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90화 (90/309)

90화. 솔직한 사람 (4)

“다시 빠지는 볼!! 이제 노 아웃 만루에서 박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위기를 자초하네요. 이제 짧고 굵은 안타 하나면 됩니다.”

박혁(ST 위너스)의 등장의 대만 팬들은 바짝 긴장했다.

대만을 상대로 유독 강했던 선수, 양측의 인연은 지난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부터 시작됐다.

당시 박혁은 프로 2년 차에 접어든 젊은 선수, 6회까지 0대 0으로 끌려가던 한국 대표 팀에게 리드를 안겨주는 솔로 홈런을 날렸다.

여기에 지난 2019 프리미어 12에서 한국은 대만에게 패배를 했지만 박혁은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 영봉패는 면하게 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악연, 하지만 박혁의 방망이는 대만 너머의 상대를 향하고 있었다.

‘더러워서 FA 자격 얻고 간다.’

시즌이 끝나고 박혁은 소속팀에 포스팅을 요청, 예정된 수순이라 구단도 흔쾌히 허락했다.

문제는 그 다음, 단독 협상 자격을 얻은 LA는 박혁에게 7년 5000만 달러를 제시했다.

얼핏 보면 좋은 계약 같지만 보장금액은 2400만 달러 뿐, 나머지는 옵션으로 덕지덕지 붙인 불평등조약이었다.

‘너 우리 아니면 갈 곳도 없잖아?’

LA는 올 거면 오고 말라면 말라는 고자세를 취했다.

LA가 단독협상권을 얻어냈기 때문에 박혁은 계약을 받아들이거나 한국으로 유턴하는 수밖에 없는 신세, 메이저리그 진출은 박혁의 평생 꿈이었다.

하지만 이런 불공정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에 가봤자 어떤 대우를 받을지 뻔 하지 않은가.

실제로 LA는 이런 식으로 일본에서 투수를 업어 온 적이 있고, 이번에도 통할 거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계약 안 해 이 도둑놈들아.”

화가 머리끝까지 난 박혁은 국내 복귀를 택했다.

그제야 아차 한 LA는 재협상을 요구했지만, 박혁은 버스 이미 떠났다며 뒤돌아섰다.

이럴 거면 포스팅 신청을 왜 한 건가? 더러워서 FA 자격 얻고 나가면 그만, 여기에 기자들 앞에서 앞으로 LA와는 협상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이번 WBC 출전은 내년에 재도전할 MLB 진출을 위한 무력시위, 대만 따위에 발목 잡힐 시간은 없었다.

따악~!!

“잡아당긴 타구가!! 좌중간에 떨어집니다!! 전인규 선수는 홈으로!! 김환희 선수도 3루를 지나 홈까지 내달립니다!! 박혁 선수의 적시타!! 한국이 2대 0으로 앞서나갑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옵니다. 다시 말씀드리는데 한국과 대만의 통산 전적은 16승 4패입니다. 균형을 맞추려면 아직도 멀었어요.”

한국이 기세를 잡자 박한우 위원은 가슴에 담아둔 말을 쏟아냈다.

언제부터 대만이 우리의 천적이었나.

통산 우리에게 16번이나 패배한 나라, 양아들 말대로 이번에 완전히 짓밟아서 한국의 무서움을 깨닫게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쨌든 한국은 1회 초 공격에서 대거 4점을 뽑아내며 앞서나갔고, 대만 타선은 이홍기의 호투에 막혀 2회까지 한 명도 1루를 밟지 못했다.

‘나 또 왔다. 이번엔 피하지 말라고’

2회 말 계속되는 한국의 맹공, 1사 주자 1루에서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섰다.

대만의 바뀐 투수 린즈창은 포수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긴장된 표정, 초구를 던졌지만 이번에도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지 못했다.

“자, 대만 투수들이 좀처럼 들어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있으니까요. 작년 시즌 KBO 타자들이 초구에 방망이가 나간 건 27%에 불과했지만 타율은 0.337였습니다. 이인영 선수는 초구 스윙이 28%로 리그 평균과 비슷했지만 타율은 0.414, 초구에 강했어요. 장타율도 0.714를 기록했습니다.”

