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뛰어봤자 다 내 밥 (3)
[연봉조정, KBO에도 적용되나?]
올스타전을 앞두고 한 기자는 요즘 논란인 연봉조정을 두고 기사를 내보냈다.
MLB에선 서비스 타임이 3년이 안 되는 선수들은 최저 연봉을 받지만, 3년을 넘어서면 에이전트를 앞세워 구단과 협상을 할 수 있다.
그건 NBA도 마찬가지, NBA는 연차에 따라 계약 규모가 결정되는데 0~ 6년 차는 샐러리 캡의 25%, 7~ 9년차는 샐러리 캡의 30%, 10년 이상은 샐리러 캡의 35%에 해당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선수의 몸값, 정당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선수노조는 최근 KBO도 미국처럼 연봉조정 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속 FA 거품이라고 욕을 하는데, 그렇다면 젊은 나이의 선수들은 합리적인 몸값을 받고 있나.
젊은 나이에 받지 못한 대우를 FA 때 받는 게 불만이라면, 젊은 나이에 합당한 대우를 해 주면 될 거 아닌가.
그럴 듯한 주장이라 구단 측 대표들도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올스타에 두 번 이상 선정되고, 국가 대표 경기에 참가한 경험이 있으며, 한 시즌 120경기 이상을 2번 소화한다면 연봉조정 자격을 인정하겠다.”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연봉조정 자격을 인정한다는 것, 선수협은 너무 까다로운 조건이라며 반발했다.
저 조건을 모두 충족할 선수가 몇 명이나 있겠나. KBO 최고의 스타라 불리는 이인영도 저 조건을 채우진 못했다며 반발했다.
‘곧 채울 텐데 뭘’
선수협의 주장에 슈퍼스타는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데뷔 시즌 때 불의의 부상을 입으면서 50경기 밖에 출장하지 못했으니, 풀타임을 치른 건 작년 시즌뿐이다.
올스타는 올 시즌 뽑히면 조건 충족, 국가대표는 2번이나 치렀으니 올 시즌만 무사히 치른다면 연봉조정 자격을 획득한다.
그런데 굳이 날 기준으로 삼을 줄이야. 기자들 앞에서 예시가 좀 잘못 된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 올해만 건강하게 치르면 연봉조정 자격 얻을 수 있습니다. 선수협 회장님은 저 같은 대형선수도 그런 조건을 채우긴 어렵다는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누구라도 열심히 하면 그 조건은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연봉조정이 실현된다면 이인영 선수는 본인의 몸값이 얼마나 뛸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음 … 적어도 10억은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시작부터 세게 나오는 슈퍼스타, 하지만 이인영은 이것도 내가 양보한 거라는 입장을 밝혔다.
“저는 4~ 5년 안에 메이저리그 진출하는 게 목표입니다. 포스팅 성사되면 구단은 최소 50억 이상 받을 수 있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1년 연봉 10억 못 줄 것도 없지 않나요?”
나름 근거가 있는 주장, 팬들도 이인영이라면 그만한 돈 받을 가치가 있다며 맞장구를 쳐줬다.
물론 성운 라이온즈 입장에선 등골이 오싹해 지는 일, 차명석 단장은 공식적인 입장은 발표하지 않았지만 올해는 얼마나 줘야 하나라는 고민에 휩싸였다.
‘말이 씨가 된다고 조심해야지.’
작년 시즌, 차명석 단장은 그까짓 3억 못 줄 이유 없다고 한 마디 했다가 연봉 협상에서 제대로 역습을 당했다.
2억 8천으로 퉁 치려고 했는데 기어이 3억 채운 협상, 올 시즌도 이런 기세라면 연봉 인상은 당연하다.
하지만 벌써부터 인상 폭을 논하는 건 금물, 그런데 이때 성운 그룹 회장 김태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 야구광으로 유명하지만 직접 관람을 오는 건 오랜만, 차명석 단장은 한 걸음에 달려와 회장님을 맞이했다.
“6억 정도는 줄만하지 않나?”
“예?”
회장님이 슬쩍 흘린 말에 차명석 단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프로 3년 차 선수에게 연봉 6억이라니, 거기다 작년 연봉협상에서 성운 라이온즈는 이인영의 연봉을 10배 이상 인상해 줬다.
