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불 붙여 드립니다 (22)
[야구에서 4할이라니, 한국 야구는 유치원인가?]
4할 달성 여부를 앞두고 미국에서 잡음이 일어났다.
현역 메이저리거 웨인 맥카비가 한국야구를 조롱하는 SNS를 올린 것, 맥카비는 모든 것이 전문화 된 메이저리그에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며 한국야구 수준을 비꼬았다.
그럼 우리는 아마추어라는 건가. 자국 혐오에 맛이 들린 네티즌들은 맞는 소리 아니냐며 덤덤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인영의 콘크리트 지지층과 많은 야구팬들은 발끈했다.
[오냐, 유치원생들한테 한 번 맞아봐라]
[너 WBC에 꼭 나와라. 유치원생한테 참교육 한 번 당해보라고]
한국야구 팬들은 이번 WBC에 두고 보자며 이를 갈았다.
당장 웨인 맥카비의 계정으로 쳐들어가 이번 WBC에 나오라며 도발을 날렸고, 맥카비는 한국이 WBC 본선에 올라올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불길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고맙군. 불을 붙여줘서.’
이인영은 맥카비의 도발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최근 약간 침체기였던 한국 야구, 가끔 이런 잡음이 한 번 일어나는 것도 프로야구 흥행에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 저 이역만리의 메이저리거가 한국야구 소식을 들을 정도라면 내 활약이 그만큼 널리 퍼졌다는 거 아닌가. 거기다 WBC에서 정말 맞붙게 된다면 시청률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열을 낼 일도 아니었다.
“응원 용품 받아가세요!!”
경기를 앞두고 KBO 관계자들은 임장객에게 응원용품을 나눠줬다.
이제 이인영의 4할 타율 달성은 야구팬들의 최대 관심, 가디언즈 팬들도 상대팀 선수를 응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가디언즈 구단 입장에선 씁쓸한 일이지만 라이온즈와 3연전을 치르는 동안 관중석이 텅 비어있던 적은 없었다. 사람이 많아서 손해 볼 건 없지 않은가. 그렇게 외야석은 푸른 물결로 뒤덮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한편, 한승규 감독은 이인영의 타순을 두고 고민했다.
어느 타순에 서야 4할 도전에 유리할까, 차명석 단장은 포스트 시즌 진출도 확정됐으니 오늘만큼은 이인영의 기록 달성에 모든 것을 쏟아 부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성한 코치는 3~4번이 적당하다고 봤지만 일부 코치들은 평소대로 3번으로 나가는 게 좋다는 입장, 고심을 거듭하다 본인의 뜻대로 해주기로 했다.
“저는 2번이 괜찮은 것 같은데요.”
“한 타석 더 들어 갔다가 안타 못 치면 어떻게 하려고? 안타 하나 치고 빠질래?”
“때리면 되잖아요.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도망치면 진짜 멋없어요.”
이성한 코치는 2번은 조금 무리 아니냐며 걱정했다.
안타 하나치면 다시 4할 복귀, 하지만 그런데 그렇게 치고 빠지면 어느 팬들이 좋아하겠나. 적극적으로 칠 수 있는 2번이 적당, 뭣보다 한 타석이라도 더 나가서 4할을 달성한다면 스스로도 떳떳하고 팬들도 즐거워하겠지, 다른 타순은 생각하지 않았다.
[플레이 볼!!]
“자, 성운 라이온즈의 1회 초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타석에는 홍현구 선수, 올 시즌 타율 0.281, 홈런 17개, 70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인영 선수 활약에 가려져서 그렇지 올 시즌 정말 훌륭했거든요. 본인은 20홈런에 욕심이 있다고 하는데, 그럼 오늘 3개치면 됩니다.”
홍현구는 배터 박스 앞에서 스윙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체격에 비해 팔이 짧은 편이라 홈 플레이트에 바짝 붙어야 바깥쪽 공에 그럭저럭 대응할 수 있다. 장타가 적었던 시절엔 몸에 맞는 볼도 많지만 올해는 바깥쪽 승부가 많은 편, 이번에도 바깥쪽을 노렸다.
따악~!!
“잘 맞은 타구가!! 아~우익수 정면으로 향하는 군요. 홍현구 선수가 첫 타석은 플라이 아웃으로 물러납니다.”
“역시 밀어 쳐서 담장을 넘기는 게 쉽지가 않네요.”
