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49화 (49/309)

49화. 불 붙여드립니다 (11)

딱 ~

3구를 때렸지만 타구는 2루수 손에 떨어졌다.

언제나 안타를 칠 순 없지만 그래도 아쉬운 일, 이인영은 공중에 소심한 발길질을 날렸다.

‘봤지, 겁먹을 이유 없다고’

1회를 무실점으로 막은 장성호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더그아웃에 들어섰다.

다들 저 녀석 앞에서 지레 겁을 먹는데 이래서야 무슨 경기가 되겠나. 상대는 우리와 같은 인간일 뿐, 못 이길 이유가 없다며 투지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성운 라이온즈의 선발 존 워커는 무너뜨리기 만만치 않은 상대, 이글스 팬들의 시선은 워커에게 강점이 있는 전인규 쪽으로 기울었다.

‘이것들이 또 이러네.’

대놓고 좌측으로 쏠리는 수비진, 눈에 보이는 작전인데 밀어치기를 고집해야 하나,

올림픽에서 와타리카와를 상대로 잡아당겨서 홈런을 때린 전인규는 힘껏 스윙을 돌렸다.

“떨어집니다. 전인규 선수가 헛스윙을 하는 건 정말 오랜 만에 보는데요.”

“어제도 그렇고 시프트를 너무 의식하는 것 같네요. 지금 3루수가 전진 수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삼유간이 꽤 넓어졌거든요. 무리하게 잡아당기는 것 보다는 평소처럼 타격을 하는 게 낫습니다.”

해설의원의 지적대로 전인규는 밀어치는 타격으로 전환했다.

밀어치는 타격에 능한 타자를 상대할 땐 몸 쪽으로 붙이는 게 최선, 전인규는 2구도 때려냈지만 파울라인 밖에 떨어졌다.

몸 쪽 공을 기술적으로 밀어 친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이건 타이밍이 밀린 거다.

몸 쪽을 잘 치는 타자들을 보면 오른 쪽 팔꿈치가 굽혀져 내려오다 임팩트 순간 쪽 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회전으로 끌어 모은 힘을 팔을 뻗어 완전히 살려주는 기술, 이게 안 되면 스윙이 퍼져 나오면서 타이밍이 밀려버린다.

타이밍뿐만 아니라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파울라인 안으로 공을 밀어 넣는 것도 어려워지는데, 본인도 뭐가 문제인지 아는지 전인규는 타석에서 물러나 몇 번 연습스윙을 했다.

끊어 치는 스윙을 많이 하다 보니 마지막에 팔을 쭉 뻗어주는 동작이 안 되는 게 사실, 2년 차 시즌도 그럭저럭 잘 보내고 있지만 투수들은 한 번 눈치 챈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지금 스윙으로는 롱런하기 어렵겠지, 살아남기 위해 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전인규도 첫 타석에서 무안타, 올림픽 금메달을 이끈 2000년 생 듀오는 사이좋게 무안타로 스타트를 끊었다.

‘이번엔 다를 거다.’

3회 초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2사 1루 상황에서 이인영은 2번 째 타석을 맞이했다.

노리는 공은 몸 쪽, 그렇다고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진 않았다.

일반적으로 몸 쪽 공은 당겨 치고 바깥쪽 공은 밀어 치라는 말이 있는데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몸 쪽 공을 칠 때 중요한 건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는 게 아니라, 손목을 몸 쪽으로 끌어 당겨서 배트 헤드가 자연스럽게 몸 쪽을 지나도록 하는 게 이상적이다.

무리하게 히팅 포인트를 조정하면 전인규처럼 헛스윙을 할 뿐, 몸 쪽으로 들어오는 공에 손목을 힘껏 끌어당겼다.

따악 ~ !!

“중견수 앞 쪽에 떨어지는 안타!! 이인영 선수가 2번 째 타석에서는 안타를 기록합니다!! 2사 주자 1 - 2루!! 성운 라이온즈가 득점권 기회를 맞이합니다.”

“참 ··· 스윙이 언제나 한결같죠. 지금도 타이밍이 약간 밀린 것 같은데, 손목을 감아주면서 기술적으로 타구를 외야에 떨어트렸습니다.”

“저희가 결대로 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이인영 선수의 타격을 보면 배트와 공이 만나는 지점의 각이 거의 일정합니다. 타이밍이 뒤로 밀린다거나, 너무 앞에서 맞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그만큼 이인영 선수는 정확한 타격을 한다는 뜻이죠. 아무리 힘이 좋아도 정확한 타격이 안 되면 배트가 떨리거나 힘이 분산되거든요.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 나중에 손목이나 다른 부위에 부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선 파울을 많이 친다고 좋은 게 아니죠.”

