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54화 (54/309)

54화. 불 붙여드립니다 (16)

[44, 45, 46, 47]

[전설을 향한 도전은 시작됐다]

이인영은 베어스와의 3연전에서 홈런 4개를 몰아치며 50홈런을 눈앞에 뒀다.

KBO 역사상 단 3번뿐인 기록, 팬들은 열광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그 진격을 막기 위해 고심을 거듭했다.

시즌 6위를 달리고 있는 NA 자이언츠도 그 중 하나, 플레이오프 마지노선인 5위와의 경기 차는 겨우 1.5게임 이다. 이인영을 막지 못하면 6년 동안 이루지 못한 꿈은 올해도 이대로 종료, 코치진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거듭했다.

“유격수를 외야로 빼버릴까요?”

“유격수를?”

최필준 코치는 유격수를 외야로 돌리는 시프트를 주장했다.

타구의 생산력은 삼진 < 팝업 < 땅볼 < 플라이볼 < 라인드라이브, 이렇게 나열할 수 있다.

이인영은 드라이브 타구 비율이 높아 까다로운 유형, 그렇다면 땅볼 안타는 그냥 주고 외야에 야수를 하나 더 배치하는 게 맞지 않나?

사실 좌타자 입장에서 유격수 쪽으로 땅볼을 굴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수비 위치도 고려해야 하고 지금이 몇 아웃인지, 주자가 있는지, 볼 카운트도 생각해야 한다.

그런 복잡한 걸 고려하고 유격수 땅볼을 치느니 2루타를 노리는 게 생산적, 자이언치 코치진은 이 시프트가 잘 먹힐 거라고 장담했다.

이렇게 시작된 이상한 작전,

1사 주자 1루에서 시프트를 마주한 이인영은 잠시 외야를 살피고 타석에 섰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94, 홈런 47개, 106타점, 굉장한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내야에 수비수가 3명뿐이네요. 초반부터 이런 시프트를 쓰나요?”

“보통 힘 있는 좌타자를 상대할 때는 1루수를 파울 라인에 붙이고 2루수는 우익수 앞으로, 유격수는 2루, 3루수가 유격수 자리에 배치하거든요. 물론 이건 당겨 치는 타자를 대비한 시프트라 이인영 선수를 상대로 큰 효과는 못 보겠지만 … 그렇다고 유격수 자리를 비워두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해설위원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이인영은 자세를 잡았다.

유격수 자리가 비어 있으니 공을 더 깊게 때려야 하나?

바깥쪽을 밀어 친다고 반드시 타구가 유격수 쪽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그게 마음대로 되면 어떤 타자가 3할을 못 치겠나? 이인영은 평소처럼 스윙을 했다.

‘내가 단타를 치는 게 팀에 얼마나 도움이 되나?’

이걸 생각하면 이미 답은 나왔다.

상대가 시프트를 쓴다는 건 내 타격 생산력을 죽이겠다는 뜻이다.

외야에 수비수가 4명이나 있으니 비어 있는 유격수 쪽에 땅볼이나 굴리라고 유도하는 거 아닌가.

여기서 번트나 느린 땅볼을 굴려주는 건 영리한 게 아니라 상대 팀의 뜻대로 놀아주는 것 뿐, 내야 땅볼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안 먹어.’

초구는 바깥쪽으로 들어오는 볼, 밀어 치라고 미끼를 던지는데 철저히 무시했다.

따악~!!

“잡아당긴 타구가 외야로 뻗어 나갑니다!! 우익수!! 중견수!! 오~여기서 충돌이 일어나는군요. 어쨌든 타구는 잡아냈습니다.”

“이게 문제죠. 야수들은 각자의 영역이 있는데, 지금 유격수가 끼어들면서 그 경계선이 무너졌거든요. 아웃은 됐지만 선수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시프트네요.”

우익수 박종우와 중견수 김상수는 어깨를 어루만지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박종우는 NA 자이언츠의 유일한 20홈런 타자,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나마 타자 구실하는 선수다. 곰 한 마리 잡으려다 하마터면 우리 선수까지 다칠 뻔한 아찔한 장면, 박상진 감독은 시프트를 재검토했다.

‘어쨌든 잡긴 잡았잖아. 서로 의사소통만 잘 하면 돼, 생각해 봐? 홈런 타자가 번트 대고 안타 치면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아니야. 정석대로 가는 게 맞아.’

