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뛰어봤자 다 내 밥 (7)
“요즘 힘 드시죠?”
“너만큼 힘들겠냐? 힘들지?”
이곳은 인천의 위너스 파크, 2루에 안착한 이인영은 박혁과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두 선수는 올 시즌 훌륭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일단 박혁은 타율 0.351, 홈런 38개, 97타점으로 생애 3번 째 40홈런 100타점 시즌을 노리고 있다. 타율만 조금 따라주면 트리플 크라운도 노려볼 수 있는 성적, 하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다.
이인영은 9월 첫 째 주에서 타율 0.375, 4홈런을 퍼부으며 시즌 성적을 타율 0.362, 37홈런, 98타점으로 끌어올렸다.
2년 연속 트라플 크라운을 노려볼 수 있는 성적, 하지만 팀 사정은 조금 달랐다.
ST 위너스는 올 시즌 125경기에서 62승 63패, 5할 승률도 못 넘기는 부진에 빠졌다. 매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전통 명가의 몰락, 박혁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버티고 있어도 추락을 막지 못했다.
성운 라이온즈도 사정은 마찬가지, 작년 시즌 리그 3위,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이뤄냈던 신기루였나.
투타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리그 6위까지 추락했다.
최고의 선수가 최고의 팀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좋은 예, 두 선수는 위로 아닌 위로를 주고받으며 신경전을 이어갔다.
“어차피 포스트 시즌 어려워졌는데 시즌 끝나고 밥이나 먹을까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너 아직 포기 안 했잖아?”
“그냥 밥 먹자는 건데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세요? 역시 힘드시죠?”
“아 쫌!!!”
계속 되는 힘드시죠 공격에 박혁은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반면 목적을 달성한 이인영은 씩 웃을 뿐, 악마의 미소에 정신적 데미지가 추가 됐다.
[따악 ~ !!]
“자!! 이 타구가 유격수 옆을 빠져 나가는 군요!! 2루 주자는 3루를 지나 홈으로 들어!! 옵니다!! 김상규 선수의 적시타!! 성운 라이온즈가 선취점을 냅니다!!”
“김성현 선수까지 흔들리나요? 이러면 ST 위너스는 정말 힘들어지는데요.”
타구를 확인한 김성현은 캡을 고쳐 쓰며 불편한 심기를 다스렸다.
올 시즌 평균자책점은 3.34, 절대 못 던지지 않았다.
그런데 김성현이 등판한 날 유독 침묵하는 타선, 26경기에서 20경기 이상을 퀄리티 스타트로 끊었는데 노 디시전이 8경기나 된다. 뭐 빠지게 던졌는데 거둔 승리는 8승 뿐, 승리가 전부는 아니지만 이런 시즌은 처음이라 의욕이 팍 죽어버렸다.
거기다 오늘은 첫 두 타자를 잘 잡아놓고도 연속 안타를 내주며 실점, 마음 다스려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내가 미쳤지 … 저 자식 농담을 받아주고’
타구를 막지 못한 박혁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지금이 한가하게 농담이나 주고받을 상황이나,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다른 선수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정말 시즌을 포기한 줄 알면 큰 일, 만약 저 자식이 또 농담을 걸면 그때는 선배의 위엄으로 꾸짖기로 했다.
자꾸 봐주니까 기어오르는 녀석, 다음에는 절대 봐주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경기는 그렇게 흘러 성운 라이온즈의 3회 초 공격, 타석에 들어선 이인영은 김성현의 2구를 휘갈겼다.
[따아악 ~ !!!!]
“이 타구는!! 계속 뒤로!! 뒤로 ~ ~ 오!! 아 … 파울인가요??!!”
“일단 1루심은 홈런을 선언 했거든요. 김성수 감독이 비디오 판독을 요구했습니다.”
심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이인영은 1루심의 판정대로 3루를 지나 홈으로 들어왔다.
이 홈런이 인정되면 38홈런 100타점으로 모든 지표에서 박혁을 추월하게 된다.
팀 성적도 그렇지만 라이벌전쟁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겠지, 차분한 표정으로 판정 결과를 기다렸다.
“아악 ~ !!”
“말도 안 돼!!”
