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08화 (108/309)

108화. 뛰어봤자 다 내 밥 (4)

“이거 꼭 해야 돼요?”

“네”

올스타전을 앞두고 이인영은 목에 마이크를 달라는 요구와 마주했다.

작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도입된 선수 목에 마이크 달기, 올스타전은 친선경기라 선수들은 마음 놓고 사소한 잡담을 나눈다.

팬들도 그걸 은근 궁금해 한다는데 슈퍼스타는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 명분은 그럴 듯 했다.

“저 욕 많이 해서 안 돼요.”

“욕이요?”

“네, 편집 못해주실 거면 마이크 달지 마세요.”

욕이라는 말에 방송국 관계자는 깜짝 놀랐다.

설마 진짜 욕을 할까. 그냥 우릴 놀리는 게 아닐지,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이인영은 자기가 만족할 만한 플레이가 안 나오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당연히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마이크를 달면 그게 다 가정으로 전파될 텐데 진짜 달 건가.

고민하던 PD는 오늘은 올스타전이니까 어지간하면 욕은 하지 말라며 설득에 나섰다.

“아~ 진짜 안 되는데 … 제 이미지가 있잖아요.”

“협조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좀 참아주세요.”

“에효~ 알았습니다.”

그렇게 겨우 합의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드림팀에 소속된 이인영은 외야로 나가 경기기 시작되길 기다렸다.

“야, 타구 잡을 때는 서로 콜 하기다?”

“알았어.”

드림팀 중견수로 출장한 전인규는 친구와 사전협의를 나눴다.

올스타전이라 무리한 플레이는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타구를 잡으려다 부딪치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거기다 전인규와 이인영은 수비범위가 넓기로 유명한 외야수, 사전에 약속을 해서 나쁠 건 없었다.

“플레이 볼!!”

그렇게 행복 팀의 선공으로 시작된 2021 KBO 올스타전, 드림 팀 선발로 나선 테리 위즈(NA 자이언츠)는 첫 두 타자를 범타로 처리했다.

이제 타석에는 정규시즌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는 박혁, 3구를 때린 공은 좌중간으로 날아왔다.

“마이!! 마이!!”

자기가 잡겠다고 콜을 하는 친구, 이인영은 추격을 멈췄지만 전인규도 돌연 움찔하면서 타구는 외야에 떨어졌다.

“야!! 잡았어야지!!”

지가 잡겠다고 해놓고 이제와서 나한테 책임을 떠넘기는 건 뭔가, 욱한 이인영은 마이크를 차고 있다는 것도 잊고 폭언을 퍼부었다.

“저 XX 진짜 웃기네. 야!! 네가 잡는다고 했지 내가 잡는다고 했냐?!!”

그대로 전파를 타고 각지로 퍼져 나간 방송사고, 생각보다 거친 반응에 시청자들은 발칵 뒤집혔다.

진짜 곰이 으르렁거리는 느낌, 제대로 혼난 강아지는 깨갱거리며 자기자리로 돌아갔다.

‘아차, 나 마이크 차고 있었지.’

뒤늦게 목에 걸린 목줄을 알아 챈 흑곰, 조금 무안했지만 슈퍼스타는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전방을 응시했다.

약간의 소동이 있었지만 별 일 없이 지나간 1회 초, 드림 올스타가 1회 말 공격에 나섰다.

“자, 전인규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선화 이글스 소속으로 올 시즌 타율 0.345, 홈런 3개, 26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KBO를 대표하는 리드오프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방금 전엔 좀 묘한 장면이 나왔습니다.”

“아니 본인이 콜을 했는데 그걸 왜 이인영 선수한테 떠넘기는 겁니까? 욕을 먹어도 할 말 없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인규는 바깥쪽 공을 밀어 쳐 안타를 때려냈다.

역시 안타 생산 능력만큼은 국내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선수, 자존심을 회복했는지 전인규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1루에서 멀어졌다.

다음 타자 이찬우(창원 레이더스)가 볼넷으로 걸어 나가면서 무사에 주자는 1 - 2루, 여기서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섰다.

“저, 3루로 뜁니다.”

이때 2루 주자 전인규가 마이크에 대고 도루를 예고했다.

