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59화 (59/309)

59화. 불 붙여 드립니다 (21)

“자, 이제 경기는 6회 말, 가디언즈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타석에는 랜디 칼슨, 오늘은 두 타석에서 아직 안타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최근 타격감이 좋거든요. 경계를 해야 합니다.”

4대 1로 뒤진 가디언즈의 공격, 랜디 칼슨의 등장에 성운 라이온즈 내야진은 서로 사인을 주고 받았다.

시즌 초만 해도 타율 0.163에 홈런이 없어 방출 논란에 휩싸였지만, 지금은 타율 0.284, 홈런 28개로 반등했다.

칼슨의 타격 폼은 꽤 독특한 편인데, 방망이 그립이 거의 허리 근처에서 출발한다. 타구에 힘을 싣기 어려운 폼이지만 강한 손목 힘으로 타구를 날리는 일명 근본 없는 스윙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약점이 명확하다는 것, 스윙 궤적이 너무 짧아 커버할 수 있는 스트라이크 존이 좁고 떨어지는 공은 참아내는 것 외엔 답이 없다.

실제로 일본에선 약점이 간파당하고 방출 당했지만, 한국에선 나름대로 잘 적응하고 있는 중, 그래도 선구안에 많이 의존하는 스타일이라 투 스트라이크 이후, 빠졌다고 생각하는 공은 그냥 지켜보기 때문에 루킹 삼진을 당하는 일이 많다.

이렇게 약점이 분명한 타자에게 장타를 내준다는 건 한국 프로야구 투수진의 수준을 증명하는 것 뿐, 계투로 나선 권오환은 정면 승부를 택했다.

“바깥쪽!! 들어옵니다. 148km, 좋은 구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외국인 용병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칼슨 선수는 잡아내야 됩니다. 공략법이 있는 선수를 상대로 계속 안타를 내주는 건 치욕이거든요. 승부해야 됩니다. 도망치면 안 돼요.”

권오환은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끌어냈다.

저런 스윙으로는 절대 맞출 수 없는 공, 특유의 선구안으로 약점을 커버하는 칼슨은 본인이 뭘 해야 하는지도 잊어버렸다.

“됐어!”

바깥쪽으로 꽉 차는 빠른 볼, 루킹 삼진을 잡아낸 권오환은 오른손을 불끈 쥐었다.

제구가 되는 빠른 볼 투수가 어떤 결과를 내는지 보여준 승부, 뭣보다 다른 팀 투수들은 잡아내지도 못하는 칼슨을 삼구 삼진으로 처리했다는 건 의미가 있었다.

‘많이 컸군 … .’

박한우 위원은 중계석에서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물러날 수밖에 없는 감독 자리였지만 4년 동안 키워낸 제자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게 사실, 조만간 열릴 포스트 시즌은 물론 국가대표에도 뽑혀 좋은 활약을 해 주길 기대했다.

‘바람이 좀 많이 부네.’

계속되는 경기, 레프트 필드를 어슬렁거리던 이인영은 중견수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좌측으로 바람이 많이 부는 상황, 이인영은 타구가 오면 자기가 잡겠다는 뜻을 전했다.

프로야구에 좌타자가 아무리 많아도 우타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인영의 포지션은 좌익수, 우익수보다는 수비 부담이 있는 자리지만 내야수처럼 강습타구에 대비하거나 특별한 수비 기술이 필요 없다.

타구판단 능력과 순발력 여기에 어깨까지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 이인영은 그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

따악~!!

“잡아당긴 타구가!! 멀리!! 좌익수!! 좌익수가!! 펜스 근처에서 잡아냅니다!! 이인영 선수가 수비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군요. 투 아웃이 됩니다.”

“가디언즈는 우타자 중 밀어 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선수들이 많거든요. 당연히 강한 타구는 좌익수 쪽에 치중될 수밖에 없는데, 경험이 적은 어린 선수는 대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바람이 좌측으로 많이 분다면 타구가 휘기 때문에 중견수와 좌익수의 사인이 맞지 않으면서 안타가 되거나 선수끼리 서로 부딪치는 경우도 있는거든요. 그런데 지금 중견수는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이인영 선수가 잡는 쪽으로 약속이 돼 있었던 거군요?”

