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불 붙여 드립니다 (23)
따아악~!!
“잡아당긴 타구가!! 우측 멀리~!!!! 담자~~앙!! 아~!!!! 빗나갔나요?!! 이인영 선수는 천천히 타석으로 돌아옵니다.”
“뭐 … 다른 건 모르겠고 지금 이인영 선수의 타격을 보십쇼. 스윙이 출발하기 전에 몸이 약간 웅크러져 있죠? 들어 올리는 타격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어떤 공이 들어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겁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지금은 상체를 이용한 스윙을 했어요. 제가 전부터 이인영 선수가 하체를 잘 활용하는 스윙을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또 다른 차원의 기술을 보여줬습니다.”
박한우 위원의 말대로, 지금 타격을 지켜본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20년 전 이야기 속으로 사라진 전설을 소환했다.
필라델피아에서 22년을 뛴 필리프 바네스, 당시만 해도 메이저리그엔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가 많지 않았다.
당연히 타자들은 제구를 위주로 하는 투수들을 많이 만났고 밀어치는 타격도 중시했다.
하지만 필리프 바네스는 예외, 몸을 약간 웅크리는 특유의 동작과 극단적인 풀스윙으로 22년 동안 686홈런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너희들은 모두 날 흉내 내게 될 거야. 두고 보라고”
바네스는 은퇴 후에도 선수들에게 밀어치는 스윙은 버리고 극단적인 풀 히팅을 권했다. 투수들의 구속이 점점 빨라지고 있는데 밀어치는 타격이 웬 말인가.
실제로 바네스의 타격을 흉내 낸 선수들이 많았지만 제대로 소화해 낸 선수는 많지 않았다.
특히 특유의 웅크린 자세에서 나오는 스윙은 엄청난 파워를 만들어 냈지만 정확도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것, 바네스가 한 스윙은 극단적인 어퍼가 아니라 타구를 살짝 들어 올리는 레벨 스윙에 가까웠다.
처음부터 스윙 각을 만들어 놓는 타격이 누구나 가능했다면 어느 선수가 30홈런을 못 쳤을까.
그런데 이인영은 지금 그 모습을 정확히 재현해 냈다.
‘조금 빨랐나?’
하지만 본인은 그걸 전혀 인식 못했다.
몸 쪽 약간 낮게 들어온 공이라 자기도 모르게 몸을 숙인 것, 사실 한국에선 이런 타격을 좋게 보지 않는다.
앞 쪽 어깨가 뒤 쪽 어깨보다 높게 있으면 어퍼 스윙이 되고 정확한 타격이 안 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 들어 올리면 어떻게 낮은 공을 쳐?’
하지만 이인영은 그 이론에 동의 못했다. 백날 찍어 쳐 봤자 땅볼 밖에 안 나오고 뭣보다 정확한 타격도 안 된다. 그래서 어깨의 높낮이를 조정해 스윙 각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연마, 그날의 노력이 밴 몸은 알아서 낮은 공에 반응을 했다.
‘저걸 이렇게 치냐 … .’
한편, 가디언즈의 유재덕 감독대행은 혀를 내둘렀다.
어딜 던져도 다 받아쳐버리는 괴물, 국내 타자들 중 몸 쪽 낮은 공을 저렇게 들어 올리는 선수가 몇 명이나 있을까.
하지만 도망쳐봤자 이득이 없는 승부, 지금 야구팬들의 모든 관심은 이인영에게 쏠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도망치면 우리가 손해, 볼넷은 주지 말라는 사인을 보냈다.
‘던질 데가 없는데.’
감독대행의 요구를 접수한 배터리는 신중히 사인을 주고받았다.
바깥쪽 낮은 공에 약점을 보이는 건 어지간한 타자들의 공통점, 이인영도 4할이 넘는 타율을 치고 있지만 그쪽만큼은 0.290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투수 입장에서도 던지기 어려운 코스, 뭣보다 풀카운트라 빠졌다간 볼넷이다. 홈런보다 더 욕을 먹는 시나리오, 그래도 그곳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악~!
“파울입니다. 이것도 커트를 해내는군요.”
“투수 입장에선 타자가 적당히 치고 빠져줘야 좋은데 … 역시 한 타석도 그냥 안 물러납니다.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죠.”
가디언즈 배터리는 다시 바깥쪽을 택했지만 타자는 커트를 해냈다.
50홈런을 넘겼는데 컨택률이 93%가 넘는 자식, 구위라면 나름 자신이 있는 용병 투수들도 이인영 앞에선 ‘에라 모르겠다.’하며 자포자기해 버린다.
