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62화 (62/309)

62화. 좋은 긴장감 (1)

‘좋은 긴장감이다.’

준 플레이오프 미디어 데이를 앞두고 성운 라이온즈는 간단한 몸 풀기 훈련을 치렀다.

와일드카드에서 올라온 팀은 한진 타이거스, KBO 역대 10회 우승을 이뤄낸 명문 팀이지만 그 위상도 예전만 못하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 한 경기만 미끄러져도 치명적인 플레이오프가 주는 긴장감은 젊은 선수들에게 좋은 자극이 됐다.

‘올림픽도 겪어봤는데 뭐.’

이인영도 차분한 얼굴로 훈련에 집중했다.

2경기만 져도 탈락인 올림픽에서 이 정도 일은 얼마든지 경험하지 않았나, 여론은 객관적인 전력은 성운 라이온즈가 앞서지만, 평균 나이가 어린 팀이라 한 번 흔들리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 평가를 뒤집는 건 우리의 몫, 연습타격에서 나름대로 전략적인 스윙을 돌렸다.

‘왜 저렇게 치지?’

이성한 코치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평소 좌중간을 노리고 밀어치는 훈련을 하는 녀석이 오늘 따라 잡아당기는 타구가 많다. 포스트시즌이라고 긴장하거나 의욕을 앞세우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됐다.

“너 왜 평소대로 안 치냐?”

“뭐가요?”

“네가 노리던 방향은 저기 아니냐?”

정규시즌에서 집요할 정도로 바깥 쪽 승부를 하던 배터리, 포스트 시즌이라고 다를까. 이성한 코치는 평소처럼 밀어치는 훈련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이인영은 고개를 저었다.

“날씨가 쌀쌀해졌잖아요. 밀어치기에 집중하면 타이밍이 조금 밀리지 않을까요?”

밀어치기와 당겨치기의 차이는 공 1~2개 차이, 약간 타이밍이 늦으면 밀어치기가 아니라 밀려 치기가 되면서 내야 뜬공이 나온다.

날씨도 추워졌는데 그런 식으로 타격을 하면 좋지 않겠지, 평소보다 한 타이밍 빠른 타격으로 감을 유지했다.

“이번엔 바깥쪽으로 낮게 주세요.”

“그래”

계속 되는 훈련, 노진우 투수 코치는 통산 114승을 거둔 전설답게 애송이가 요구하는 코스로 공을 던져줬다.

바깥쪽 낮은 곳은 유일하게 3할 타격이 안 된 곳, 모든 공을 다 때려낼 필요는 없지만 이인영은 타이거스 배터리가 그곳을 노릴 거라고 예상했다.

‘엉덩이를 빼면서 친다?’

해설위원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바깥쪽으로 낮게 떨어지는 공을 타자가 툭 밀어냈을 때 나오는 멘트, 하지만 이인영은 이 말에 동의 못했다.

스트라이드를 넓게 쓰던 좁게 쓰던 회전력은 당연히 필요한 힘, 몸통 회전은 사실 엉덩이 회전이나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엉덩이가 빠져버리면 제대로 된 스윙이 나올까? 진짜 뒤로 빠지는 건 엉덩이가 아니라 뒷발이다.

어떤 타자든 타격이 시작될 땐 체중이 뒷발에 실려 있지만, 마지막엔 앞발로 이동해 있다. 그래서 역할을 완수한 뒷발을 빼주면서 몸을 살짝 눕혀주는 것, 엉덩이가 제자리를 이탈하면 절대 좋은 타격이 안 된다.

빠지는 건 뒷발, 만족할만한 타격이 나올 때까지 훈련은 계속 됐다.

따악~!!

“엇?”

노진우 투수 코치는 빨랫줄처럼 날아가는 타구에 감탄했다.

이 공까지 쳐버리면 투수들은 진짜 던질 곳이 없다. 하지만 이런 타격은 어디까지나 차선책, 평소 쓰던 폼이 아니라 잘못하면 밸런스가 흔들릴 수 있다.

무리하지 않고 자기 공만 쳐도 되겠지, 뭣보다 타선에 이인영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홍현구, 김상규도 20홈런을 넘겼고 여기에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난 임완수까지, 상위 타선은 어느 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적당한 자극에 달아오른 애송이는 다양한 코스를 공략하는 훈련에 매진했다.