“그렇습니다. 이 선수가 수비능력이 떨어져서 좌익수를 보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사실은 제가 감독으로 있을 때 이 선수를 3루수로 키워볼 생각도 했는데 고민 끝에 외야수로 기용했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외야수를 보려면 무엇보다 발이 빨라야 되거든요. 타구 판단도 중요하진 일단 발이 빨라야 타구를 쫒아갈 것 아닙니까. 이인영 선수는 덩치가 크지만 스피드는 팀 내 어느 선수들보다 빠르거든요. 그리고 타격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장래를 생각하면 수비 부담이 적은 좌익수를 보는 게 낫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좌익수에서도 자기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선수에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아오는 플라이 볼, 이인영은 중견수에게 움직이지 말라는 사인을 보낸 뒤 본인이 직접 처리했다.

가디언즈 당겨 치는 우타자가 많은 편, 구위가 좋은 권오환 투수를 상대로 밀어치는 타격을 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 빠른 발을 이용해 낙구지점을 선점했다.

타격부터 수비까지 모든 게 완벽한 활약, 이런 배경을 잘 모르는 팬들은 이인영의 타격에만 관심을 보였지만 현장 관계자들은 수비 능력에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어지는 성운 라이온즈의 7회 초 공격, 선두타자 임완수가 내야를 빠져나가는 안타를 치면서 분위기가 묘해지기 시작했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시즌 타율 4할!! 홈런 52개, 121타점!! 다른 말은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오늘도 쓰리 런 홈런을 치면서 120타점을 넘겼죠. 성운 라이온즈 역사상 120타점을 넘긴 선수는 이 선수가 역대 2번째인데, 1998년 안드레 포드 선수가 137타점을 기록한 게 최고 기록입니다. 도쿄 올림픽만 없었다면 이 선수가 갈아치웠겠죠.”

“20경기 정도 손해를 봤으니까요. 이 기세로 144경기를 치렀다면 60홈런도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내년을 기대해 봐야죠. 저도 기대가 큽니다.”

가디언즈 배터리는 초구를 바깥쪽으로 뺐다.

이인영은 랜디 칼슨처럼 스윙 궤적이 좁은 녀석이, 아니라 어지간히 뺐다고 생각한 공도 배트에 걸리는 일이 많다.

도망치려면 확실하게 도망치는 게 답, 4대 1로 뒤지고 있지만 아직 경기를 포기할 단계는 아니라 신중한 승부를 이어갔다.

따악~!!

“아~진짜 … ”

2구는 잡아당겼지만 가디언즈 더그아웃으로 날아드는 파울, 타격이 완전 잘못됐다는 증거라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상적인 방향은 좌중간, 배터리가 몸 쪽 승부를 할 분위기는 아니라 바깥쪽에 초점을 맞췄다.

따아악~!!

“높게 떠가는 타구!! 중견수는 계속 뒤로!! 펜스!! … 앞에서 잡아냅니다!! 아~이인영 선수의 3번 째 타석은 아웃이군요. 다시 4할 밑으로 내려갑니다.”

“너무 떴어요. 그래도 약간 빗맞은 것 같은데, 저기까지 타구가 날아갈 정도면 파워는 역시 대단하네요.”

아웃이 되는 순간, 성운 라이온즈 벤치는 물론 관중석에서도 아쉬움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늘 따라 좌측으로 강하게 부는 바람, 드라이브도 아니고 높게 떴으니 바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야, 괜찮아. 다음 타석은 칠거야.”

“동정은 하지 마세요.”

이인영은 동료들의 위로를 쓴웃음으로 받아넘겼다.

한 타석 더 돌아올 수 있을까. 7회 초 1아웃이라 약간 아슬아슬, 내가 언제부터 기록을 의식하는 놈이었나. 매 타석마다 최선을 다할 뿐, 오닐이 아니면 내일이 있다며 마음을 다스렸다.

* * *

‘하아~이게 안 넘어 가네 … .’

