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뛰어봤자 다 내 밥 (10)
“자기야, 차 끊기겠다.”
“그러네, 그만 갈까?’
이인영의 동점 쓰리 런이 나왔지만 성운 라이온즈는 끝내 경기를 뒤집지 못했다.
9회 말까지 5대 5 스코어를 유지한 양 팀은 연장전에 돌입, 양 팀 합쳐 11명의 투수가 투입되며 경기 시간도 그만큼 늘어났다.
현실을 직시한 팬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고, 한산해진 분위기에서 연장전이 시작됐다.
“자, 한진 타이거스의 10회 초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타석에는 박상호 선수, 오늘 5타수 무안타에 그치면서 시즌 타율은 0.273로 하락했습니다.”
“6회에 주자하고 충돌하면서 정강이가 약간 부었다는 정보가 있거든요. 그런데도 여기까지 온 건 대단한 겁니다.”
[따악~!!]
“말씀드리는 사이!! 유격수 옆을 빠져 나갑니다!! 천천히 1루로 들어서는 박상호 선수!! 오늘 경기 첫 안타를 기록합니다!!”
“교체 없이 그냥 가네요. 하긴 박상호 선수만한 주자도 없으니까요.”
김해수 감독은 박상호를 내버려뒀다.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선수들, 그리고 올해 한진 타이거스는 유독 부상자가 많다. 선수층이 얇은 팀 특성 상 주전 선수들은 작은 부상 하나 두 개는 감수하고 가는 입장, 박상호라고 예외는 없었다.
‘수비해라’
이제 타석에는 피터 놀란, 성운 라이온즈의 이성한 감독은 3유간을 비워두지 못했다.
피터 놀란은 좌타자, 이런 때는 보통 3유간을 비워두는 수비를 하지만 놀란은 밀어치는 타격이 뛰어난 선수다.
어설픈 시프트는 오히려 독이 될 뿐, 수비 위치를 확인한 놀란은 투수와의 승부에 집중했다.
“초구는 지켜봅니다. 카운트는 노 볼 원 스트라이크”
“지금은 시프트를 쓸 상황은 아니죠. 좋은 생각했습니다.”
시프트는 타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타자가 보내기 번트를 댈 게 확실하다면, 1, 3루수가 앞으로 전진 하고 2루수가 1루를, 유격수는 2루 베이스를 커버하며 타자를 압박하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타자가 번트 댈 가능성이 낮거나 3유간으로 밀어 칠 가능성이 높다면 투수와 3루수가 커버해야 하는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시프트를 쓰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
양쪽 다 패를 다 보여주고 하는 게임이지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승부,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홈 팬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따악~!!]
“밀어 친 타구!! 좌익수!! 좌익수가 몸을 날리지만!! 잡지 못합니다!! 펜스 앞까지 굴러가는 타구!! 1루 주자는 2루를 지나 3루!! 홈으로 내달립니다!! 타자 주자는 어디까지?!! 3루까지 진출합니다!! 피터 놀란의 적시 3루타!! 그리고 무사 주자 3루 기회는 계속 됩니다!! 한진 타이거스가 기어이 경기를 뒤집습니다!!”
“확실히 득점권에서는 강한 면모가 있네요. 그건 인정하겠습니다.”
박한우 위원은 담담한 목소리로 피터 놀란의 실력을 인정했다.
오늘 해설에서 수비가 별로다, 생각보다 거품이 낀 선수라며 욕을 했지만, 이런 활약을 하는 선수를 어떻게 계속 깎아내리겠나.
인정할 건 인정했다.
‘젠장’
한편, 이인영은 입을 앙 다문 채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몸을 날렸지만 잡지 못한 타구, 중견수 박한수가 백업을 들어왔지만 어깨가 약해 중계플레이가 매끄럽지 못했다.
그 틈을 파고 든 피터 놀란의 질주, 그냥 원 바운드로 잡는 게 낫지 않았을까. 보이지 않는 실책을 저질렀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기에 후속타자 진상우의 희생타가 나오면서 스코어는 7대 5, 패배의 냄새가 짙어지자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팬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오늘도 지면 5위와의 차이는 4경기로 벌어진다. 남은 경기가 20게임도 안 된다는 걸 생각하면 좋지 않은 흐름, 분위기는 가라앉았지만 성운 라이온즈 선수단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다행히 추가 실점 없이 종료된 10회 초, 성운 라이온즈는 뒤늦은 추격에 나섰다.