해설위원은 은근슬쩍 이인영과 전인규를 비교했다.

배트와 공이 대략 15도 정도 되는 각도에서 맞았다고 치자, 그럼 타구가 그 지점에서 정면으로 쭉 뻗어갈까? 절대 그렇지 않다.

15도에서 맞았다면 타구는 그 반대 방향으로 15도 정도 더 휘어져 날아간다. 이걸 반사각이라고 하는데, 당연히 타구와 배트가 맞은 지점의 각이 클수록 파울이 될 확률은 배로 높아진다.

똑같이 공을 때렸는데 어떤 선수는 안타가 되고 어떤 선수는 파울이 되는 이유가 뭘까.

이인영은 의도적으로 손목을 몸 쪽으로 끌어당겨 반사각을 줄여줬지만, 전인규는 그렇질 못했다.

파울 타구가 많은 게 정말 힘이 떨어져서 밀린 걸까? 전인규는 유독 파울 타구가 많은 편, 공을 맞추는 재주는 있지만 그라운드에 타구를 보내는 기술은 친구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부상 위험이 높아지는 건 덤, 2년 차 시즌에 접어들면서 두 선수의 기량 차이는 확연히 드러났다.

전인규는 2번 째 타석에서도 몸 쪽 공에 고전하면서 범타로 퇴장, 그에 비해 이인영은 상대 투수를 철저히 몰아 붙였다.

“음 ··· 다시 볼입니다. 장성호 선수가 승부를 못하고 있는데요.”

“본인도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는 거죠. 지금 또 몸 쪽으로 들어가면 장타 맞을 위험이 큽니다.”

5회 초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1사 주자 1 - 2루 상황에서 이인영은 3번째 타석을 맞이했다.

바깥쪽을 고집하는 배터리, 좌타자가 밀어 친다고 타구가 꼭 좌측으로 간다는 법은 없다.

제대로 밀어 친 타구는 오히려 센터 쪽으로 가는 법, 뒷다리를 살짝 빼서 부족한 몸통 회전도 보완했다.

따악 ~ !!

“센터 쪽으로 멀리 가는 타구!! 하지만 중견수가 기다립니다. 투 아웃!! 장성호 선수가 한숨을 돌립니다.”

“지금도 아웃은 됐지만 타이밍은 좋았죠. 타격이 늘 결과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이런 페이스를 계속 유지한다면 앞으로도 이인영 선수는 위협적인 상대가 될 겁니다.”

아웃은 됐지만 이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벤치로 돌아왔다.

원하는 방향으로 타구를 보냈다면 그 다음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후보 선수도 아니고 안타 하나, 아웃 하나에 울고 웃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입에 찬물을 들이부으며 이대로 가면 된다고 자기 암시를 걸었다.

그 사이 성운 라이온즈의 5회 초 공격은 득점 없이 마무리, 1대 1로 팽팽히 진행되던 경기는 7회 말, 이호열의 적시타가 터지면서 균형이 깨졌다.

에이스 존 워커가 6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줬는데 패배하면 치명적, 현재 성운 라이온즈는 리그 3위를 달리고 있지만 4 ~ 5위와의 격차는 3경기 이내다.

거기다 오늘 상대는 리그 최하위 선화 이글스, 고전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건 선수들이 더 알고 있었다.

‘이게 뭐야?’

8회 초에 맞이한 4번 째 타석, 이인영은 초구를 한껏 노렸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포수는 왼손을 옆으로 뻗었다.

고의사구, 슈퍼루키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타격감이 절정인데 이게 웬 날벼락, 거기다 팀이 뒤지고 있는 상황이라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오늘은 이대로 물러가지만 내일 두고 보자.’

결국 이날은 3타수 1안타로 종료, 팀에 별 다른 도움이 못 되면서 패배까지 지켜봐야 했다.

야구를 하면서 가장 속이 쓰리는 장면, 찝찝한 기분으로 호텔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후우 ~ ’

한편, 선화 이글스의 김권중 감독은 사무실에서 땀에 젖은 캡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경기를 뛴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몸이 흠뻑 젖은 건지, 단순히 더운 날씨 때문일까.

