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불 붙여 드립니다 (20)
[사못남]
사진사건 이후, 이인영에겐 이런 별명이 붙었다.
사진을 못 찍는 남자에서 시작된 별명, 하지만 다른 의미도 추가됐다.
이인영의 현재 타율은 0.395(412타수 163안타 85볼넷), 4할을 치려면 남은 3경기에서 12타수 7안타는 쳐야 한다.
아주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지만 어려운 게 사실, 그리고 4할을 못 친다는 건 욕이 아니라 칭찬으로 하는 말 아닌가?
하지만 몇몇 팬들은 4할 도전을 두고 진지한 논의를 거듭했다.
■ 4할 도전이 불가능한 이유
1) 최고의 선수, 최악의 선수와의 격차는 매년 줄어들었다.
2) 아무리 뛰어난 개체라도 생물학적 신체 능력은 큰 차이가 없다.
3) 수비 능력이 과거에 비해 향상되고 선수들의 능력이 전문화 되었다.
4할 도전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대략 3가지,
과거에는 한 선수가 압도적인 기록을 쌓아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한 선수가 때린 홈런이 한 구단에 맞먹는 시절도 있었을 정도, 하지만 이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까다로운 드래프트를 거쳐 선발되는 과정도 한 몫, 다들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야구라면 누구보다 잘 하는 선수들이 프로에 뛰어드는 거 아닌가.
그 중에서도 생물학적으로 뛰어난 개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큰 차이가 없다는 게 학계의 주장, 실제로 지난 80년 동안 어느 리그에서도 4할 타자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절대 불가능한 일, 하지만 일부 팬들은 그 논리를 조목조목 반대했다.
■ KBO에서 4할 타자가 가능한 이유
1) KBO 리그의 평균 타율은 MLB나 NPB보다 높다.
2) KBO는 선수간의 실력 격차가 꽤 큰 편이다.
3) KBO엔 수비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많지 않다.
눈물이 나지만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현실,
지난 2017년, KBO는 평균 타율 0.286이라는 정신 나간 수치를 찍었다. 3할을 친 선수만 무려 42명, 그렇게 어렵다는 3할 타자가 한 구단에 3~4명씩 나왔다.
여기에 형편없는 수비능력을 가진 선수들도 많고, 뭣보다 선수 개인 간의 실력 격차가 크다는 건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KBO의 몇몇 선수들은 일본 선수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 해설위원은 국가대표 대항전에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는데, 잘 생각하면 자랑이 아니라 자기 얼굴에 침 뱉기다.
일본은 국가대표 팀만 3~4개 차릴 수 있는 인재 풀이 있는데, 한국은 매일 그 밥에 그 나물 아닌가.
선수층이 얇아 리그 성적이 비정상적인 경우가 꽤 있는데, 일부 해외 기자들은 이인영의 성적도 그런 식으로 폄하했다.
50홈런을 치는 선수가 4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다니, KBO 리그 수준을 알 수 있다며 저격에 나섰다.
‘4할 치면 허접 리그 인증하는 거야?’
일이 이렇게 되자 이인영의 입장도 미묘해 졌다.
4할을 치면 KBO 리그 수준 낮다고 선전하는 꼴인가 왠지 쳐선 안 될 분위기, 하지만 KBO 수준이 낮다는 논리는 다음 해에 열리는 2021 WBC에서 갚아주면 되는 거 아닌가.
거기서 쳐내면 해외 기자들도 뭐라고 못하겠지, 별 생각 없이 타석에 섰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시즌 타율 0.395, 홈런 50개 … 설명을 하는데 왠지 기분이 좋지 않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마치 4할 치면 KBO의 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휘갈겼던데, 무슨 의도로 그런 기사를 썼는지 이해를 못하겠네요.”
중계석에 앉은 박한우 위원은 오늘 따라 핏대를 세웠다.
KBO 리그가 다른 리그보다 수준이 낮아 4할 도전이 가능한 거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렇잖아도 한 칼럼에서 반박 기사를 내밀었다.
2017년, KBO가 평균 타율 0.286를 기록한 건 사실이지만, 공인구를 교체하면서 이듬 해 바로 0.267로 하락했다.