“자, 박한수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4타수 무안타, 땅볼 3개에 내야 플라이 한 개를 기록했습니다.”
“박한수 선수가 국내에서 보기 힘든 전형적인 어퍼 스윙을 하거든요. ‘덕분에 낮은 공 대처능력은 의외로 좋지만, 오늘처럼 타격감이 좋지 않은 날은 타구 질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박한수의 타격 스타일은 모 아니면 도, 작년 포스트 시즌에서도 타율은 낮았지만 종종 터져 나오는 장타로 존재감을 어필했다.
올 시즌 성적은 타율 0.255, 홈런 7개, 출루율 0.292, 선구안이 좋은 것도 아니라 출루율은 더 떨어진다.
박한우 위원은 성운 라이온즈 감독 시절, 박한수의 타격을 어떻게든 고쳐보려 노력했지만 결국 예전의 모습을 돌아간 타격 폼, 이번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응? 이게?’
그런데 여기서 호쾌한 장타가 터져 나왔다,
높게 튼 타구는 그대로 좌측 스탠스 상단을 직격, 왜 내가 욕만 하면 이렇게 잘 들 치는 건가. 민망해진 박한우 위원은 입을 다물었다.
“자, 이제 스코어는 7대 6!! 정익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첫 타석에서는 야수 선택으로 출루했습니다.”
“박한우 위원님은 여기서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약점을 잡은 이인호 위원은 선배를 놀려댔다.
박한우 위원은 무응답으로 반격, 그 사이 유격수 깊은 땅볼을 때린 정익호는 내야 안타로 1루를 밟았다.
이러면 집에 갈 수가 없지 않나, 하나 둘 자리를 뜨던 팬들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여기서는 좌타자다.’
이성한 감독은 대타 이승준을 내보냈다.
이건 보내기 번트를 대겠다는 뜻, 3루수 피터 놀란과 유격수 김상수는 전진수비를 펼쳤다.
‘하아~ 이거 불안한데’
타이거스의 김해수 감독은 긴장감에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다스렸다.
피터 놀란은 평소 1루수를 보지만 오늘은 3루를 보고 있다. 송구에 문제가 있지만 포구 능력은 좋은 편, 저 양날의 검을 어찌해야 하나.
수비가 좋은 유격수 김상수 쪽으로 번트를 굴렸으면 좋겠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노 터치!! 노 터치!!”
3루 쪽으로 치우쳤지만 투수가 잡을 수 있는 타구, 달려오는 놀란을 멈춰 세운 투수는 1루 송구를 했다.
“으악!!”
판정을 확인한 투수 송진호는 아쉬운 비명을 내질렀다.
약간 짧았는지 바운드로 들어간 송구, 송구가 정상적으로 날아갔다면 1루수는 글러브를 아래로 내리고 손을 밀면서 공을 잡아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바운드 송구가 된 탓에 백핸드 캐치가 되면서 글러브가 공을 마중 나가지 못했다.
간발의 차이로 놓친 아웃, 송구가 뒤로 빠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되나, 석연치 않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타이거스 벤치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이러면 또 번트지’
타석에 선 임완수는 코치 사인을 보더니 번트 자세를 잡았다.
주자를 2 - 3루로 보내야 하니 이번에는 1루로 타구를 밀어야겠지, 1루 진상우는 튀어나갈 준비를 했고, 2루수 박상호가 백업을 준비했다.
딱~!
“자!! 번트 댔습니다!! 1루수가 잡아서!! 3루에~!! 3루에서 아웃입니다!!!! 진상우 선수의 과감한 송구!!!! 3루에서 주자를 잡아냅니다!! 이제 주자는 1사 주자 1 - 2루!! 한진 타이거스가 한 숨을 돌립니다!!”
“이야~ 여기서 3루를 택하나요. 뻔한 작전이긴 했는데, 지금은 임완수 선수가 번트를 굉장히 잘 댔거든요. 하지만 진상우 선수의 대처가 너무 좋았습니다. 이건 누굴 탓할 수가 없네요.”
