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55화 (55/309)

55화. 불 붙여드립니다 (17)

잘 흘러가던 야구 판에 쓸데없는 잡음이 끓기 시작했다.

진원지는 베어스의 중심타자 호세 페르난데즈, 페르난데즈는 시즌 초만 해도 이인영과 홈런 레이스 경쟁을 펼치며 주목을 끌었지만 7월 들면서 페이스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성적은 0.266, 홈런 32개, 90타점. 좋은 성적이지만 시즌 초반 기세에 비하면 분명 아쉬웠다.

성적은 둘째 치고 문제는 태도, 페르난데스는 작년 시즌 WAR 7.38을 찍었지만 시즌 MVP 획득에는 실패했다. MVP 투표 43표 받았지만 같은 팀 동료 김재규에게 밀린 것, 이것도 논란이 있었지만 김재규도 WAR 7.37을 기록했기에 사실상 활약은 동률이었다.

같은 팀 동료가 받았으니 축하해주고 끝냈다면 좋았을 텐데, 페르난데스는 차별을 받았다며 불만을 표했고, 베어스 프런트는 페르난데스의 입장을 생각해 연봉 협상에서 꽤 높은 대우를 해줬다.

[축하한다]

그제 서야 나온 축하 인사, 어떤 팬은 돼지 입에 돈 물려주니까 잠잠해 졌다는 올리기도 했다.

프로야구 선수가 경쟁심이 없으면 어떻게 프로 생활을 하겠나. 다른 선수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건 좋은 일이지만, 페르난데스의 행동은 누가 봐도 어른답지 못했다.

[이인영, 특혜 받고 있다]

그리고 올해, 페르난데스는 질투의 화살을 이인영에게 돌렸다.

올 시즌 47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건 라이온즈 파크가 좁아서 그렇다느니, 심판들이 특혜를 주고 있다느니 언론 플레이를 하는데, 베어스 프런트는 단속은 커녕 손을 놔버렸다.

[페르난데스, 너도 특혜 받고 있다. 내 연봉이 올 시즌 얼마인지 알아? 2700만원이야. 뭘 잘났다고 떠들어?]

이인영도 지지 않고 SNS에 반격 글을 올렸다.

페르난데스의 올해 나이는 27살, 작년 시즌 연봉은 100만 달러였지만 올해는 145만 달러로 급등했다.

외국인 용병을 제외하고 저 나이에 이만한 연봉 받는 선수가 있는가? 현재 프로야구 선수 중 27살 최고 연봉은 3억 2천 만 원, 페르난데즈가 받는 연봉의 반도 못되는 수준이다.

외국인 용병이라 어린 나이에 10억이 넘는 돈을 받으면서 무슨 차별을 논하는가.

그리고 페르난데스의 페이스가 떨어진 건 심판진의 텃세가 아니라 뚜렷한 약점 때문,

지난 9월 5일 경기에서는 안타 한 개를 기록했지만 삼진 3개를 당했다. 삼진을 당한 공은 모두 좌투수 상대 바깥쪽으로 흐르는 변화구, 이런데 본인이 차별을 당해서 성적이 떨어진 건가?

이인영은 차별을 논하기 전에 네 약점부터 고칠 생각을 하라며 막타를 날렸다.

[흑돼지 도살 킥 작렬, 속이 다 시원하다]

-> 페르난데스 이 돼지는 프런트가 제어를 못하니까 자기가 왕인 줄 아네.

-> 차별은 무슨 차별을 받아 특혜지, 재계약하지 마라.

베어스 팬들도 단체로 들고 일어났다.

사실 페르난데스는 한국으로 건너올 때부터 말이 많았다. 일본에서부터 불성실한 태도로 논란에 휩싸였고, 뭣보다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해 따로 노는 모습을 보여 50경기도 못 채우고 방출 당했다.

이런 선수를 영입했으니 베어스 팬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래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논란을 잠재웠지만 올해 기어이 문제가 터졌다. 코칭스태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프다며 퇴근했는데, 프런트는 성적이 좋다며 감싸기에 바빴고, 심지어 감독에게 원하는 대로 다 해주라는 정신 나간 지시를 내렸다.