2018, 2019 시즌도 비슷한 수준, 올해 0.276로 다소 상승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리그 수준을 운운할 정도는 아니다.
정말 KBO리그 수준이 낮았다면 도쿄 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안방에서 금메달은 빼앗긴 일본은 이인영만 없으면 한국은 아무것도 아닌 논리를 펴고 있는데, 슈퍼스타도 KBO 리그의 일부일 뿐, 이인영이 잘났다고 리그 전체를 폄하할 이유는 없었다.
‘승부 해?’
투수 입장에서도 고민되는 승부, 도망치면 나는 수준 낮은 선수 인증인가.
국내 안팎의 기자들이 쏘아올린 KBO 수준 논란, 팬들도 이인영의 4할 타율 달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안타다!!]
-> 오늘도 KBO 리그의 수준이 1떨어졌습니다.
-> 그 개소리 그만해라. 이인영 지금 일본 가도 3할 5푼에 40홈런은 칠 타자다.
->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 하냐?
-> 일본 국가대표 타격코치가 한 말인데? 드라이브 타구 비율이 높아서 타율이 높은 건 당연하다고 했잖아.
-> 실제로 가서 친 게 아니잖아. 국가대표경기에서 잘했다고 거기서도 잘 한다는 보장 없지.
-> 그렇게 우리나라를 폄하하고 싶냐?
-> 폄하하는 게 아니라 냉정하게 보는 거다. 좋다 좋다 하면 발전이 있냐? KBO 수준 낮다고 욕하던 놈들이 이런 때 변호하면 애국하는 줄 착각하지.”
팬 중에는 안티 팬도 있는 법, 이인영을 좋게 보지 않는 팬들은 진짜 실력은 해외로 나가봐야 안다는 주장을 앞세웠다.
여기서 4할을 치던 50홈런을 치던 해외에선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이인영을 지지하는 팬들은 바로 반격에 나섰다.
[걱정 하지 마라. 메이저리그가 이인영에 관심 있는 거 모르는 사람 있냐?]
-> KBO 수준 논하는 기사가 나왔다는 거 자체가 미국 본토에서도 관심이 있다는 거다. 너희들이 걱정 안 해도 얘는 조만간 메이저리그 무대 밟게 돼 있어.
-> 국내에서 1등도 못하는 것들이 남 평가는 잘하지. 얘는 스무 살에 이미 한국 1등이고, 억대 연봉도 예약해 놨다. 너희들한테 평가받을 입장이 아니야.
[그리고 그 기사 읽었냐? 이인영 하이너 로드리게스하고 비교됐다.]
얼마 전 한 미국 기자는 이인영을 한국의 하이너 로드리게스로 평가했다.
하이너는 1980년대를 풍미한 선수, 지금이야 콜롬비아는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나라지만 예전에는 야구도 유명해 제법 많은 메이저리그 스타를 배출했다.
하이너는 그 중에서도 눈에 띄던 선수, 통산 타율 0.329, 홈런 393개, 도루 233개를 기록하며 콜롬비아 국적 선수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1986년에 기록한 타율 0.398은 지금도 20세기 최고 타율로 남아 있고, 30홈런 시즌을 8번이나 만들어 냈을 정도로 파워도 대단했던 선수, 지금도 역대 완벽한 야구 선수를 논할 때 반드시 입에 오르내린다.
일부 여론이지만 하이너까지 소환됐다는 건 미국에서도 이인영의 재능을 높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 물론 그걸 증명하는 건 본인의 몫이었다.
따악~!!
[당긴 타구가 이번에는 좌중간에 떨어집니다!! 이인영 선수는 오늘 두 타석 모두 안타를 기록하는 군요.]
[이렇게 되면 타율이 0.398까지 올라가네요. 다음 타석에서 또 치면 진짜 4할입니다.]
꿈의 기록까지 앞으로 안타 1개,
3대 3, 팽팽한 균형에서 이인영은 세 번째 타석을 맞이했다.
“야, 그만 쳐라. KBO 수준 떨어진다.”
가디언즈의 포수 양두호는 트래시 토크를 시도했다. 본인이 노력을 해서 선수 간의 차이를 좁힐 생각을 해야지, 앞서가는 선수 발목 잡겠다는 건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슈퍼스타는 흔들림 없이 다음 공을 기다렸다.
