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21화 (121/309)

121화. 하나만 잘 해요 (5)

[성운 라이온즈, 개막전 시구 여성에게 맡긴다]

2022시즌 개막전을 하루 앞두고 이상한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성운 라이온즈 마케팅 팀에서 통계를 내봤는데, 여성이 시구를 한 경기에서 승률 70%가 나왔다는 것,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첫 경기 이겨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차명석 단장은 최근 잘 나가는 걸 그룹 멤버를 초청해 시구를 맡겼다.

“네가 시구 지도 할래?”

“아니요.”

시구 지도를 권유 받았지만 이인영은 거부를 표했다.

그런 건 딱히 내가 안 해도 될 일, 기자들 앞에서 사진 찍으라고 그런 것 같은데 인지도는 이미 충분했다.

“인기 없는 선수한테 지도하라고 하세요. 저는 인기 많아서 걸 그룹에 묻혀갈 이유가 없어요.”

“그래, 너 잘났다.”

감독의 권유를 물리친 월드스타는 몸을 풀며 개막전 행사가 열리길 기다렸다.

개막전에서 안타 못 친다고 시즌이 망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카메라 앞에서 히히거리는 것보다 웨이트를 하며 긴장을 푸는 걸 택했다.

“경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힘을 빼고 그래?”

돈 부머는 그런 친구 곁을 기웃거렸다.

운동이라면 언제나 열심히 하는 녀석, 오늘은 좀 쉬는 게 어떻겠냐며 견제했다.

“난 언제나 힘이 넘쳐서 힘을 좀 빼줘야 돼.”

“그래? 그럼 오늘 홈런 3개 정도는 날리겠네?”

“공 대신 네 얼굴을 던져준다면 홈런 4개도 칠 수 있어.”

신경전을 이어가던 곰 두 마리는 손을 맞잡고 힘겨루기를 했다.

이번 시범경기에서 두 선수는 홈런 6개를 합작했다. 시범경기 기간이 일주일로 줄었다는 걸 고려하면 엄청난 페이스, 개막전에서 두 선수는 어떤 활약을 보여줄까.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찬 관중석은 팬들이 올 시즌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보여줬다.

‘걸 그룹보다는 내가 100배는 낫지.’

예고된 여성그룹의 시구, 사방에서 팬들의 박수가 쏟아졌고 선수들도 박수를 보냈지만 이인영은 도도한 태도를 유지했다.

여성이 시구를 하면 승률이 높아진다니, 딱히 여성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따지면 성운 그룹의 김태성 회장이 시구를 한 경기에선 승률이 80%라는데, 왜 회장님을 여기로 안 끌고 온 건가.

정말 회장님이 시구를 해서 승률이 80%라면 선수 영입할 필요 없이 회장님께서 시구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결국 다 미신, 승리를 이끌어 내는 건 선수의 활약이다.

내가 잘 해야 팀도 이기고 관중들도 환호하는 법, 걸 그룹보다 더 많은 호응을 이끌어 내겠다며 전투력을 끌어올렸다.

“자, 1회 초 NA 자이언츠의 선공으로 2021시즌의 막이 오릅니다. 오늘 성운 라이온즈의 선발 투수는 제임스 맥그로브, 팬들 앞에서 첫 선을 보입니다.”

“작년까지 요코하마 웨일스에서 활약했죠. 참고로 작년 시즌 성적은 2승 3패, 평균자책점 4.20, 딱히 눈에 띄는 활약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가 실패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본 첫 시즌에서 셋업맨으로 활약했고 지난 2018년엔 4승 3패, 15홀드 평균자책점 2.51했던 것도 있고 구단과 이런저런 마찰도 빚으면서 한국으로 넘어오게 됐습니다.”

제임스 맥그로브는 최고 155km의 강속구와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던지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구위만큼은 KBO에서 충분히 통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하지만 이곳은 트리플 A에서 이름 좀 날린 선수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무대다.

낙관론은 금물, 외야로 나간 이인영은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저기요!! 오늘 홈런 몇 개 칠 거예요?!!”

