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52화 (52/309)

52화. 불 붙여드립니다 (14)

[5128명 탈락]

시즌 후반에 접어들면서 상금을 차지하기 위한 팬들의 눈치작전도 치열해 졌다.

10개 구단 중 그날 안타를 칠 것 같은 선수를 지목하는 게임, 50콤보를 이루면 상금 5천만 원을 탈 수 있다.

올 시즌은 아직 아무도 가져가지 못한 상금, 수만 명에 이르는 유저들은 선수들의 활약에 일희일비를 거듭했다.

7월 초까지 39콤보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1위 유저는 전인규를 택했다가 탈락, 1위 유저를 포함해 7132명이 탈락하는 대참극이 일어났다.

제 2차 대참극은 8월 30일에 일어났는데 그날 가장 많은 유저들의 선택을 받은 선수는 이인영이었다.

집중견제를 받다보니 볼넷만 3개를 얻어냈고, TOP 100유저 중 39명이 포함 된 무려 8192명이 탈락했다.

[이인영은 무조건 친다!!]

KBO 위원회가 이렇게 홍보를 했기에 이인영을 택했다가 탈락한 팬들의 충격은 2배 이상, 올해 우승자가 나오긴 하는 건가.

탈락의 눈물을 흘린 팬들은 올 시즌 우승자가 안 나오면 상금은 다음 시즌으로 이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래 1억이었는데 5천만 원으로 줄어든 상금, 판돈이 적어서 재미가 없다는 둥 50경기 이상은 너무 많다는 등 KBO를 겨냥한 비난이 쏟아졌다.

[여러분, 저 뽑지 마세요. 그리고 게임은 재미로 하시고요]

볼넷 3개 걸렀다고 8천명이 넘는 유저를 탈락시킨 대죄인은 SNS에 이런 말을 남겼다.

투수들이 승부를 피하는 타자에게 배팅을 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거기다 어째 KBO 홍보용으로 시작한 앱이 점차 도박판으로 변해가는 분위기, 흥행도 중요하긴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조금 아니라고 봤다.

그러건 말건 살아남은 유저들은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열공 모드, 현재 유저 1위(34콤포)에 오른 ‘메기수염’은 통계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얘는 안 뽑는 게 좋겠어.’

메기수염은 고민 끝에 이인영을 걸렀다.

최근 투수들이 피해가는 게 눈에 띄는 선수, 3할 8푼이 넘는 타율에 혹해 이인영만 밀고 가는 바보들이 있는데, 1번 타자도 아니고 이런 홈런 타자를 선택하는 건 확률적으로 위험하다.

차라리 전인규를 뽑는 게 나은 편, 그렇게 35콤보를 위한 도전이 시작됐다.

* * *

“자, 이인영 선수의 타석입니다. 올 시즌 타율 0.383, 홈런 39개, 82타점, 타율 - 홈런 - 타점 모두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어제 8천 명의 팬들을 눈물짓게 한 장본인이죠. 뭐 … 본인이 잘못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의식은 하고 있을 겁니다.”

“진짜 욕을 먹은 건 GM 가디언즈죠. 작년 시즌 이인영 선수가 힛 포 더 사이클을 앞두고 있을 때 볼넷으로 거른 팀이 가디언즈 아닙니까. 그러더니 어제는 볼넷 3개 … 지금 여론이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어제 GM 가디언즈 홈 페이지는 성난 팬들의 테러를 당했다.

여기에 볼넷을 내준 선수들의 개인계정까지 공격을 당하면서 구단이 직접 대응에 나섰을 정도, 작년에 이인영의 힛 포 더 사이클을 볼넷으로 저지하는 일까지 재조명되면서 팀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더 피했다간 정말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힐 판, 뒤늦은 수습에 나섰다.

“어지간하면 승부해 줘라.”

“알겠습니다.”

유재덕 감독대행은 선수들에게 정면 승부를 지시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작년 일은 조금 너무했다. GM 가디언즈는 플레이오프에서 멀어졌지만, 관계자들은 KBO 일원으로서 흥행에 똥물을 튀겨선 안 되겠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볼~”

초구는 볼, 김재경 포수는 투수에게 볼을 던져주며 입을 열었다.

