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17화 (117/309)

117화. 하나만 잘 해요 (1)

“자기야, 돈 있으면 이거 투자하는 게 어때?”

“뭐가요?”

“요즘 청약 때문에 난리잖아.”

이곳은 대구 시내의 한 부동산, 이인영의 어머니는 2년 전부터 알게 된 부동산 중개인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부동산 값이 떨어지는 이 와중에도 청약시장 경쟁은 난리, 얼마 전엔 50가구 모집에 3만 7천명이 몰려드는 대란이 일어났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으로 다주택자 세대 부담이 커졌지만, 안정자산인 부동산에 대한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특히 신축 아파트는 2~ 3년 안에 부동산 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 큰 폭으로 오를 거라는 게 주된 의견, 하지만 아들 덕분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어머니는 손을 저었다.

“어휴~ 저는 그런 거 못해요. 무서워서….”

“무섭기는 뭐가 무서워, 아들이 돈 많이 벌잖아. 그리고 걔도 언젠가는 자기 집 사야 될 거 아냐. 이번에 집 하나 마련하라고 해. 내가 세금 피하는 방법도 알려 줄 게.”

“그런 게 있어?”

“그럼, 아들 이름으로 사고 전세 놓으면 괜찮아. 요즘은 다 그렇게 해. 아들이름으로 청약 통장 들어 놓은 거 있지?”

“그렇긴 한데요….”

“날 믿어. 이거는 무조건 올라. 요즘 신축 아파트 2~ 3년 안에 다 오른다니까. 몇 년 안에 억대 돈 버는 건 일도 아니라고.”

부동산 중개인은 최근 신축 아파트 집값 동향에 대한 자료를 근거로 고객을 설득했다.

그리고 자기 아들도 그런 식으로 돈을 불리고 있다고 귓속말을 줬고, 확신을 얻은 어머니는 저녁 식탁 앞에서 슬쩍 입을 열었다.

“아들, 엄마가 뭐 하나 얘기해도 돼?”

“뭔데요?”

“아는 사람이 청약 주택 들라고 하거든? 아들은 어떻게 생각해?”

이인영은 밥을 먹다 말고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10년 전에 부모님이 날 위해 만들어 둔 청약 통장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이 집은 엄마 이름으로 해 드렸고 언제까지 여기서 살 수는 없겠지, 그러시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 집에 현금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대출 받아서 사면 돼. 요즘은 다 그렇게 한다더라.”

“음…글쎄요. 저는 그런 거는 전혀 모르는데….”

“엄마가 아는 사람한테 다~ 아 알아 봤어. 그러니까 우리 아들만 결정하면 돼.”

오늘 따라 유달리 들 뜬 엄마의 얼굴, 거절했다간 시무룩해 하시겠지? 착한 아들은 그러시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나중에 문제되는 거 아냐? 요즘 부동산 떨어진다고 난리인데.”

“이 양반 또 답답한 소리하시네. 청약 시장은 아니라니까요.”

“그 사람 말을 어떻게 믿어? 이 사람이 괜히 욕심만 많아가지고….”

“하이고~ 저도 다 알아보고 하는 말이에요. 나는 뭐 머리도 없는 줄 알아요? 알아도 투자할 돈이 없어서 다들 난리에요.”

잔불을 톡톡 튀기는 아버지와 지지 않고 방패를 치는 엄마, 그 사이에 끼인 아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부동산보다는 요즘 달러가 인기라는데….”

“푸핫~ .”

이 와중에 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아버지, 이인영은 입안에서 터져 나오는 밥풀을 입으로 막아냈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결국 아버지도 동류 아닌가, 이인영은 아버지에게도 군자금을 지급해드렸다.

“저 나중에 거지되면 엄마 아빠 탓이니까 그렇게 알아두세요.”

“걱정하지 마. 엄마는 우리 아들 손해 보는 짓 절대 안 해. 오호홍~ .”

“엄마 지금 되게 간사해 보이는 거 알아요?”

“그러니까 장 씨지, 괜히 장 씨겠냐??”

그 사이를 못 참고 또 시비를 거는 아버지, 투닥거리는 부모님 때문에 이인영은 오늘도 심심하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난 투자는 전혀 몰라, 야구나 열심히 해야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시즌을 위한 개인 훈련은 반복됐다.