판독 결과에 ST 위너스 팬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순식간에 4대 0으로 벌어진 격차, 중계석은 이번 홈런을 두고 이런저런 대화를 두고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다시 한 번 보시죠. 아 … 폴 대 안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건 김성현 선수가 신중하지 못했던 거죠. 이인영 선수가 9월 들어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 선수는 타격감이 좋을 때 빠른 카운트 타격을 주저하지 않는데, 너무 급하게 들어갔어요.”
박한우 위원은 김성현의 무모함을 질책했다.
원 볼에서 한 가운데 스트라이크라니, 이게 실투였는지 카운트를 잡겠다는 의도였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원 볼에서 한 가운데 공을 던진다는 건 절대 해선 안 될 행위라는 건 분명, 반면 실투를 놓치지 않고 공략한 이인영은 칭찬을 받아 마땅했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기는 이른 게임,
ST 위너스 팬들은 3회 말 반격에 기대를 걸었다.
“자, 원 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박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는 1타수 무안타, 수비에서도 약간 아쉬운 모습이 나왔습니다.”
“오늘 집중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져 있어요. 팀의 주축선수인 만큼 집중해야 합니다.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니죠.”
박혁은 몸 쪽으로 떨어지는 초구에 배트를 멈췄다.
그런데 주심이 하프스윙 판정을 내렸고 박혁은 강력히 항의했다.
“돌았어요? 이게 돌았나고요?”
“응”
사실 체크 스윙을 두고 항의를 하는 건 무의미하다. 야구 규칙을 들춰봐도 하프스윙 기준을 다룬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하프 스윙에 주심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하지 않았다면, 포수나 선수가 스윙 여부를 주심이나 1루심에게 물어볼 수 있다는 규정은 있다.
하프스윙의 기준이 없으니 각 심판 기준에 따라 판정이 갈리는데, 일부 심판은 배트가 홈 플레이트 밖으로 넘어가야 스윙 판정을 내린다.
하지만 오늘 주심을 맡은 김재경 심판은 배트 끝이 돌아가면 무조건 스윙 판정을 하는 편, 억울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게 왜 돌았냐고?!!”
땅볼로 물러난 박혁은 더그아웃에서 계속 불만을 뿜어냈다.
평정심을 완전히 잃었다는 뜻, 의도한 전개는 아니지만 이인영은 넋이 나간 ST 위너스 마운드를 마음껏 두들겼다.
[따악 ~ !!]
“2루수 옆을 빠져 나갑니다!! 오늘 이인영 선수는 3타수 3안타!! 날씨가 추워질수록 방망이는 더욱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열기를 겨울에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잠이나 자야 되는 건가요?”
3안타를 때리고 있지만 월드 스타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페이스를 끌어 올리면 뭐 하나,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면 가을 동안 다음 시즌을 기약 할 뿐, 박혁이 힘들다고 반문했을 때 그렇다고 말할 뻔 했다.
속이 쓰리는 건 이쪽이나 저쪽이나 마찬가지, 그래도 포기할 단계는 아니라 최선을 다했다.
‘혼내길 누굴 혼낸다는 거냐.’
그 모습을 지켜본 박혁은 반성의 시간을 보냈다.
겉으론 까불거리지만 누구보다 야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게 저 녀석이다. 프로 7년 차에 접어든 내가 하프스윙에 항의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걸 몰랐을까.
아차 하는 사이 놓친 정신 줄, 이런 내가 누굴 훈계한다는 건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5대 0으로 뒤진 ST 위너스의 7회 말 반격, 박혁은 바뀐 투수 김수영의 2구를 받아쳤다.
[따아악 ~ !!]
“오 ~ !! 이 타구는 높게 떠서!! 좌측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박혁 선수의 시즌 39호 홈런!! 다시 리그 홈런 1위를 탈환합니다!!”
“조금 늦었지만 어쨌든 추격을 하네요. ST 위너스는 이 홈런을 추격의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인호 위원님은 너무 중립적인 해설을 하시네요? 아드님이 다시 홈런 2위로 밀려났는데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뭐 …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하겠죠. 제가 응원한다고 홈런 더 나오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박한우 위원과 이인호 위원은 오늘도 만담을 주고받았다.
