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좋은 긴장감 (8)
[편파해설 도 넘었다.]
3차전이 끝나고 타이거스 팬들은 박한우 위원을 집중 공격했다.
전 성운 라이온즈 감독이자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니 그 쪽으로 마음이 쏠릴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타이거스의 주축선수인 진상우를 두고 이런 저런 말을 쏟아낸 건 도에 지나치다는 반응과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대치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멍청이들아.]
이때 한 팬이 다른 의견을 앞세웠다.
박한우는 타자출신, 당연히 해설도 타자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균형을 맞추도록 투수 출신 해설위원을 투입하는 게 PD가 할 일인데, 방송국은 박한우 위원과 성향이 비슷한 이상명 위원을 투입했다.
이러니 두 위원의 해설이 합쳐지며 편파해설이 돼 버린 것, 해설위원들은 각자의 특색을 드러낸 것 뿐, 문제는 이런 분위기를 주도한 PD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 누구도 타이거스의 승리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
문제를 제기한 팬은 방송국이 이인영과 소속 팀인 라이온즈를 은근 밀어주고 있는 것 같다며 푸념했다.
해설도 그렇고 심판들의 판정도 라이온즈 쪽으로 너무 유리하게 흘러간다는 주장, 하지만 심판 위원회는 의도적인 밀어주기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방송국 입장도 마찬가지, 박한우와 이상명은 예전부터 자주 콤비를 이뤄왔다.
그 전엔 논란이 없었는데 왜 이런 주장이 들고 일어나는 건지, 박한우 위원은 아무 입장도 발표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우리는 되고 너희는 안 된 다는 논리가 하루 이틀인가. 타이거스가 우승을 했던 3년 전에도 이런 논란이 없었던 건 아니다.
따지자면 끝이 없는 편파판정 논란, 그래도 여론을 의식했는지 박한우 위원은 애제자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피했다.
[오늘도 열심히 해설 해주세요.]
그런데 3차전이 끝난 다음 날 아침, 박한우 위원은 애제자의 전화를 받았다.
편파해설논란으로 어젯밤 그 난리가 일어났는데,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약간 삐친 중년은 어린애 앞에서 푸념을 늘어놨다.
“앞으로 당분간은 해설에서 너 칭찬 안 할 거다.”
[왜요? 팬들이 뭐라고 했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알면서 일부러 전화 한 거냐?”
[당연하죠.]
예나 지금이나 뻔뻔한 녀석, 애제자의 안부전화에 기분이 풀린 박한우는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저 오늘 홈런 하나 칠 거니까. 칭찬 할 말씀이나 준비해 두세요.]
“볼넷만 10개 얻어낸 녀석이 잘도 말하는 구나.”
[실력이 없어서 못 친 게 아니잖아요. 오늘은 홈런 나오니까 기대하세요.]
그렇게 끝난 통화, 정말 내일은 홈런 나오는 걸까. 박한우 위원은 반신반의하며 출근 길에 올랐다.
* * *
“야, 나 좀 업어 봐라.”
“선배님이 절 업고 뛰세요.”
따스한 햇볕이 내리 쬐는 그라운드, 경기를 앞둔 이인영과 임완수는 스트레칭으로 가볍게 몸을 풀었다.
두 사람은 오늘 경기에서도 리드오프를 이룰 예정, 애교가 많은 임완수는 얼른 업어보라며 칭얼거렸지만 슈퍼스타는 내가 업혀야 하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야, 내가 널 업는 게 말이 되냐?”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잖아요. 척하면 알아들으셔야지”
성운 라이온즈는 이인영이 2번을 치고 있지만 이건 볼넷으로 출루하라고 배치한 타순이 아니다.
원래 리드오프는 홍현구와 임완수, 홍현구가 부상으로 빠져나갔으니 중심 타선을 리드하는 건 이제 임완수의 몫이다.
임완수는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11타수 4안타로 활약하고 있는 중, 그만큼 견제도 심해질 거다.
출루하지 못하면 그 역할은 이인영이 대신해야겠지, 장타를 쳐야 할 선수가 볼넷으로 나가면 생산력은 그만큼 떨어질 거 아닌가.
당신이 날 업고 뛰어야 한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런데 솔직히 부담스러워.”
“뭐가요?”
“내가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잖아.”
임완수는 올 시즌 대부분 2번으로 출장하며 타율 0.266, 홈런 2개 38타점을 기록했다.
