 이인영은 변명하지 말라며 한 소리 했다.
“스스로 유명해 질 생각을 해야지, 잘 나가는 친구 앞세워봤자 너만 초라해져.”
뼈를 때리는 말장난에 맥그로브는 유구무언, 그 모습이 조금 안타까웠는지 월드스타는 인정을 베풀었다.
“친구가 필요하면 내가 돼 줄 수도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아무랑 친구 안 해. 어디 가서 나하고 친하다고 해도 괜찮아. 누가 너랑 친구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해 줄게.”
맥그로브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눌렀다.
그런데 머리에 핏줄이 서는 이 불쾌한 감정은 뭘까, 어쨌든 그 자식과 나는 친구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정말 친한 거 맞아?”
“그래, 나중에 사진 보여줄게”
“사진은 됐고, 나중에 그 자식 만나면 이 소리나 전해. 나중에 한판 붙자고”
이인영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입장, 언젠가는 지미 멘더슨과도 한 판 붙어야 하지 않겠나.
맥그로브가 정말 멘더슨과 친하다면 도전장이나 건네주길 바랐다.
“넌 정말 이상한 녀석이야. 알고 있어?”
“알아, 그런데 나 같은 놈 하나 있다고 세상이 불행해 지는 건 아니잖아? 너 같이 다 조용하게 지내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
마지막까지 뻔뻔한 자칭 월드스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지만 적어도 KBO 내에서는 최고의 선수, 잘난 척을 떨어도 할 말은 없었다.
“플레이 볼!!”
그렇게 시간은 흘러 경기가 시작됐다.
원정 팀 성운 라이온즈의 1회 초 공격, 선두 타자 임완수는 신중하게 볼을 골라내며 유리한 카운트를 선점했다.
[따악~!]
“밀어낸 타구가!! 중견수 앞에 떨어집니다!! 임완수 선수는 오늘도 안타를 추가하는 군요.”
“이인영 선수와는 정 반대의 스타일이죠. 앞발을 홈 플레이트에 붙이면서 밀어치는…그런데 이 선수는 이게 몸에 맞는 겁니다.”
1루에 안착한 임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보호대를 풀었다.
강력한 어퍼컷을 날릴 타자는 팀에 얼마든지 있다.
내가 할 일은 짧은 스윙으로 투수에게 타격을 주는 것, 자신의 존재감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다음 타자는 홍현구, 작년만큼의 장타력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시즌 타율은 0.288로 나쁘지 않다.
평소처럼 바깥쪽에 초점을 맞춰뒀고, 원하는 공이 들어오자 힘껏 잡아당겼다.
딱~!
땅볼이지만 깊은 타구, GM 가디언즈의 유격수 서기석이 몸을 날려 막아냈지만 송구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아~ 하필이면 제일 짜증나는 녀석이…’
이제 타석에는 이인영,
저 사람 같지도 않은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피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가디언즈의 유재덕 감독은 승부를 지시했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바깥쪽 빠른 볼, 스트라이크를 잡아냈지만 가디언즈 배터리는 긴장감을 유지했다.
지금 공에서 조금만 몰려도 큰 일, 조금 더 바깥쪽으로 빼 봤지만 제구가 안 되면서 폭투가 될 뻔 했다.
“이번에는 떨어집니다. 카운트는 투 볼 원 스트라이크”
“소용없습니다. 지금 이인영 선수는 누가 봐도 변화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거든요. 앞발이 전혀 움직이질 않았어요.”
“그런데 변화구에 타이밍을 맞춰두고 빠른 볼을 공략하는 게 가능한 가요?”
“어렵습니다. 당연히 어렵죠. 그런데 이 선수는 그걸 해냅니다. 결과로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배터리는 4구도 변화구를 택했지만 타자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정말 변화구에 타이밍을 맞춰두고 치는 건가. 곁눈질로 타자를 살피던 포수는 빠른 볼을 요구했다.
[따아악~!!]
“자!! 이 타구는!! 맞는 순간!! 모두가 얼어붙습니다!!!! 이인영 선수의 쓰리 런 홈런!! 5월 첫 경기에서 시즌 13호 홈런을 기록합니다!! 멈추지 않는 장타 행진!! 누구도 말릴 수 없습니다!!”