그만큼 살인적인 정확도를 자랑하는 타자, 공수영은 포수가 원하는 코스로 공을 던졌지만 다 커트 당했다.
한 끗 차이로 아웃과 안타가 결정되는 승부, 아차하면 굴러 떨어지는 외나무다리 위에서 공수영은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래, 가자. 할 수 있잖아.’
다시 바깥쪽 낮은 코스 사인, 마음을 정한 투수는 자세를 잡자 팬들도 덩달아 긴장했다.
[따아악~!!]
“밀어낸 타구가 … 계속 뻗어나가는데요?!!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담장 밖으로 사라집니다!!!! 시즌 55호!!!! 팬 여러분들은 이 선수를 주목해주십시오!!!! 앞으로 한국야구 역사에 전설로 남을 선수의 위풍당당한 행진입니다!!!!”
“지금은 또 상체를 거의 안 썼어요. 무슨 변화구 치듯이 툭 밀어냈는데 타구는 담장 밖으로 향했습니다.”
가디언즈 배터리가 멍한 표정으로 외야를 바라보는 사이, 이인영은 헬멧을 눌러쓰며 1루 베이스를 돌았다.
모든 게 완벽했던 하루, 3루 코치와 손뼉을 마주친 뒤 홈 플레이트를 밟았다.
런웨이를 하던 그림자는 이미 사라졌지만 팬들은 슈퍼스타의 이름을 연호, 이인영은 다시 더그아웃 밖으로 나와 환호에 답했다.
원정 경기에서 커튼콜을 받을 줄이야, 조금 멋쩍었지만 색다른 경험이라 나름 즐거웠다.
시즌 최종타율은 0.403, KBO 역대 최고 타율 2위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1위 기록이 80경기 체제에서 나온 기록이라 실질적인 1위, 55홈런 역시 단일 시즌 최고 기록이다.
단일 시즌 WAR는 무려 12.8, 포지션이 좌익수라 약간 손해를 봤는데도 KBO 역사를 다시 썼다.
‘우리가 저걸 놓쳤다니 … .’
‘사표 쓰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2년 전, 이인영을 상대로 간을 봤던 스카우터들은 눈만 깜빡거렸다.
실제로 계약을 제시한 구단도 있었지만 어림도 없다는 아버지의 반박에 가로 막혔다. 그때 구단에서 조금 더 성의를 표했다면 이렇게 후회를 하진 않았을 텐데, KBO에서 활약하고 있는 어느 용병을 둘러봐도 저 정도 거물은 없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도 매력적, 그래도 손가락만 쪽쪽 빨다 자리를 떠야 했다.
[누구 0.403 예상한 사람 있냐?]
-> 그렇게 많지는 않을 듯
-> 어떻게 3홈런을 치냐. 상금 받을 사람 있을지 모르겠네.
-> 여기 나 있다. 상금 받았을 수 있겠지? 눈에 띄게 댓글 좀 달아줘
야구 게시판도 난리가 났다.
KBO는 이인영의 시즌 최종 타율을 맞힌 4명에게 천만 원의 상금과 기념품을 지급하기로 했다.
대부분이 4할 턱걸이나 실패를 예상했는데 그 기대치를 넘어선 활약, 추첨에서 탈락한 팬들은 이 자식은 역시 사람이 아니라 곰이라는 투정을 남겼다.
어쨌든 이런 저런 화젯거리를 남긴 2020 시즌, 이인영은 시즌 26번째 수훈선수 인터뷰에 나섰다.
너무 자주 뽑혀서 이제는 야근이라고 여길 정도, 준비를 마친 리포터 앞에 섰다.
“이인영 선수, 모든 걸 다 이루셨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겁나게 좋습니다.”
깔깔 웃던 리포터는 그게 뭐냐며 핀잔을 줬다. 평소처럼 뭔가 말을 길게 하면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줘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이인영은 바로 반격에 나섰다.
“좋으면 좋은 거지 여기서 양념을 더 쳐야 되나요? 매번 다르게 말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냥 넘어가 주세요.”
어느 선수가 한 시즌에 수훈 선수 인터뷰를 26번이나 했겠나,
솔직히 지겨울 정도, 그래도 오늘의 수훈선수는 내가 아니라 경기장을 찾아준 성운 라이온즈 팬들이라는 말을 남겼다.
어쩜 저렇게 말을 예쁘게 하는지, 환호성은 다시 끓어올랐다.
“이제 정규시즌 일정은 끝났고 플레이오프가 시작되는데요, 대구 팬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바랐던 숙원, 이뤄주실 수 있나요?”
