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좋은 긴장감 (5)
“자, 이제 경기는 3회 초, 한진 타이거스의 공격으로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전해수 선수 오늘 첫 타석입니다.”
“5대 1이지만 아직 초반이거든요. 조금씩 따라가면 됩니다.”
라이온즈의 선발 김대완은 득점 지원을 등에 업고 공격적인 투구를 이어갔다.
전해수는 2구 타격으로 화답, 무사 주자 1루가 되면서 라이온즈 내야진은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병살 방지를 위해 작전이 나올 수도 있고, 이런 상황에선 야수간의 사인 교환이 우선, 그리고 배터리가 어떤 볼 배합을 하는지, 코치가 보내는 사인을 통해 숙지했다.
“적극적으로 들어가라.”
유격수 홍현구는 수비코치에게 늘 듣던 충고를 떠올렸다.
야구에선 병살 상황에서 베이스를 완전히 밟지 않았는데도 밟은 것으로 간주해주는 룰이 있는데, 특히 유격수와 2루수는 주자와의 충돌이 잦은 포지션이라 2루 베이스에 적극적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
그래서 심판이 이 정도 타이밍이라면 아웃 판정을 내려주는데, 실제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 팀이 이 암묵적인 룰에 따라 혜택을 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옛일, 비디오 판독제가 도입되면서 그런 룰은 사라지고 있다. KBO도 야수를 보호하기 위해 주자가 병살을 위한 태클을 하면 바로 아웃처리 하는 제도가 생기면서 야수들에겐 2루 베이스에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플레이가 요구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자와 야수가 충돌하는 일은 지금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몸이 전부인 야구선수에게 2루 커버는 링 위에 올라가는 복서의 심정이라고 봐도 좋다. 다칠 위험이 있다는 걸 알고도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신세, 하지만 들어가지 않으면 팀은 이길 수 없다.
홍현구도 미숙한 2루 커버 때문에 유격수 수비에서 평가를 많이 깎아 먹었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 각오를 정하고 탁구를 기다렸다.
따악~!!
“2루수가 잡았습니다!! 2루로 송구!! 다시 1루에서~!! 아웃입니다!! 더블 플레이!! 아~그런데 이게 뭔가요 … 홍현구 선수가 쓰러졌습니다.”
“지금은 오버 슬라이딩이 되면서 홍현구 선수의 발목을 친 것 같네요. 아~이건 성운 라이온즈 입장에선 타격이 좀 큽니다.”
2루수 임완수는 전해수의 몸을 양팔로 밀쳤다.
병살을 막기 위한 태클이 분명하다고 본 것, 경기 초반부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 양 팀은 이번에도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너희들 전부 사형이다.’
이인영은 개싸움이 된 그라운드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이성한 타격 코치에게 강습타구 날려도 잔소리 하지 말라고 했고, 다음 타석에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저리 꺼져 이 XXX야!!”
일단 문제의 슬라이딩을 한 전해수는 일어나지 못하는 홍현구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성운 라이온즈 선수들은 거칠게 밀어냈다.
머리 조심하라는 경고는 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주심은 경기를 중단시키고 양 팀 벤치에 주의를 줬다.
수컷들이 경기 하다보면 싸울 수도 있지만 오늘은 좀 과격한 편, 아직 3회도 안 지났는데 양 팀 합쳐 부상 선수가 2명이나 나왔다.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 또 얼굴 붉힐 일이 일어나면 그땐 관련자들 모두 퇴장 조치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심판 무서워해서 야구 하겠어.’
이어지는 3회 말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이인영은 예고대로 투수를 노리고 들어갔다.
오늘 투수 강습만 2번 날린 녀석, 거기다 홍현구가 다친 것도 있으니 타이거스 배터리 입장에선 승부를 하기 어려웠다.
“3구도 바깥쪽으로 빠집니다. 카운트는 쓰리 볼 노 스트라이크”
“뭐 … 이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지금 선수들이 너무 많이 흥분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겁니다.”
