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50화 (50/309)

50화. 불 붙여드립니다 (12)

“저기 한 녀석이 다가 오는군요. 거대한 수컷입니다.”

한 유투버는 프로야구 중계 장면을 띄우고 내래이션 방송을 시작했다.

어슬렁 어슬렁 움직이는 이인영을 곰에 비유한 희극, 하지만 목소리는 아주 진지했다.

“녀석은 지난 5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다가올 겨울을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먹어둬야 합니다.”

지난 5일 동안 홈런이 없었던 슈퍼루키, 평범한 해설에 질린 팬들은 키득거리며 유투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곰은 귀여운 외모와 육중한 덩치 때문에 느려 보이지만 최대 40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습니다. 민첩성 또한 뛰어나죠.”

내래이션에 맞춰 파울타구에 반응하는 곰, 느릿느릿한 것 같은데 재빨리 달려와 타구를 낚아 채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예전부터 곰이라고 불리긴 했는데 이제는 진짜 곰으로 보일 정도, 잠시 말이 없던 진행자는 1회 말 첫 타석에서 방송을 재개했다.

“곰은 지상 최강의 포식동물입니다. 앞발로 사람의 머리 정도는 간단히 부술 수 있죠.”

최근 홈런이 없다고 해도 31홈런으로 여전히 압도적인 리그 1위, 그런데 여기서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투수의 공이 머리 근처를 지나간 것, 유투버 입장에서도 개드립을 날리긴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아 방송을 계속 진행했다.

“곰의 다른 맹수에 비해 인내심이 강한 편입니다. 자극을 해도 화를 잘 내지 않죠. 하지만 화가 났을 땐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마침 중계카메라가 이인영의 얼굴을 클로즈업 했다.

화가 난 것 같은데 어찌어찌 참고 있는 모습, 실제 눈앞에 있다면 오줌을 지렸겠지만 TV 속의 존재라 안심했다.

‘보낼 거면 한 방에 보내야지. 어설프게 덤볐다간 내가 죽어.’

초구를 던진 김성현은 땀에 젖은 얼굴을 유니폼으로 쓸어내렸다.

이인영은 평균 신장 180이 넘는 프로야구 선수들 중에서도 덩치가 꽤 큰 편, 힘이야 말 할 것도 없다.

곰 사냥은 프로 사냥꾼들에게도 완벽한 은폐와 고도의 정밀 사격을 요구하는 난제, 몸 쪽으로 붙이려고 했는데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보여준 제구력 난조가 초반부터 일어났다.

또 빗나갔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 포수와 신중히 사인을 주고받았다.

“아주 집중하고 있군요. 발을 뻗을 타이밍을 재고 있는 건가요?”

이 심각한 상황에서 유투버는 장난을 이어갔다.

투수를 매섭게 노려보는 눈빛이 마치 강 속을 헤엄치는 먹잇감을 노려보는 불곰 같지 않은가. 시청자들도 동조하는 분위기, 이때 기회를 엿보던 불곰이 앞발을 크게 휘둘렀다.

따아악 ~ !!

“잡아당긴 타구가 오른쪽으로 거대한 포물선을 그립니다!!!! 이인영 선수의 시즌 32호 홈런!! 5일 만에 홈런포를 재가동합니다.

“초구가 머리 근처로 왔는데도 집중력을 잃지 않네요. 그것도 국내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인 김성현 선수를 상대로 뽑아낸 한방입니다.”

베이스를 돌아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불곰은 동료들에게 격한 하이파이브를 날렸다.

너무 세서 몸이 뒤로 밀려날 정도, 진짜 곰하고 놀아주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어쨌든 간만에 홈런 맛을 본 슈퍼 루키는 만족한 얼굴로 입에 얼음물을 쏟아 부었다.

‘더 먹어야지.’

만족을 모르는 배고픈 곰, 2번 째 타석에서도 호쾌한 타구를 노렸지만 ST 위너스 배터리는 좋은 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지 못하면 당하는 건 투수, 물고기가 강을 벗어나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걸 알고 있는 불곰을 차분하게 먹잇감의 동선을 파악, 바깥쪽 약간 높은 공을 후려갈겼다.

따아악 ~ !!