“우승은 저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선수들 모두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는 따라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3위로 시즌을 마친 성운 라이온즈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열리는 동안 전력을 재정비 할 수 있게 됐다.
일정이 녹록치는 않지만 지금까지 해 온 대로 한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구단의 지시대로 집으로 돌아가 쉬었다.
[너 오늘 시간 되냐?]
그런데 그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날 곰 취급 했던 그 유투버, 때리기도 뭣해서 그냥 형 동생 하며 지내기로 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놀랐다.
“무슨 일이신데요?”
[내가 요즘 콘텐츠가 부족하거든, 방송 한 번 나와 줄 수 있어? 내가 거기로 갈게]
“출연료 주시면 생각해 볼 게요.”
이인영은 이제 재주 부리는 곰은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4할을 친 덕분에 어느 팬들은 천 만 원이나 되는 상금을 잡았는데, 정작 나는 아무 것도 손에 쥔 게 없다.
그리고 유투브 수익도 꽤 되는 걸로 아는데, 언제까지 날 무료로 부려 먹을 건가. 유투버는 나중에 밥 한 번 산다고 유혹했지만 이인영은 철벽을 쳤다.
“그럼 관두세요.”
[아~알았어!! 알았어!! 수익 20%줄게. 됐지?]
그렇게 겨우 성사된 방송 출연, 대전에 사는 사람이라 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유투버는 오후 4시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인영을 콘텐츠로 삼은 동영상이 연달아 대박을 치면서 구독자는 42만 명으로 급증, 유투버는 이번에도 야심작을 준비해 왔다.
“이게 다 뭐예요?”
“어~이건 쑥이고 이건 두릅, 참취, 당귀, 음나무순이야.”
곰이 쑥과 마늘 먹고 사람 됐다는 전설이 유명하지 않은가.
프로야구 팬들은 이제 4할과 50홈런을 달성한 이인영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진짜 사람 탈을 쓴 곰이 아닌지, 유투버는 지금부터라도 사람으로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는 논리를 앞세웠다.
“자, 그런 의미에서 이것 좀 먹어 봐. 얼른 사람 돼야지”
유투버는 속 좋은 얼굴로 쑥을 내밀었다.
형이고 뭐고 그냥 한 대 쳐버릴까, 손을 번쩍 드는 시늉을 했지만 유투버는 기꺼이 오른 뺨을 내밀었다.
“야, 한 대 쳐줘. 그것도 조회 수 나오겠다.”
“됐어요. 기분 나쁘니까 얼굴 좀 치워요.”
이인영은 그러려니 넘어갔다.
하긴, 이 사람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닌가. 조회 수가 곧 수익이니 무리수를 두는 거겠지, 일단 유투버 어머니가 담았다는 쑥 장아찌를 밥과 함께 먹었다.
“음~이건 괜찮네요.”
“네, 역시 곰은 쑥을 좋아하는 군요. 이렇게 사람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거죠.”
그새를 못 참고 드립을 날리는 못난 형, 너그러운 동생은 웃고 말았다.
“이게 뭐라고요?”
“당귀야. 조금 쌉쌀한데 고기랑 싸 먹으면 맛있어.”
“그럼 고기라도 좀 가져오지 … 어떻게 이것만 먹어요?”
“그럼 방송이 안 되잖아. 얼른 먹어 봐”
“ … 에효~”
격한 숨을 뿜어낸 이인영은 당귀를 입에 넣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풀냄새가 걷히기도 전에 날아드는 쌉쌀함, 맛있냐는 물음에 격하게 슈퍼스타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걸 보고 있는 이인영의 부모님도 재미있다는 반응, 이인호는 두릅도 먹어보라며 훈수를 뒀다.
“초장 찍어서 먹어라.”
“알았다니까요.”
“오구~오구~우리 아들 잘 먹네. 앞으로도 자주 해 줘야겠다.”
끔찍한 말을 쏟아내는 엄마, 이인영은 잠시 귀를 닫고 생전 처음 겪는 맛에 집중했다.
“어떠냐?”
“으음~당귀하고 두릅 … 너희들은 내 인생에서 아웃이야.”
곰은 쑥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손으로 밀어냈다. 도저히 친해질 수가 없는 맛, 어머니가 더 먹어보라고 권했지만 저쪽으로 도망쳐버렸다.
이날 찍은 영상은 하루 만에 조회 수 20만을 돌파, KBO 흥행에 불을 붙인 슈퍼스타의 위엄을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