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63화 (63/309)

63화. 좋은 긴장감 (2)

“스트라이크!!”

한진 타이거스 배터리는 바깥쪽 승부로 스윙을 유도했다.

하지만 김상규는 스트라이크 콜에도 신중하게 볼을 봤고, 약간 몰린 2구를 힘껏 잡아당겼지만 파울 라인을 벗어났다.

이제는 어지간하면 칠 수밖에 없는 상황, 3루 주자 이인영도 여차하면 파고 들 자세를 잡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바깥쪽 빠른 볼 승부, 김상규는 멍 하니 지켜봤고 타이거스의 포수 조익현은 공을 떨어뜨렸다.

주심이 콜을 했지만 포구가 안 됐기 때문에 낫아웃 상황, 그런데 조익현은 그냥 더그아웃으로 향했고, 이인영은 그대로 홈으로 파고들었다.

‘뭐지?’

아직도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는 조익현은 어리둥절, 타이거스 선수단도 더그아웃으로 향하다 발걸음을 멈추며 상황을 살폈다. 그 사이 김상규는 1루로 뛰었고 득점이 인정되면서 경기는 1대 1이 됐다.

“아니 이게 뭡니까 도대체?!!”

그제야 김해수 한진 타이거스 감독 대행이 더그아웃에서 뛰쳐나왔다.

분명 스트라이크 콜을 했는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조익현 포수도 격분하면서 그라운드는 혼란에 휩싸였다.

“포구가 안 됐잖아요. 포구가”

“콜이 울려서 내려놓은 거잖아요!!”

조익현 포수는 포구가 안 된 게 아니라, 스트라이크 콜이 울려서 공을 놓은 것뿐이라고 항명했다.

김해수 감독의 주장도 마찬가지, 하지만 3루 주자 이인영은 분명 포구가 안 된 걸 확인하고 3루로 뛰어들었다. 콜을 했지만 주심이 득점을 인정한 것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겠지, 타자 주자 김상규가 1루로 뛸 때도 주심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자, 이게 문제의 장면인데 … 포구가 된 겁니까?”

“글쎄요. 제가 봤을 땐 공이 미트에 들어왔다 나왔거든요. 조익현 포수가 올해 프로 9년차에 접어든 베테랑인데 … 물론 주심의 콜이 나왔지만 마지막까지 정신을 차렸어야 했습니다.”

경기 진행 방해로 김해수 감독대행은 퇴장 당했지만 항의는 계속 됐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 급기야 서로 삿대질까지 하는 좋지 않은 상황이 이어졌다.

성운 라이온즈 쪽으로 넘어온 분위기, 하지만 아직 동점이라 선수들은 긴장감을 유지했다.

‘XX, 이게 말이 돼?’

반면, 눈 뜨고 1점을 빼앗긴 타이거스는 억울함에 냉정함을 잃었다.

특히 조익현은 살짝 건드리면 폭발할 지경, 흔들리는 정신으로 어떻게 투수를 리드하겠나, 반면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득점을 만들어낸 이인영의 플레이는 선수단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했다.

따악~!!

“내야를 빠져 나갑니다!! 1루 주자는 2루를 지나 3루까지!! 2사 주자 1 - 3루!! 성운 라이온즈가 다시 득점 기회를 잡습니다.”

“한진 타이거스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1패를 먼저 당하고 이걸 뒤집는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뭔가 집중력이 떨어지네요.”

“지나간 일은 잊어버려야 됩니다. 붙잡혀 있어서 좋을 게 없어요.”

위기가 왔지만 한진 타이거스는 유격수 앞 땅볼로 겨우 위기를 넘겼다.

감독대행까지 퇴장 당했으니 분위기 전환을 하려면 뭔가 계기가 필요하겠지, 캡틴 진상우는 목소리를 높였다.

“괜찮아!! 괜찮아!! 1회에 득점 냈잖아!! 또 내면 돼!!”

1회부터 흔들렸던 라이온즈의 에이스 존 워커, 또 공략하면 될 거 아닌가. 하지만 존 워커는 2회부터 안정을 되찾으면서 출루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딱~!

“파울입니다. 카운트는 원 볼 투 스트라이크”

“워커 선수가 작년에 비해 달라진 게, 빠른 볼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거죠. 이 선수가 미국에서도 역회전이 걸린 공을 잘 던졌는데, 제구가 안 되면서 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가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올해에는 교정이 된 느낌입니다.”

