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56화 (56/309)

56화. 불 붙여 드립니다 (18)

[올 시즌 누적 관중 100만 명 돌파]

[팬 여러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앞두고 성운 라이온즈 구단은 작은 이벤트를 마련했다.

성운 라이온즈의 첫 야구장은 1948년에 개장한 시민 야구장,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구장이었고 열악한 환경 탓에 선수나 팬들 모두 불편이 많았다.

그러다 지난 2016년 겨우 장만한 새로운 보금자리, 지난 4년 동안 라이온즈 파크는 285만 명의 누적관중을 기록했다.

4년 동안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한 해 평균 70만 명 정도의 누적관중을 기록한 것, 그런데 올해 110만이라는 놀라운 누적집계를 달성했다.

경기 당 관중은 14800명 정도, 작년보다 평균 무려 6800명이 증가했다. 좋은 성적도 한 몫 했겠지만 어쨌든 이건 팬들의 성원 덕분, 라이온즈의 간판선수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관중석으로 난입해 팬들과 셀카 사진을 찍었다.

“와아아~!!”

이인영도 휴대폰을 들고 외야로 이동, 팬들의 열렬한 환대를 뚫고 겨우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을 휴대폰에 담는 건 무리, 한참을 고민을 하다가 왼손으로 카메라를 들어 자신의 얼굴은 화면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최대한 많은 팬들이 카메라에 담길 수 있도록 한 것, 덕분에 구석에 얼굴만 달랑 튀어나온 이상한 사진이 나왔다.

얼핏 보면 합성사진 같지만 리얼, 특이한 컨셉이라 슈퍼 루키는 만족한 얼굴로 사진촬영을 마무리 했다.

이 사진은 경기가 끝난 후, 전광판에 띄워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이벤트에 쓸 예정, 차명석 단장의 마케팅 전술에 모기업 관계자도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년에도 단장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모기업 관계자의 귓속말에 차명석 단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올해 흥행기록을 세우면 모기업에서 자리 하나 만들어 준다는 말을 듣고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건가.

물론 성운 그룹은 예전에 비해 더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예전부터 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성운 그룹의 김태성 회장은 야구에 많은 투자를 해 왔다. 새 야구장 건립도 김태성 회장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 하지만 팀 성적이 안 나오면서 지원도 약간 줄기 시작했다.

그런데 올해 성과를 냈으니 투자를 할 가치가 있겠지, 내년에는 돈 좀 써서 한국시리즈 우승 해보자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래, 이것도 나쁘지 않지.’

차명석은 그룹의 제안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기업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래봤자 용의 꼬리, 닭의 머리라도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게 좋지 않겠나.

뭣보다 이인영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등장하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구단, 저 선수와 함께라면 그깟 우승 못하겠나. 올해도 우승하고 내년에도 우승하자며 큰소리를 질렀다.

“너 오늘은 50홈런 쳐야 된다?”

“그러려고 아껴둔 거예요. 야구엔 스토리가 있어야죠.”

“저 자식은 허풍은 … ”

“홈런 49개 친 선수한테 그런 말 하셔도 설득력 없어요.”

경기를 앞두고 성운 라이온즈 선수단은 잡담을 나눴다.

창원 레이더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홈런 2개를 추가한 이인영은 이제 꿈의 50홈런에 한 개차로 다가섰다.

하지만 홈으로 돌아온 이번 시리즈에선 아직 홈런이 없는 상황, 오늘은 팬 서비스를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나.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스윙을 돌리기로 마음을 정했다.

“플레이 볼!!”

그렇게 시작된 경기, 선발 존 워커는 한진 타이거스의 1회 초 공격을 삼자 범퇴로 틀어막았다.

2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둔 선수라 성운 입장에선 반드시 잡아야 하는 인재, 모기업의 지원도 약속 받았겠다. 차명석 단장은 돈주머니를 어떻게 쓸지 셈법을 시작했다.

존 워커의 올 시즌 성적은 15승 7패, 평균자책점 3.22, 이 정도면 특급이라고 봐도 좋지 않겠나.

일본이나 미국으로 진출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어지간한 금액이면 잡을 생각, 다른 용병을 구할 수도 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선 역시 확실한 에이스가 필요하다.