운동선수는 개인관리가 곧 투자, 운동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6억이 넘는 돈이 손에 툭 떨어지지 않았나.

돈 관리는 어머니에게 맡기고 나는 용돈 받아서 쓰는 입장,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빠 지금 갈 건데 뭐 필요한 거 없니?”

[아니요. 몸만 오세요.]

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상, 연봉도 많이 올랐겠다, 인생의 여유와 행복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형!! 형!! 패스!!”

“어디?!! 어디야?!!”

오늘 첫 일정은 축구 게임, 축구에 별 관심이 없는 여자 아이들은 한 곳에 모여 남자들의 쓸데없는 기싸움을 관람했다.

“아~ 형!! 그게 아니죠!!”

“축구 진짜 못한다!!”

아이들은 축구를 못하는 형에게 구박을 늘어놨다. 운동선수라 축구도 잘 할 줄 알았는데 슛은 형편없고 패스도 낙제점, 하지만 이인영은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형은 야구만 잘 해도 돼. 축구 잘 한다고 돈 주는 거 아니야.”

“형은 운동선수잖아요. 이러면 안 되죠.”

“인생은 하나만 잘해도 성공 하는 거야 인마.”

마지막까지 뻔뻔한 형, 그래도 아이들은 이인영을 진심으로 따랐다.

잘 하든 못 하든 우리와 놀아주려고 하는 게 기특한 일 아닌가. 뭣보다 정신세계가 우리랑 비슷해서 좋았다.

“오빠 요즘 좋은 일 있어요?”

“왜?”

“그냥 그래 보여요.”

그렇게 아이들과 얼마나 놀아줬을까, 혜진이는 오빠의 심리를 제대로 짚어냈다. 좋은 일이라면 연봉이 많이 올랐다는 것, 돈을 많이 버니까 세상을 보는 눈도 밝아지고 심리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오빠는 돈 벌면 행복해요?”

“그럼, 돈을 벌어야 사람이 당당해지는 거야. 그리고 좋은 일도 많이 할 수 있고.”

“으음~ 그렇구나…나도 나중에 돈 많이 벌어야지.”

“그래, 우리 혜진이는 똑똑하니까 나중에 돈 많이 벌 거야.”

이인영은 꿈 많은 소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 꿈을 후원해주려면 앞으로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지, 내년에는 연봉 10억을 돌파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 * *

‘어? 됐다…뭐지?’

청약 신청을 넣고 6일 뒤, 이인영은 당첨 통보를 받았다.

무려 271대 1의 경쟁을 뚫고 당첨된 행운, 5천 원 어치 즉석 복권도 다 꽝이 나온 내가 이런 행운에 당첨 되도 되는 건가.

엄마는 이제 우리 돈 벌었다며 폴짝폴짝 뛰었지만 아들은 멍한 얼굴로 엄마와 손뼉을 마주쳤다.

“그래서,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

“9억 원 이하면 실거주 안 해도 된데, 엄마가 전세 둔다고 했잖아.”

“으음…알았어요.”

엄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아직 집값이 오른 것도 아니라 실감이 나는 것도 아니고 별 생각 없이 훈련에 매진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전지훈련을 앞두고 선배들과 술자리를 함께 했는데, 얼마 전 있었던 청약 얘기가 나왔다.

“야, 그거 너희도 신청 넣었냐?”

“넣었는데 안 됐어.”

“하아~ 그거 되기만 했으면 1억은 무조건 버는 건데.”

“됐다고 한 사람 봤냐? 내 주변엔 아무도 없던데.”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이인영은 침묵을 지켰다.

여기서 내가 당첨됐다고 하는 말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연봉도 6억 5천씩이나 받는 놈이 그런 것까지 다 쓸어 가냐며 분명 뭐라고 하겠지, 최악의 경우 술값까지 떠넘길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들 뜬 마음은 어디서 풀어내야 하나, 화장실에 잠깐 다녀온다는 핑계로 자리를 비웠다.

‘나 정말 돈 번 건가? 사람들 앞에서 티 나면 안 되는데’

웃으면 안 되는데 계속 새어나오는 웃음, 마음껏 웃은 다음 거울 앞에서 표정을 관리했다.