계약금도 7억이나 투자를 했고 서운하게 대접한 기억은 없다. 이대로 풀 시즌을 치른다면 연봉 인상은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6억은 좀 너무 가파른 인상 폭 아닐까.
하지만 김태성 회장은 실력만큼 주는 게 우리 기업의 모토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해야 앞서나가는 거야. 어린 선수라도 실력이 있으면 대접해 준다는 걸 보여주면 다른 선수들도 자극을 받겠지, 그렇게 생각 안 하나?”
“예 … 뭐 … ”
“일단 하는 거 보자고, 나머지는 그 다음에 논의하지”
그렇게 시작된 경기, 특별 손님이 자신을 지켜본다는 걸 알 리 없는 이인영은 외야에서 몸을 풀며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자, 창원 레이더스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이찬우 선수, 올 시즌 타율 0.282, 홈런 3개, 24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드림 팀 올스타에 선발된 선수죠. 작년 시즌에도 좋은 활약을 하면서 프로 5년 만에 억대 연봉을 넘겼는데, 앞으로도 활약이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이인영은 평소보다 수비 위치를 앞당겼다.
이찬우는 특유의 끊어 치기 타법으로 안타를 만들어 내는 선수, 순장타율은 0.100에 불과하지만 어느 방향으로도 타구를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저 사람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장타가 적은 선수라는 건 분명, 그런데 이번은 예상이 어긋났다.
따악~!!
생각보다 멀리 날아오는 타구, 뒷걸음질을 치다 어느덧 펜스 앞까지 왔다.
2년 전 펜스 플레이를 하다 부상을 당한 전력이 있으니 안전하게 바운드로 처리했어도 됐을 텐데, 곰은 한 번 노린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다.
“잡았어요!!!! 잡았습니다!!!! 이인영 선수의 멋진 플레이!! 이찬우 선수를 더그아웃으로 돌려보냅니다!!”
“지금은 머리 위로 넘어가는 타구를 잡아냈거든요. 역시 운동신경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타구를 확인한 이찬우는 양 손을 허리에 댄 채 격한 한숨을 뿜어냈다.
세상에 이게 잡히다니, 특별석에 앉아 있던 김태성 회장도 박수를 보냈다. 홈런만 잘 치는 줄 알았는데 수비도 잘했었나? 차명석 단장을 잡고 늘어졌다.
“네, 작년에도 골든 글러브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그거 수비 좋다고 주는 상이 아니잖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아 … 그렇군요.”
“이거 단장이라는 사람이 … 나보다 모르면 어쩌나?”
한방 먹은 차명석 단장은 유구무언, 어쨌든 간만에 유원지에 놀러온 회장님은 곰이 부리는 재주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인영의 호수비에 흐름이 끊긴 창원의 공격은 무득점으로 종료, 성운 라이온즈가 1회 말 공격에 나섰다.
임완수 - 홍현구로 이어지는 테이블 세터진은 여전히 위협적, 창원의 선발 이홍기도 국가대표에 뽑힐 만한 실력파지만 최근 라이온즈전에서 재미를 못 봤다.
특히 이인영을 상대로 13타수 10안타 홈런만 3개를 허용할 정도로 단단히 호구가 잡힌 입장, 테이블 세터 봉쇄에 총력을 기울였다.
딱~!!
“땅볼, 2루수가 잡아 1루로 송구합니다. 원 아웃, 임완수 선수는 첫 타석에서 땅볼로 물러납니다.”
“지금은 148km가 나왔네요. 이홍기 선수가 초반부터 구속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다음 타자 홍현구도 빠른 볼과 체인지업을 섞어 땅볼 처리, 대기 타석에서 몸을 풀던 이인영은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올 시즌 타율 0.359, 홈런 22개, 78타점을 올리고 있는 괴물, 모든 기록이 작년만 못하다.
그래도 13타수 10안타를 맞은 입장에선 여전히 무서운 존재, 바깥쪽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쓰기 위해 몸 쪽 승부를 택했다.
딱~!
빗맞으면서 파울, 배터리는 예정대로 바깥쪽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던졌다.
따악~!!
