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좋은 긴장감 (4)
“오늘은 조금 변동이 있을 거다.”
2차전을 앞두고 라이온즈 선수들은 이성한 코치의 말에 집중했다.
병살타만 3개가 나오면서 기회를 살리지 못한 1차전, 정규시즌에도 거의 없었던 타선 변경이 이뤄졌다.
1번을 치던 홍현구가 3번, 임완수와 이인영이 테이블 세터, 그리고 병살 3개로 1차전 패배의 원흉으로 몰린 김상규는 4번 자리를 지켰다.
김상규는 타격 스타일 상 병살이 많을 수밖에 없는 편, 그렇다고 1번에 넣을 타자는 아니다. 코치진은 단장과 협의를 거쳐 김상규를 계속 4번으로 기용하는 믿음을 보였고, 나머지는 결과로 보여야 했다.
[NPB, 80년 역사에도 없는 기록]
[MLB에선 한 번 있었다]
뭣보다 중요한 건 이인영의 활약,
포스트 시즌 역사상 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4볼넷을 얻어낸 건 KBO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NPB에서도 한 번도 없던 기록, MLB에선 1973년 뉴욕의 조시 프랫이 ALCS에서 볼넷 4개를 얻어낸 적이 있다.
그만큼 드문 기록, 1차전 패배를 지켜본 이성한 코치는 이인영에게 좀 더 공격적인 주문을 요구했다.
“그럼 볼도 쳐서 안타를 만들라는 건가요?”
“너라면 가능하지 않냐?”
이인영은 코치의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내가 칠 수 있으면 그건 스트라이크라는 말을 한 선수도 있지 않은가.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빠지는 공도 냅다 후려갈기는 선수들이 있지만 이인영은 자신을 그런 타고난 인재로 생각하지 않았다.
뭣 때문에 공을 보는 훈련을 반복했는가. 나만의 페이스가 있는 법, 좀 더 적극적으로 치라는 코치의 말은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자, 2020년 준 플레이오프 2차전, 한진 타이거스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오늘 성운 라이온즈의 선발은 김대완 선수, 올 시즌 26경기 등판, 10승 10패, 평균자책점 4.47을 기록했습니다.”
“구속이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닙니다. 대략 135km에서 140km 사이에서 형성되는 빠른 볼, 커브 - 슬라이더 - 체인지업을 던지는데요. 구속이 빠르지 않은데 커브를 주무기로 사용하다보니, 제구가 안 되면 홈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래도 스트라이크 존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투구는 높게 평가할 만 하죠. 안타는 줘도 볼넷은 안 준다는 마인드를 가진 선수입니다.”
해설위원으로서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박한우 위원은 4년 동안 지휘봉을 잡았던 성운 라이온즈에 애증이 있었다.
잘 했으면 좋겠는데, 자기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선수들, 김대완이 공 하나를 던질 때 마다 긴장감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좀 타이트한데.’
초구가 볼이 선언되자 김대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거에 비해 스트라이크 존이 좁게 조정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잡아주지 않았던가. 힘보다 제구, 구속보다 무브먼트에 치중하는 김대완은 콜 하나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따악~!!
유격수 쪽 강한 타구, 홍현구는 몸을 날렸지만 타구가 글러브 위를 넘어가면서 안타가 됐다.
별로 잘못한 것도 아닌데 팔을 들어 미안함을 표하는 선수, 외야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인영은 너무 긴장하는 거 아니냐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면 대역죄인, 이기면 면죄부.’
사실 이인영도 어제 패배로 많은 논란에 시달렸다.
미디어 데이에서 성운 라이온즈의 3승 무패를 선언했는데 1패를 당했으니, 거기다 일부 팬들은 휴식 기간에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걸 따지고 들었다.
1차전에서 승리를 거뒀다면 문제가 됐을 일도 아니겠지, 역시 야구선수에겐 승리가 전부라는 걸 재확인했다.
어쨌든 성운 라이온즈는 선취점을 내주며 출발, 선수들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1회 말 반격에 나섰다.
따악~!!
“좌중간에 떨어지는 안타입니다!! 선두타자 임완수의 출루!! 성운 라이온즈도 산뜻하게 1회를 맞이합니다.”
“어제도 안타가 있었는데 오늘도 안타를 기록하네요. 확실히 임완수 선수는 페이스가 좋습니다.”