“초구 홈런도 9개가 있었죠. 여기서 맞으면 6대 0이거든요. 대만의 어느 투수가 올라와도 들어가긴 어렵습니다.”

카운트가 투 볼이 되자 야유는 점 점 거세졌다.

미국보다는 아시아에서 훨씬 인기가 많은 WBC, 그걸 알고 있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대만에 많은 편의를 제공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거의 다 해먹던 구조에서 벗어나 대만 기업이 예선전 스폰서를 책임지고 수익도 균등하게 배분하기로 한 것, 여기에 본선무대는 캘리포니아에서 치르기로 했다.

원래는 마이애미에서 하기로 했지만 이곳은 도미니카와 푸에르토리코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실제로 도미니카가 우승, 푸에르토리코가 준우승을 차지한 2013 WBC 기간 동안, 마이애미 일대는 양 팀 팬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흥행 면에서는 울상, 개최국 입장에선 아시아권 팀이 올라오는 게 더 좋다.

세계화니 뭐니 떠들어대고 있지만 결국 다 돈 벌자고 하는 짓 아닌가,

사무국이 본선 무대를 캘리포니아로 옮긴 것도 그런 이유, 이것 때문에 남미 쪽 팀들은 사무국이 돈에 미쳤다고 반발했다.

그런 욕까지 받아가며 캘리포니아에서 치르게 된 본선경기, 그만큼 세계 야구팬들의 관심은 이 경기에 쏠려 있다.

그런데 이런 수준 낮은 경기를 하고 있으니, 대만 팬들 입장에선 화가 나는 게 당연했다.

[따악~!!]

“와아아~!!!!”

한편, 이인영의 장타가 터져 나오자 중국 대륙은 환호로 뒤흔들렸다.

대만은 하나의 중화를 표하는 중국이 통합을 노리는 나라, 중국 입장에선 그 땅에서 WBC 예선전을 개최하고 대만 기업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미국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그래서 이번 WBC에서 중국은 물론 홍콩까지 발을 뺐지만, 사무국은 무시하고 대회를 강행했다.

단순한 야구대회가 아니라 정치적 기싸움이 걸린 경기, 대만이 흔들릴수록 한국을 응원하는 중국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今天天气不错吧?”

= 오늘 날씨 좋지?

2루를 밟은 이인영은 태연한 표정으로 2루수에게 말을 걸었다.

상대 팀을 도발할 때 자주 쓰는 말, 중국어는 전혀 모르지만 이런 상황을 대비해 이 말만큼은 질리도록 연습했다.

할 말은 많은 것 같은데 입을 다무는 대만 선수, 이인영은 피식 웃으며 2루에서 멀어졌다.

따악~!!

“자!! 여기서 다시 한 번 좌중간을 가릅니다!!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타자 주자는 2루까지 진출합니다!! 스코어 6대 0!! 대한민국이 점 점 더 리드를 벌리고 있습니다.”

“박혁 선수는 오늘 혼자서 3타점이네요. 역시 대만에 강점이 있습니다.”

3회가 끝났을 때 스코어는 9대 0까지 벌어졌다.

대만에겐 꿈도 희망도 없는 흐름, 신명철 감독은 콜드 게임으로 끝내버리자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그리고 진짜 그렇게 해 버린 한국 선수들, 5회 말, 스코어가 12대 0으로 벌어지자 주심은 콜드 게임을 선언했다.

1년 전 프리미어12에서 당한 굴욕을 배로 갚아준 경기, 선수들은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승리를 자축했다.

오늘의 MVP는 선취점이 되는 2타점 적시타 그리고 대만의 기세를 완전히 꺾는 추가타를 날린 박혁, 인터뷰 준비가 끝나자 리포터는 마이크를 붙잡았다.

“오늘 3타점을 올린 박혁 선수와 인터뷰를 나눠보겠습니다. 오늘도 대만 킬러라는 걸 입증하셨는데요. 어떤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셨나요?”

“어… 메이저리그 진출이 무산된 후, 한동안 운동만 하면서 지냈습니다. 이번 대회를 위해서였죠. 이번 대만전은 더 먼 곳으로 가기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미국 본토에서 한 방 먹여줄 생각이신 건가요?”

“훗~ 그렇게 너무 노골적으로 답하진 마세요.”