그 짧은 시간에 휘몰아치는 악마와 천사의 유혹,

야구계에서 시프트를 논하는 사람들은 소위 똑똑이들이다. 한 선수의 타구가 어느 쪽으로 가는지 다 파악하고 자료화 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복잡한 일인가.

현장관계자들은 그저 정해진 대로 경기를 할 뿐, 위에서 내려오는 자료는 참고사항일 뿐이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시프트가 성행한 건 2011년부터다. 실제로 효과를 보긴 봤고, 각 팀에 전담 팀이 만들어졌지만 타자들은 홈런으로 똑똑이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잘난 척 해도 장타 앞에선 무의미해지는 시프트, 내가 머리를 굴리는 만큼 상대도 머리를 굴리는 게 세상이다.

다음 승부에서도 잘 될까? 박상진 감독이 딴 생각을 하는 동안 경기는 어느덧 3회 초에 접어들었다.

따악~!!

“내야를 빠져 나가는 안타!! 임완수 선수가 오늘도 안타를 뽑아냅니다.”

“역시 장타력이 없는 선수라 시프트는 걸리지 않네요. 문제는 지금 부터입니다.”

다시 이인영의 타석, 자이언츠는 이번에도 포 백 시프트를 구사했다.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유격수 쪽, 그러건 말건 외야를 노리고 방망이를 곧추세웠다.

바깥쪽을 던졌지만 역시 낚이지 않는 곰, 자이언츠 배터리는 볼넷으로 내보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투구를 했다. 그만큼 이인영의 존재는 압도적, KBO 최고의 투수진을 갖춘 베어스가 3연전에서 홈런 4방을 맞았는데 우리가 정면 승부 할 순 없는 일 아닌가.

욕을 먹더라도 도망치는 게 최선, 결국 이인영은 2번 째 타석은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했다.

‘이것들이 또 장난치네.’

후속 타자 김상규는 심드렁한 얼굴로 외야를 살폈다.

이번엔 무려 파이브 백 시프트, 김상규는 극단적인 풀 히터라 타구가 1 - 2루 쪽으로 가는 경우는 20%도 안 된다.

그렇다고 쳐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1루수를 제외하면 다들 제 멋대로 노는 야수진, 이때 1루로 나간 이인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냥 넘겨 버려요!! 이딴 거 신경 쓰지 말고!!”

김상규는 씩 웃으며 타석에 섰다. 생각해보니 그게 정답, 바깥쪽으로 들어오는 공은 일단 무시했다.

“다시 바깥쪽입니다. 집요하군요.”

“김상규 선수가 올 시즌 홈런 19개, 78타점을 올리고 있거든요. 성운 라이온즈 테이블 세터진의 출루율이 높다고 할 순 없는데, 이인영 선수가 무려 0.480의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김상규 선수가 득점권 기회를 많이 잡는 편인데, 풀 스윙을 하다 보니 병살도 많지만 그만큼 득점권 생산력도 높거든요. 자이언츠는 여기서 한 방 맞으면 어렵다고 봐야죠.”

다음 공도 바깥쪽, 하지만 여기서 포일이 일어나면서 주자들은 한 베이스 씩 더 진루했다.

이제 상황은 1사 주자 2 - 3루, 파이브 백 시프트가 의미가 있을까.

텅 빈 1 - 2간을 노려 치면 단숨에 2득점, 자이언츠 수비진은 시프트를 풀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따악~!!

김상규는 바깥쪽 공을 밀어 쳐 외야 깊숙한 타구를 날렸다.

3루 주자 임완수는 여유 있게 홈인, 움직이지 말라는 코치의 사인이 있었지만 이인영은 3루까지 파고들었다.

이제 느린 땅볼만 굴려도 추가 득점, 하지만 3루 코치의 따가운 질책이 날아들었다.

“야!! 뛰지 말라고 했잖아.”

“점수 더 내야죠.”

“지금 점수가 문제냐? 그러다 너 다치면 우리가 욕먹어.”

차명석 단장은 코치진에게 이인영을 다치게 하지 말라는 주의를 줬다. 50홈런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슈퍼스타가 다치면 팀에 막대한 손해, 하지만 팀의 승리가 우선인 곰탱이는 3루 질주를 택했다.