이인영의 뒤를 받쳐 줄 용병 타자도 필수, 없는 살림에 김상규가 좋은 역할을 해 주면서 돈을 아꼈지만 돈주머니가 들어오자 일단 써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면승부다.’

한진 타이거스의 포수 조익현은 공격적인 볼 배합을 요구했다.

KBO리그에서는 유리한 볼 카운트에서 배터리가 공 하나를 빼는 특성이 있는데, 실제로 성운 라이온즈의 투수 코치 노진우(통산 114승)는 아무리 좋은 투수도 좋은 공을 4~5개 연속해서 던지는 건 무리라는 지론을 내세웠다.

이 이론을 받아들여 성공한 선수가 존 워커, 한국야구 1년차엔 무리한 정면승부를 많이 하면서 피를 봤지만, 유인구를 적절히 섞어주는 피칭을 하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타이거스의 포수 조익현은 그 반대의 성향, 시즌 초만 해도 도망치는 볼 배합을 했지만 지금은 홍현구를 상대로 직구 승부를 걸었다.

딱~!

“파울입니다. 카운트는 원 볼 투 스트라이크를 유지하는 군요.”

“확실히 조익현 포수의 볼 배합은 공격적이네요. 어제 경기에서도 성운 라이온즈가 6회 말에 3대 2로 따라붙었는데, 도망가지 않고 2루 땅볼 - 삼진으로 위기를 넘겼거든요. 하지만 홍현구 선수도 그냥 당하진 않을 겁니다.”

배트 박스에서 오른 발을 뺀 홍현구는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여기서 또 빠른 볼이 들어올까.

카운트에 여유가 있으니 유인구를 던져 볼 수도 있지만 타이거스의 선발 펠릭스 로페즈는 구위가 좋은 편, 일단 빠른 볼에 초점을 뒀다.

딱~!

“아~”

몸 쪽으로 들어온 빠른 볼, 예상은 했는데 왜 맞추질 못했을까. 타구 방향을 응시하던 홍현구는 천천히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나는 대놓고 정면승부네.’

후속 타자 임완수는 몸 쪽을 집중 공략 당했다.

희생타에 최적화 된 선수라 선두 타자의 출루 여부에 따라 생산력이 달라지는데, 원래 힘이 떨어지는 선수라 이렇게 빠른 볼을 몸 쪽으로 밀어 넣으면 공략하기 어려웠다.

결국 테이블 세터진은 별 다른 성과 없이 전멸, 그래도 홈 팬들의 응원은 죽지 않았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시즌 타율 0.392, 홈런 49개, 112타점. 삼관왕을 향한 여정은 순조롭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9타수 3안타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어지간한 선수라면 타율이 유지 됐을 텐데, 하락 폭이 눈에 띄네요.”

“그래도 이인영 선수상대로는 몸 쪽 승부하기 어려울 겁니다. 무리하게 승부를 할 상황도 아니고 말이죠.”

조익현 포수는 곁눈질로 상대를 살폈다.

올 시즌 이 자식에게 내 준 홈런은 2개, 그래도 지금까지 18타수 5안타로 그럭저럭 밀리지 않는 승부를 했다.

승부해서 득이 될 건 없지만 여기서 바깥쪽을 주면 타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역시 날 겁내고 있다고 미소 짓겠지, 앞 선 2경기에서도 일단 몸 쪽을 보여주고 바깥쪽으로 승부를 걸어 잡아냈다.

오늘도 같은 수법이 통할까, 잠깐 망설이다 몸 쪽을 요구했다.

따아악~!!!!

자비 없는 풀스윙, 결과를 예상한 로페즈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한참을 날아가 라이온즈 파크 우측 상단에 처박힌 타구, 현상금 500만원을 잡기 위한 관중들의 발걸음은 분주해졌다.

[역대 최연소 50홈런 달성!!]

전광판을 수놓은 대기록, 이인영은 최대한 빨리 베이스를 돌았다.

마지막 홈경기에서 홈런 하나 쳤다고 팬 서비스를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건 시작일 뿐, 마음속으로 ‘한 그릇 더’를 외치며 홈을 밟았다.

‘인정한다. 안 하면 어쩌겠어.’

한편, 성운 라이온즈의 한승규 감독은 보호 펜스 앞까지 나와 양손을 내밀었다.