“너 이 정도는 칠 수 있지 않았냐? 오늘도 볼넷 나오면 우리가 욕먹으니까 어지간하면 쳐라.”

뒤통수에 들러붙는 참견에 이인영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무슨 짜고 치는 경기도 아니고, 그동안 볼넷이 너무 많이 나온다고 불만을 제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3볼넷은 본인들이 선택한 결과, 그런데 내가 왜 무리하게 스윙을 해야 하나.

칠 공이 아니면 입질도 주지 않았다.

“음 … 다시 볼입니다. 이인영 선수는 오늘도 볼넷으로 출발하는 군요.”

“상대가 KBO에서 가장 뜨거운 타자라고 해도 이런 투구는 아니죠.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가 프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박한우 해설위원은 쏟아지는 볼넷에 일침을 가했다.

성운 라이온즈에서 4년을 감독으로 보낸 만큼 KBO 선수들의 기량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스트라이크도 못 던지는 선수가 프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스트라이크 존을 넓혀주는 게 위원회의 대안인가?

투수가 강해져야 타자도 강해지는데 타고투저를 해결한다며 대놓고 투수들을 밀어주고 있으니, 이래서야 타자들의 수준도 낮아질 뿐이라고 비꼬았다.

‘승부를 하라고 해도 왜 못 하냐….’

답답한 건 유재덕 감독대행도 마찬가지, 참담한 현실이지만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도 GM 가디언즈는 단 한 명도 국가대표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이것 때문에 김정길 감독의 선수 선정에 비난이 쏟아졌지만,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쏙 들어간 비난 여론, 감독은 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지휘봉을 내려놨다.

감독대행을 하고 있지만 이 자리도 위태, 유재덕은 답이 안 보이는 현실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승부한다.”

“…….”

경기는 돌고 돌아 2회 초 성운 라이온즈 공격,

2번 째 타석을 맞이한 이인영은 김재경 포수의 말장난에 귀를 닫았다. 초구는 볼, 무슨 승부를 한다는 건가.

말이 아니라 눈앞에서 날아오는 볼에 집중했다.

“다시 낮게 들어옵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바꿔주는 게 낫겠네요. 1회에만 34개를 던졌는데 … 더 이상 마운드에 남겨두는 건 벌투 밖에 안 됩니다.”

또 볼넷, 참다 못 한 유재덕 감독대행은 김시환을 끌어내렸다.

어지간하면 현장에 참견 안 하는 프런트도 볼넷은 조금 그렇다고 한 마디 하고 갔는데, 선수들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바뀐 투수도 이인영에게 볼넷을 선사하며 댓글 창은 폭발했다.

[팀 해체해라. 이틀 동안 볼넷 6개? 이건 누가 봐도 노골적이네]

-> 이인영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샀나? 갈 길 바쁜 선수한테 너무하네.

-> 유재덕 작년에 이인영한테 사인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하더라, 개인적인 원한인 듯

-> 나라도 안 해준다. 힛 포 더 사이클 앞두고 볼넷인데 누가 해줘?

-> 그런데 왜 코치가 상대 팀 선수에게 사인을 받으려고 했을까? 그 이유 아는 인간은 없냐?

의심이 의혹을 낳고 의혹이 점차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

유재덕 감독 대행도 이런 배경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상황, 볼넷을 내준 투수를 바로 교체하며 선수들을 향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냥 교체해?’

한편, 성운 라이온즈의 한승규 감독은 수염이 듬성듬성 솟은 턱을 긁적거렸다.

보아하니 오늘도 좋은 공을 줄 분위기가 아니다. 스코어도 6대 1로 벌어졌고, 이대로 이인영을 교체하면 가디언즈는 더 욕을 먹지 않을까?

한승규 감독은 성격이 음침한 편이라 상대팀을 괴롭히는 걸 즐겼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생각, 갈 길 바쁜 선수를 교체하면 본인도 욕먹을 짓 아닌가.

성격은 안 좋아도 그 정도 생각은 할 수 있는 머리는 지녔고, 그 사이 이성한 코치는 곰탱이의 등을 떠밀었다.

“너 다음 타석도 볼넷이면 교체다.”

“뭘 그렇게 협박을 하세요.”

이인영은 코치의 협박에 투덜거렸다.

