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72화 (72/309)

72화. 언젠간 다가갈 그 날 (2)

따악 ~ !!

“밀어 친 타구가!! 유격수 옆을 빠져 나갑니다!! 이인영 선수의 안타!! 성운 라이온즈가 무사 주자 1 - 2루 기회를 맞이합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김성수 감독은 박혁 선수를 3루수로 기용했어야 합니다.”

박한우 위원은 ST 위너스의 선수기용 방식을 지적했다.

ST 위너스의 주전 유격수 박혁은 KBO에서 보기 드문 공격형 유격수, 얼마 전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한 임선우에게 메이저리그에 진출해도 된다는 평가를 받은 만큼, 상당한 재능을 지닌 선수다.

문제는 매년 공격력이 상승하면서 수비 지표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

올 시즌만 따져보면 박혁은 유격수에서 UZR - 10.4로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에 비해 3루수에선 + 0.4로 그럭저럭 괜찮았던 편, 표본이 작아 3루수가 제자리라고 속단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팀의 주포인 만큼 유격수를 보게 하는 건 아니라는 평가를 내렸다.

“말이 나와서 말씀인데, 박한우 위원님은 박혁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재능은 이미 KBO를 넘어선 선수입니다. 다만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는 팀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박혁 선수는 수비도 괜찮은 편 아닙니까? 실제로 스카우터들의 평가도 좋은 편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 ”

“수비보다는 공격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건 현대야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철칙입니다.”

야구에서 수비가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팀에서 바라보는 시선, 선수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수비보다 공격력이 뛰어난 게 좋다.

예를 들어 수비만 좋은 선수와 공격력만 좋은 선수가 있다면, 감독은 어느 선수를 주전으로 기용하겠는가.

■ 야수 평균 성적(타/출/장) : 0.254/.319/.395

■ 포수 평균 성적(타/출/장) : 0.245/.310/.383

메이저리그의 추세만 봐도 알 수 있는 게, 포수가 공격력이 약하다는 개념은 구시대적이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볼 배합이나 작전은 코칭스태프가 전담하고 포수는 포구와 공격에만 신경 쓴다.

수비보다 공격력이 좋은 선수들이 기용 됐을 때 이기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게 통계적으로 증명됐기 때문, 당연히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도 공격을 위주로 선수들을 평가한다.

수비는 훗날 노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지만 공격력은 그게 아니라는 게 문제, 솔직히 타격은 어느 정도 타고 난다.

박혁이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으려면 수비보다 공격에서 뭔가를 보여 줘야한다는 뜻, 이명한 캐스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박한우 위원님은 감독 생활하시기 전 해외연수도 다녀오신 걸로 아는데, 박혁 선수 다음은 어떤 선수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까요?”

“지금 보이네요. 이 선수를 그냥 둘 리가 없죠.”

마침 중계카메라는 안타를 치고 나간 이인영을 비췄다.

공격을 중시하는 현대야구에서 이인영은 거부할 수 없는 선수, 포지션이 외야수지만 그렇다고 쳐도 매력적인 카드라는 건 분명했다.

“박한우 위원님은 이인영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있다면 어느 정도 활약을 예상하십니까?”

“그건 조만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겠죠. 2021 WBC가 코앞이니까요.”

“그래도 개인적인 예상을 해주신다면 … ”

“유혹하지 마세요. 가뜩이나 양아들 편애한다고 욕먹고 있으니까요.”

중계석에서 농담이 오가는 동안 현장에선 약간 소란이 일어났다.

주심이 사인 교환이 길어지는 배터리에게 경고를 준 것, 경기 속도 향상을 위해 올해부터 적용된 규정이지만 현장관계자들은 시즌 내내 불만을 표했다.

‘뭘 어쩌라는 거야?’

볼 배합 논의는 배터리가 독점하는 게 아니다.

경기 전 코칭스태프와 협의를 해서 개요를 짜고, 그게 안 통하면 다시 코치가 배터리에게 사인을 준다.

선수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ST 위너스 벤치가 택한 방식, 그런데 사인 교환이 언제나 척척 이뤄지는 게 아니지 않는가.

가끔은 미스가 나고 시간이 걸리는데, KBO 관계자들은 현장관계자들의 이런 고충은 생각도 안 하고 무조건 경기 시간만 줄이려고 한다.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

이게 정말 팬들이 원하는 야구인가. 적어도 ST 위너스 선수단은 동의하지 못했다.

