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좋은 긴장감 (9)
임완수 손을 거친 공은 바로 1루로 전달됐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너무 치우친 송구, 1루수 김상규는 경로를 이탈하는 녀석을 몸을 날려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저 오늘은 가출하고 싶네요.’
출발부터 반항기가 짙었던 송구 궤적, 그 사이 타자 주자는 1루를 지나 2루까지 진출했다.
임완수는 미안하다는 뜻을 표했고 동료들은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 하지만 박한우 위원은 잘잘못을 분명히 따지고 들었다.
“지금 임완수 선수의 스텝을 보세요. 유격수는 베이스 커버를 들어오는 방향과 송구 방향이 일치하지만, 2루수는 그게 아니거든요. 저렇게 일직선으로 베이스 커버를 들어오면 당연히 송구할 때 역동작이 걸릴 수밖에 없죠.”
“그럼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스텝을 밟아야 하는 겁니까?”
“2루 베이스 우측으로 완만하게 곡선을 그리듯이 스텝을 밟아야 합니다. 본인도 지금 뭐가 잘못됐는지 알 겁니다.”
박한우 위원의 지적대로 임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일직선 행진, 몸의 중심이 3루 쪽으로 쏠려 있는데 어떻게 1루 송구가 제대로 되겠나.
완만하게 커브를 그리며 들어갔어야 했는데 시작부터 어긋난 스텝,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 막상 공이 오면 급해져서 선수도 모르게 일직선 스텝을 밟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수없이 연습을 했는데도 실책을 저지르다니, 속이 상했는지 괜히 먼 곳을 응시하기도 했다.
‘제발 나한테는 오지 마라.’
마음의 짐이 컸는지 임완수는 책임을 동료들에게 떠넘겼다.
프로라도 이렇게 스텝이 한 번 꼬이면 공이 왔을 때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든다. 이럴 땐 동료에게 의지하는 것도 방법, 다음 타구는 좌익수와 유격수 사이로 날아갔다.
“오지 마!! 오지 마!!”
어쩌자고 계속 백 스텝을 밟는 유격수, 정면에서 달려오던 이인영은 타구를 캐치했지만 유격수와 충돌하면서 공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아 ~ 내가 오지 말라고 했는데!!’
이인영은 그대로 돌아서며 속으로 불만을 삭였다.
부상으로 이탈한 홍현구가 유격수를 보고 있었다면 알아서 빠져 줬을 텐데, 하지만 지난 경기부터 유격수를 보고 있는 권수혁은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
거기다 눈치 없는 기록원은 이걸 좌익수 에러로 처리, 이렇게 석연치 않은 수비가 연달아 나오면서 성운 라이온즈는 1사 주자 1 - 2루 위기에 몰렸다.
따악 ~ !!
“이번에는 좌중간을 완전히 가릅니다!! 2루 주자는 2루를 돌아 홈으로!! 1루 주자도 2루를 지나 3루까지 진출합니다!! 진상우 선수의 적시타!! 타이거스가 한 점 따라 붙습니다!!”
“그러니까 수비가 이렇게 중요한 겁니다. 타이거스가 지난 2 ~ 3차 전에서 내야 수비가 흔들리면서 끌려가는 경기를 않았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라이온즈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네요.”
박한우 위원은 계속해서 아쉬웠던 수비를 지적했다.
편파 해설이라고 욕을 많이 먹었는데 의외로 중립적인 해설, 중계차에 있던 PD도 실시간으로 팬들의 반응을 살폈다.
[뭐라고 하니까 이제야 중립적으로 하네.]
-> 언제부터 편파해설을 했다고?
[양아들들이 부진하니 해설할 맛 안 나겠네. 이인영도 이번 시리즈에서 홈런 하나 못 쳤잖아.]
-> 여기서 뜬금없이 이인영이 왜 나옴? 불평 많은 꼰대들은 얌전히 중계나 봐라. 댓글 창 더럽히지 말고
-> 언론통제 좀 해야 된다. 이런 쓰레기들 걸러낼 때가 됐어
[PD 똑바로 일 해라. 지금 해설위원 조합은 대놓고 성운 라이온즈 밀어주는 거다]
->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데 해설위원이 무슨 상관이니?