결과는 볼넷을 빙자한 고의사구, 이인영은 그 자리에서 보호대를 풀어내며 투수를 계속 노려봤다.
1루로 가면서도 계속되는 눈빛교환, 기싸움에서 지기 싫었던 투수는 견제구로 화답했다.
‘설마 나한테 태클하진 않겠지.’
타이거스의 유격수 조용조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몸을 사렸다.
주심이 양 팀 벤치에 경고를 줬는데 설마 태클을 날릴까. 하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 마침 2루 땅볼이 나왔고 2루 백업을 들어갔다.
시선은 2루수에 두고 있지만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그 녀석의 기척, 1루 송구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베이스를 열어줬다.
“안 밟았어!! 베이스 안 밟았어!!”
2루심은 더블 플레이를 선언했지만 이인영은 더그아웃을 향해 비디오 판독 사인을 했다.
명백히 2루에서 떨어져 있던 조용조의 발, 한승규 감독도 바로 항의를 하면서 판독이 이뤄졌다.
“아~떨어져 있었네요. 그렇다면 1사 주자 2루로 바뀝니다.”
“오늘 이인영 선수는 비디오 판독 2번 모두 성공이네요. 1회 초 파울 타구도 그렇고 지금도 잡아냈습니다.”
판독 결과를 받아든 조용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애송이와의 기싸움에서 밀려 2루를 내주다니, 여기에 후속 타자 김상규가 적시타를 때려내면서 타이거스는 6대 1로 끌려갔다.
1차전과 달리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경기, 성운 라이온즈는 이날 장단 16안타를 몰아치며 11대 1 완승을 거뒀다.
하지만 상처뿐인 승리, 주전 유격수 홍현구가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 준 플레이오프는 물론 남은 일정도 어렵게 됐다.
“메이저리그였다면 세이프 판정 받았을 거다.”
이때, 외부에서 들려온 잡음이 라이온즈 선수단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말의 발언지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국내로 복귀한 베어스의 임선우, KBO로 복귀한 선수가 왜 메이저리그 룰을 들이대는 건가.
더 웃긴 건 그게 옳다고 맞장구를 쳐주는 타이거스 팬들, 이인영은 SNS를 통해 입장을 전했다.
[선배님이 메이저리그에서 쌓은 업적은 인정합니다만 여기는 KBO입니다. 메이저리거도 아닌데 왜 메이저리그 룰을 들이대십니까? 그리고 그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이해를 못하겠는데, 메이저리거가 하는 말은 다 맞다고 동조해야 하는 겁니까? 제가 알기론 메이저리그도 비디오 판독 도입 된 후 그런 판정 많이 사라진 걸로 압니다.]
메이저리그도 최근엔 잘못된 점은 수정하려고 한다.
어느 NBA 선수가 턴 오버를 저질러도 그냥 눈 감아 준 것처럼, 야구에서도 그런 게 분명 있었다.
하지만 분명 바로잡아야 할 일, KBO에서 메이저리그 룰 찾는 건 무슨 경우인가. 나 메이저리거였다고 자랑하는 건가. 이인영은 당신은 과거의 메이저리거일 뿐, 지금은 아니라며 할 말은 했다.
[얘 지금 메이저리그 114승 투수한테 충고하는 건가?]
-> 하면 안 되냐? 메이저리그 출신이 무슨 벼슬도 아니고 눈치 봐야 돼?
-> 이건 임선우가 잘못한 거다. 본인 경기도 아닌데 왜 아웃이니 마니 평가를 해? 자기가 심판인 줄 아나?
[이인영 확실히 건방져졌음. 예전엔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 이런 애가 어떤 건데? 나이 어리면 무조건 선배 눈치 봐야 되냐?
팬들의 반응은 가지각색, 그래도 임선우를 비난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심판이 아웃이라고 선언을 했는데 왜 타이거스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건가, 뭣보다 이건 심판 판정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 심판위원회 회장 유선규는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임선우는 올 시즌 스트라이크 콜 문제로 심판과 의견 충돌이 잦았던 편, 그래서 본인의 입장을 어필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 * *
[우우~우~]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야유가 대단한데요.”