“이번에는 좌측으로!! 높게!! 담장을 넘어 갑니다!!!! 이인영 선수의 연타석 홈런!!!! 시즌 33호 홈런입니다!! 스코어 3대 2!! 성운 라이온즈가 다시 앞서나갑니다!!”

“그동안 김성현 선수를 상대로 약간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오늘로 약하다는 편견은 지워버리네요. 그건 그렇고 당기고 밀고, 아주 자유자재입니다.”

연타석 홈런을 허용한 김성현은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8년 동안 선수생활을 하면서 연타석 홈런을 맞은 적이 몇 번이나 될까. 자기 공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공략하는 선수도 처음, 작년에는 확실히 제압했지만 1년 사이 덩치가 훌쩍 큰 새끼 곰은 이제 베테랑의 사냥 기술로도 제압하기 어려웠다.

‘더 먹을 거야.’

5일 동안 홈런 맛을 못 본 슈퍼 루키는 3번 째 타석에서도 살기 어린 눈빛을 드러냈다. 더위 따윈 이미 잊은 얼굴, 관중석에 들어 찬 팬들도 3연타석 홈런을 연호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렇잖아도 더운데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는 대구, 무더위와 홈팬들의 응원 그리고 상대의 존재감이라는 악재가 겹치자 김성현은 자기 공을 던지지 못했다.

“으음 ~ 다시 낮게 들어옵니다. 세 번째 타석은 볼넷으로 출루하는 이인영 선수입니다.”

“거포는 삼진이 많다는 통념을 완전히 깨고 있는 선수죠. 지금까지 홈런 33개를 쳤는데 삼진은 34개 밖에 없습니다. 볼넷은 83개나 되고요.”

“이런 성적이 가능한 이유가 뭘까요? 박한우 위원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요 ··· 일단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운스윙을 하는 타자들은 대체로 방망이를 세우고 있다.

공을 위에서 아래로 찍어 치기 때문에 배트를 미리 세워놓고 그대로 스윙을 돌리는 것, 백스윙이 큰 선수들은 중심 이동을 동반하기 때문에 자세가 흐트러질 위험이 있지만, 찍어 치는 선수들은 백스윙 동작이 거의 없어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당연히 변화구에 대한 대처 능력도 그만큼 좋아지는 것,

그럼 똑딱이들은 다 변화구에 잘 대처하고 큰 스윙을 하는 거포는 삼진에 취약한 건가? 하지만 의외로 다운 컷 스윙을 하는 거포들은 많다.

이인영도 배트를 세우고 있는데 그 자세에서 다운 컷으로 내려오는 스윙이 레벨 스윙, 마지막에 어퍼로 끝나는 궤적을 그린다.

흔히 말하는 부챗살 타법, 큰 궤적을 그리지만 배트 헤드가 짧게 돌아 나오기 때문에 간결하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건 투구 궤적을 완벽히 읽어야 소화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만큼 선구안과 타격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뜻, 박한우 위원은 빠른 볼에 강하다는 것도 삼진이 적은 이유로 꼽았다.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는 게 뭐냐면 세상에 빠른 볼보다 위력적인 공은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체인지업과 슬라이더가 있어도, 빠른 볼이 받쳐주질 않으면 소용이 없거든요. 현재 국내 리그에서 이인영 선수를 상대로 빠른 볼로 승부를 걸 선수가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하긴, 일본의 투수들도 이인영 선수를 상대로 빠른 볼을 던지다 고전했죠. 일리가 있는 말씀이네요.”

“그렇습니다. 빠른 볼을 못 던지니 변화구를 던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볼넷은 늘고 삼진은 줄어드는 거죠. 타자는 바보가 아닙니다. 투수가 날 상대로 빠른 볼을 못 던진다는 걸 알고 있으면, 이미 반은 이기고 들어간 거예요.”

이인영은 4번 째 타석에서도 변화구에 낚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누가 곰은 미련하고 생각하는 능력이 없다고 했는가, 경험이 쌓이면서 투수의 심리까지 파악하는 영악한 곰, 4번 째 타석도 볼넷으로 출루하며 100% 출루를 달성했다.

이날 성운 라이온즈는 슈퍼 루키의 연타석 홈런을 앞세워 6대 3 승리를 거뒀고, 라커룸으로 돌아온 곰은 샤워 실에서 쏟아지는 찬물에 몸을 던졌다.