“할 말이 없네요. 휘둘렀고 넘어갔습니다. 그게 끝입니다.”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자 가디언즈의 유재덕 감독은 고개를 숙였다.
승부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도 도망치다 얻어맞는 투수들, 지금 나는 뻔히 죽을 전장에 선수들을 몰아넣고 있는 건가.
다음에도 승부를 하라는 지시를 내리겠지만 그걸 배터리가 따를지는 의문, 최대한 바깥쪽으로 붙이는 게 그나마 알려진 이인영의 공략 법인데, 제구를 유지할 투수가 KBO에 몇 명이나 있겠나.
작년처럼 앞발을 홈 플레이트 쪽으로 뻗었다면 몸 쪽으로 붙여 볼 생각도 했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위험, 그냥 방법이 없었다.
‘올해는 이대로 가자.’
한편, 홈에 입성한 이인영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수정한 자세가 장타력을 끌어올린 원동력이겠지만, 바깥쪽 공을 좀 더 신중하게 치면서 선구안도 향상된 느낌, 두 번째 타석에선 바깥쪽 볼을 골라내며 볼넷을 얻었다.
첫 타석에서 제대로 데인 가디언즈 투수진은 총사령관의 돌격 지시에도 도주를 택했고 이인영은 1타수 1홈런, 3타점, 볼넷 3개로 경기를 마무리 했다.
“오늘 결승 쓰리 런 홈런을 기록한 이인영 선수와 인터뷰를 나눠보겠습니다. 이인영 선수,”
“예”
“올 시즌은 초반부터 너무 달리시는데, 후반기를 위해 페이스를 조금 조절 하시는 게 어떨까요?”
“지금 안 달리면 부진하다고 뭐라고 할 거 아닙니까? 작년에도 그러지 않았나요?”
월드스타는 가슴에 담아둔 한을 쏟아냈다.
작년 시즌은 첫 8경기에서 홈런 1개 못 쳐냈다.
그런데 이것도 부진하다며 뭐라고 했던 언론, 못 치면 못 친다고 하고, 초반에 앞서가는 놈은 후반에 페이스 떨어진다고 하고,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가.
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욕을 하라며 반격에 나섰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앞으로 그런 이중잣대 들이대는 팬들의 반응은 무시할 겁니다. 속된 말로 씹는다고 하죠?”
여과장치 없는 발언에 PD는 깜짝 놀랐다.
평소 팬들의 장난에도 허허 웃고 말았던 선수가 오늘은 다소 과격한 편, 진상 팬들이 활개를 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방송에서 디스를 한 선수는 이번이 처음이라 다들 당황했다.
[이인영 진짜 화난 듯, 걸리면 다 씹어 먹을 것 같다]
-> 솔직히 이중성 오지는 놈들 많지, 선수라고 모든 팬 안고 갈 이유 없다. 이상한 말 하는 놈은 본때를 보여줘야 함.
-> 그런데 초반에 달리는 선수들이 후반기 가면 다 퍼지지 않나?“
-> 잡았다. 이 씹어 먹을 놈
-> 관심 주지 마라. 자꾸 씹어주면 오르가즘 느끼는 변태들이니까
[이인영은 후반기에 달아오르는 선수다. 보면 모르냐? 올해는 무조건 60홈런 넘길 것 같다]
[화나면 진짜 무서울 듯, 오늘 김지영 아나운서 쫄은 거 봤냐?]
-> 실제로 봤는데 덩치 엄청 크다. 한 번 휘두르면 일반인은 한 방에 요단강 프레스 예약
-> 그 정도면 다행이지, 담장 너머로 날려버릴 듯
이날 발언으로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댓글은 많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KBO 위원회는 선수가 방송에서 부적절한 반응을 했다며 벌금 100만원을 부과, 이인영은 까짓 거 내고 말았다.
연봉 6억 5천 만 원을 받고 있으니 그 정도 벌금은 모기 물린 수준도 안 됐고, 앞으로도 할 말은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