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18화 (118/309)

118화. 하나만 잘 해요 (2)

“그런데 너 근육 너무 키운 거 아니냐?”

연습 경기를 이틀 앞둔 어느 날, 이성한 감독은 지나가면서 잔소리를 툭툭 던졌다.

타자에게 비대한 상체는 마이너스, 무슨 운동을 그렇게 했냐며 핀잔을 줬지만 이인영은 지지 않고 기싸움을 벌였다.

“저는 지금 예술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냐?”

“조각가는 돌을 깎아내서 예술작품을 만들잖아요. 깎아낼 곳이 있어야 뭔가를 조각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근육이 너무 크면 타격을 못 하니까 처음부터 적당히 키운다?

그런데 시즌을 치르다보면 근육이 빠지면 빠지지 커지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진 거 아닌가. 처음에 근육 왕창 키워놓고 연습 경기를 치르면서 최적의 몸 상태를 찾아내면 된다.

하지만 몸을 만들지 못한 선수는 최적의 몸 상태를 찾아내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전지훈련 명단에 포함 못 되고 국내에 남아 나머지 훈련을 하는 거 아닌가.

몸을 만드는 과정을 예술에 비유하다니, 이성한 감독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보다는 감독님 걱정이나 하세요.”

“뭐가?”

“감독님은 깎아낼 근육도 없으시잖아요. 나이 들면 근육 유지하기 힘들다는데 ··· 지금이라도 운동 좀 하시는 게 어때요?”

빈틈을 놓치지 않고 날아드는 한 방, 그렇잖아도 점점 나오는 배를 신경 쓰고 있던 이성한 감독은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며 버럭 했다.

무슨 말을 해도 한 마디도 안 지는 녀석, 너는 너무 말이 많다고 한 소리 했다.

“원래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른 사람은 자신만의 성공 비결과 신념이 있잖아요. 그걸 말이 많다고 하시면 안 되죠.”

“어휴 ~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내가 졌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이성한 감독은 이인영을 높게 평가했다.

저 나이에 몸 관리를 잘못해서 살이 찌는 선수들이 의외로 많다.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관리하는 거 쉽지 않을 텐데, 저렇게 몸을 불려왔다니, 오프 시즌 동안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다는 건가.

올해는 정말 예술작품 하나 나오는 건가. 지난 2년간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올해는 유독 기대가 됐다.

"Hey ~ Am I more compact today than I was yesterday?"

=이 봐, 나 어제보다 오늘 몸이 더 좋아진 거 같지 않아?

이인영을 귀찮게 하는 참견쟁이는 또 있었다.

이번에 차명석 단장이 야심차게 영입한 돈 부머, 부머는 키 198cm에 몸무게 133kg이라는 엄청난 거구를 자랑한다.

키는 이인영보다 8cm 더 크고 몸무게는 무려 35kg이 더 나가는데 이 정도면 곰이라는 별명은 부머에게 넘겨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지방덩어리는 아니고 거대한 상체 근육이 인상적인 선수, 본인은 역삼각형 몸매라고 자랑하는데, 그걸 굳이 왜 내 앞에서 말하는 건가.

이 자식은 지금 날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가소로웠는지 이인영은 한 방을 날려줬다.

“그래, 삼각 김밥 뒤집으면 딱 그렇게 생겼지.”

“What??"

삼각 김밥이라는 말에 빵 터진 동료들, 하지만 삼각 김밥을 직접 본 적이 없는 부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How does it look like(그게 어떻게 생긴 건데)?”

“몰라, 알아서 찾아봐.”

인터넷을 검색해 본 부머는 그제야 이마를 탁 쳤다.

이렇게 딱 맞는 이미지를 찾아주다니, 팬들과의 소통을 즐기는 부머는 자신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과 뒤집어진 삼각 김밥 사진을 함께 올렸다.

성운 라이온즈 팬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때부터 부머의 별명은 삼각 김밥으로 굳어졌다.