누가 양아버지이고 누가 친아버지인지 구별이 안 되는 해설, 그렇게 투닥거리는 사이 ST 위너스가 한 점을 추가하며 스코어는 5대 2가 됐다.
이제는 조금 긴장해야 하는 분위기, 이성한 감독도 마지막까지 집중하라며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 세웠다.
이제 경기는 8회 초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ST 위너스의 김성수 감독은 필승조 박지웅까지 투입하며 발악했다.
‘방패 뒤에 숨는 건 아니지. 막을 게 아니라 점수 내면 되잖아?’
선두타자 임완수는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포스트 시즌 진출이 어려워졌다는 건 머리로 알고 있지만, 어린 후배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 존재감에 묻혀 가야 하는 건가.
나도 성운 라이온즈의 일원,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사명감을 앞세웠다.
따악 ~ !!
“됐어!!”
“돌아!! 돌아!!”
좌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장타, 1루를 찍은 임완수는 2루를 지나 3루까지 내달렸다. 하지만 의욕이 너무 앞섰던 질주, 3루에서 태그아웃 당한 임완수는 흙을 움켜쥐며 아쉬움을 표했다.
‘선배의 마음은 제가 접수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인영은 씩 웃으며 대기타석에 섰다.
그냥 2루에서 멈출 것이지 뭘 저렇게 무리를 하셨나, 후속 타선이 조금이라도 쉽게 득점을 내라고 그런 거겠지, 엎어진 밥상이지만 선배의 성의만은 고맙게 받아들였다.
[따악 ~ !!]
“자, 여기서 다시 안타가 나옵니다!! 홍현구 선수의 안타!! 1사 주자 1루에서 이인영 선수가 들어섭니다.”
“박세웅 선수가 정타를 계속 허용하고 있거든요. 이러면 계속 마운드에 두기 어렵습니다.”
김성수 감독은 여기서 다시 투수를 교체했다.
마운드에 오른 선수는 좌완 조은성,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선수에게 이런 시련을 부여하는 건가.
물론 이인영 입장에선 고마운 일, 지금 이 상황에서 저 선수가 던질 공이 뭐가 있겠나. 바깥쪽 빠른 볼, 커버할 스트라이크 존이 좁아진 덕분에 수월하게 공을 골라냈다.
‘진짜 안 나오네.’
2구도 볼에 되자 조은성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겨우 공 2개 던졌는데 왜 이렇게 땀이 나는지, 이인영은 조은성보다 고작 2살 더 많은 선수다.
그 2년의 격차가 이렇게 크다는 건가. 인정할 수 없는 일, 3구는 반드시 집어넣겠다는 각오를 세웠다.
‘그냥 도망칠 것이지, 어리석은 녀석’
노렸던 공, 최근 타격감이 좋은 이인영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다.
[따아악 ~ !!!!]
“자!! 이 타구가 향하는 곳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이인영 선수의 투런 홈런!! ST 위너스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습니다!! 스코어 7대 2를 만드는 시즌 39호 홈런!! 리그 공동 홈런 1위에 다시 올라섭니다!!”
“이렇게 되면 이번 주에만 홈런 6개죠. 제대로 불이 붙었습니다.”
“당분간 라이온즈 상대하는 투수들은 쉽게 경기하기 못하겠네요. 우리가 알던 그 포식자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김성수 감독은 결정타에 고개를 떨궜다.
그건 선수들도 마찬가지, 내일은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했지만 5회에 터진 이인영의 쓰리 런 홈런에 넉 다운 당했다.
2년 연속 40홈런 달성, 9월 초까지 한 번도 홈런 1위에 오르지 못한 선수가 막판 뒤집기를 해버리다니,
그 저력에 성운 라이온즈 팬은 물론 다른 팬들도 경의를 표했다.
[역시 곰은 곰이네. 겨울에 자야 되니까 가을에 많이 먹어두는구나.]
->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닌가? 최근 8경기에서 6개잖아.
-> 사람이 먹는 양하고 곰이 먹는 양하고 같니?
-> 얘, 왠지 올 시즌도 50홈런 넘길 것 같다. 살고 싶으면 다들 도망쳐, 배고픈 곰은 피하는 게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