따악 ~ !!

설상가상 에이스 김성현은 3연속 안타를 내주며 흔들렸다.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선취점은 성운 라이온즈의 몫, 김성현은 한 점을 더 주고 나서야 1회를 마무리 했다.

‘고자질하기 전에 얼른 들어가야지.’

김성현은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개선장군처럼 전력을 다해 더그아웃으로 질주했다.

ST 위너스의 서범윤 포수는 그날 선발투수의 컨디션을 바로바로 코치에게 전달하는 편, 이게 틀리다곤 할 수 없는데 투수 입장에선 괜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투수 컨디션은 코치가 판단하는데 왜 본인이 끼어드는 건가. 문제는 투수에게 있을 뿐, 내게는 책임이 없다는 걸 어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야, 그 자식이 고자질하더라.”

“정말이냐?”

3루수 박세경에게 이 사실을 전해들은 김성현은 그날부터 이닝을 마치면 전력으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먼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면 서범윤도 내 눈치를 보느라 코치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할 거 아닌가.

실제로 그날부터 줄어든 고자질, 괜한 소리 못하도록 입단속에 나섰다.

‘잘 하는 짓이다 … ’

한편, 박혁은 그 모습을 보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투수를 리드해야 포수가 코치에게 고자질을 하고 있으니, 투수가 어떻게 포수를 믿고 투구를 하겠나. 포수라면 자기가 욕을 먹더라도 감수할 줄 알아야 하는데, 서범윤은 그런 점이 너무 아쉬웠다.

‘정신 차리자. 올해가 마지막 기회다.’

동료를 흉보는 것도 잠시, 박혁은 경기에 집중했다.

시즌이 끝나면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예정, 올해가 아니면 팬들에게 우승을 선물할 기회가 없다.

베어스에게 막혀 준우승에 머문 것만 2번,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는 각오를 되새기며 타석에 들어섰다.

“자, 박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62, 홈런 36개, 88타점을 기록했습니다.”

“놀라운 건 이게 부상으로 한 달을 통째로 날리고 거둔 성적이라는 거죠. 올림픽까지 끼면서 올 시즌 107경기 밖에 출장하지 못했는데, 어쨌든 박혁이라는 이름값은 채워준 시즌이었습니다.”

박혁은 올 시즌 부상을 당하면서 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정상 컨디션으로 대표 팀에 합류했다면 한국은 보다 여유 있게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겠지.

만 19세 때 재능을 인정받아 주전으로 활약한 천재선수, 지금의 이인영처럼 박혁은 신인 때부터 KBO에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다만 아직까지 무관의 제왕으로 남아 있다는 게 흠, 우승 외엔 다 이뤄본 선수라 타석에 임하는 각오는 남달랐다.

‘빠른 공은 피해라'

성운 라이온즈 벤치는 배터리에 변화구 위주의 볼 배합을 주문했다.

올 시즌 빠른 볼 타율이 0.422나 되는 상대, 하지만 변화구를 예상하고 있던 박혁은 떨어지는 공을 잡아당기는 타격을 보여줬다.

따아악 ~ !!

“어!! 이 타구는 멀리 가는데요?!! 좌익수는 계속 뒤로!! 뒤로!! 담장을 ~ 넘어 갑니다!!!! 박혁 선수의 솔로 홈런!! ST 위너스가 추격을 개시합니다!! 스코어 2대 1!! 바로 한 점을 만회합니다!!”

“조금만 늦게 태어났다면 이인영 선수와 KBO에서 좋은 라이벌 구도를 맺었을 텐데 … 어쨌든 조금 더 앞서 가게 됐습니다.”

박혁의 홈런에 이인영은 약간 자극을 받았다.

이인영은 정교한 눈 야구로 볼넷을 많이 얻어내는 편이지만, 박혁은 적극적인 스윙으로 많은 안타를 생산하는 스타일, 타격 접근법은 달라도 고타율과 많은 홈런을 기록한다는 건 공통점이다.