볼넷보다는 역시 치는 게 팀에 도움이 되겠지, 정규시즌은 철저히 골라 쳤지만 포스트 시즌에서는 생산력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 * *

“여기 좀 봐주세요.”

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양 팀 감독과 대표 선수들은 기자회견에 나섰다.

이인영도 대표 선수 자격으로 참석, 올 시즌 KBO 흥행을 이끈 주인공인 만큼은 집중 질문을 받았다.

“이인영 선수, 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계신데 긴장감은 없으십니까?”

“적당한 긴장은 경기력에 좋은 영향을 주죠, 저는 이번 시리즈를 즐길 준비가 돼 있습니다.”

한진 타이거스 진영은 이 발언을 도발로 받아들였다.

시리즈를 즐기겠다니, 처음부터 패배 따윈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건가. 독감 때문에 미디어 데이에 불참한 감독을 대신해 차성균 수석코치가 마이크를 잡았다.

“최고의 선수를 보유했다고 그 팀이 우승하는 건 아닙니다. 불리한 점은 조직력으로 극복하겠습니다.”

네가 4할 50홈런 쳤다고 팀이 우승하는 건 아니라는 도발, 이런 것도 미디어데이의 재미 아니겠나. 이인영은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자, 이번 시리즈가 몇 승 몇 패로 끝날지 손을 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인영은 오른 손가락 3개를 폈다.

왼손은 뒷짐, 3승 무패로 끝낼 거란 도발에 타이거스 팬들은 발끈했다. 타이거스 선수단은 예의 상 왼손 손가락 한 개는 펴줬는데, 이건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하지만 슈퍼스타는 마음에도 없는 립 서비스는 해주고 싶지 않았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준 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리는 대구 라이온즈 파크입니다. 저는 캐스터 이명한, 해설에는 김재건, 박한용 위원께서 도움을 주시겠습니다. 박한용 위원님”

“예”

“작년까지 성운 라이온즈를 이끄셨는데 … 올 시즌 이렇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팀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하하~글쎄요. 솔직히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제가 뿌린 씨앗이 잘 자라줬으니 만족합니다.”

박한용 위원은 캐스터의 짓궂은 질문에 넉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 지은 밥을 한승규에게 바친 건 씁쓸하지만, 지금 성운 라이온즈 주력으로 성장한 선수들은 다 본인이 팬들의 욕을 먹어가며 키운 아이들이다.

성운이 잘 나갈수록 고 평가를 받는 건 한승규가 아니라 나, 이런 질문 받았다고 인상을 찡그릴 이유는 없었다.

“오늘 경기의 키포인트를 짚어주시죠.”

“역시 선발진의 맞대결이겠죠. 성운 라이온즈는 예정대로 존 워커 선수를 내보내겠지만, 한진 타이거스는 에이스인 펠릭스 로페즈 선수를 이미 소모했거든요. 준 플레이오프 역사상 1차전에서 승리 팀이 플레이오프로 진출한 건 29번 중 무려 25번입니다. 거기다 중심 타선의 무게감도 그렇고 … 전력을 재정비한 성운 라이온즈가 유리한 건 당연하다고 봐야겠죠.”

시간이 되자 존 워커가 천천히 마운드에 올랐다.

올 시즌 17승 7패, 평균자책점 3.14를 기록한 특급 에이스, 홈 팬들은 절대적인 신뢰를 보였지만 타이거스는 그 믿음을 깨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입장이다.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1차전,

미국 - 일본 - 한국을 다 거친 존 워커지만 플레이오프 출전은 이게 처음이라 약간 흥분한 상태로 마운드에 올랐다.

“Honey!! You must keep up!!”

존 워커의 피앙세 티파니 워커도 응원석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연예인들 기죽이는 미모를 보유한 라이온즈 파크 또 다른 스타, 워커가 등판할 때마다 중계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치는 건 이제 일상이 됐다.

오늘도 어김없이 관중석을 훑고 지나가는 카메라, 프로야구 팬들은 오늘 져도 넌 인생의 승리자라는 부러움 섞인 댓글을 달았다.

따악~!!

하지만 존 워커는 첫 타자에게 안타를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라이온즈에 비해 공격력이 떨어지는 타이거스는 쥐어짜내기에 돌입, 희생번트가 성공하면서 1사 주자 2루가 됐다.

따악~!!

“자, 이 타구가 다시 내야를 빠져나가는데요?!!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 옵니다!! 진상우 선수의 적시타!! 준 플레이오프 1차전!! 선취점의 주인공은 한진 타이거스입니다!!”