이제 타석에는 이인영, 성운 라이온즈 팬들은 역전 홈런을 연호했다.
타이거스 입장에선 볼넷으로 거르기 애매한 입장, 선발로 나선 펠리페 로페즈는 승부를 택했다.
딱~!!
“초구 타격!! 1루수가 잡아!! 2루에!! 다시 1루에서~!! 아웃입니다!! 더블 플레이!! 아~이렇게 허무하게 … ”
“아니, 잠깐만요. 지금 파울이라고 항의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인영은 타구가 발에 맞았다며 파울을 주장했다.
성운 라이온즈 벤치도 비디오 판독을 요구, 주심이 비디오 판독실로 들어가면서 침체된 관중석은 혹시나 하는 기대에 사로잡혔다.
“자, 다시 한 번 보시죠. 여기서 흙이 튀긴 했는데 … 각도에 따라선 맞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다른 각도에서 봤으면 좋겠네요. 이것만으로는 판정이 애매합니다.”
마침 카메라가 정면에서 잡아낸 화면이 드러났다.
주심의 판단에 따라 갈릴 수 있는 장면, 민감한 상황인 만큼 판정은 거의 10분 동안 계속됐다.
“아~아~판정 결과 파울로 판명되었습니다.”
“와아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승부, 이상재 감독대행은 바로 그라운드로 뛰쳐나왔다.
1차전에서도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1점을 손해 봤는데 2차전에서도 똑같은 장면이 연출 될 줄이야.
이건 불공평하다며 폭발했고, 이 사이 로페즈는 이인영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You little XXXX of XXXX!!“
분명 인플레이였는데 그럴듯한 속임수로 주심을 속이다니, 발끈한 이인영도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켰다.
타구로 머리통을 날려주겠다는 도발, 2차전은 초반부터 과열된 양상으로 흘러갔다.
‘내가 말 했지? 머리 조심하라고.’
이인영은 2구를 받아쳐 투수 정면으로 날아가는 강습 타구를 날렸다. 귀 근처에 타구를 맞은 로페즈는 격한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지만, 이인영은 냉정한 얼굴로 보호 장비를 풀어냈다.
얼핏 순해 보이지만 열 받으면 반드시 보복하는 성격,
이인영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뒤통수를 가격당한 경험이 있는 타이거스의 1루수 진상우는 입을 다물었다.
“아~지금 귀에서 피가 나는데요. 의료진이 지혈을 하고 있습니다.”
“이인영 선수의 타구 속도는 말 할 필요가 없죠. 그걸 정면에서 맞았으니 … ”
해설위원들도 충격을 받은 건 마찬가지, 예고 홈런은 들어봤는데 예고 투수 저격은 처음 봤다.
저렇게 무시무시한 타구를 날리고도 미안함이 전혀 보이지 않는 얼굴, 그동안 이인영을 사람 좋은 애송이로 여겼던 팬들도 입을 다물었다.
따악~!!
“와아아~!!”
홍현구는 바뀐 투수 진해영의 초구를 받아쳐 우중간에 떨어지는 안타를 뽑아냈다.
2루 주자 임완수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경기는 동점, 여기에 어제 병살만 3개를 때린 김상규가 3연 타석 안타 대열에 합류하면서 경기는 단숨에 뒤집혔다.
“완전 박살을 내버리자고요. 다시는 못 까불게”
더그아웃에 입성한 이인영은 보란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정규 시즌에서도 진상우에게 사타구니를 가격당한 경험이 있으니 타이거스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없다.
거기다 오늘 로페즈에게 당한 도발까지, 흔적도 남지 않게 짓밟아 버리자며 선수단의 전투력을 끌어올렸다.
따악~!!
“자!! 여기서 다시 안타가 나옵니다!! 2루 주자는 홈으로!! 1루 주자는 2루를 돌아 3루까지 진출합니다!! 5연 타석 안타!! 성운 라이온즈가 기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병살타로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도 있었는데 … 판정 하나가 이런 결과를 불러오네요.”
성운 라이온즈는 1회에 타선이 일순하며 대거 5점을 뽑아냈다.
맞춰 잡는 투구에 익숙한 김대완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는 화력지원, 초반 기싸움에서 밀린 타이거스는 어제와 같은 근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2번 타자, 좌익수, 이 ‧ 인 ‧ 영]
“와아아~!!”