이곳은 이인영의 친가, 집에서 아들의 경기를 지켜보던 이인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타구가 나올 때마다 들썩거리는 엉덩이, 슈퍼스타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 딱해 죽겠다며 혀를 끌끌 찼다.

“당신은 4할 치는 애한테 딱하다가 뭐야?”

“못 쳐본 사람은 말도 하지 마세요. 당신이 쟤 기분을 알아요?”

아내의 핀잔에 이인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현역 시절 3할 5푼이 최고 기록이었던 내가 4할에 도전하는 아들 기분을 어떻게 알겠나.

못 쳐봤으면 입 다물라는 핀잔에 진짜 입을 다물었다.

“아이고~쳐야지 왜 그걸 못 쳐”

성운 라이온즈 타자들이 아웃 될 때마다 어머니는 안타까운 박수를 쳤다. 쟤들이 쳐야 우리 아들이 한 타석 더 나올 텐데, 이인호도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웃이 쌓일 때마다 머리를 긁적거렸다.

결국 다시 타석에서 서지 못한 아들, 타율 0.399로 경기를 마무리 했다.

승리에 쐐기를 박는 쓰리 런을 때렸지만 뭔가 아쉬운 느낌,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는 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인영 선수, 오늘 승리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다시 4할 밑으로 내려가셨네요.”

“그런 것보다 잘한 것만 봐주세요. 오늘 홈런 쳤잖아요.”

역시 긍정적인 녀석,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봤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낯을 가렸던 아들, 유치원에 보냈는데 엄마가 없다며 울고불고 난리쳐서 선생님들의 혼을 쏙 빼놓은 적도 있다.

감당을 못한 선생님이 SOS를 불러서 직접 가서 데려온 기억이 선명한데, 이제는 저렇게 의젓하게 성장하다니 흘러간 세월을 실감했다.

“4할 밑으로 시즌 최종전을 치르게 되셨는데, 부담감은 없으신가요?”

“아~그런 건 얘기하지 마시라니까요.”

“팬들이 관심이 있는데 어쩌겠어요. 팬들의 뜻을 전달하는 게 제가 할 일입니다.”

듣기 전까지 물러나지 않겠다는 건가, 잠시 머뭇거리던 이인영은 나름대로 소감을 밝혔다.

“4할을 치면 좋겠지만 못 쳐도 상관없습니다. 올해 4할을 친다고 해도, 그게 완전체라는 증거가 될 순 없는 거니까요.”

4할 치면 이제 더는 성장할 여지가 없으니 하산하면 되는 건가.

프로 선수는 부족함을 채워가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 4할을 치던 못 치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돼야 한다.

4할을 치면 그 이상을 노리고, 그 밑에 머문다면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뿐, 4할을 내 최종 목표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 달리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관심, KBO 위원회는 이인영의 4할 달성을 기원하며 갖가지 이벤트를 기획했다.

진짜 4할 타율이 이뤄지면 이인영의 모교 동산고에 4000만원 장학금을 전달할 예정, 비 더 레전드 사이트에도 4할 타율 달성을 두고 유저들의 투표를 유도했다.

■ 이인영 선수의 최종 시즌 타율은? 선택하세요. 추첨을 통해 갖가지 상품을 드립니다.

예상 타율을 적어 투표하면 반영되는 시스템, 1등은 기념 배트와 상금 1000만원을 수령한다.

단 4명에게 주어지는 행운, 성운 라이온즈 구단도 4할 달성 기념품 제작에 착수했다.

과도할 정도로 달아오르는 분위기, 최근 흥행에 침체기를 겪었던 한국 프로야구 인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제 못 치면 죄인 되는 거네.’

이인영은 주위의 과도한 응원에 약간 부담을 느꼈다.

도쿄 올림픽에서 5홈런을 때렸어도 이 정도 관심은 못 받았는데, 역시 천 만 원이나 되는 상금이 욕심에 불을 댕긴 건가.

여기에 황금 배트까지 따라온다니 내가 팬이라도 욕심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다.

내가 4할을 못 쳐도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줄 수 있는 팬이 몇 명이나 되겠나. 어차피 인간은 탐욕의 동물일 뿐, 그러려니 하며 시즌 최종전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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