국내 선수가 이랬으면 100% 어떤 조치가 내려졌겠지, 이런데도 페르난데스가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질려버린 동료들도 페르난데스를 감싸주지 않았다.

[내 연봉이 올해 얼만지 알아? 2700만원이야, 넌 용병이라 많이 받는데 뭘 잘났다고 떠들어?]

반면, 성운 라이온즈 구단 관계자들은 이인영의 발언에 바짝 긴장했다.

작년 연봉협상에서 프런트는 3300만원을 제시했지만, 이인영은 부상으로 3개월 밖에 뛰지 못했다는 이유로 연봉을 동결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2년 차 시즌에 프랜차이즈 팀 기록을 갈아치웠는데 억대 연봉이 문제일까. 거기다 페르난데스가 불을 붙인 사건 때문에 팬들은 연봉 좀 잘 챙겨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대 최초 1000% 인상 가자]

-> 1000% 인상이면 2억 7천만 원? 그 정도면 괜찮을 듯

-> 어지간한 용병 2명 노릇을 혼자서 하고 있다. 그 이상 줘도 뭐라 못 할 듯

벌써부터 불타오르는 협상 테이블, 이인영도 막판 스퍼트를 위해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95, 홈런 47개, 110타점!! 프로야구의 역사에 남을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0.295를 잘못 표현한 게 아닙니다. 보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는 전광판에 찍힌 수치를 보고 경악했다.

0.395라니, 아무리 KBO가 MLB보다 떨어지는 수준이라고 해도 트리플 A 선수들이 진출하는 프로 리그 아닌가.

이런 무대에서 4할에 가까운 타율이라니, 스카우터는 표기가 잘못 된 거 아니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이게 맞다는 거였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 세인트루이스의 시카우터 존 맥긴시는 진지한 얼굴로 경기를 지켜봤다.

‘풀히터인가?’

2루수가 외야 잔디 위에 올라 선 시프트, 맥긴시는 이인영을 극단적인 풀 히터로 생각했지만, 슈퍼루키는 시프트를 비웃듯 밀어 쳐서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뽑아냈다.

간결한 스윙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 한 눈에 봐도 뛰어난 배트 컨트롤, 왜 이런 선수를 몰라 봤을까.

애틀랜타가 투수로 영입하려 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누가 봐도 타격 재능이 뚜렷한 선수, 올해 나이가 스무 살이라는 것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따악~!

“아~”

이어지는 두 번째 타석, 이인영은 이번에도 좌중간으로 보냈지만 맞자마자 이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1루로 뛰었고, 타구가 잡힌 걸 확인하고 나서야 엔진에 제동을 걸었다.

시즌 막바지라 한 타석이 아쉬운데, 아웃 카운트가 하나 올라갈 때마다 살이 깎여나가는 기분, 동료들이 지금도 훌륭하다고 칭찬을 해줬지만 배가 차질 않았다.

‘이번엔 친다.’

세 번째 타석, 이인영은 바깥쪽으로 멀어지는 초구를 지켜봤지만 스트라이크 콜이 울렸다.

꽤 멀어 보이는데 잡아준 공,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졌지만 이인영은 차분하게 다음 공을 기다렸다.

딱~!

“파울입니다. 이인영 선수가 이런 공에 배트가 나오는 선수가 아닌데 말이죠.”

“초구 스트라이크가 영향을 준 거겠죠. 그래도 지금 공은 그냥 지켜보는 게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심이 무너지면서 커트는 해 냈는데, 이러면 시즌 내내 이어진 리듬이 무너질 수가 있어요.”

3구를 때렸지만 3루수 글러브에 들어가면서 아웃,

이인영은 고개를 저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서 완전히 무너진 리듬, 심판 판정에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마추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이게 나라고? 이 꼴사나운 놈이?’

그래도 더그아웃에서 문제의 장면을 돌려봤다.

스트라이크 콜 시비를 가리겠다는 게 아니라 아웃이 된 원인을 찾는 중, 초구는 어쩔 수 없는 거고 문제는 2구째부터였다.

눈에 띄게 가라앉는 뒷발, 이러면 아무리 힘이 좋아도 힘을 실어 타구를 때릴 수가 없다. 기본을 망각한 스윙, 더그아웃 뒤편에서 배트를 잡고 재정비에 나섰다.

