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좋은 긴장감 (7)
“아~진짜!!”
김상규는 제법 끈질긴 승부를 해줬지만 유격수 앞 땅볼을 때렸다.
6 - 4 - 3으로 이어지는 벵살타, 도망가지 못한 라이온스가 아쉬움을 삼키는 사이, 타이거스 벤치는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먹다보면 싸는 거지 뭐.’
김상규가 자책에 빠진 동안, 이인영은 그러려니 하는 얼굴로 생수를 들이켰다.
타자가 타점을 쌓다 보면 먹는 것보다 싸지르는 게 더 많고 그게 생태계의 순리 아닌가.
일일이 얼굴 붉히는 건 아마추어가 하는 짓, 방귀 튼 부부가 서로 뭐라고 하는 거 봤나. 같이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 같은 무대에서 뛰는 만큼 선수들은 이 정도 일은 그러려니 넘겼다.
“야, 어떻게 좀 해 봐.”
이때, 임재경이 이인영을 슬쩍 건드렸다.
정규시즌에서 4할, 50홈런을 달성한 녀석이 허구한 날 볼넷이나 얻어내다니, 하지만 50홈런 타자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술은 없었다.
“그 말 그대로 반사”
이인영은 당신들도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핀잔을 줬다.
임재경은 이번 시리즈에서 11타수 동안 안타가 하나도 없다. 본인들이 출루를 해야 내게도 무슨 기회가 올 것 아닌가.
승패란 팀원이 함께 책임지는 것, 나만 바라보는 짓은 그만 두라며 선을 그었다.
득점권에서 소득을 못 내는 건 타이거스도 마찬가지, 양 팀은 7회 말까지 1대 0 팽팽한 경기를 유지했다.
“자, 라이온즈는 여기서 권오환 선수를 올리는 군요. 이번 준 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등판,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점 18.00 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차전에서 진상우 선수에게 맞은 투런이 뼈아팠죠. 그래도 라이온즈 입장에선 가장 믿을 수 있는 불펜입니다.”
7회에 등판한 권오환은 1차전의 부진을 만회하듯, 150km가 넘는 속구와 체인지업으로 첫 두 타자를 범타 처리했다.
문제는 진상우, 1차전에서 역전 홈런을 허용한 타자라 그런지 권오환은 특유의 구위를 살리지 못했다.
“스윙!! 헛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진상우 선수는 여전하네요.”
“어떤 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10년 전과 똑같습니다. 좋은 점 안 좋은 점 모든 게 말이죠.”
박한우 해설위원은 진상우를 은근 비꼬았다.
통산 264홈런을 때린 선수를 이렇게 평가해도 되는 건가. 하지만 잘 살펴보면 이해 못 할 발언도 아니었다.
진상우의 통산 타율은 0.268, 출루율은 0.330 밖에 안 된다. 20홈런 시즌을 9번이나 만들어 냈지만 그게 전부, 생산력이 좋은 타자라곤 할 수 없다.
2017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현실은 물음표, 진상우는 통산 포스트 시즌에서 0.267, 홈런 5개로 그저 그런 선수였다.
올 시즌 준 플레이오프에서 권오환에게 홈런을 쳤지만 시리즈 성적은 10타수 2안타, 그래도 연봉 8억 4천 만 원을 받는 팀의 주축 선수다.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구단에서 가치 이상의 대우를 해주면서 실력에 비해 고평가를 받는 편, 그런데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20홈런을 칠 정도로 몸 관리는 잘 하는 편이다.
이래저래 평가가 애매한 선수, 박한우 위원은 도망가는 승부는 의미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생각보다 별 거 아닌데.’
높은 빠른 볼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권오환은 포수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1차전에서 내가 맞은 홈런은 타자가 잘 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실수였나, 볼을 던져도 따라 나오는 방망이, 내 공만 던질 수 있다면 잡아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제대로 떨어뜨리면 끝이다.’
이인영도 외야에서 응원을 보냈다.
권오환의 체인지업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수준, 사이드 암이라 그런지 몰라도 제대로 채면 좌타자 기준으로 몸 쪽으로 휘다가 떨어지는 궤적을 그린다.