이때 뒤로 돌아간 이인영이 박혁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송사고, PD와 리포터는 당황했지만 어깨를 치고 지나간 의미를 알고 있는 박혁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저 선수에 대한 질문도 하나 해주시죠.”

“아… 이번 대회에서 이인영 선수와 중심타선을 이루게 되셨잖아요? 이번 한국 대표 팀은 역대 최강 타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인영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이인영 선수는 제 메이저리그 진출이 무산된 걸 은근 기뻐하더라고요.”

“기뻐했다고요?”

“네, 아직 결판 못 냈으니까 이번 시즌에 제대로 붙어보자고… ”

작년 시즌, 박혁은 부상을 당하면서 한 달 가까이를 결장했다.

그러고도 30홈런을 넘긴 시즌, 제대로 붙어보면 누가 더 좋은 성적을 거둘까.

라이벌이 있어야 성적도 따라오는 법, 이인영은 기왕 이렇게 된 거 나와 결판부터 짓자며 도전장을 건넸다.

메이저리그 진출이 무산된 선수에겐 대부분 위로의 말을 건네는데 그 자식은 반대, 솔직히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박혁은 도전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래, 너부터 손봐주고 간다.’

역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에 국내 최고가 되는 게 우선이겠지.

이인영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박혁이 KBO 최고의 타자라는 의견에 딴지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어디서 툭 튀어나온 자식이 4할에 55홈런을 쳐 버리더니 한국 최고의 타자로 등극, 이대로 메이저리그로 가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닌가.

붙어보자고 서로 약속은 했지만, 여론에 공식적으로 선포하진 않았다.

그걸 잊지 말라고 눈치를 주고 간 녀석, 이제 대결은 물릴 수 없게 됐다.

어쨌든 기분 좋게 끝난 대표 팀의 예선전 첫 경기, 다음 날, 한국 대표 팀은 호주와의 경기를 대비해 만전을 기했다.

“재들 뭐냐?”

“중국 애들 같은데?”

그런데 연습장에 구름처럼 몰려온 중국 기자들, 대회는 참가 안 하면서 기자들은 파견한 건가? 한국 선수들은 그러려니 하며 훈련에 집중했다.

“저한테 묻고 싶은 게 있다고요?”

“네”

훈련이 끝난 후, 이인영은 기자들의 질문 요청을 받았다.

무슨 질문을 할지 대략 알겠는데 대놓고 무시하는 건 결례, 일단 만나 보기로 했다.

“당신은 이제 중국의 인기인입니다. 앞으로도 중국을 위해 활약해 주실 겁니까?”

통역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이인영은 입꼬리를 슬쩍 들어올렸다.

뭐 이런 멍청한 질문이 있는지, 통역에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무슨 헛소리를 이렇게 창조적으로 하시나요?”

내가 중국인도 아닌데 왜 중국을 위해 뛰어야 하나,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이 대만의 패배에 열광한 건 저도 압니다. 그런데 제가 중국인도 아니고 왜 그런 질문을 하시나요? 중국엔 대만을 꺾을 야구팀이 없나요?”

WBC엔 나오지도 않았으면서 한국 대표 팀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다니, 그것 까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거기서 중국을 위해서라는 말이 나오나?

그렇게 대만을 이기고 싶으면 그만한 전력을 갖춘 야구팀을 키우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인터뷰 그만 하겠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할 말 다하고 현장에서 멀어지는 슈퍼스타, 이 소식에 한국 야구팬들은 쾌재를 불렀다.

[역시 할 말은 하는 남자, 멋져부러]

[한국은 중국과 엄연히 다른 국가다. 아직도 우리를 중국의 일부로 생각하는 건방진 놈들]

[너무 통쾌하다. 중국 눈치만 보는 정치인들보다 100배, 아니 1000배는 낫네]

-> 이인영을 국회로!!

-> 공익 광고 하나 찍자, 주제는 소신과 격식이 있는 대한민국

-> 진짜 하나 찍자. 세금은 이런데 쓰라고 있는 거다.

이인영은 이 사건으로 자신을 좋게 보지 않는 팬들의 마음까지 돌렸다.

이제는 호불호가 없는 인기, 그러건 말건 슈퍼스타는 야구에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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