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불 붙여드립니다 (10)
“자, 이제 경기는 8회 말로 접어듭니다. 양 팀이 3대 3으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전인규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군요. 오늘은 3타수 1안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별 다른 활약은 없지만 나가면 골치 아픈 선수죠. 성운 한승규 감독도 그걸 알고 투수를 교체했습니다.”
성운 라이온즈는 유상호로 투수를 교체했다.
전성기에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졌지만 어깨 수술로 20km 가까이 구속이 떨어지면서 부진에 빠진 비운의 불펜, 그래도 지금은 145km까지 구속이 올라오면서 어느 정도 활약은 해주고 있다.
사이드암 투구 폼에서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이 일품, 기량이 예전 같지 않아 기복이 있다는 게 단점이다.
올 시즌 평균자책점은 4.62, 그래도 구위는 아직 살아 있어 37이닝 동안 탈삼진을 38개나 잡아냈다.
전인규는 공을 끝까지 보고 밀어치는 타격을 하는 선수, 상성으로 따지면 좋지 않은 기용이지만 전인규는 뜬공이 나왔을 때 아웃이 될 가능성이 높은 선수라 투수코치는 유상호를 추천했다.
‘단순한 똑딱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중견수가 좌중간에 자리를 잡자 이인영은 파울 라인 근처로 이동했다.
이런 수비 시프트는 득점권에서나 하는 거지만 지금 상황은 3대 3 팽팽한 접전, 전인규를 득점권에 내보내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드시 막아야 할 선수, 어디 와 보라며 글러브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따악 ~ !
“파울입니다. 역시 밀어 치죠.”
“시선이 처음부터 바깥쪽에 집중 돼 있네요. 배터리가 계속 바깥쪽을 고집할지, 시청자 여러분들은 이 점을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유상호는 2구도 바깥쪽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나오지 않는 배트, 3구는 체인지업을 던졌지만 골라내면서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할 상황이 됐다.
따악 ~ !!
“밀어 친 타구가!! 멀리 가는데요?!! 좌익수!! 좌익수가!! 펜스 근처에서 잡아냅니다!!!! 원 아웃!! 까다로운 타자를 잡아냅니다!!”
“지금은 탄도가 낮았기 때문에 좌익수가 정상적인 수비를 하고 있었다면 장타가 됐을 수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하필 저 자리에 이인영 선수가 있었습니다.”
“이게 야구의 묘미죠. 정말 사소한 차이로 안타와 아웃이 갈립니다.”
타구를 확인한 전인규는 격한 아쉬움을 표했다.
좌익수가 있었지만 맞았을 때 됐다 하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간발의 차로 놓친 장타, 고개를 저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강함이 부족 했군 친구’
이인영은 씩 웃으며 타구를 내야로 보냈다.
장타에 소질이 있는 친구지만 아직 떨어지는 파워와 기술, 조금 더 성장해서 제대로 붙어보자는 눈빛을 보냈다.
전인규가 출루에 실패하면서 급격히 죽어버린 홈 팀의 공세, 성운 라이온즈가 8회 말 반격에 나섰다.
따악 ~ !!
선두타자 안타로 시작하는 공격, 쥐어짜내기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한승규 감독은 강공을 지시했다.
원래 그런 야구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이인영 앞에 주자를 쌓아두면 한 방에 경기를 뒤집는 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따악 ~ !!
“자 ··· 이 타구는!! 다시 내야를 빠져 나갑니다!! 연속 안타!! 1루 주자는 3루까지 진출하면서 무사 주자 1 - 3루가 됩니다!!”
“좋지 않은 신호네요. 역시 투수가 바뀌죠?”
다급해진 선화 이글스는 김형주로 투수를 교체했다.
현재 불펜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선수, 하지만 한때 2.10을 기록했던 평균자책점이 2.98로 오를 정도로 최근 페이스가 좋지 못하다.
무리한 기용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 여기서 막아내야 이인영이 폭탄에 불을 붙이는 참극을 막을 수 있었다.