“어쩔 수 없죠. 본인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을 했으니까요.”
이어지는 준 플레이오프 3차전, 무대는 광주로 옮겨졌지만 서슬 퍼런 분위기는 유지됐다.
이곳에서 이인영이 받는 대접은 거의 국민 역적, 강습 타구로 투수들을 위협하고 비디오 판독으로 인 플레이 타구를 파울로 되돌렸으니 한진 타이거스 팬들 입장에선 이렇게 미운 선수도 없었다.
‘그래서 뭐?’
하지만 이인영은 이런 분위기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가 광주 민심까지 살펴가며 야구를 해야 되나, 내가 살펴야 할 건 우승을 바라는 대구 팬들 뿐, 첫 타석부터 위협적인 스윙을 선보였다.
따악~!!!
“우왓!!”
라이온즈의 1루 코치 이재홍은 머리 위를 지나가는 타구에 놀라 쓰러졌다.
원래 1루 코치는 강습 타구에 대비해야 하는 입장, 거기다 타구 속도라면 일가견이 있는 녀석이 타석에 있으니 코치들도 긴장해야 했다.
‘알아서 잘 피하시길.’
이인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세를 고쳐 잡았다.
내 공격범위는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집중을 못 해서 맞으면 그건 본인 책임, 승리 외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음 … 다시 볼입니다. 카운트는 쓰리 볼 원 스트라이크”
“이번 준 플레이오프에서 이인영 선수 출루율이 0.875입니다. 지금도 걸어 나가면 0.888이 되겠네요.”
“정규시즌에서 출루율 0.510을 기록한 선수 아닙니까. 이 정도 활약이 놀라운 것도 아니죠.”
이인영은 공이 미트에 도착하기도 전에 1루로 걸어 나갔다.
오래 봤자 의미가 없는 공, 계속 되는 출루에 타이거스의 1루수 진상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자주 보는 건지, 그만 좀 보자고 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지금 저 그만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죠? 저도 마찬가지에요.”
깨알같이 날리는 도발은 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진상우는 이제 그러려니 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엔 들어간다.’
한편, 유격수 조용조는 각오를 다졌다.
2차전에서 베이스 커버를 제대로 못 들어 간 것 때문에 조용조는 팬들의 비난에 시달렸다.
조용조는 올 시즌 유격수 수비율 0.993을 찍은 최상급 수비수, 하지만 한 번 실수하면 100번 잘한 거 아무 소용없다. 서운해도 그건 프로가 감수해야 할 운명, 경기에만 집중했다.
‘이번에도 친다.’
집중하는 건 타석에 들어선 김상규도 마찬가지,
김상규는 1차전에서 병살 3개를 때리며 역적으로 몰렸지만 2차전에서 적시타 2개를 때려내며 부활했다.
8할 출루율을 찍는 녀석이 앞에 있으니 앞으로도 내 역할은 중요하겠지, 부상으로 이탈한 홍현구의 빈자리도 채워야 했다.
‘깊은데?’
타이거스의 2루수 박상호는 서둘러 사이드 스텝을 밟았다.
김상규는 잡아당기는 타구가 80%나 되는 타자, 그런데 여기서 밀어치는 타격이 나올 줄이야, 나름 반응을 했지만 몸을 틀며 송구를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아~던지지 못하는 군요!! 2사 주자 1 - 2루가 됩니다.”
“글쎄요. 이런 상황에 대비해 노 룩 송구도 많이 연습을 하는데 … 지금은 그냥 던져보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2차전에선 조용조 선수가 아쉬운 플레이를 보여줬는데 3차전에선 박상호 선수가 전염이 되네요.”
홈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단단한 내야진이야 말로 타이거스의 최대 장점, 국가 대표급 수비 능력을 가진 두 선수가 연달아 실책을 저지를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원래 야구는 분위기를 타는 경기, 홈에서 치르는 경기지만 2차전에서 대패를 당한 타이거스는 심리적으로 위축 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