어지간한 건 치라는 건데, 타석에서 뭘 하든 그건 타자의 권리, 코치의 압력은 무시했다.

딱~!!

“초구!! 파울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스윙을 했네요. 이번 타석만큼은 볼넷이 아니길 바랍니다.”

드디어 입질이 오기 시작한 방망이, 하지만 포수가 바깥쪽으로 빠져 앉으면서 카운트는 원 볼 원 스트라이크가 됐다.

지켜보는 팬들은 그럼 그렇지 라는 반응, 사방에서 야유가 쏟아지자 김재경 포수는 슬쩍 제자리로 돌아왔다.

‘너 잘 걸렸다.’

3구는 느린 커브, 이인영은 팽팽하게 조인 몸을 단숨에 풀어냈다.

맞자마자 홈런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타구, 최연소 40홈런 시즌 달성에 라이온즈 팬들은 열광했다.

‘후우~.’

유재덕 감독대행도 이제 됐다는 숨을 뿜어냈다.

상대팀 선수가 홈런을 쳤는데 안심이 되다니, 정말 못난 감독 아닌가. 하지만 기록을 방해하는 놀부라는 비아냥거림에선 해방, 쓴 웃음을 지었다.

“뭐야?!! 쳤어?!!”

한편, 35콤보를 노리던 메기수염은 이인영의 홈런 소식에 경악했다.

이인영 대안으로 선택한 전인규가 아직 안타를 못 때렸는데 이러다 떨어질 판, 초조한 마음으로 마지막 타석을 지켜봤지만 2루 땅볼이 되면서 제 3의 참극이 벌어졌다.

이인영은 무조건 거를 거라고 믿은 유저들이 전인규를 택했다가 피를 본 것, 상위 유저 10명 포함 우승 후보들이 대거 떨어져 나갔다.

[너 뽑지 말라며!! 이게 뭐야?!!]

[이건 말도 안 돼 ㅠㅠ 31 콤보까지 갔는데]

[나는 이인영을 믿었다. 29 콤보 달성!! 다들 축하해 주세요]

오늘도 희비가 엇갈린 저쪽 세상, 어쨌든 최연소 40홈런 시즌을 달성한 이인영은 홀가분한 얼굴로 아나운서와 얼굴을 마주했다.

“이인영 선수, 시즌 40홈런 달성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작년에 좋은 페이스를 보여주시다가 부상으로 안타깝게 시즌을 마감하셨는데요. 올 시즌 40홈런으로 작년의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떨쳐내셨나요?”

“글쎄요 …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 시절에 못 이룬 꿈은 그 시간에 갇혀 있는 거죠. 올해 잘했다고 작년의 아쉬움이 가시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평생 1번만 받을 수 있는 신인왕은 물 건너갔다.

그 아쉬움을 올 시즌 40홈런으로 대체할 수 있나? 뭣보다 올해 40홈런 쳤다고 그 영광이 내년까지 가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아쉬움을 현재의 활약으로 채우겠다는 것도 웃긴 논리, 프로야구 선수는 매해 출발선으로 돌아가야 하는 입장이다.

작년은 작년이고 올해는 올해일 뿐, 내년에도 나는 시험을 치러야 하는 입장이라는 각오를 드러냈다.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즌인데요. 남은 경기에서 뭘 이루고 싶으신지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일단 최대 목적은 팀의 우승이죠. 개인기록은 열심히 하다보면 따라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지금까지 이인영 선수였습니다.”

이 날 이후, 슈퍼루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7경기에서 3홈런을 때려내며 성운 라이온즈 팀 프랜차이즈 기록과 타이를 이뤘고, 이 기간 동안 연속 안타를 때려내며 50 콤보에 도전하는 유저들의 선택을 받았다.

[이인영은 오늘도 안타 칩니다. 망설이지 말고 선택하세요!!]

이젠 대놓고 밀어주는 KBO 위원회, 성운 라이온즈 구단도 이인영의 50홈런 달성을 기원하며 각종 이벤트를 기획했다.

44홈런을 잡아내는 팬에겐 300만원 상당의 상금과 기념품을 지급하기로 약속, 50홈런엔 500만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50홈런은 몰라도 44홈런은 눈앞에 있는 기록, 다음 홈경기에서 외야석은 발 디딜 틈 없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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