타석에 이인영이 있는데 굳이 뛸 이유가 있나. 하지만 수비에서 망신을 당한 전인규는 과감한 도루로 실수를 만회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소리를 2루수가 들었다는 게 문제, 2루수 김환희는 포수 오건무에게 사인을 줬다.

오건무와 김환희는 같은 베어스 소속이라 사인 교환이 잦은 편, 정보를 접수한 투수는 3루에 견제구를 던졌다.

3루수 김재규는 런 다운에 걸린 전인규를 2루로 몰았고, 전인규는 태그를 피하며 2루 베이스를 터치했다.

문제는 지금부터, 1루 주자 이찬우도 2루에 들어와 있었다.

2명의 주자가 2루를 점거를 해 버린 것, 야구규칙에 따르면 인 플레이 중 두 주자가 같은 베이스를 점유하면 그 베이스를 차지할 권리는 선행 주자에게 있다.

뒷주자는 자동 태그아웃, 당연히 전인규는 살고 이찬우는 아웃됐다.

‘나 죽은 거야?’

하지만 전인규는 잠시 규칙을 착각, 자신이 죽은 걸로 오해하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야!! 야!! 너 지금 뭐하냐?!!”

이때 잠자코 있던 코치가 얼른 돌아가라고 사인을 줬다.

하지만 이제 와서 2루로 돌아가 봤자 늦은 일, 이렇게 드림 팀의 무사 주자 1 - 2루 기회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와~ 내가 어이가 없어서 … ”

관중들도 어이가 없겠지만 타석에 들어선 이인영도 기가 차긴 마찬가지, 바로 불만을 쏟아냈다.

“이게 무슨 윷놀이도 아니고 빽 도가 뭐야.”

팬들은 올스타전을 예능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이인영은 지금 나름 진지한 자세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 그런데 개그를 하고 있는 동료들, 김이 팍 새면서 연신 불만을 중얼거렸다.

“야,욕 그만하고 얼른 자세 잡아.”

“선배 같으면 지금 화 안 나게 생겼어요? 아니, 야구에서 빽 도가 뭐야 빽 도!!”

보다 못한 오건무가 다독이고 나섰지만, 흑곰의 절규는 전국에 울려 퍼졌다.

팬들은 재미있다고 낄낄거렸지만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난 이인영은 뭐 씹은 표정으로 더그아웃에 입성했다.

빽 도 사건으로 사기가 꺾인 드림 팀 올스타는 행복 올스타 팀에게 일방적으로 밀렸고, 벤치에 앉은 이인영은 계속 불만을 중얼거렸다.

“쟤가 제일 띨띨한 거 같아.”

“야, 그만 해라 좀.”

“아니 그렇잖아요. 쟤 때문에 사기가 죽어서 우리가 지고 있는 거 아니에요?”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구박, 본인도 대역죄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 전인규는 만회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따악~!!

“자!! 이 타구는 내야를 빠져 나갑니다!! 전인규 선수는 오늘 두 타석 모두 안타로 출루하는 군요.”

“또 구박 당하기 싫으면 가만히 있는 게 좋겠습니다.”

“하하~ 이인호 위원님, 이인영 선수가 평소에도 저런 편입니까?”

“글쎄요. 승부욕이 강하다는 건 저도 알고 있는데, 이런 모습은 저도 처음입니다.”

이인호는 아들의 또 다른 일면에 당황했다.

잔소리가 심한 건 엄마를 닮은 건가, 하지만 여기서 괜한 소리를 했다간 내가 피를 볼 뿐, 방송 그렇게 위험하게 하는 거 아니라며 자체 검열에 나섰다.

다음 타자 이찬우가 진루타를 쳐 주면서 1사 주자 2루,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섰다.

따악~!!

잡아당긴 타구는 우익수 앞에 떨어졌다.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한 점을 만회하는 드림 팀, 하지만 4대 1로 뒤지는 상황이라 슈퍼스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나름 노력은 해봤지만 초반에 벌어진 점수 차는 극복하기 어려웠고, 경기는 드림 팀이 8대 3으로 뒤진 채 7회를 맞이했다.

홈런 레이스 결승전을 치를 시간, 작년 시즌 챔피언에 오른 이인영은 왕위 사수를 위해 배트를 손에 쥐었다.

배팅 볼을 던져줄 사람은 동산고에서 인연을 맺은 김재호 감독, 유니폼을 벗은 지 9년이나 지났고 별로 떨릴 것도 없지만, 울렁증이 다시 도졌는지 김재호 감독은 칠만한 공을 던져주지 못했다.