못난 것도 없지만 딱히 두드러지지도 않는 성적, 그런데 이번 준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타격을 하면서 팬들의 기대치는 그만큼 높아졌다.
2할 8푼에 20홈런을 넘긴 홍현구를 대신해 내가 중심타선을 리드할 수 있을까, 3차전에선 잘 해냈지만 그 활약이 오늘도 이어진다는 보장은 금물이었다.
“괜찮아요. 컨택 능력만 따지면 선배가 홍현구 선배보다 나으니까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기록은 거짓말은 안 합니다. 용기를 가지세요.”
쿨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녀석, 임완수는 이 틈에 업혀가기를 시도했지만 이인영은 끝내 등을 허용하지 않았다.
“자, 성운 라이온즈의 1회 초 공격으로 준 플레이오프 4차전이 시작됩니다. 선두타자는 임완수 선수, 이번 대회에서 11타수 4안타, 홈런과 타점 기록은 없습니다.”
캐스터가 입을 열었지만 두 해설위원은 시위라도 하듯 입을 다물었다.
우리야 원래부터 타자 전문 해설, 타이거스 타선은 분명 형편없는 경기를 했는데 그럼 좋은 말을 해줘야 하나, 그렇게 듣기 좋은 해설을 원한다면 타이거스 타선이 그만한 활약을 해줘야겠지. 그렇지 않다면 오늘도 라이온즈를 칭찬하는 방송이 될 뿐이었다.
따악 ~ !!
“내야를 뚫어내는 타구!! 임완수 선수는 오늘도 안타를 뽑아냅니다!! 4경기 연속 안타, 성운 라이온즈가 1회 부터 좋은 기회를 맞이합니다.”
“보통 타격을 할 때 앞발을 닫아두라는 말을 하는데, 임완수 선수를 보세요. 앞발이 열리면서 마지막엔 몸이 완전히 투수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현재 임완수 선수의 좋은 타격감과 연관이 있는 겁니까?”
“상체를 잘 활용하고 있는 거죠. 파워가 떨어지는 타자는 도움닫기로 파워를 보강하기도 하는데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임완수는 처음부터 앞발을 투수 쪽으로 비스듬히 열어뒀다.
하체 움직임을 동반한 도움닫기보다 앞발을 자연스럽게 열어주면서 상체 회전을 살려주는 방식을 택한 것, 덕분에 파워는 떨어져도 간결하고 정확한 스윙으로 공을 컨택 할 수 있게 됐다.올 시즌 성적은 0.266, 홈런 2개, 38타점, 그저 그런 성적처럼 보여도 컨택률은 85%를 찍었다.
여기에 빠른 발, 번트 능력도 좋으니 2번에서 무수한 희생타를 양산한 것, 홍현구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1번으로 올라왔지만 특유의 컨택 능력으로 1번도 소화 할 수 있다는 걸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증명해 냈다.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준 가을 야구, 1루에 안착한 임완수는 조금 더 먼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냈다.
‘인생에서 도망칠 곳은 없지.’
몸을 풀던 이인영은 천천히 타석으로 향했다.
어제 2타점 적시타를 날린 김상규가 뒤에 버티고 있는데 또 날 피하는 작전을 택할까. 계속 피해봤자 타이거스에게 내일은 없다.
오늘 지면 2020 시즌은 이대로 종료, 도망쳐도 말리진 않겠지만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거라는 눈빛을 드러냈다.
“초구, 바깥쪽입니다. 원 볼 노 스트라이크, 지금 타이거스가 택할 수 있는 작전이 뭐가 있을까요?”
“여기서 라이온즈가 주자를 진루 시키는 작전을 지시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타이거스 입장에선 베이스 라인을 타고 흐르는 타구를 막아내야겠죠.”
“저도 동의합니다. 지금 1루에 임완수 선수가 있기 때문에 박한우 위원님 말씀대로 된다면, 바로 실점이에요.”
타이거스 내야진은 좌우로 넓게 그물망을 쳤다.
촘촘함은 떨어지지만 장타를 막을 수 있는 진형, 그래봤자 타구를 띄우면 의미 없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하 ~ 조금 더 들어가야 되는데’
타이거스의 선발 김성환은 조익현 포수의 사인에 마른 침을 삼켰다.
지금 배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바깥쪽, 바보가 아닌 이상 그건 타자도 알고 있다.