“Have you got any interesting snippets(뭐 또 재미있는 거 없어)?”

“넌 내가 개그맨인 줄 아냐?”

그날부터 부머는 이인영을 졸졸 따라다녔다.

작년 WBC를 통해 미국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선수, 야구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유머 센스를 가지고 있었다니,

조금 더 친해지고 싶었지만 이인영은 난 개그맨이 아니라며 떨쳐냈다.

“그럼 나한테 뭐 바라는 거 없어?”

“홈런이나 많이 쳐”

통역관은 월드스타의 뜻을 영어로 번역, 부머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둘이 100홈런을 합작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내가 60개 칠 테니까 너는 40개만 보태”

“50대 50 아니었어?”

“넌 아직 보여준 게 없잖아. 일단 30개 넘기고 50개는 그 다음에 생각해라.”

통역에 말에 귀를 기울이던 부머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녀석은 내가 30개도 못 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이인영은 한국 야구는 네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다며 충고했다.

“그럼 내가 50개 넘기면 어떻게 할 건데?”

“어떻게 하긴, 야구 잘 하는 거지. 뭘 더 바라는데?”

별로 고급스러운 개그도 아닌데 부머는 잘도 웃어댔다.

미국에선 이런 잔재주가 먹히는 건가, 어쨌든 잘 웃어주는 초대 손님 덕분에 전지훈련은 조금 더 즐거워졌다.

* * *

“오늘은 무조건 이긴다. 알았냐?”

“예에 ~ !!”

시간은 흘러 2월 28일, 성운 라이온즈는 전지훈련 첫 실전경기에 나섰다.

상대 팀은 야마카지 공업 팀, 프로는 아니지만 실업 리그에서 87경기 연속 승리를 거둘 정도의 강팀이다.

이성한 감독은 오늘 지면 너희들은 프로도 아니라며 자극을 줬고, 만약 지면 야간 훈련을 하겠다는 예고까지 했다.

‘져도 좋으니 투수들이라도 잘해줬으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성한 감독의 속마음은 달랐다.

작년 시즌 팀 평균자책점은 무려 5.24, 10개 구단 중 8위에 그쳤다.

아무리 공격력이 좋아도 투수진이 받쳐주질 않으면 이길 수 없는 법, 그래서 이번 전지훈련은 2군 투수 재원과 고졸 투수 유망주를 많이 데려왔다.

오늘 마운드에 오른 고졸 신인 이동찬도 그 중 하나, 키는 181cm로 크지 않지만 몸무게는 107kg이나 된다.

야구 선수보다는 씨름 선수에 어울리는 체형, 그래도 고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등판한 추계리그에서 146km를 던진 선수다.

구위는 원래 좋고 변화구 몇 개만 받쳐주면 올 시즌부터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선수, 이성한 감독이 거는 기대는 컸다.

‘야수들 고생 깨나 하겠네.’

한편, 외야로 나간 이인영은 후배의 투구를 지켜봤다.

고교 시절 에이스 노릇을 했으니 투구를 보는 눈은 어느 정도 있는 편, 최고 150km를 던진다고 하는데, 평균으로 따지면 140km 안팎이다.

KBO 투수의 평균 구속은 141km, 이동찬의 구속은 딱 평균 수준이다.

평범한 구속을 지녔다면 우투자 상대로 던지는 슬라이더를 조금 더 가다듬어야겠지, 그런데 제구에 허점을 보이면서 1회부터 안타 2개를 맞았다.

다향히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지금까지 모습만 보면 탈삼진 능력이 떨어지는 땅볼유도 투수,

내야수비가 다소 불안한 라이온즈와 상성이 좋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선배님 파이팅!!”

“한 방 날려라!!”

이어지는 성운 라이온즈의 1회 말 공격,

이인영은 선배님이라는 목소리에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올해 23 살 밖에 안 된 내가 누구한테 선배 대접을 받다니, 우습지 않은가.

그래도 지금은 눈앞의 공에 집중했다.

‘내가 언제 저 선수와 진검승부를 하겠나.