그리고 태연한 표정으로 복귀, 쓴 술도 오늘은 유독 달게 느껴졌다.

“야, 너 그 돈 다 어디에 쓸 거냐?”

“뭐가요?”

“야, 6억 5천이야 6억 5천, 네 나이에 그 정도 돈 버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나 되겠냐?”

홍현구는 돈 잘 버는 후배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우리는 아직 3억도 돌파 못했는데 이 녀석은 배 이상을 벌고 있으니, 안 부러운 게 이상한 거 아닌가. 그 정도 벌면 씀씀이도 커지겠지, 하지만 이인영은 그 돈은 다 부모님이 관리한다며 발을 뺐다.

“야, 너 진짜 그 돈 다 부모님한테 맡겼냐?”

“남한테 준 것도 아닌데 뭐가 이상해요?”

“와~ 이 자식 고단수네. 우리가 술값 내라고 할 까봐 발 빼는 거냐?”

오늘 따라 예리한 선배들, 이인영은 빛의 속도로 눈알을 굴렸다.

역시 나한테 한 턱 쏘라는 뜻으로 불러낸 자린가. 다 억대 돈을 버는 사람인데 내가 술값을 지불할 이유는 없겠지. 마지막까지 딱 잡아뗐다.

“저는 야구만 잘 하지 돈 관리나 그런 건 전혀 못 해요. 그러니까 부모님한테 드린 거죠.”

“그래 너 효자다. 성실한 자식.”

“우리는 언제 그런 효자 노릇 해보나.”

선배들은 돈 잘 버는 후배를 부러워했다.

우리라고 부모님한테 그런 효자 노릇 하고 싶지 않겠나, 다만 능력이 안 될 뿐, 야구 잘 하는 후배가 오늘 따라 빛나 보였다.

괜히 약해지는 마음, 그냥 술 한 번 쏘고 말까 했지만 이인영은 마지막까지 지갑을 지켜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해외 전지훈련, 이번 훈련지는 일본 미야자키로 정해졌다. 최근 일본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대만이나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가는 팀들, 하지만 성운 라이온즈는 2022년까지 미야자키 시와 계약이 돼 있다.

그리고 가격 대비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치르는 게 싼 편, 이것 때문에 여론의 많은 질타를 받았지만, 모든 일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저 사람이 이인영이다.’

정식 경기를 치르는 날도 아닌데, 미야자키 캠프는 많은 팬들의 관심에 둘러싸였다.

이인영은 도쿄 올림픽과 WBC에서 일본에 굴욕을 안겨준 선수, 불편한 시선을 보낼 줄 알았는데 팬들은 훈련이 끝날 때마다 사인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유심히 지켜보는 취재 기자들, 한 기자는 사인을 받고 돌아가는 팬들을 붙잡았다.

“일본 분 맞으십니까?”

“네. 맞아요.”

“그런데 한국말 하시네요?”

“어…자기 배웠어요.”

기자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스스로 배웠다는 뜻이겠지, 누굴 보기 위해 여기에 왔냐고 질문을 던졌다.

“이인영 선수 보러 왔어요.”

“정말요? 이유가 뭡니까?”

“잘생겼어요.”

“야구를 너무 잘 해요.”

예상보다 뜨거운 일본 현지에서의 인기, 본인은 이런 사실을 체감하고 있을까. 취재를 마친 기자는 다음 날 이인영과 직접 인터뷰를 했다.

“저야 감사드리죠. 오늘도 아침에 주차장에서 몇 몇 팬들이 사인을 요청하셨는데, 선물도 받았습니다.”

“이인영 선수 요즘 너무 잘 나가는 거 아닙니까? 연봉도 많이 받으시고 팬들에게 인기도 많고 너무 이기적이시네요.”

기자의 칭찬에 이인영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생각해도 요즘 너무 잘나가는 것 같은데, 이렇게 일이 잘 풀려도 되는 건가.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소속팀의 우승을 이끌지 못했다는 것, 올해만큼은 반드시 우승을 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작년에 우승을 못한 이유가 공약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공약이라고요?”

“네, 우승하면 귀여운 척 하기로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올해는 좀 쉬운 공약을 거시죠.”

이어지는 기자의 공격에 이인영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조금 무리수였던 공약, 미디어 데이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우승 공약은 천천히 생각해보겠다는 답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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