가끔 큰 것 한방을 맞는 게 단점이지만, 그것만 보완하면 특급 마무리로 올라서는 것도 가능한 선수, 믿음의 대가는 분명했다.
왼쪽 어깨가 완전히 열리면서 트리플 악셀을 선보이는 진상우, 세 타자를 깔끔하게 막아낸 권오환은 으쌰를 연발하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자!! 한 점만 더 내면 이긴다!!”
이어지는 8회 초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이성한 타격 코치는 박수를 치며 사기를 끌어올렸다.
9번 타자 임재경부터 시작되는 타선, 여기만 지나면 임완수 - 이인영 - 김상규로 이어지는 라인이라 라이온즈 팬들도 추가점을 기대했다.
‘나도 이제 일 해야지.’
임재경은 각오를 세우고 타석에 섰다.
3살 어린 후배에게 왜 일 안 하냐고 핀잔을 줬지만 진짜 놀고 있는 건 나 아닌가. 괜히 미안해서 한 마디 했는데 역시 그 녀석은 친절한 성격이 아니었다.
당당해지려면 내가 활약하는 수밖에, 초구부터 치고 나갔다.
따악~!!
“자!! 이 타구가!! 2루수 옆을 빠져 나갑니다!! 임재경 선수의 안타!! 이번 준 플레이오프에서 첫 안타를 기록합니다!!”
“11타석에서 안타가 없었는데 정말 중요한 상황에서 안타가 나왔네요. 이렇게 되면 수세에 몰리는 건 홈팀입니다.”
무겁게 가라앉은 벤치, 이상재 감독 대행은 바로 투수를 교체했다.
예상했던 좌우놀이, 초구를 지켜본 임완수는 2구를 밀어 쳤지만 2루수 박상호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먼저 잡아낼까?’
1루 주자와 마주한 박상호는 순간 멈칫했다.
백스텝을 밟으며 시간을 버는 임재경, 그 사이 타자주자는 1루를 향해 전력질주 하고 있다. 일단 1루로 공을 던져 타자 주자를 잡아내고 임재경은 나중에 처리해도 괜찮겠지, 눈치를 살피던 임재경은 박상호가 송구를 하는 순간 고의적인 접촉을 시도했다.
공을 갖고 있지 않은 야수가 주자와 충돌하면 주루 방해 판정을 받는다는 규정을 역이용 한 것,
물론 그건 박상호도 알고 있었지만 빠지는 타이밍이 조금 늦으면서 주자와 접촉하고 말았다.
“주루 방해!!”
1루심은 이 사기극에 제대로 낚였다.
타자 주자는 아웃처리 됐지만 임재경은 2루로 진루가라는 판정이 내려진 것, 시리즈 내내 애매한 판정에 시달린 타이거스 벤치는 폭발했다.
“이게 주루 방해냐?!! 이게?!! 어?!!”
“어디서 반말이야?!! 그래!! 주루 방해 맞다!! 내가 심판이지 네가 심판이냐?!!”
타이거스의 이상재 감독 대행은 1루 주심과 얼굴을 맞대고 침을 튀기는 설전을 벌였다.
반면 사기와 재치를 오고가는 플레이로 2루 진출을 얻어낸 임재경은 속으로 미소를 삼킬 뿐, 다음 타자는 이인영이라 지금 상황은 라이온즈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1루심에 대든 죄로 이상재 감독은 퇴장조치, 사방에서 홈팬들의 야유와 비난이 쏟아지면서 경기가 잠시 중단되는 소동이 일어났다.
“자, 경기가 재개되는 군요.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글쎄요. 설마 또 거르고 김상규 선수를 상대할까요?”
조익현 포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고의사구라니, 그래도 이인영은 자세를 풀진 않았다.
제대로 못 뺀 공이 안타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은 편이 아니다. 잘못 빼면 폭투로 이어지기 때문에 고의사구도 배터리에겐 쉽지 않은 선택, 타자가 자세를 풀지 않자 배터리는 신중하게 볼을 뺐다.
따악~!!
‘엇?!!.’
약간 덜 빠진 공이 배트에 걸렸다.
고의사구인줄 알고 잠시 넋 놓고 있던 타이거스 야수진은 뜨끔, 다행히 파울 라인을 벗어났지만 캡틴 진상우는 다들 집중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후우~진짜 피곤하게 하네.’