“하지만 이 선수라면 얘기가 다르죠!! 이인영 선수가 천천히 타석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올 시즌 타율 0399, 홈런 52개, 121타점, 오늘 경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미 전설의 반열에 들어섰습니다.”
“차분하게 하면 됩니다.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못 칠 이유가 없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박한우 위원은 타들어 가는 입술을 혀로 다스렸다.
내가 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하지만 이인영은 초구부터 배트를 돌렸다.
따아악~!!
좌중간으로 가는 타구, 배트를 던진 슈퍼스타는 타구를 잠시 응시하더니 헬멧을 눌러쓰며 1루로 향했다.
모여드는 좌익수와 중견수, 하지만 타구를 향한 추격은 펜스 앞에서 막혔다. 시즌 53호 홈런이자 4할 복귀를 알리는 대포, 3경기 연속 홈런포에 관중석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자, 다시 한 번 보시죠. 분명 가볍게 친 것 같은데, 넘어가는 걸 보면 신기합니다.”
“제가 나름대로 말씀을 드리자면 장타를 치는 선수들의 공통점은 스윙이 장전된 상태에서 배트 헤드가 투수 쪽을 향하게 된다는 겁니다. 국내의 많은 타자들을 잘 보면 장전 자세에서 배트가 세워져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인영 선수도 처음엔 배트가 세워져 있는 편 아닙니까?”
“그런데 칠 때는 배트가 눕혀져 있죠. 그리고 손의 위치로 타이밍을 잡고 날려 버리는데, 하체가 움직이면서 팔도 자연스럽게 따라 나옵니다. 하체 힘을 그대로 상체로 옮긴다는 거죠. 배팅 기술만 보면 메이저리거와 다를 게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유치원생입니까? 지금 이 장면, 웨인 뭐시기 하는 그 친구에게 보내줬으면 좋겠네요. 지금 못 보냅니까?”
박한우 위원이 열을 올리는 사이, 이인영은 3루를 돌아 홈을 밟았다.
환호로 맞아주는 코치진과 동료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 냉수로 흥분을 다스렸다.
‘왜 나는 안 되는 거지?’
돌고 돌아 경기는 3회 초, 홍현구는 이번에도 바깥쪽 공을 밀어냈다.
안타는 됐지만 멀리가지 않는 타구, 고개를 갸웃거리며 1루에 자리를 잡았다.
타석에는 이제 이인영, 홍현구는 투수보다 타자에 더 집중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후배지만 올 시즌 홈런을 53개나 날린 녀석, 그 중 밀어 쳐서 넘긴 것만 해도 내 시즌 홈런과 맞먹을 거다. 도대체 비결이 뭘까. 눈을 부릅뜨고 분석에 나섰다.
따아악~!!
하지만 타격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뤄졌다.
배트를 짧게 잡은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따라 나오는 팔, 제대로 걸린 타구는 까마득하게 날아가 우측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시즌 54번째 홈런, 시즌 타율은 0.401(423타수 170안타)로 높아졌다.
다음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나도 4할 타율은 유지, 이 거침없는 대행진에 스카우터들은 경악했다.
값싸고 쓸 만한 용병을 찾기 위해 9월이 되면 한국을 방문하는데, 어쩌다보니 진짜 금맥을 발견한 기분, 당장 빅리그로 데려갈 수 없다는 걸 아쉽게 여겼다.
‘어떻게 … 안 되나?’
한국은 국가대표 경기에 출전하는 만큼 FA 일수를 채워준다고 들었다.
하지만 작년 시즌을 부상으로 거의 날려버린 탓에 이인영은 FA 일수에서 많이 손해를 본 입장, 아무리 빨라도 4~5년 안에 메이저리그로 오는 건 불가능했다.
* * *
“자!! 박수!!”
“와아아~!!”
이곳은 이인영의 모교 동산고, 구슬땀을 흘릴 시간이지만 김재호 감독은 제자들에게 TV 시청을 허락했다.
내 품을 떠난 지 고작 2년 밖에 안 된 녀석인데, 프로야구를 초토화 시켜버릴 줄이야.
거기다 제자는 월간 MVP에 4번이나 뽑히면서 모교 야구부에 1200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이번에 4할 타율까지 달성하면 4천만 원이 추가로 들어오니, 지방의 작은 야구부 입장에선 상상도 못할 은총이었다.