예나 지금이나 조용할 날이 없는 댓글 창, 그냥 무시해도 되지만 PD라는 사람이 팬들 반응을 무시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일일이 신경 쓰는 것도 정신 건강에 안 좋은 일, 들을 건 듣고 가릴 건 흘려보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마침 공수교대, PD는 뜬금없는 공익광고에 인상을 구겼다.
정부에서 공익광고 비율을 높이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데, 프로야구 중계 중 이런 광고가 웬 말인가.
안 넣겠다는 건 아닌데 꼭 7 ~ 8시에 사이에 넣으라고 간섭, 그렇다고 빼버리면 과태료를 물려버린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팬들은 광고배치 진짜 이상하다며 방송국 놈들의 센스를 지적, 기분이 상한 PD는 댓글 창을 닫아버렸다.
[너무 커서 한 입에 다 안 들어가요]
마지막을 장식하는 과자 광고, 중계화면은 성운 라이온즈 더그아웃으로 바뀌었다.
막간을 이용해 허기를 채우는 선수들, 이때 중계카메라가 이인영의 얼굴을 클로즈 업 했다.
분명 너무 커서 한 입에 다 안 들어간다고 광고를 했는데 입속으로 사라져 버린 과자,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이 또 있을까.
과대광고를 지적한 명장면, 방금 전까지 PD의 센스를 지적했던 팬들은 폭소했다.
물론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이인영은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먼 곳을 응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단맛이 맴도는 입안을 생수로 씻어냈다.
“자, 이제 경기는 성운 라이온즈의 2회 초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타석에는 이현두 선수, 이번 시리즈에서 타율 0.142, 7타수 1안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운 라이온즈가 올 시즌 팀 득점 3위를 기록했지만, 하위 타순 생산력은 전체 7위에 그쳤거든요. 상위 타순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홍현구 선수가 부상으로 이탈했기 때문에 하위 타선이 조금 더 힘을 내 줘야 합니다.”
따악 ~ !!
“말씀 드리는 사이 우중간으로 날아가는 타구!! 우익수 앞에 떨어집니다!! 선두 타자 출루!! 성운 라이온즈가 추가점 기회를 맞이합니다!!”
“바깥쪽을 요구했는데 한 가운데로 몰렸죠. 적극적인 타격이 좋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타이거스 배터리는 후속타자 장수재에게 승부를 걸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내야수비는 라이온즈보다 한 수 위, 이번 시리즈에서도 병살타만 5개를 유도하며 무수한 위기를 넘겼다.
여차하면 병살 작전으로 갈 생각, 그 속셈을 알고 있는 라이온즈 벤치도 장수재에게 번트 사인을 보냈다.
딱 ~ !
얄미울 정도로 속도를 잘 죽인 타구, 1사 주자 2루가 되면서 타이거스 벤치는 잔뜩 긴장했다.
다음 타자는 9번 임재경, 존재감은 없지만 지난 경기에서 주루방해를 이끌어내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임재경까지 살아나가면 임완수 - 이인영 - 김상규로 이어지는 중심 타선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 타이거스 배터리는 승부를 걸었다.
따악 ~ !!
“아자 ~ !!!!”
임재경은 기다렸다는 듯이 초구를 받아쳤다. 내야를 빠져나가는 타구, 2루 주자 이현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스코어는 3대 1이 됐다.
여기에 임완수가 볼넷으로 걸어 나가면서 1사 주자 1 - 2루, 가장 무서운 녀석이 타석에 들어섰다.
‘이거 못 잡으면 진다.’
타이거스의 이상재 감독대행은 선발을 내리고 좌완 임수경을 투입했다.
이렇게 되면 좌타인 이인영은 밀어치는 타격에 초점을 맞추겠지, 좌측으로 수비진을 집중시키는 모험을 택했다.
‘설마 초구부터 치진 않겠지.’
조익현 포수는 곁눈질로 상대를 살폈다.
이인영은 첫 타석에서 바깥쪽 공을 밀어 쳤다가 평범한 뜬 공으로 물러났다. 지금 타이거스 배터리가 노리는 건 1회의 반복, 타자도 그걸 알고 있을 거다.
팀이 3대 1로 앞서고 있지만 여기서 찬스를 살려줘야 한다는 부담도 있겠지, 초구부터 배트가 나오진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따아악 ~ !!