골칫덩이를 1루로 보낸 조익현은 격한 한숨을 내쉬었다.
고의사구도 마음 놓고 못 던지게 하는 녀석, 어쨌든 다음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했다.
‘여기서 또 병살 치면 … 내가 안 산다 안 살아.’
한편, 김상규는 극단적인 말까지 중얼거리며 타석에 섰다.
이번 시리즈에서 병살만 4개, 본인도 어이가 없는데 팬들은 어떻겠나. 또 치면 팬들 앞에서 머리라도 박아야 하는 입장, 바깥쪽 공을 힘껏 잡아당겼다.
따악~!!
“당긴 타구!! 좌익수가 몸을 날리지만!! 좌중간을 완전히 가릅니다!!!!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1루 주자까지 홈으로!! 들어!! 옵니다!!!! 김상규 선수의 적시 2루타!! 성운 라이온즈가 3대 1로 앞서 나갑니다!!”
“이건 결정타라고 봐도 좋겠네요. 임재경 선수의 재치가 살린 결과입니다.”
시리즈 내내 별 활약이 없던 임재경은 동료들의 격한 환대에 시달렸다.
방금 전 플레이는 내 커리어 최고의 장면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23살짜리가 이 정도에 만족하는 것도 웃긴 일, 더 괴물 같은 후배도 있으니 좀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8회 초 2점을 추가한 성운 라이온즈는 이 기세를 몰아 3차전까지 접수, 2승 1패를 거두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눈앞에 뒀다.
오늘의 수훈 선수는 임재경과 김상규, 준비를 마친 리포터는 임재경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우우~우~”
“이 사기꾼아!!”
사방에서 쏟아지는 골수팬들의 야유, 이런 자리가 많은 게 아니라 임재경은 잠시 당황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임재경 선수, 8회 초 결정적인 주루 방해를 얻어내셨는데 혹시 의도하신 플레이인가요?”
“의도를 했든 안 했든 그 상황은 주루 방해가 맞았습니다. 저는 정당한 진루권을 얻어냈을 뿐입니다.”
고의는 있었지만 위법은 없었다는 국회의원식 화법,
사방에서 야유가 쏟아졌지만 이인영은 잘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 자리는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 패자들에게 간섭할 틈을 주지 않았다.
“와아아~!!”
“박수!!”
다른 선수들도 박수 행렬에 동참, 그렇게 임재경은 동료들의 변호 속에 자신의 플레이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동료들 품에 돌아왔다.
잘했다는 축하 인사는 덤, 그 사이 천당과 지옥을 오간 김상규가 인터뷰를 준비했다.
“김상규 선수, 이번 시리즈에서 병살타 4개에 타점 4개를 기록하고 계신데요. 지켜보는 팬들 입장에선 좀 혼란스러울 것 같아요. 본인의 활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으음 … 글쎄요.”
김상규는 답을 머뭇거렸다. 원래 인터뷰를 잘 못하는 편, 예상은 했지만 너무 곤란한 질문이라 답을 망설였다.
“잠시 언론 통제 좀 하겠습니다.”
이때 방송 사고가 일어났다.
이인영이 인터뷰에 끼어든 것, 슈퍼스타는 리포터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점거하더니 그런 질문은 하는 게 아니라며 태연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방송사 역사상 처음 있는 일, 하지만 중계차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PD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냈다.
“중요한 건 병살타보다 결승타를 쳤다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뭐 … 그렇지.”
“좀 더 자신 있는 목소리 부탁드립니다. 이런 식이면 방송 못 나가요.”
후배의 개입에 김상규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라면 해야지 뭘 어쩌겠나. 병살타보다는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며 조금 더 힘 있는 목소리를 내질렀다.
“그렇습니다. 중심 타자가 신경 써야 건 타점이죠. 까짓 거 치다보면 병살 좀 나올 수 있는 것 아닙니까. 4타점 올린 선수 앞에서 병살 운운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리포터 쪽으로 향하는 눈빛, 아직 신인이라 모든 게 부족한 리포터는 그 앞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면 저는 갑니다.”
언론 통제를 마친 이인영은 더그아웃으로 복귀, 제대로 압력을 당한 리포터는 병살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