“야, 너 이거 봤냐?”

“뭔데요?”

임완수는 샤워 실에서 나오는 후배 앞에 휴대폰을 내밀었다.

오늘 한창 인기를 끈 유투버의 내래이션 실시간 중계, 내 허락도 없이 이렇게 초상권을 이용해 돈을 벌어도 되는 건가.

말 그대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챙기는 상황, 생선 이모티콘을 띄워 내 얼굴에 합성까지 하고 있는데 의도는 알겠지만 기분이 별로 좋진 않았다.

“왜 그래? 재미없냐?”

“재주 부리는 곰이 된 것 같아서 별로에요. 돈은 이 사람이 챙기는 거지 제가 바보 돼서 얻는 게 없잖아요?”

생각보다 떨떠름한 반응에 임완수는 무안한 표정, 하지만 주변 선수들은 재미있다며 낄낄거렸다.

‘써먹을 수 있겠는데’

이런 상황을 알 리 없는 성운 라이온즈의 차명석 단장은 문제의 유투버와 접촉했다.

재미있다며 좋은 반응을 보인 팬들도 있지만, 불쾌한 반응을 보인 팬들도 적지 않은 편, 프로야구 중계 장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도 저작권과 직계되는 문제다.

그렇다고 이 일을 문제 삼을 이유도 없는 게, 지금은 1인 미디어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1인 방송도 한계가 있는 법, 일개 유투버가 수만 관중이 들어찬 중계 장면을 재현할 수 있을까.

방송사와 협력해 문제점을 보완한다면 프로야구 인기를 끌어올릴 수도 있겠지, KBO와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

[시도해 볼 가치는 있겠군요.]

“그럼 지금 당장 시행하겠습니다.”

해설위원만 해설을 해야 한다는 이유도 없지 않은가.

축구 방송도 이제는 유투버의 해설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팬들, 이렇게 문제의 유투버는 정식으로 라이온즈 파크에 초대됐다.

구단에서 따로 중계부스를 마련해 줄 정도로 극진한 대접, 구단 관계자들은 유투버에게 경기 전에 선수들을 만나보라고 권했다.

“저기 ··· 그랬다간 제가 죽을 것 같은데요.”

“아니, 왜 그러십니까?”

“그 방송 이인영 선수가 봤으면 절 죽이려고 할지도 몰라요.”

조회수와 인기를 위해서 한 짓이지만 생각보다 일이 너무 커져버렸다.

지금 여기는 곰이 살고 있는 서식지, 눈에 들었다간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 쭈뼛거렸다.

“구단 홍보를 위해서니까 화내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미리 통보도 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이 카메라 좀 들어주세요. 찍고 싶은 장면이 있거든요.”

얼떨결에 받아든 카메라, 그렇게 구단 관계자는 얼떨결에 유투버의 수족노릇을 하게 됐다.

“시청자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성운 라이온즈 라커룸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곰 앞에서 죽은 척 하면 정말 살아남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볼 생각인데요,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구단 관계자들은 그제야 빵 터졌다.

설마 이인영 선수 앞에서 죽은 척을 하려는 건가, 그랬다가 정말 맞아죽는 거 아닌지, 일단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라커룸으로 향했다.

경기를 앞두고 각자의 자리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 선수들, 한 덩치 하는 선수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감에 유투버는 움찔 했다.

‘맞아죽느냐 조회 수 획득이냐 ··· 승부다.’

선수들과 태연하게 악수를 나누며 자기소개를 하던 유투버는 불곰 앞에서 몸을 바짝 웅크렸다.

다른 선수들은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지? 하는 표정, 구단 관계자들도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자식 ··· 또 나 이용해서 인기 끌려고 하는 것 같은데’

상황을 살피던 이인영은 손으로 문제의 인물을 툭 툭 건드렸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반응도 없는 인간, 그냥 이대로 한 대 쳐 버릴까? 어제 일을 떠올리며 살짝 힘을 강하게 줬더니 유투버는 어 ~ !!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진짜 곰과 마주한 기분, 주변 선수들은 다 웃었지만 유투버는 계속되는 곰의 관심에 식은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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