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98화 (98/309)

98화. 솔직한 사람 (12)

“자, 이제 악당이 등장할 차례 아닙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는데요.”

현지 해설위원은 심상치 않은 대화를 이어갔다.

지금 주심을 보고 있는 오웬 디커스는 미국 본토에서도 악명이 높은 심판이다.

심판이 경기에서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 사람, 그리고 그만한 실적을 거둔 적도 있다.

최근에 저지른 유명한 오심은 월드시리즈에서 나왔다.

LA와 휴스턴이 맞붙은 6차전, 3대 3 동점 상황에서 오웬 디커스는 완전히 빠지는 볼에 콜을 하면서 LA의 2사 주자 2 - 3루 기회를 날려먹었다.

“나는 브리스가 그 공을 충분히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기대를 저버린 것뿐이다.”

오심을 하고도 오히려 큰 소리를 친 건 덤,

폭발한 LA는 MLB 사무국에 정식으로 항의했지만 스트라이크 콜은 주심의 비디오 판독도 적용이 안 되는 주심의 권한이라 아무 처벌도 내려지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악당’이라는 별명이 붙은 오웬 디커스, 그런데 오늘은 너무 조용한 거 아닌가.

그래서 더 불안했다.

[스트라이크!!]

“아 … 이 공을 잡아주나요? 화면상으로는 많이 빠진 것 같은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주심도 가끔 실수는 하니까 일단 지켜보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박한우 위원은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렸다.

아까부터 주심이 일본을 밀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내 착각인가? 어쨌든 이인영은 2구를 골라내며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어느 쪽이 이기든 상관없어. 다 내 손에 움직이는 꼭두각시일 뿐이지.’

디커슨은 경기 중후반까지는 냉정하게 판정을 본다.

5~ 6회까지만 놓고 보면 다른 심판들보다 오심이 적을 정도, 그러다 경기가 팽팽해지면 자기 입맛에 따라 판정을 내린다.

자신의 판정에 발끈하며 절망하는 선수들과 떠들썩한 여론을 보며 쾌감을 얻는 인간, 나는 오늘 어느 팀에게 승리를 하사할 것인가.

마치 신이 된 것처럼 경기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따아악~!!

‘어?! 아니야!! 이건 내 계획이 아니라고!!.’

그런데 이 신의 장난질에 이인영은 거하게 깽판을 쳐버렸다.

바깥쪽 약간 높게 들어온 공을 결대로 밀어 쳐 버린 것, 생각보다 멀리 뻗은 타구는 그대로 담장을 넘어가버렸다.

신이 저울질을 하고 있는데 하찮은 인간 따위가 개입을 하다니, 디커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 일본의 텟페이 감독도 실패한 불펜 기용에 고개를 숙였다.

“됐어!!”

“역시 월드 스타!!”

반면, 경기를 뒤집은 한국 벤치는 흥분에 휩싸였다.

정말 필요한 상황에서 나온 홈런, 이인영은 타석에 들어서는 박혁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칭찬의 손찌검, 제법 따끔했지만 월드 스타는 그러려니 하는 얼굴로 생수를 들이켰다.

“자, 다시 한 번 보시죠. 바깥쪽 약간 높았는데, 이걸 들어 올렸습니다.”

“레벨 스윙을 하는 선수라 가능한 일이었죠. 이걸 억지로 들어 올리려고 했다면 헛스윙이나 뜬 공이 됐을 겁니다.”

“저는 디커슨의 장난질을 저지했다는 게 무엇보다 통쾌하네요. 그라운드의 주인공은 선수입니다. 착각하지 말라고요.”

미국 현지 중계석에서도 칭찬이 쏟아졌다.

무려 96마일짜리 빠른 볼이었는데 이걸 밀어 쳐서 넘겨버리다니, 메이저리그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초구부터 조작질을 시도한 디커슨에게 제대로 먹여준 한 방, 지난 월드시리즈에서 누구보다 분개했던 칼 존스(LA 지역 해설위원)는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괘씸한 놈들.’

한편, 승패를 두고 저울질을 하던 디커슨은 마음을 정했다.

감히 내가 계획한 게임에 찬물을 끼얹다니, 후속 타자 박혁에게 노골적으로 불리한 판정을 내렸다.