전지훈련 때만 해도 이 자식이 내 기록을 넘어설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입만 산 건방진 애송이 정도로 여겼는데 겪어보니 진짜 물건, 한승규 감독은 본래 속이 좁은 인간이지만 이 녀석의 활약 덕분에 감독 부임 첫 해애 플레이오프 직행이라는 영광을 얻었다.

인정하지 않는다면 누워서 침 뱉는 꼴, 개인적인 친분은 둘 째 치고 기량만큼은 인정했다.

내가 최고라고 믿고 살아온 인간이 베풀 수 있는 최고의 호의, 이인영도 감독을 더는 미워하진 않았다.

이미 넘어선 존재에게 악감정을 품어서 어쩌겠나. 사람이란 더 높은 곳을 봐야 하는 법, 이미 넘어선 존재에겐 흥미 없었다.

선취점을 내줬지만 한진 타이거스는 2회 초 공격에서 1점을 내며 추격에 성공, 이후 투수전이 이어지며 경기 초반은 팽팽하게 전개됐다.

“자, 이제 경기는 4회 말로 접어듭니다. 선두 타자는 이인영 선수, 오늘 첫 타석에서 시즌 50호 홈런을 달성했습니다. KBO 역대 4번 째 50홈런 시즌!! 좌타자로는 역대 첫 번째 기록이었습니다.”

“오늘 경기를 제외해도 아직 3경기가 더 남았거든요. 이 어린 선수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서자 다른 경기를 관람하고 있던 팬들은 이쪽으로 시선을 틀었다.

남의 팀 선수라도 관심이 가는 건 당연, 역대 최소 경기(121게임), 최연소 50홈런 달성자는 이렇게 KBO의 흥행을 이끄는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도망치네]

[어쩔 수 없지, 이 상황에서 승부할 수 있는 투수가 있을까?]

-> 적어도 KBO에선 없지. 일본의 괴물 투수들도 쳐 맞았는데

카운트가 투 볼이 되자 타이거스 팬들도 그러려니 하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선수는 몰라도 이 자식 앞에선 도망치는 게 정답, 하지만 자존심이 상한 한진 타이거스 배터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빠른 볼에 강한데 변화구에 약한 타자들은 왜 그런 걸까. 변화구보다 빠른 볼이 더 치기 어렵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내용, 하지만 이 이론엔 약간의 허점이 있다.

세상에 변화구에 타이밍을 두는 타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타자의 자세는 처음부터 빠른 볼을 치기 위해 최적화 돼 있다. 이 타이밍에 변화구를 던지면 타자는 대응할 수 있을까.

이게 이류와 일류를 가르는 차이, 2군에서 아무리 좋은 활약을 해도 1군에서 무너지는 경우는 변화구 대응 능력 부족이다.

실제로 올 시즌 타자들의 헛스윙율을 살펴보면 빠른 볼 13%, 커브 25%, 슬라이더 28%, 체인지업은 35%의 헛스윙율을 기록했다.

변화구가 빠른 볼보다 치기 어려워서 그런 게 아니라, 빠른 볼에 맞춰진 자세 때문에 대응을 못했다는 뜻, 하지만 타자가 변화구가 들어오는 타이밍을 읽어냈다면 결과는 장담 못한다.

‘빠른 볼이냐 변화구냐, 그것이 문제로다.’

조익현 포수는 고뇌를 거듭했다.

빠른 볼이 맞아나가는 타이밍에 또 빠른 볼을 던지면 어쩌자는 건가. 그렇다고 변화구를 던졌다가 걸리면 끔찍한 결과가 따라온다.

지금 상황은 1사 주자 1루, 거르고 김상규를 상대하는 게 답일까.

답이 없는 문제를 푸느라 시간은 계속 지체됐다.

“주의!!”

이때, 주심이 배터리에 경고를 줬다.

경기 속행을 위해 올해부터 적용되는 규칙, 배터리가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끈다고 판단되면 주심은 경고를 내릴 수 있다.

주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볼 카운트 하나가 올라가는 무시무시한 벌칙, 로페즈는 우리가 무슨 시간을 끌었냐며 격분했지만 주심은 재차 경고를 줬다.

타이거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급할 게 없는 이인영은 차분하게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 분이 오셨군요.’

변화구, 빠른 볼 타이밍에 앞발을 뻗었지만 영리한 곰은 특유의 손목 컨트롤로 타이밍을 잡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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