“노진우 투수 코치의 공이라고 봐야겠죠. 차명석 단장이 아주 큰일을 해냈습니다.”

통산 114승을 거둔 전설답게 노진우 코치는 워커의 문제를 단번에 잡아냈다.

공이 옆으로 휜다는 건 팔각도의 문제, 그럼 팔을 교정해야 하나?

하지만 노진우 코치는 상체보다 하체 교정에 집중, 왼 발을 내려놓는 위치를 오른 쪽으로 약간 옮겼다.

덕분에 마지막까지 뒤에 머물던 릴리스 포인트가 앞으로 당겨졌고, 워커의 직구는 옆으로 휘지 않고 똑바로 날아갔다. 무브먼트가 약간 줄었지만 150km 이상을 던질 수 있는 투수라 큰 문제는 안 됐고, 빠른 볼 승부가 되면서 워커는 단숨에 에이스 급 투수로 각성했다.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건 다른 투수들도 마찬가지, 투수 코치 한 명 바꿨을 뿐인데 차명석 단장은 팀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뤄냈다.

타선도 젊어졌고 조금만 보강하면 단숨에 우승까지 노려볼 수 있는 전력, 미래를 위한 영입 계획도 착착 진행됐다.

‘이건 안 뻗어.’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좌익수 쪽으로 날아오는 타구, 뒷걸음질을 치던 이인영은 전진스텝을 밟으며 낙구지점을 잡아냈다.

화려하진 않아도 안정적인 수비, 아웃을 확인한 존 워커는 박수를 치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이게 마지막이다.’

워커는 올해를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즌으로 여겼다.

프로는 돈이 우선, 올 시즌 급등한 성적 덕분에 미국이나 일본에서 슬슬 입질이 오고 있다.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구단에 우승을 안겨줘야 나도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하면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자, 이제 성운 라이온즈의 3회 초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선두 타자는 임완수 선수, 오늘 첫 타석에서는 땅볼로 물러났습니다.”

“홈 플레이트에 딱 붙어있는데, 체구가 크지 않다보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바깥쪽 공에 스윙이 닿질 않는다고 하죠.”

“몸에 맞는 볼이 무섭다고 하는데, 뒤에 이인영 선수가 있기 때문에 투수 입장에선 어지간하면 몸 쪽 승부 못합니다.”

예상대로 한진 타이거스 배터리는 바깥쪽 승부를 택했다.

장타력 없는 똑딱이에게 몸 쪽 승부는 당연한 수순이지만, 대기타석에서 몸을 풀고 있는 어떤 괴물 때문에 카운트를 잡지 못했다.

어느새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안 되겠다고 판단한 배터리는 몸 쪽 승부를 하다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얻어맞았다.

“그분이 오셨네~��”

“홈런이 보이네~��”

“승리가 왔노라~��”

“모두 소리 질러!! 이인~영 홈런!!!!”

다시 한 번 뜨겁게 달아오르는 관중석, 조익현 포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포수 마스크를 뒤집어썼다.

던질 곳이 없는 자식, 일단 바깥쪽 낮은 곳에 미트를 벌렸다.

맞아도 장타는 안 맞겠다는 뜻, 볼넷으로 보내도 상관없다는 리드에 이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줄 알고 며칠 전 연습에서 바깥쪽 낮은 공을 들어 올리는 스윙을 반복하지 않았나.

예상했던 일이라 당황할 것도 없었다.

“아~다시 옆으로 튀는데요. 임완수 선수는 2루까지 진출합니다.”

“오늘 조익현 선수는 여러모로 아쉽네요. 1회의 포구도 그렇지만 지금은 막아줬어야죠.”

베테랑의 석연치 않은 플레이에 젊은 선수들의 어깨는 축 늘어졌다.

캡틴 진상우도 정신 차리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조익현은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다. 이런 자세는 판정에 마이너스로 작용, 대놓고 빠져 않은 투수에게 누가 스트라이크 콜을 주겠나.

카운트가 쓰리 볼이 되자 배터리는 자연스럽게 고의사구를 택했다.

따악~!!

“됐어!!”

후속타자 김상규는 배터리의 도발에 화끈한 타격으로 화답했다.

날 언제까지 물로 여길 건가, 첫 타석은 낫아웃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이번 타구는 좌중간을 깨끗하게 갈랐다.