“밀어낸 타구가 좌중간에 떨어집니다!! 타자 주자는 1루 돌아 여유 있게 2루까지!! 들어갑니다. 이인영 선수의 2루타!! 천적관계를 다시 증명합니다!!”
“이렇게 되면 통산 상대전적 14타수 11안타네요. 이홍기 선수는 이제 이인영 선수 그림자만 봐도 흠칫할 것 같습니다.”
포수가 던져준 공을 받아든 이홍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원하는 공을 던졌는데, 저 자식은 처음부터 바깥쪽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노리고 있었다는 건가.
신기하게도 내가 결정구로 던진 공만 받아치는 자식, 뒤통수에 있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쓰였다.
따악~!!
“아아~ 악!!”
후속 타자 김상규에게 추가타를 허용하면서 실점, 이인영은 이홍기의 절규를 외면하고 유유히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이런 말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이홍기의 공은 내가 딱 치기 좋은 수준, 오늘도 최소 2안타는 깔고 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낌없이 주는 선배님, 저 또 왔습니다.’
경기는 돌고 돌아 3회 말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첫 승부에서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쓰는 패턴이 읽히자 배터리는 몸 쪽 승부를 택했다.
하지만 이홍기는 컨트롤이 아주 뛰어난 투수가 아니다.
몸 쪽 승부라고 해 봤자 스트라이크 존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것 뿐, 최근 5경기에서 홈런이 없는 굶주린 곰에겐 맛있는 한 끼 식사에 불과했다.
따아악~!!
“잡아당긴 타구가!! 우측 높게!! 그라운드를 지나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이인영 선수의 시즌 23호 홈런포!!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홈런포를 추가합니다!! 스코어 2대 0!! 타고난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통산전적 15타수 12안타네요 …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당할 수 있는 겁니까?”
양아들의 활약에 박한우 위원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타자가 잘 쳐도 특정 투수에게 이렇게 대놓고 때리기는 어렵다. 거기다 이홍기는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 그런 선수가 일방적으로 맞고 있다.
지켜보는 나도 기가 막힌데 본인은 어떨지, 1회에 격한 불만을 쏟아냈던 이홍기도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쳐라. 나도 이젠 모르겠다.’
이인영은 이날 3번 째 타석에서도 이홍기를 상대로 안타를 추가, 아낌없이 주는 선배 덕분에 시즌 타율 0.365, 홈런 23개, 80타점으로 전반기를 마무리 했다.
“저 정도면 10억 줘도 될 것 같지 않나?”
한편, 특별석에서 경기를 지켜본 김성태 회장은 차명석 단장에게 귓속말을 흘렸다.
간만에 야구장에 왔는데 아주 즐거웠던 하루, 공수에서 재주를 부린 곰에게 서비스를 베풀었다.
기자들이 알면 난리를 칠 일, 하지만 차명석 단장은 측근들 입단속에 나섰다. 정말 그 돈을 주더라도 지금은 함부로 입을 놀릴 때가 아니라고 판단, 그렇게 이인영은 아무 것도 모르고 퇴근길에 올랐다.
“형!! 오늘 멋있었어요!!”
이때 어린 팬이 친한 척을 하며 접근해 왔다. 모른 척 하면 무안해 하겠지, 내민 손이 부끄럽지 않도록 맞장구를 쳐줬다.
“나 야구할 때만 멋있는 거 아니지?”
“어 … 그게 … ”
이 타이밍에 왜 고민을 하는 건가. 무안해진 이인영은 토라진 얼굴로 돌아섰고 그제야 어린 팬은 형은 그냥 멋있다며 아부를 해줬다.
“그런데 형, 올해 홈런왕 할 수 있어요?”
“그건 왜?”
“박혁은 지금 29개 치고 있잖아요. 6개 차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 도망쳐 봤자 다 내 밥이야.”
“정말이요?”
“그래, 누가 최후의 승자인지 지켜봐라. 마지막엔 이 형이 꼭대기에 있을 거다.”
어린애 앞에서 한껏 허세를 부린 이인영은 그렇게 차에 올랐다.
정말 차이를 극복하고 홈런왕에 등극할 수 있을까, 어린 팬은 멀어지는 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