따아악~!!
맞는 순간 홈런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타구,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인터넷 게시판은 폭발했다.
시즌 51호 홈런이자 4할 타율에 올라서는 한 방, 리그 수준 논란을 넘어 대단한 기록이라는 건 분명했다.
다음 타석에서 이인영은 볼넷을 얻어내고 경기를 마무리, 여느 때처럼 수훈 선수 인터뷰가 이어졌다.
“이인영 선수, 드디어 4할 타율에 올라서셨네요.”
“네,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 남은 경기도 출전하실 건가요?”
현재 리그 타율 2위는 선화 이글스의 전인규, 0.342로 높은 편이지만 1위와는 꽤 차이가 있다.
4할 타율에 맞춰 시즌을 마무리 하는 게 비겁한 일일까, 50홈런도 달성했으니 할 수 있는 건 다 한 시즌, 하지만 이인영은 라인업에서 빠지는 건 선수에게 치욕이라는 입장을 내세웠다.
“잘 아시겠지만 저는 작년에 부상으로 석 달도 못 채우고 시즌을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프로에게 그것만큼 치욕적인 일이 있을까요? 꾸준히 출장하는 게 선수에겐 무엇보다 값진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4할 타율보다 시즌 전 경기 출장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다음 날, 이인영은 예고대로 선발 출장을 강행했다.
구단관계자가 굳이 그럴 필요 있느냐며 말리기도 했지만 무시, 첫 타석부터 호쾌한 스윙을 선보였다.
따악~!!
“외야로 뻗어나가는 타구!! 아~우익수 정면이군요!! 4할 밑으로 내려가는 이인영 선수입니다.”
“그래도 멋있습니다. 전 경기 출장이 무엇보다 값진 기록이라니 … 지금 가슴이 찔리는 선수들이 몇 몇 있을 겁니다.”
박한우 위원은 기록을 위해 경기를 포기했던 역대 선수들을 저격했다.
야구는 기록의 게임, 기록을 중시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빠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건 양반이고 연봉협상이나 구단의 처우에 불만을 품고 대놓고 라인업에서 빠지거나 태업을 하는 베테랑들도 많다.
비난은 순간이고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 그렇게 기록을 세워봤자 따라오는 건 논란과 불명예, 메이저리그라고 다를 것 없다.
“4할을 못 친 것보다 내일 경기가 없다는 게 무엇보다 아쉽습니다.”
1986년, 기자들은 4할 타율 달성에 실패한 하이너에게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하이너는 시즌이 끝난 걸 아쉬워 할 뿐, 기록 달성은 큰 의의를 두지 않았다.
프로에게 정말 필요한 건 한 경기라도 더 뛰겠다는 의욕 뿐, 박한우는 위원은 어린 선수지만 프로 의식은 누구보다 뛰어나다며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여기서 도망치면 우리가 욕먹지.’
가디언즈 배터리도 각오를 다졌다.
여기서 도망쳤다간 평생 팬들의 입에 오르내릴 치욕, 감독대행을 맡은 유재덕 수석코치도 정면 승부를 지시했다.
오늘 경기가 끝나면 전에 못 받았던 사인을 받을 생각, 딸이 하도 극성을 부리기에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따아악~!!
“우와아~!!!!”
두 번째 타석에서 터진 시원한 대포 한 방(52호),
서울까지 달려온 라이온즈 팬 500여 명은 베이스를 도는 이인영을 향해 슈퍼스타를 연호했다.
한 타석 만에 다시 4할 복귀, 먼저 홈을 밟은 동료들은 경의의 뜻이 담긴 오른손을 내밀었다.
나이는 어려도 프로 의식은 우리보다 나은 녀석, 내가 저 입장이었다면 오늘 경기 출전할 수 있었을까.
기록이 은근 의식 될 텐데 별 긴장 없이 배트를 휘두르는 것도 대단, 나머지 동료들과 세리머니를 마친 이인영은 더그아웃에서 생수 한 병을 입에 털어 넣었다.
물 먹는 모습도 시원시원, 예전이라면 곰이라고 놀려댔을 팬들도 상남자라며 칭찬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