사실 5회 초, 이인영이 센터 쪽으로 타구를 보냈을 땐 흠칫했다. 단장이 고의사구로 내보내라고 지랄을 떨기에 반발심리로 장성호에게 정면 승부를 지시했지만, 솔직히 지켜보는 내내 심장이 떨렸다.

어느 감독이 팀이 패배하는 걸 원하겠는가.

3번 째 타석까진 정면승부를 하게 했지만 마지막까지 배짱을 부리는 건 위험, 도망으로 얻은 1승이지만 작전상 후퇴였으니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칠 수 있는 공을 안 주면 된다.]

그런데 이때 바보 단장이 어그로를 끌었다.

이인영에게 좋은 공을 주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 건 나고, 덕분에 팀이 승리를 거뒀다며 SNS에 자랑을 해대는데, 이글스 팬들은 그게 지금 단장이 할 말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응 그래, 도망쳐서 참 좋겠다 좋겠어]

-> 빤쓰 런 하고 자랑치는 놈은 처음 봤다. 이 인간 나름 신선한데?

-> 이젠 감독한테 현장 지시까지 내리는 거냐? 월권행위 아닌가?

-> 어이가 없다. 이인영 안 뽑았다고 팬들이 욕하니까 이런 식으로 만회해 보려고 하는 거냐?

[송호영, 너는 이미 이글스의 10년을 암흑으로 만들었어. 이인영을 안 뽑은 네 바보짓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평생 팬들의 기억에도 영원히 남을 거다.]

괜히 한소리 했다가 팬들의 조롱만 당한 꼴, 송호영은 급히 관련 내용을 삭제했지만 팬들은 문제의 글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최하위를 달리고 있는 선화 이글스의 이미지를 더 추락시킨 사건, 이 소식을 접한 선화 그룹의 회장 장수재는 뒷목을 잡았다.

우리가 뭣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면서 프로 야구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건가.

선수도 아니고 단장이라는 놈이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 팬들의 반응도 좋지 않아 바로 수를 썼다.

말 한마디 잘못해 목이 잘린 단장, 김권중 감독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최하위를 달리고 있으니 성과를 내지 못하면 위에서 손을 쓰겠지, 3년 계약을 맺었지만 나가라고 압력 넣으면 별 수 없다.

송호영 그 인간이 쓸데없는 말을 한 덕분에 이제는 이인영과 승부를 피하면 팬들의 조롱을 받아야 하는 입장, 마지막까지 민폐만 끼치고 가는 인간이라며 마음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 * *

8월에 접어들면서 대구 일대는 폭염으로 들끓었다.

한 낮에 무려 39.5도까지 치솟는 기온, 공사장에 세워둔 고깔이 녹아버리는 살인적인 열기에 현지인들은 혀를 내둘렀다.

현지인이 이런데 대전에서 살다 온 곰돌이는 어떻겠는가. 작년엔 석 달만 뛰고 부상으로 빠졌기 때문에 이런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경기를 치른 적이 없다.

야구고 뭐고 더워서 돌아가실 지경, 슈퍼루키는 얼음주머니를 머리 위에 올린 채 멍한 얼굴로 그라운드를 응시했다.

‘경기하기 싫다.’

‘집에 가고 싶어.’

다른 선수들도 넋이 나간 건 마찬가지, 더는 참기 어려웠는지 이인영은 얼음주머니 내용물을 유니폼 안에 쏟아 부었다.

“우하하 ~ !!”

“꺄하하하 ~ !!”

다른 선수들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다들 점 점 미쳐가는 분위기, 이 더운 날에 꼭 경기를 해야 되는 건가. 저녁에 경기를 해도 지열이 남아있어 더운 건 똑같다.

그렇다고 연기나 취소는 있을 수 없는 일,

올림픽 때문에 20경기가 사라졌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취소를 하면 잔여 일정이 빠듯해 진다.

경기감독관이 결단을 내리면서 시작된 지옥의 경기, 원정을 온 ST 위너스 선수단도 헉헉 거리며 준비를 마쳤다.

‘조금이라도 더 식히자.’

외야로 나서기 전, 이인영은 구단 직원이 가져온 얼음덩이를 격하게 끌어안았다.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존재, 얼굴에 얼음을 부비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면서 팬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선사했다.

[저러니까 진짜 북극곰 같네]

-> 여름에 동물원 가면 곰들 저러고 있다.

-> 얼음 깨물어 먹으면 싱크로율 100%

아니나 다를까, 이인영은 조금 작아진 얼음을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어냈다.

이젠 완벽한 곰, 고개를 쭉 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어슬렁어슬렁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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