스타트를 끊은 2루 주자 임완수는 3루를 돌아 홈 인, 이인영도 3루까지 들어가면서 팽팽했던 경기는 단숨에 라이온즈 쪽으로 넘어왔다.

‘한 점 더.’

이인영은 이 와중에도 더그아웃을 향해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렸다.

3대 1은 약간 불안, 아웃 카운트를 소모하더라도 한 점을 내자는 뜻을 전했다. 작전이 들어가도 좋은 타이밍, 물론 타이거스도 그냥 지켜보진 않았다.

아직 경기 초반, 여기서 점수를 내주더라도 아웃카운트를 늘리는 작전을 택했다.

딱~!

“깊은 타구!! 유격수가 잡아서 2루에 송구!! 다시 1루에서~!! 아웃입니다!! 더블 플레이!! 그 사이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성운 라이온즈가 4대 1로 앞서 나갑니다.”

“지금은 실점이 됐지만 타이거스의 내야진을 칭찬해야겠네요.”

“어떤 점을 칭찬해야 할까요?”

“느린 화면으로 보여주시죠. 이건 짚고 넘어가야 됩니다.”

박한우 위원의 요구대로 PD는 문제의 장면을 되돌렸다.

깊은 타구를 포구한 타이거스의 유격수 조용조는 2루를 향해 몸이 완전히 열린 송구 자세를 잡았다.

타구가 워낙 깊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송구가 안 됐던 상황, 하지만 조용조는 백업을 들어온 2루수 박상호에게 정확히 송구를 했다.

등이 조금 돌아간 상태로 잡았지만 박상호는 주자의 슬라이딩을 피해 송구할 수 있도록 베이스 뒤편에 완벽히 자리를 잡았고, 돌아간 몸을 그대로 열면서 1루 송구를 마쳤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군더더기가 거의 없는 완벽한 플레이, 타이거스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조용조 - 박상호의 수비 능력도 한몫했다.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대표 팀 지휘봉을 잡은 김정길 감독은 공격력이 떨어지는 두 선수를 뽑지 않았지만, 2021 WBC 감독으로 내정된 신명철이라면 어떨까?

신명철은 성운 라이온즈의 수석코치로 있다가 1년 전 국가대표 코치로 전직했다.

특히 수비를 강조하는 성향으로 유명, 지금 KBO에 공격을 이끌어 줄 선수는 눈에 보인다. 그렇다면 수비를 강화하는 라인업을 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박한우 위원은 이 두 선수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걸 은근 어필했다.

‘이게 병살이 되네.’

한편, 홈을 밟은 이인영은 다소 아쉬운 얼굴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 정도 깊은 타구였다면 어지간하면 더블 플레이 나오기 어렵다. 그런데 이걸 이렇게 처리할 줄이야.

인정할 건 인정했지만 솔직히 속이 쓰렸다.

따악~!!

이어지는 타이거스의 4회 초 반격, 잘 나가던 존 워커는 초구 안타를 맞았다.

병살타가 필요한 상황, 우리 내야진도 타이거스 콤비처럼 할 수 있을까. 유격수 홍현구는 공격력은 뛰어나지만 내야 수비는 좋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 불길한 예감은 벗어나지 않았다.

딱~

“이번에도 깊은 타구, 잡았지만 던지질 못합니다!! 무사 주자 1 - 2루!! 한진 타이거스가 득점 기회를 맞이합니다.”

“한때 제 밑에 있었던 선수지만 솔직히 유격수를 보기엔 조금 부족한 점이 있어요. 자꾸 비교가 되는데, 조용조 선수는 몸이 틀어진 상황에서도 2루에 정확히 송구를 했거든요. 홍현구 선수는 조만간 외야로 돌려야 될 겁니다. 공격력이 좋은 선수라 외야에서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어요.”

아쉬운 수비가 나오면서 라이온즈는 4회 초에 추격을 허용했다.

스코어는 4대 2, 방심할 수 없는 전개에 응원석은 다소 잠잠해졌다.

선수들도 긴장하고 있지만 그건 팬들도 마찬가지, 이게 몇 년 만의 준 플레이오프인가. 하지만 이 정도 긴장감은 영화 관람에도 필요한 법, 대본이 있는 영화도 강단이 있는데 대본이 없는 스포츠야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잔뜩 긴장한 팬들은 함부로 자리를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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