이어지는 성운 라이온즈의 2회 말 공격, 홈 팬들은 분위기 전환에 큰 공을 세운 슈퍼스타에게 열렬한 함성을 보냈다.
물론 타이거스 입장에선 어떻게든 보복해야 하는 상황, 조익현 포수는 벤치 클리어링도 감수하고 몸 쪽 빠른 볼을 요구했다.
‘안 피해.’
이인영은 보호대로 공을 튕겨내고 1루로 걸어 나갔다.
누가 봐도 대놓고 들이댄 팔꿈치, 타이거스의 이상재 감독대행은 고의로 맞았다며 항의하고 싶었지만 이대로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녀석이라 입을 다물었다.
“얼른 이리 와~이리 와~”
“왜요? 맞았잖아요.”
“떽!! 그걸 몰라서 물어?”
하지만 주심은 이인영을 붙들어 세웠다.
생긴 건 귀엽게 생긴 자식이 무슨 성격이 이렇게 드세나, 그동안 귀여운 이미지로 포장돼 있던 포악함에 주심도 고개를 가로 저었다.
“또 하면 경고 줄 거야.”
주심은 조익현 포수에게도 경고를 줬다.
지금은 타자가 팔을 들이밀었지만 배터리에게도 타자를 맞추겠다는 고의성이 보였다. 1회에 그 소란이 있었는데 문제 생기면 큰 일, 또 다른 잡음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독한 자식.’
조익현 포수는 바깥쪽 빠지는 볼을 요구했다.
몸 쪽으로 던졌는데 그걸 보호대로 튕겨내고 나가다니, 건드려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재확인했다.
[아니, 누가 봐도 인 플레이였는데 그걸 사기 쳐서 안타로 둔갑시키는 건 뭐야?]
-> 사기는 무슨 사기야? 판정을 선수가 내리냐?
-> 비디오 판독 10분 동안 진행했다. 주심이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인데 불만 있으면 주심한테 따져야지
[다른 건 몰라도 로페즈 저격한 사건은 좀 문제가 있다. 동업자 정신이 없는 듯]
-> 그 전에 로페즈가 이인영한테 욕한 건 생각 안 하냐? 투수도 빈 볼 던지는데 타자도 강습타구 날리지 말라는 법 없지.
-> 쉴드 그만 쳐라. 이건 누가 봐도 이인영이 잘못했다.
-> X 선비 등장하셨네. 스포츠가 예의만 지켜가며 할 수 있는 거냐? 나는 오히려 보기 좋음.
-> 역시 곰은 곰이다. 잘못 건드리면 뼈까지 씹혀 먹히는 거임.
한편, 넷상에선 야구팬들의 설전이 이어졌다.
오늘 따라 유달리 과격했던 이인영의 플레이, 보는 시각에 따라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재미있다며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특히 평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 받은 대구 팬들은 알아서 방패막을 자처, 그 사이 이인영은 다시 한 번 투수 강습 타구를 날렸다.
막아내긴 했지만 모두들 가슴을 쓸어내린 타구, 반면 이인영은 투수를 한 번 쳐다보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조금 진정시켜야겠는데.’
이성한 타격 코치는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라고 조언했다.
불타오르는 건 좋은데 이러다간 그라운드 전체를 분노로 불태울 지경, 평소 이런 녀석이 아니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냥, 타구 방향 확인한 거예요.”
“그래도 상대 팀 입장에선 도발로 받아들일 수가 있어, 이미지도 안 좋아지니까 조금 자중해라.”
이인영은 마지 못 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이번엔 투수를 노리고 친 게 아니다.
원래 좌중간으로 타구를 보내는 유형이라 강습타구가 많은 편, 정규시즌에도 그랬지만 로페즈를 부상으로 끌어내린 것 때문에 오해사기 좋은 상황이었다.
프로 선수에겐 이미지도 중요한 법, 하지만 이인영은 로페즈에게 가한 테러를 후회하진 않았다.
욕을 먹으면 먹는 거지 선수가 여론까지 신경 쓰며 경기를 해야 하나.
져도 욕먹는 건 마찬가지, 정정당당한 패자가 되느니 비열한 승자가 되는 게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