“워커 선수가 이렇게 흔들리면 안 되는데요. 정신 차려야 됩니다.”

믿었던 에이스가 흔들리자 성운 라이온즈 벤치는 약간 가라앉았다.

그렇잖아도 젊은 선수들이 많은데 뭔가 끌려가는 느낌, 이인영은 이 와중에도 고개를 까닥이며 몸을 풀었다.

다행히 1실점으로 끝난 1회 초, 하지만 워커는 본인의 투구에 납득할 수 없었는지 고개를 저으며 벤치에 들어섰다.

‘너희들 왜 그러냐?’

한승규 감독은 홍현구의 타격에 인상을 구겼다.

초구 타격 땅볼이라니, 다음 타자 임완수도 2구만에 3루 땅볼로 물러났다. 와일드카드를 치르느라 지친 타이거스에게 이런 타격은 고마운 일, 조금 더 공을 보고 치라고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어차피 나는 허수아비, 실질적으로 팀을 움직이는 건 차명석 단장이다.

그리고 그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이성한, 노진우 코치가 실세, 감독이지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3번 타자, 좌익수, 이 ‧ 인 ‧ 영]

“와아아~!!”

슈퍼스타의 등장으로 다시 달아오른 관중석, 타이거스 배터리는 예상대로 바깥쪽 낮은 코스를 집중 공략했다.

‘우리는 무리해서 너와 승부할 이유가 없다고.’

볼넷도 좋고 맞아도 장타가 나오기 힘든 코스, 투 볼이 되자 조익현 포수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인영의 그늘에 가려서 그렇지 후속타자 김상규도 올 시즌 24홈런 98타점 활약을 펼쳤다. 그래도 이인영에 비하면 약점이 뚜렷한 선수, 고의사구를 빙자한 볼넷을 택했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김상규는 그러려니 하는 얼굴로 타석에 섰다.

배터리가 이인영을 거르고 날 상대한 게 한 두 번인가. 억울하면 실력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타이거스는 올 시즌 병살타가 24개나 있는 김상규에 맞춰 그물망을 췄다.

밀어치는 타구 비율이 20% 밖에 안 되는 선수, 그것도 거의 다 밀려 쳐서 나온 타구라 일이간은 완전 열어뒀다.

‘누가 1루에 있는지 잊었나?’

이인영은 1루와 제법 거리를 뒀다.

밀어치는 타격에 능한 선수가 타석에 섰다면 이런 행동은 좀 위험하다. 재수 없으면 타구에 맞으면서 이닝이 종료,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집에 들어 가.’

바로 날아드는 견제구, 55홈런에 가려져서 그렇지 이인영은 올 시즌 도루 17개를 기록했다.

여차하면 뛸 수 있는 선수, 하지만 처음부터 압박이 목적이었던 주자는 차분하게 1루로 귀환했다.

‘좋은 긴장감이다. 그래, 이래야 경기 뛸 맛이 나지.’

앞서고 있지만 긴장감이 역력한 타이거스 배터리, 하지만 이인영은 이 분위기를 즐겼다.

인간은 최악의 상황에서 한계를 넘어선 능력을 발휘한다고 하지 않는가, 야구라고 다르겠는가. 이런 것도 즐길 줄 알아야 더 큰 선수로 성장하는 법, 나이는 어려도 배짱은 여느 베테랑들에 뒤지지 않았다.

“다시 견제 … 송구가 뒤로 빠집니다!!!! 1루 주자는 2루를 돌아 어디까지?!! 3루까지 내달립니다!! 1루수 진상우 선수의 실책!! 분위기가 점점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잡아내겠다고 던진 것 같은데 서로 사인이 안 맞은 것 같네요. 2아웃이라도 주자 3루는 투수에게 분명 불리합니다.”

타이거스 벤치는 인상을 구겼다.

캡틴이자 최고 베테랑이 이런 실수를 저지를 줄이야, 경험이 많은 진상우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 경기하기 좋은 날이죠?”

한편 3루에 안착한 애송이는 태평한 얼굴로 적군에게 말을 걸었다.

타이거스의 3루수 김재환은 올해 프로 4년 차에 접어든 선수, 하지만 이런 큰 경기는 치러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자식은 경기하기 좋은 날이라는 개 드립을 날리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지만 너무 긴장해서 아무 말도 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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