“집중!! 집중!!”

이때 옛 제자 이인영의 호통이 날아들었다.

고교 시절 똑바로 못하는 제자들에게 감독님이 자주 했던 말,

나는 호랑이 새끼를 키운 건가. 김재호 감독은 무안한 얼굴로 흐트러진 모자를 고쳐 잡았다.

따아악~!!

“자!! 이 타구는 높게 날아~!! 우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한 번의 스윙!! 그리고 홈런!! 이인영 선수의 힘을 느낄 수 있는 타구였습니다.”

“그리고 김재호 감독이 현역 시절 홈런을 많이 맞긴 했습니다. 저도 몇 개 이득을 보기도 했고요.”

이 와중에도 박한우 위원은 초대 손님의 흑역사를 들춰냈다.

김재호 감독은 통산 41승 58패를 거두고 커리어를 마감했다. 변화구는 쓸 만 했는데 빠른 볼이 받쳐주질 못하면서 고전한 스타일, 지난 2009년엔 104이닝을 던지면서 29홈런을 얻어맞기도 했다.

박한우 위원에게도 현역 시절 17타수 8안타, 홈런 2개로 약했던 편, 하지만 다 지나간 일이다.

지금은 제자를 위해 배팅 볼 투수를 자처한 입장, 맞을수록 좋은 거라며 응원을 이어갔다.

따아악~!!

“오오~!! 이건!! 구장 밖으로~ 오~!! 나가 버립니다!!!! 엄청난 홈런!!!! 관중석이 들썩들썩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 비행기에서 이 방송을 보고 있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창문 밖을 봤는데 흰 색의 무언가가 보인다면 이인영 선수가 친 홈런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박한우 위원의 말장난에 중계석은 발칵 뒤집혔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런 비유가 적적하다고 느낄 정도로 멀리 날아간 홈런, 이후에도 이인영은 무력시위를 이어갔다.

아웃 카운트 8개에 홈런은 17개, 풀스윙을 거듭한 이인영은 잠시 타석에서 물러나 숨을 골랐다.

이때 얼른 달려와 수건과 음료수를 건네는 아리따운 아가씨, 이인영은 음료수만 마실 뿐 수건은 손대지 않았다.

“땀도 닦으세요.”

“아니에요. 아가씨 손에 땀 묻히는 건 신사가 할 일이 아니죠.”

마이크를 목에 차고 있으니 이 작업용 멘트도 당연히 방송을 탔다.

야구 선수면 아리따운 여자보다 볼에 더 신경 써야 한다더니, 전부 거짓말이었나. 얼마 전 벌어진 사건 때문에 친구에게 잔소리를 들은 전인규는 불만을 쏟아냈다.

“와~ 저 자식은 나한테 뭐라고 하더니 … 아주 대놓고 작업을 하네.”

“야, 그럼 네가 가서 땀 닦아주고 와라.”

눈치를 살피던 전인규는 수건을 들고 친구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인영은 그런 거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고, 주변은 다시 한 번 폭소에 휩싸였다.

따아악~!!

“자!! 이 타구는!! 다시 한 번 우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18번 째 홈런!! 이인영 선수의 홈런 쇼는 계속 됩니다!!”

“저는 이 선수가 왜 슈퍼스타로 불리는지 오늘 다시 한 번 이해한 것 같습니다. 팬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선수에요.”

19개로 결승전을 마친 이인영은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결승전을 마무리 했다.

대기하고 있던 아가씨가 목에 수건을 걸쳐주자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고,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 다시 한 번 회포를 풀었다.

경쟁자 페르난데스는 나름 애를 써 봤지만 10개 아웃을 적립하는 동안 7홈런에 그쳤고, 이렇게 이인영은 홈런 레이스 2연패를 달성해 냈다.

상금은 500만원과 150만원 상당의 가전제품, 기자들 앞에 선 슈퍼스타는 KBO 총재와 기념촬영을 마쳤다.

‘이건 우리 애들한테 보내야지.’

상금과 가전제품을 기증할 곳은 이미 정해뒀다.

보육원의 세탁기가 고장 났다는데 마침 잘 된 일, 경기가 끝나자마자 기사님에게 목적지가 적힌 쪽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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