프로가 그런 꼴사나운 스윙을 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 두 번의 실수는 없다며 이를 갈았다.

“호옴~런!! 이!! 인!! 영!!”

어렵게 잡은 4번 째 타석, 첫 타석 2루타 이후 연거푸 실망스러운 타격을 보여줬지만 팬들은 홈런을 연호하며 변함없는 믿음을 과시했다.

그 사이, 이인영은 문제의 뒷발을 지탱하는 흙을 단단히 다졌고 배트를 공중에 몇 번 돌리며 자세를 잡았다.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약간 빠지는 공에 울리는 스트라이크 콜, 예상했던 일이라 이렇다 할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안 나오네?’

김학겸(창원 레이더스) 포수는 다시 바깥쪽 공을 요구했다.

자세가 무너지기에 또 유도해 봤는데 움직이지 않는 녀석, 제까짓 게 안 치면 어쩌겠나. 심판이 잡아주면 그만, 하지만 2구는 콜이 울리지 않았다.

“아~이거 잡아줬던 건데”

자기도 모르게 흘린 혼잣말, 그러건 말건 주심은 자세를 낮춘 채 다음 공에 집중했다.

“다시 바깥쪽!! 볼입니다. 카운트는 투 볼 원 스트라이크”

“이게 이인영 선수의 본래 모습이죠. 바로 또 수정을 합니다.”

박한우 위원은 흐뭇한 얼굴로 양아들의 타격을 지켜봤다.

잘 나가다가도 슬럼프에 빠지는 선수들이 많은데, 시즌 내내 일정한 타격을 하고 있는 녀석, 미래를 읽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따아악~!!

“우와아~!!!”

바깥쪽 공을 짧게 끊어 친 스윙, 하지만 타구는 쭉쭉 뻗어 좌측 스탠스에 떨어졌다.

시즌 48호 홈런, 50홈런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이인영은 헬멧을 눌러쓰며 1루로 향했다.

쳐 맞은 배터리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뿐, 김학겸 포수는 홈 플레이드를 사정없이 즈려밟는 이인영을 향해 뭐 씹은 표정을 지었다.

내 신체 일부도 아닌데 기분이 더러운 건 왜일까. 누가 내 그림자를 밟아도 기분이 나쁜데, 더군다나 홈은 내가 사수해야 할 구역, 도둑놈에게 안방을 농락당한 기분이랄까.

생각할수록 기분 나쁜 홈런, 하지만 정당한 침입이라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제 좀 웃자.’

세리머니까지 마친 곰은 그제야 여유를 되찾았다.

뭐든 완벽하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나름 만족스러운 경기를 했기에 인터뷰에서도 밝은 미소를 보였다.

“경기 중반에 스트라이크 콜이 약간 불리하게 불린 것 같은데요.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하신 건가요?”

“글쎄요.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이인영은 스트라이크 콜에 문제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주심은 내가 그 공을 칠 수 있다고 보고 콜을 한 거 아닌가. 못 쳤다면 내가 그 기대를 저버린 것, 왈가왈부 하고 싶진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역시 대인배, 아니, 대웅배라고 해야 하나]

-> 곰 드립 그만 쳐라. 지겹다.

-> 스트라이크 콜에 이렇게 대응하는 선수 처음 봤다.

-> 정말 크게 될 선수, KBO에서 뛰기엔 아깝다.

한국 팬들은 이인영의 태도에 박수를 보냈다.

베테랑들도 스트라이크 콜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 갓 스무 살 된 선수가 이런 의젓한 태도를 보이다니,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 야구를 대하는 태도, 빠질 게 없다며 칭찬 일색을 늘어놨다.

“3억 못 줄 이유 없다.”

차명석 단장은 팬들의 환호에 쐐기를 박았다.

2년 차 선수에게 3억 연봉을 준 적이 있었나, 하지만 지금 활약이라면 그 이상 줘도 이상할 게 없는 선수, 페르난데스의 저격 사건도 있고, 이 정도 대우는 해줘야 우리 선수의 체면이 설 것 아닌가.

3억 원 발언으로 차명석 단장도 라이온스 팬들의 지지를 받게 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