이때 외야에서 한 여성 팬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걸 물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그래도 친절한 곰은 손가락으로 브이를 표했다. 홈런은 못 쳐도 어쨌든 이기겠다는 뜻, 하지만 팬은 홈런 2개 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따악~!!

드디어 시작된 개막전, 맥그로브는 146km 빠른 볼을 던졌지만 초구를 통타당했다.

성운 라이온즈의 유격수 홍현구, 2루수 임완수는 공격은 좋지만 수비는 높은 평가를 주기 어렵다.

그나마 임완수는 평균 정도의 안정감을 갖췄지만 수비 범위가 넓지 않은 편, 이러니 땅볼이 나오면 다들 움찔 할 수밖에 없다.

팀 사정을 알고 있는 차명석 단장이 구위가 좋은 맥그로브 영입에 심혈을 기울인 건 당연, 일단 출발은 좋지 않았다.

“음 ··· 다시 볼입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맥그로브 선수의 단점이 이거죠. 작년 시즌에도 빠른 볼 피안타율은 0.229에 불과했지만 피출루율이 0.313, 피장타율도 0.431나 됐습니다. 피안타율만 보면 분명 수준급인데 OPS로 따져보면 조금 아쉽죠.”

“피안타율이 낮은데 OPS가 이렇게 높은 이유가 뭘까요?”

“볼넷이 많고 큰 걸 허용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죠. 사실 선발보다 불펜으로 뛴 경험이 더 많은 선수고, 볼 배합도 그렇게 다양하다고 할 수 없거든요. 다만 높은 탈삼진율로 단점을 상쇄했는데, 오늘 그 모습이 나올지는 의문입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맥그로브는 빠른 볼로 헛스윙을 이끌어 냈다.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투수,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야수들도 긴장을 유지했다.

‘이건 내 거다.’

좌익수 쪽으로 날아오는 타구, 파울라인 근처에서 공을 잡아낸 이인영은 바로 유격수에게 송구했다.

멈칫멈칫 거리던 1루 주자는 제자리로 복귀, 멋진 수비에 맥그로브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지만 이인영은 앞으로 보여줄 게 더 많으니 그런 칭찬은 넣어두라는 거드름을 피웠다.

‘역시 걸 그룹보다는 내가 낫지.’

쏟아지는 팬들의 환호에 월드스타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승리의 요정은 걸 그룹이 아니라 바로 나, 다행히 1회는 실점 없이 넘어갔고 성운 라이온즈의 1회 말 반격이 시작됐다.

“자, 임완수 선수가 2022 시즌 첫 타석을 맞이합니다. 작년 시즌 성적은 타율 0.314, 홈런 4개, 43타점, 인상적인 타격을 보여줬습니다.”

“2루수로 172안타를 때려냈는데, 이건 단일 시즌 기준으로 역대 3위 기록이거든요. 수비만 조금 보완한다면 역대 최고의 2루수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작년 시즌 KBO는 유독 홈런이 터지질 않았다.

덕분에 짧게 치는 선수들이 두각을 드러냈는데 임완수도 그 중 하나, 2년 연속 주전 2루수로 낙점 받으면서 연봉도 2억 2천만 원으로 상승했다.

‘후배가 6억 5천을 받는데 2억 2천 가지고 뭘 ··· ’

2억이 넘는 연봉을 받고 있지만 임완수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다.

6억을 넘는 후배에 비하면 나는 아직 갈 길이 먼 선수, 오프 시즌 동안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올해는 그 결실을 맺을 때, 초구부터 강한 스윙을 돌렸다.

따악~!!

“아~!!”

잘 맞았지만 유격수 정면,

타구가 조금만 떴으면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가 됐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지 임완수는 1루 근처를 서성거리다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강함이 조금 부족하셨네요.”

끓는 선배 속도 모르고 장난을 거는 녀석,

임완수는 손을 올리며 위협을 가했지만 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던 이인영은 눈꺼풀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다음 타자 홍현구는 2루수 땅볼로 아웃, 대기타석에 서 있던 이인영은 홈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타석에 섰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작년 시즌 성적은 타율 0.367, 홈런 44개, 123타점!!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현역 KBO 최고의 선수죠. 작년 시즌은 시동이 늦게 걸리면서 첫 홈런을 9경기 만에 때려냈는데, 올해는 시동이 좀 빨리 걸려야 됩니다. 그래야 60홈런 칠 수 있어요.”