호랑이가 입을 벌린 곳에 머리통을 들이밀어야 하는 입장, 제정신으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들어가지 않으면 주자 2명을 쌓아둘 뿐, 고심 끝에 패를 던졌다.
따악 ~ !!
“밀어낸 타구가!! 좌중간으로!! 좌익수!! 중견수!! 좌익수가 잡아냅니다!! 타이거스가 한 숨을 돌리는군요.”
“지금은 잘 받아쳤는데 운이 없었네요.”
박한우 위원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전화통화에서 홈런 친다고 큰소리 친 녀석, 맞는 순간 정말 그렇게 되는 줄 알았는데, 일단 첫 타석은 허풍으로 끝났다.
하지만 언제까지 허풍쟁이로 남을 녀석은 아니라 다음 타석이 은근 기대가 됐다.
‘병살은 막자’
‘병살로 끝낸다.’
이인영이 범타로 물러나자 양 팀 벤치는 바쁘게 돌아갔다.
일단 좌우로 넓게 퍼져 있던 타이거스 내야진은 좌측으로 이동, 라이온즈 벤치도 주자와 타자에게 사인을 내렸다.
이번 준 플레이오프에서 4타점을 기록하고 있지만 병살 4개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김상규, 어제 이인영이 언론 통제에 나섰지만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양 팀 모두 모 아니면 도, 운명의 주사위가 던져졌다.
따아악 ~ !!
“잡아당긴 타구가 좌측으로 멀리 ~ !! 담자 ~ 앙!! 넘어 갑니다!!!! 김상규 선수의 투런 홈런!! 이번 준 플레이오프 첫 홈런이자!! 6번 째 타점을 기록!! 합니다!!!!”
“아직 초반이지만 이렇게 되면 오늘 경기는 라이온즈 쪽으로 기울 수도 있겠네요.”
박한우 위원의 덤덤한 목소리와 달리, 라이온즈 선수들은 보호 펜스 밖으로 나와 자기만의 방식으로 격한 기쁨을 표현했다.
“서울로 가자!!”
다들 마음은 ST 위너스가 기다리고 있는 서울에 있는 모양, 그 사이 김상규는 껑충껑충 뛰며 임완수와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았다.
보란 듯이 잡아당긴 바깥쪽 빠른 볼, 시리즈 내내 자신을 물로 본 타이거스를 의식했는지 홈 플레이트를 꾹 눌러 밟았다.
‘안심해도 되는 건가.’
축하 세리머니를 마친 이인영은 자기 자리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2차전에서 10점 차 이상 경기가 나왔지만 나머지 경기는 2 ~ 3점내에서 승부가 났다.
지금이 딱 그 차이, 동료들은 이 정도면 됐다고 하는 분위긴데 타이거스가 이대로 무너질까. 무너진다면 상대의 수준이 거기까지였다는 뜻, 따라붙는다면 조금 더 상대해 줄 가치가 있지 않을까.
서울에 있는 적보다 눈앞에 있는 적에 집중했다.
따악 ~ !!
“자, 아 타구는!! 막았지만 던지지 못하는 군요!! 한진 타이거스도 선두 타자가 출루합니다.”
“뭐 … 괜찮습니다. 일단 따라가서 막은 것만 해도 타이거스 입장에선 부담이 되겠죠.”
박한우 위원은 몰라보게 성장한 옛 제자를 두둔했다.
입단 초기 때만 해도 임완수는 내야를 볼 선수가 아니었다. 수비는 둘 째 치고 송구가 엉망, 그래도 빠른 발과 컨택에 재능이 있었기에 나름대로 애정을 가지고 지켜봤다.
그렇게 연습을 시켰는데도 늘지 않는 수비, 그래서 본인이 지휘봉을 쥔 4년 동안 외야로 돌리거나 벤치에 앉히는 충격 요법을 반복했다.
송구는 몰라도 일단 타구를 끝까지 쫓아가는 모습은 합격점, 여기서 송구만 좋아지면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2루수가 될 수도 있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게 아쉬웠다.
“내가 들어갈게”
그 사이, 임완수는 글러브로 입을 가린 채 유격수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프로 레벨에서도 쉽지 않은 밀어치기, 실제로 병살상황에서 유격수보다 2루수가 커버를 들어가는 경우가 더 많다.
송구에 약점이 있는 임완수 입장에선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 마침 유격수 땅볼이 나왔고, 임완수는 약속대로 2루 커버를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