시즌 홈런은 55대 36로 비교 불가능한 수준이지만 박혁도 부상 없이 풀 시즌을 치렀다면 40개는 거뜬히 넘겼을 선수,

태어난 시기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라이벌로 여겨도 좋은 선수, 다음 타석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쳐야겠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그렇게 경기는 흘러 3회 초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9번 임재경 - 1번 임완수가 모두 범타로 물러나면서 이인영은 주자 없이 타석에 들어섰다.

‘빠른 볼 주지 마라.’

ST 위너스 벤치는 1회와 비슷한 볼 배합을 밀고 갔다.

올 시즌 투수들은 이인영을 상대로 빠른 볼은 44% 밖에 주지 않았다. 그런데 55홈런을 때려버린 괴물, 이걸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볼넷을 주더라도 장타를 억제하는 수밖에, 투 아웃에 주자도 없는 상황이라 무리한 승부는 하지 않았다.

“다시 골라냅니다. 카운트는 투 볼 원 스트라이크”

“이인영 선수가 역시 변화구는 잘 안 건드립니다. 패스트볼에 워낙 강점이 있기 때문에, 변화구는 골라내기만 해도 괜찮거든요. 올 시즌 출루율 5할을 넘긴 게 우연이 아닙니다.”

칭찬이 나오기 무섭게 이인영은 커브에 반응했다.

평소라면 그냥 지켜봤을 공, 카운트가 투 볼 투 스트라이크가 되자 ST 위너스 배터리는 슬쩍 욕심을 부렸다.

주자도 없고 투 아웃, 타자 입장에선 욕심 부려 봐도 괜찮은 상황 아닌가. 하지만 무리수는 금물, 예정대로 커브를 택했다.

딱 ~ !

다시 파울, 걸어 나가는 것도 싫다는 건가. 서범윤 포수는 얌전히 보내줄 테니 그냥 가라고 건드려봤지만 반응은 없었다.

‘또 변화구?’

서범윤은 코치의 지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계속 반응을 하는데 또 던져도 되는 건가. 하지만 볼 배합은 코치가 정할 일, 일이 틀어져도 본인이 책임질 일은 없으니 실행에 옮겼다.

따아악 ~ !!

“어?!! 이 타구는!! 좌측으로 높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이인영 선수의 솔로 홈런!!!! 성운 라이온즈가 다시 3대 1로 달아납니다!!!!”

“하하 ~ 제 말을 들었나요? 보란 듯이 변화구를 걷어 올리네요.”

홈런을 허용한 김성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투구 폼 때문에 약간 솟아오르는 듯한 궤적을 그리는 커브, 이걸 어퍼로 걷어 올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걸 해 버리는 자식, 김성현은 글러브에 얼굴을 박고 뭐 저런 자식이 다 있냐며 육두문자를 중얼거렸다.

‘한번 해보자는 거냐?’

박혁은 2루를 통과하는 애송이에게 눈빛을 보냈다.

인정하긴 싫지만 올해만 놓고 보면 나보다 나았던 녀석, 하지만 인천 팬들에게 우승을 안겨주는 것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이 변태 같은 자식!!“

한편, 성운 라이온즈 선수단은 홈런을 날리고 온 슈퍼스타를 격하게 환대했다.

어떤 식으로든 상대팀을 괴롭히는 녀석, 안타를 못 치면 볼넷을 얻어내고 홈런을 못 치면 주루 플레이로 배터리를 몰아세우는데, 이게 고문을 좋아하는 변태가 아니면 뭔가.

하지만 이인영은 시큰둥한 얼굴로 생수를 들이킬 뿐,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변태? 내게는 역병이라는 말이 더 어울려.’

솔직히 변태보다 역병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

박혁의 홈런에 잠시나마 고무 됐던 인천 팬들, 하지만 이 한방으로 다들 잠잠해 졌다.

관중석을 공포로 전염시키는 역병 같은 존재, 멋있는 별명으로 불릴 게 아니라면 좀 더 포악한 존재로 각인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도 답을 해 줘야지.’

이어지는 3회 말 ST 위너스의 반격, 타석에 선 박혁은 초구부터 거친 스윙을 돌렸다.

농구에서도 3점 슛은 3점으로 갚아주지 않는가.

홈런은 홈런으로 갚아주는 법, 하지만 첫 승부에서 홈런을 허용한 존 워커는 신중한 승부를 택했다.

3대 1로 앞서고 있으니 굳이 좋은 공 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 코치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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