60홈런 도전을 선언한 건 이미 기사화 됐다.

다른 선수라면 허세라고 욕을 먹었지만 그만한 기록을 낼 수 있는 선수, NA 자이언츠의 선발 허재웅은 신중하게 초구를 던졌다.

손에서 빠졌는지 완전히 붕 뜬 변화구, KBO에서 내게 빠른 볼 승부를 걸 투수는 없는 건가.

철저하게 변화구만 노렸다.

따아악~!!

‘앗?!!’

떨어지는 변화구는 홈 플레이트 앞에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중견수가 추격에 나섰지만 결과를 예감한 타자는 배트를 투척,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타구를 지켜보던 허재웅은 눈을 질끈 감았다.

센터를 훌쩍 넘어가는 솔로 홈런,

변화구를 이렇게 때려도 되는 건가. 하지만 연습경기에서 저 선수의 활약을 지켜본 성운 라이온즈 선수들에겐 놀랄 일도 아니었다.

‘내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3루를 돌아 홈에 입성한 이인영은 관중석을 향해 손가락 세리머니를 날렸다.

서로 믿는 종교는 다르겠지만 라이온즈의 승리를 응원하는 마음은 다들 같지 않겠나.

그 염원을 실행시켜준 나는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몸, 양팔을 벌려 더욱 많은 환호를 유도했다.

성운 라이온즈는 2회 말에도 하위 타선이 분발하면서 1점을 추가, 3회 말 공격에선 개막전을 축하하는 장작불을 쌓아올렸다.

[따악~!!]

“당긴 타구가!! 유격수 옆을 빠져 나갑니다!! 홍현구 선수의 안타!! 무사 주자 1 - 2루 기회에서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여기서 한 방이면 오늘 경기는 거의 끝났다고 봐야겠네요. 아, 투수가 교체되는 것 같습니다.”

NA 자이언츠의 선발 허재웅은 3회를 채우지 못하고 강판됐다.

작년 시즌 드래프트 1순위로 영입된 인재라 나름 기대가 컸는데 역시 높았던 벽, 프로의 쓴 맛을 본 루키는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하~ 나한테 빠른 볼 던질 투수 없나.”

초구를 지켜본 이인영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날 죽일 자가 누구냐고 건방 떨다 칼 맞고 죽은 위연, 딱히 죽을 생각은 없지만 답답한 투구를 지시하는 NA 자이언츠 더그아웃을 향해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빠른 볼 던질 투수가 없냐고? 우리가 겁쟁이라는 거냐?’

자이언츠의 이재석 포수는 발끈했지만 벤치 사인은 변화구, 지시대로 빠져 앉았지만, 타자는 바깥 쪽 약간 높게 들어온 공을 놓치지 않았다.

[따아악~!!]

“어어?!! 이번엔 밀어낸 타구가!! 좌측으로 멀리!! 담장을~ 넘어 갑니다!!!! 이인영 선수의 연타석 홈런!! 올해는 시동이 빨리 걸립니다!! 시즌 2호 홈런!! 개막전부터 엄청난 화력쇼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 박자 쉬고 돌렸거든요. 지금 보시면 발이 처음부터 타석에 붙어있지 않습니까? 배터리가 빠른 볼 안 던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죠. 그렇다고 해도, 변화구를 밀어 쳐서 넘긴 건 대단한 겁니다. 이게 우리가 아는 이인영 선수죠!!”

“작년에는 의도적으로 잡아당기는 타격을 하면서 타이밍이 조금씩 흐트러졌는데 올해는 그 특유의 밀어치는 능력이 살아났네요. 이렇게 되면 올 시즌은 더욱 기대가 됩니다.”

순식간에 5대 0이 된 스코어,

팬들은 한 목소리로 슈퍼스타를 찬양했고, 이인영은 무대 위의 지휘자가 된 것처럼 몸을 격하게 흔들었다.

마치 내가 경기를 지휘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 순간만큼은 정말 야구의 신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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