‘뭐 하자는 거야?’

2구를 지켜본 박혁은 인상을 구겼다.

KBO도 막장 심판은 많지만 그래도 매년 얼굴 보는 사이라 어지간하면 참고 넘어가는 편, 이곳에선 그런 예의를 지켜줄 필요가 없다.

그래도 일단은 최선을 다해 치는 게 우선, 낮게 들어오는 빠른 볼에 풀 스윙을 돌렸다.

[따아악~!!]

“자!! 이 타구는 멀리!! 가나요?!! 가나요?!! 계속 멀리~!! 담장 밖으로 사라집니다!!!! 그동안 잠들어 있던 박혁 선수가 여기서 깨어나는군요!! 백 투 백 홈런!!!! 대한민국이 4대 2로 점수 차를 벌립니다!!”

“박혁 선수가 KBO 최고의 배드 볼 히터 아닙니까?!! 정말 나쁜 공을 제대로 혼내 줬습니다!!”

계속되는 이변에 오웬 디커스는 멘붕에 빠졌다.

본인이 맞은 홈런도 아닌데 넋이 나간 얼굴, 연타석 홈런을 허용한 무라사메의 표정도 다르지 않았다.

더는 지켜볼 수 없는 투구, 텟페이 감독은 무라사메를 강판시켰다.

그래도 꿋꿋하게 한국을 자극하는 오웬 디커슨의 판정,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신명철 감독은 퇴장 당할 각오를 하고 면담을 요구했다.

처음엔 부드럽게 시작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돌변, 주심을 밀며 욕설을 퍼부었다.

“네가 심판이냐?!! 어?!! 심판이야?!!”

이 돌발행동에 디커슨 주심은 어깨를 움츠렸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아무리 화가 나도 선수가 주심을 직접 터치하는 일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얼굴에 대고 침을 튀기는 정도, 그런데 신명철 감독은 아니었다.

어차피 오늘 지나면 안 볼 사이, 미친개처럼 주심을 몰아세웠다.

“너 나한테 한 번 물려 볼래?!! 어디서 까불어?!! XX같은 새끼가!!”

이빨을 들이대는 위협에 퇴장 명령이 떨어졌지만 신명철 감독은 마지막까지 짖어대다 코치의 손에 이끌려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와아아~!!”

사방에서 쏟아지는 한인 팬들의 박수와 환영, 신명철 감독은 커튼콜에 응하는 선수처럼 모자를 벗어 답을 한 뒤 그라운드를 떠났다.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겨우 재개된 경기, 선수들은 마음속에 있던 말을 쏟아냈다.

“그런데 우리끼리 있으니까 좋다 야”

“그러게.”

솔직히 선수들은 신명철 감독을 어렵게 생각했다.

국가 대표 코치를 거쳐 감독까지 맡은 사람이 실력이나 지도력은 인정해야겠지만, 사람이 너무 직설적이고 거친 면이 있다.

뒤끝 있는 성격은 아니지만 어쨌든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건 분명, 장엄하게 전사하고 사라진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난 조금 아쉬운데?’

하지만 이인영은 그 주장에 동의 못했다.

작년 시즌 성운 라이온즈의 지휘봉을 잡았던 한승규 감독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팀 성적은 좋았지만 감독이라는 직책에 부합하는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좋은 평가를 주기 어렵다.

그에 비하면 신명철 감독은 훨씬 나은 편, 올 시즌 성운 라이온즈 감독은 이성한 전(前) 타격 코치로 결정됐지만, 신명철 감독도 전(前) 성운 라이온즈 수석코치였던 만큼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

지휘관이 장렬하게 전사했으니 우리가 그 뜻을 이어받아야겠지, 조금 더 독해지기로 했다.

“아? 이건 뭔가요?!! 김환희 선수가 쓰러집니다.”

“이건 아웃 줘야 됩니다!! 사람한테 태클이 들어갔잖아요!!”

경기는 흘러 8회 말, 조금씩 과열되던 경기에서 사고가 터졌다.

1루 주자 스즈키 세이무라가 2루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김환희와 충돌, 2루심은 주자에게 아웃 판정을 내렸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김환희는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선수에겐 몸이 생명,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이 위협은 참기 어려웠다.

‘그렇게 했단 말이지?’