박한수와 임완수는 허탈한 얼굴로 더그아웃에 귀환했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연속 번트를 댔다고 장난하는 거냐며 욕을 하는 팬들이 있는데, 지금 번트는 정말 잘 댔다.
그런데 36세 노장 진상우가 저런 민첩한 수비와 냉정한 송구를 할지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상대가 잘했을 뿐, 이성한 감독도 착잡한 표정을 애써 감췄다.
‘이번엔 내가 영웅이 될 차례다.’
후속타자 홍현구는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다음 타자가 이인영이니 타이거스는 여기서 무조건 승부를 보겠지, 낮게 떨어지는 볼만 조심하면 승산은 충분했다.
“떨어집니다. 카운트는 원 볼 노 스트라이크”
“지금은 무조건 낮게 던질 거란 말이죠. 이런 때일수록 조익현 포수의 수비가 중요합니다. 물론 투수의 잘못도 있었지만, 조익현 선수가 바운드 볼을 잘못처리하면서 추가 진루를 허용 했거든요. 여기서 추가 진루를 내주는 건 패배를 의미합니다.”
2구는 낮게 들어오는 스트라이크, 한 방 먹었지만 노렸던 공이 아니라 홍현구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렇다면 타이거스 배터리는 더더욱 낮게 던져야 하는 법, 홍현구는 가운데 낮은 공을 받아쳤다.
따악~!!
“와아아아~!!”
센터 쪽을 빠져나가는 안타, 스타트를 끊은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질주했다.
이렇게 스코어는 다시 7대 7, 패배 앞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좀비 군단의 발악에 타이거스 벤치는 격한 한숨을 토해냈다.
‘우리가 이기기 전까지 아무도 집에 못가.’
동점타를 뽑아낸 홍현구는 관중석을 향해 손가락 세리머니를 날랐다.
우리를 믿지 못하고 먼저 가버린 의리 없는 팬들, 이런 멋진 경기를 뒤로 하고 돌아선 걸 후회하게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나.
그 마음을 아는지 충성심이 넘치는 팬들은 끝내기 홈런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이!! 인!! 영!! 홈런!!!!]
[이!! 인!! 영!! 홈런!!!!]
“자, 이제 1사 주자 1 - 3루에서!!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동점 쓰리 런 홈런의 주인공!! 팬들의 함성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홈런은 못 쳐도 됩니다. 짧은 안타 하나면 충분해요.”
성운 라이온즈의 이성한 감독은 주자들에게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6회에 승부를 걸었다가 이인영에게 동점 쓰리 런을 맞은 타이거스, 여기서 거른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아니나 다를까 완전히 빠져 앉은 조익현 포수, 6회에 나온 폭투가 마음에 걸렸는지 타이거스 배터리는 빠지는 공도 신중을 기했다.
‘맞을래?’
그런데 이때 붕 떠서 날아오는 공, 자세를 풀지 않은 이인영은 한 박자 쉬고 앞발을 쭉 뻗으며 타구를 밀어냈다.
배트 끝에 걸렸지만 유격수 위를 넘어가는 안타, 출발이 다소 늦었지만 3루 주자는 여유 있게 홈으로 들어왔다.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난장판이 된 성운 라이온즈 벤치, 다 잡은 경기를 놓친 타이거스 선수단은 더그아웃을 향해 힘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무려 4시간 52분 동안 이어진 혈투, 끝내기 안타를 때린 슈퍼스타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동료들과 격한 포옹을 나눴다.
천당과 지옥을 오갔지만 재미있었던 경기, 결승 타점 포함 4타수 2안타(1홈런) 4타점을 올린 이인영은 수훈선수 인터뷰에 나섰다.
“이인영 선수 오늘 승리 축하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제가 방금 전까지 팬 여러분들의 댓글을 확인했는데요. 이인영 선수 때문에 KBO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무슨 생태계를 파괴했다는 겁니까? 작년에 비하면 온순한 거 아닌가요?”
작년에는 124경기를 뛰고 55홈런을 날렸다.
올해는 125게임에서 41홈런, 작년에 비하면 투수들을 덜 잡아먹었다.
그런데 이것도 생태계 파괴라고 하면 어쩌라는 건가. 올해의 나는 온순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