“다치면 제 잘못이니까 신경 쓰실 것 없어요.”

“그게 아니라니까 인마,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마.”

계속되는 잔소리에 이인영은 그러겠다고 답했다.

같은 팀 끼리 말싸움 해봤자 무의미, 그리고 후속 타자의 추가타가 나오면서 3루 질주는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플레이가 됐다.

‘또 해 봐. 할 수 있다면 말이지.’

3대 1로 앞서나가는 성운 라이온즈의 6회 초 공격, 2사 주자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인영은 외야를 훑어봤다.

또 포 백 수비, 그렇게도 내가 밀어치길 바라는 건가. 하지만 여기선 밀어 쳐도 나쁘지 않은 게 주자가 2루에 있다. 어쩌자고 이런 바보 같은 수비를 펼치는 건지, 넙죽 받아먹었다.

따악~!

“가볍게 밀어 낸 타구가 좌중간에 떨어집니다!! 2루 주자는 바로 스타트!!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 옵니다!!!! 이인영 선수의 적시타!! 성운 라이온즈가 4대 1로 점수 차를 벌립니다!!”

“앞 선 두 타석에서 바깥쪽 공은 입질도 안 주더니 여기서는 바로 나오네요. 역시 상황에 맞는 스윙을 할 줄 아는 선수에요.”

“그만큼 머리 회전이 빠르다는 거죠. 여기서는 내가 어떤 공을 쳐야 하고, 어떻게 스윙을 해야 하는지 다 고려하고 치는 겁니다. 그냥 힘만 앞세우는 선수가 아니에요.”

“4할에 가까운 타율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말이죠. 성운 라이온즈 팬들 입장에선 섬뜩한 대화일수도 있는데, 저는 이 선수가 더 큰 무대로 나갔을 때 어떤 활약을 할지가 더 기대됩니다.”

자이언츠 관중석에선 왜 박준민은 내보내지 않았냐는 원망이 터져 나왔다.

박준민은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 타선을 잠재운 특급 불펜, 상대가 이인영이라도 괜찮은 승부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불펜에서 팬들의 불만을 듣고 있던 박준민은 고개를 저었다.

‘사양하겠습니다.’

박준민은 땅볼 유도에 최적화 된 투수, 감독이 포백 시프트를 펼치고 있는데 텅 빈 내야를 두고 무슨 투구를 하라는 건가.

처음부터 날 쓸 생각이 없었다는 뜻, 뭣보다 박준민은 수준급의 싱커를 장착하고 있지만 메이저리그 투수들처럼 구위를 앞세우는 유형이 아니다.

무브먼트는 좋지만 싱커를 몸 쪽으로 붙였을 때 얼마나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어정쩡하게 붙였다 풀스윙에 걸리면 그대로 끝, 솔직히 구위로 저 자식을 잡아낼 자신이 없었다.

이날 성운 라이온즈는 승리를 거두면서 지구 3위를 유지,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와 적시타로 팀 승리를 이끈 이인영은 오늘도 수훈 선수 인터뷰에 나섰다.

“이인영 선수, 오늘 경기 승리 축하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오늘은 풀 스윙을 하지 않으셨는데 혹시 시프트를 의식하신 건가요?”

“아니요. 저 강하게 쳤는데요?”

이인영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반박했다.

1회 초에 나온 타구도 아웃은 됐지만 분명 강한 스윙을 했다. 물론 6회 초에 나온 안타는 시프트를 의식한 것처럼 보였겠지만, 겨우 내야나 넘기겠다고 돌린 스윙은 아니었다.

“저는 언제나 강한 타구를 노립니다. 제가 강하게 치지 않으면 팀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럼 조금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아까 6회 초에, 중계석에서 박준민 선수가 올라왔다면 재미있는 승부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말이 나왔는데요. 이인영 선수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 그 당시 박준민 선배가 올라왔다면 던질 수 있는 공은 몸 쪽 싱커 밖에 없습니다. 그걸 제가 놓쳤을까요?”

나중에 이 인터뷰를 접한 박준민은 경악했다.

올라가진 않았지만 내가 뭘 던질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진짜 올라갔다간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만으로도 끔찍, 선수 생활도 황혼기에 접어들었는데 어린 녀석에게 험한 꼴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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