“그만 보고 연습하자.”
“왜?”
“우리가 선배님한테 보답할 수 있는 건 우승뿐이잖아.”
야구부 캡틴 이상우의 목소리에 부원들은 동조, 김재호 감독은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네가 많은 것을 바꿔놨구나.’
동산고 첫 우승을 이끈 수제자, 덕분에 김재호 감독의 입지도 단단해졌다.
이제 내 품을 떠났으니 서로 연락이나 주고받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모교 야구부에 지원금을 주고 부원들 사기도 끌어올려주는 녀석, 오늘 경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문자라도 보내야겠다며 속마음을 중얼거렸다.
“3연 타석 가자!!”
“가즈~아!!!!”
그 시각, 서울까지 올라온 성운 라이온즈 응원단은 있는 힘껏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쳐버리면 4할 확정, 기왕이면 홈런이 좋지 않겠나. 하지만 3연전 동안 홈런 4개를 허용한 가디언즈 투수진은 승부를 하지 못했다.
‘그만 좀 쳐라. 아예 가루를 만들 거냐?’
가디언즈의 유재덕 감독대행도 머리를 연신 긁적였다.
축하는 해 주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올 시즌 이인영이 가디언즈를 상대로 친 홈런은 무려 7개, 꼴찌 팀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만 두자. 우리 투수들이 불쌍하다.’
유재덕 감독대행은 고의사구를 지시했다.
작년 시즌, 힛 포더 사이클을 방해한 사건 때문에 이인영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올 시즌 4할 - 54홈런의 재물이 됐으니 이제 갚은 거 아닌가.
더 두들겨 맞으면 우리 선수들이 너무 불쌍, 더 이상의 참극은 피했다.
“우우우~우~우~”
“이 겁쟁이들아!!”
사방에서 쏟아지는 야유, 그러건 말건 배터리가 고의사구를 택하면서 이인영은 천천히 1루로 향했다.
‘빈볼을 맞더라도 뛴다.’
이때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인영의 도루 시도, 스코어가 5대 3이라 시도해 볼만 했지만 이건 누가 봐도 가디언즈를 향한 도발이었다.
팬들은 잘 한다며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가디언즈 선수들은 뭐 씹은 표정, 유재덕 감독대행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이겨도 성운 라이온즈는 2위 등극이 불가능하다. ST 위너스가 4연승을 달렸기 때문에 성운 라이온즈는 3위 확정, 몸을 사려야 할 중심 타자가 도루를 시도하는 게 뭘 의미 하겠나.
유재덕 감독 대행은 이럴 줄 알았으면 승부를 하는 거였다며 끓는 속을 억눌렀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8회 초, 가디언즈는 공수영을 마운드에 올렸다.
올 시즌 평균자책점은 6.60으로 좋지 않지만 잠재력은 괜찮은 편, 뭣보다 승부를 피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저격수로 충분했다.
물론 진짜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다.
홈런 2방 맞았는데 빈볼 던지면 쫄보라고 욕먹는 건 우리 아닌가. 병원이 아니라 더그아웃으로 보내야 의미가 있는 승부, 공수영도 그까짓 홈런 맞아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초구!! 들어왔다는 판정입니다. 하나 지켜보는 군요.”
“이게 올 시즌 마지막 타석이라는 걸 이인영 선수도 알고 있는 거죠. 가능하면 멋지게 마무리 짓고 싶을 겁니다.”
2구는 바닥에 처박히면서 카운트는 원 볼 원 스트라이크, 공수영은 3구를 던질 자세를 잡았지만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발을 뺐다.
‘이 자식은 … 위험하다.’
지금 던졌다면 왠지 맞았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겁이 없는 성격인데 왜 어깨가 움츠러드는 건지, 이마에 맺힌 땀을 쓸어내리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어쭈?’
몸 쪽 깊숙이 오는 공, 이인영은 투수를 향해 경고의 눈빛을 날렸다.
좌중간으로 타구를 보낼 줄 알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투수 쪽으로 타구를 날릴 수 있다. 투수가 던지는 공은 아무리 빨라봤자 100마일을 넘기기 어렵지만, 제대로 걸린 타구는 120마일까지 나온다.
맞으면 어느 쪽이 아플까?
이인영의 타격 성향을 알고 있는 가디언즈 배터리는 바깥쪽으로 멀리 도망치면서 쓰리 볼 원 스트라이크에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