“잡아당긴 타구가!! 우측!! 높게!!!! 담장을 넘어 갑니다아 ~ !!!! 이인영 선수의 쓰리 런 홈런!!!! 2루 주자!! 1루 주자!! 그리고 본인도 홈으로 불러들입니다!!!! 스코어 6대 1!!!! 이번 준 플레이오프 첫 홈런이 여기서 터져 나옵니다!!!!”
“대단하다는 말 외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지금은 바깥쪽으로 잘 붙였는데, 잘못하면 타이밍이 뒤로 밀릴 수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특유의 배트스피드로 오히려 공을 끌어당겼어요.”
“투수가 뭘 던질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이걸 결과로 만들어 내는 건 별개의 일이거든요. 상상을 현실로 이뤄내는 선수입니다.”
박한우 위원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썰도 풀어냈다.
오늘은 한 방 때릴 거라고 했는데 진짜로 날려버릴 줄이야, 그것도 팀을 플레이오프로 인도하는 결정적인 한 방, 광주까지 달려온 라이온즈 팬들은 슈퍼스타를 연호하며 7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 샴페인을 터뜨렸다.
“업혀!! 업혀!!”
한편, 임완수는 이인영에게 등을 내밀었다.
경기 전, 이인영은 임완수에게 선배님이 날 업고 뛰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진짜 업으라는 게 아니라 중심 타선을 잘 이끌어 달라는 뜻으로 한 말, 하지만 흥분한 임완수는 자기보다 더 큰 덩치를 업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 ~ 그냥 가세요 좀”
“얼른 업히라니까!!”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선배, 이인영은 눈치를 살피다 선배 등 위에 올라탔다.
작년에 비해 살이 빠졌다고 해도 슈퍼스타는 190에 95kg이나 되는 덩치를 보유했다.
174cm에 80kg이 못 되는 선수가 이런 괴물을 업겠다니, 그런데 임완수는 이인영을 업고 더그아웃까지 돌진하는 진기명기를 선보였다.
덩치는 작아도 역시 운동선수라는 건가. 누군가에게 업혀본 건 초등학생 이후 처음, 신이 난 이인영은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팬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아저씨, 이대로 서울까지 가주세요. 승차감은 버스보다 낫네.”
이젠 선배를 아예 택시 취급, 하지만 더는 못 뛰겠는지 임완수는 승차를 거부했다.
어쨌든 이 한방으로 성운 라이온즈는 서울 행 티켓을 확정, 4차전에서 9대 2 완승을 거두면서 6년 만에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됐다.
결정적인 홈런을 날린 이인영은 수훈선수에 선정, 인터뷰를 앞둔 리포터는 나름대로 정리한 질문을 재확인했다.
전에 언론 통제를 당했으니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안 되겠지, 준비가 끝나자 이제 시작하라는 사인이 떨어졌다.
“오늘의 수훈선수로 선정된 성운 라이온즈의 이인영 선수를 만나보겠습니다. 이인영 선수, 일단 포스트 시즌 진출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첫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났던 코스의 공을 잡아당겨 홈런을 치셨는데, 처음부터 노리셨던 건가요?”
“글쎄요. 노렸다기보다는 잡아야 할 공을 놓치지 않았을 뿐입니다.”
“오늘 박한우 위원님께서 이인영 선수가 경기 전에 홈런을 예고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사실인가요?”
“음 … 솔직히 진짜 칠 줄은 몰랐는데요. 어쨌든 나왔으니까 예고 홈런이라고 해두죠 뭐”
너무 솔직한 인터뷰, 팬들의 관심은 다음 질문에 집중됐다.
“큰 무대를 치르고 계신데 긴장감이나 이런 건 없으신가요?”
“글쎄요. 그게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선수에게 할 질문인가요?”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딴 선수에게 긴장 되냐고 묻는 게 맞는 건가.
또 시작된 언론 통제, 리포터는 무안한 표정을 지었고 이인영은 그 입장을 생각해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긴장감은 양날의 검입니다. 적당히 안고 가면 경기력 도움이 되지만, 너무 억눌리면 자기 기량을 못 끌어내죠. 사람들 앞이라고 큰 무대 위에 섰다고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인영은 용기를 가지라며 리포터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프로라고 긴장을 안 하는 게 아니다. 그걸 어떻게 활용할 줄 아느냐에 따라 베테랑과 루키의 차이가 갈리는 것 뿐, 당신도 언젠가는 그런 경지에 올라설 거라며 용기를 불어 넣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