야마카지 공업의 선발 투수, 이케다 츠네사다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집어넣었다.

상대는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들도 두들긴 타자, 실업팀 투수인 내가 이겨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대결이 될 수도 있겠지, 볼넷으로 피하고 싶진 않았다.

따악 ~ !!

“그렇지!!”

“돌아!! 돌아!!”

밀어낸 타구는 펜스 근처까지 굴러갔다.

가볍게 쳤는데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 실업 리그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라 츠네사다는 실력의 차를 실감했다.

따아악 ~ !!

“뭐라고?!!”

다음 타자 부머는 바깥쪽 공을 잡아당겨 센터 쪽 상단을 넘어가는 대형 홈런을 날렸다.

순식간에 2대 0, 공식 경기는 아니지만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첫 홈런을 날린 부머는 어린애처럼 더그아웃을 뛰어다니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흐읍 ~ 흐읍 ~ 봤지? 내가 이 정도라고, 흐읍 ~ 허어억 ~ ”

“야, 다 좋은데 숨소리는 어떻게 좀 해봐라.”

이인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부머를 다독였다.

겨우 베이스 한 바퀴 돈 것뿐인데 숨소리가 이렇게 거칠다니, 지금 당장 숨이 끊어질 것 같이 위태로웠다.

“너 올 시즌 50홈런 친다며? 베이스 50 바퀴 돌면 심장마비 걸리겠다.”

이인영은 구단 직원에게 더그아웃에 산소호흡기 좀 갖다 놔야겠다고 건의 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 그러건 말건 부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날 성운 라이온즈는 이동찬의 호투와 타선의 활약으로 6대 0 완승을 거뒀고, 다음 사카이 라이노스와의 연습경기에서도 7대 2 승리를 거뒀다.

실업팀이 진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프로 팀까지 대패배할 줄이야.

왜 우리 일본은 이인영만 만나면 맥을 못 추는 건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한 기자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을 했다.

“이인영 선수의 최종목표는 역시 MLB 진출이겠죠?”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포스팅을 거치려면 아직 3년이나 남지 않았나요? 한국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데 안타깝진 않으십니까?”

얼마 전, 사카이 라이노스는 에이스 이시다 토모히데를 포스팅 신청으로 MLB로 보냈다.

이시다 토모히데는 포스팅 당시 25살 밖에 안 된 젊은 선수,

이인영도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좀 더 일찍 MLB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규정은 규정이니 너는 못 간다는 게 기자가 던진 질문의 핵심, 이인영은 가소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슨 뜻으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여기서 KBO의 포스팅 제도를 비난한다면 제 얼굴에 침 뱉기 밖에 더 되겠습니까?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보내는 게 불행하다는 식으로 말씀하지 마십쇼. 일본에서 뛰는 선수가 일본에서 뛰는 게 싫다 미국으로 보내 달라 이렇게 말하면 당신들은 기분 좋습니까? 생각을 좀 하고 질문을 하시죠?”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기자는 입을 다물었고, 이 소식은 한국에도 전해졌다.

야구만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어쩜 말도 이렇게 잘 할까, 하지만 이인영은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말보다는 야구를 잘 해야죠. 이번 인터뷰가 그렇게 주목을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기왕이면 인터뷰도 잘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글쎄요. 저는 뭘 하든 하나만 잘 하자는 주의자거든요. 인터뷰보다는 실력으로 팬 여러 분들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월드스타는 말 빨보다 실력으로 주목을 받고 싶다고 선을 그었지만 팬들의 생각은 달랐다.

예전부터 호쾌한 인터뷰로 팬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 이인영, 이번 인터뷰도 무례한 기자를 가뿐하게 눌러주지 않았나.

홈런도 많이 치고 인터뷰도 잘 하면 그만, 쏟아지는 팬들의 반응에 이인영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당분간 SNS 안 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SNS 활동 중지를 선언, 그러건 말건 팬들은 답변 좀 해달라는 댓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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