외야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이인영은 마음속으로 칼을 갈았고, 9회 초 사건을 터뜨렸다.

일단 볼넷을 얻고 1루로 걸어 나갔고, 후속타자 박혁이 땅볼을 치자 2루로 돌진, 백업을 들어오던 스즈키 세이무라의 발목을 날려버렸다.

김환희 때와는 차원이 다른 태클의 강도, 발목이 완전 뒤틀린 세이무라는 바닥을 뒹굴며 격한 통증을 호소했다.

“어이, 이 쓰레기 치우라고, 눈에 거슬리니까.”

이인영은 항의를 하러 온 유격수 얼굴에 거친 말을 퍼부었다.

한국 벤치도 경악을 금치 못한 사건, 어쨌든 사방에서 뛰쳐나온 선수들이 한군데 뭉치면서 경기는 잠시 중단됐다.

일단 주자에게 태클을 날린 이인영은 아웃 처리, 더그아웃으로 향하면서도 일본 벤치를 향해 살기 어린 눈빛을 보냈다.

‘잘했다. 그리고 고맙다.’

김환희는 그런 후배의 어깨를 말없이 어루만졌다.

평소 버릇없이 기어오르기도 하지만 이런 면이 있으니 미워할 수가 없는 것, 내가 해야 할 복수를 이 녀석이 대신해줬으니 솔직히 고마웠다.

‘이건 뭐 … 말이 안 나오는군.’

한편, 주심 오웬 디커슨은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한국 감독만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선수들도 마찬가지, 미친 개는 피해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와아아~!!”

“우리가 이겼다!!”

경기는 흘러 준결승전은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다.

2009년 이후 무려 12년 만의 결승 진출, 그라운드로 뛰쳐나온 선수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반면, 일본 여론은 폭발, 이인영이 발목을 날린 스즈키 세이무라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본의 자랑이다.

그 보물에 이런 끔찍한 테러를 가하다니, 일본 기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국 라커룸으로 쳐들어갔다.

“혹시 일부러 그러신 겁니까?”

“기분 나쁘면 김환희 선수에게 먼저 사과하고 오시죠. 그럼 사과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초반 뿐, 당당한 말투에 기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동업자인데 그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동업자에게 태클 날린 선수에게 그 질문 똑같이 해주시죠.”

“세이무라는 메이저리거입니다. 아직 한국에서 뛰고 있는 당신에게 그런 태클을 당했으니 앞으로 선수 생활에 지장이 있을 텐데, 미안하다는 마음은 전혀 없으십니까?”

“보자보자 하니까 아까부터 무슨 개소리야? 그 자식은 발목에 금이라도 둘렀어?!!”

점차 높아지는 목소리, 이인영은 벙어리가 된 기자들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기분 X같게. XX”

“야, 그만 해라.”

보다 못한 코치가 선수를 라커룸으로 이끌었다.

더 놔뒀다간 괜히 논란만 더 커질 뿐, 대한민국 대표 팀 관계자들은 더 이상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라커룸 출입을 제한했다.

[진짜 악당이 나타났다.]

이 사건은 미국 여론도 발칵 뒤집어 놨다.

오웬 디커슨을 악당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귀여운 수준, 특히 스즈키 세이무라가 소속된 신시내티 구단이 발끈했다.

주축 선수의 발목을 아작 내다니, KBO에 정식으로 손해배상를 청구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총재는 김환희 선수가 당한 태클에 대한 정당한 보복이었다며 맞대응 했다.

[앞으로 한국 선수는 포스팅을 신청해도 절대 받아주지 않겠다]

[상관없다. 메이저리그에 신시내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점 점 유치해지는 양측의 신경전, 그리고 이 문제를 두고 MLB 사무국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WBC에서 퇴장을 당한 사유가 중대한 과실일 경우, MLB 사무국은 다음 경기 출장 징계를 내리거나 벌금까지 부과할 수 있다.

이유야 어쨌든, 이인영이 거친 플레이로 상대 선수를 다치게 한 건 사실, 하지만 역대 WBC에서 선수의 출장정지를 논한 적이 없다.

결승전까지 올라간 한국에게 이인영의 출장정지는 생각하기도 싫은 일, KBO 위원회는 사무국의 결정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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