“됐어!!”
볼넷을 얻어낸 홍현구는 박수를 치며 1루로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무사 주자 만루, 다음 타자 임완수는 병살만 피지 말자는 생각으로 타석에 섰다.
“아 ~ 와이라노!!”
설상가상 몸에 맞는 볼로 밀어내기 실점, 제 역할을 못한 김형주는 글러브에 얼굴을 박고 격분했다.
당황스러운 건 선화 이글스 벤치도 마찬가지, 이때 폭탄이 사방에 깔린 전장에 도화선을 손에 쥔 돌격대가 등장했다. 이 상황만은 피하길 바랐건만, 기세가 오른 성운 라이온즈 응원단은 만루 홈런을 연호했다.
“자, 이인영 선수 앞에 만루 찬스가 옵니다. 올 시즌 만루 홈런이 한 번 있었죠?”
“올 시즌 만루 기회가 딱 두 번 있었는데 그중 한번을 홈런으로 장식했죠. 지금은 투수가 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초구부터 노려볼만 합니다.”
따아악 ~ !!
“말씀 드리는 사이 타격!! 중견수는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이인영 선수의 만루 홈런!!!! 오늘 4번 째 타석에서 홈런을 추가 합니다!!!! 스코어 8대 3!!!! 한방으로 팽팽했던 경기를 뒤집어 버립니다!!!!”
“이건 뭐 ··· 할 말이 없네요. 정말 초구부터 나왔습니다.”
쑥대밭이 된 선화 이글스 벤치, 전인규는 타구가 넘어간 방향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추격은 해 봤지만 맞는 순간 넘어갔다는 걸 알 수 있었던 한방, 그것도 가장 이상적인 센터 쪽 방향으로 타구를 넘겨버렸다.
좌측 펜스 앞에서 잡혀버린 나와는 너무 다른 타격, 유유히 베이스를 도는 친구의 뒷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것이 강함이다.’
이인영은 먼저 홈을 밟은 동료들과 격한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 더그아웃 앞까지 한승규 감독은 오른 손을 내밀었다.
이제 성운 라이온즈 팀 프랜차이즈 기록까지 남은 홈런은 13개, 적지 않은 숫자지만 지금 기세라면 문제없어 보였다.
따아악 ~ !!
“아 ~ 이 타구도 넘어가나요?!! 좌측 담장을!! 넘어 ~ 갑니다!! 김상규 선수의 솔로 홈런!! 이제 스코어는 9대 3입니다!!!!”
“팬 여러분들이 떠나가네요. 이제 볼 거 다 봤다 이건가요.”
백 투 백 홈런이 나오는 순간, 대전 팬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구장을 빠져나갔다.
더는 봐 봤자 의미가 없는 경기, 그 중 일부는 격한 분노를 뿜어냈다.
“송호영 이 XX!!"
"물러가라!! 물러가라!!“
올림픽에서 5홈런을 쏟아내고 오늘도 선화 이글스에 비수를 꽂은 이인영, 송호영 단장이 바보짓만 하지 않았어도 저 선수는 우리의 응원을 받았을 거다.
1순위로 뽑았으면 됐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드래프트, 격분한 팬들은 구장 밖에서 진을 치고 송호영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 사이 성운 라이온즈의 10대 3 승리로 마무리 된 경기, 이인영은 동료들과 손뼉을 마주치며 팀의 5연승을 축하했다.
너무 많이 해서 이젠 지겨워진 수훈 선수 인터뷰, 그래도 슈퍼 루키는 덤덤한 표정으로 리포터의 질문에 응했다.
“자, 오늘 4타수 3안타, 그리고 승패에 쐐기를 박은 만루 홈런의 주인공, 이인영 선수와 인터뷰를 나눠보겠습니다. 이인영 선수”
“네”
“만루에서 초구부터 스윙을 하셨는데, 병살타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잠시 말이 없던 이인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세상 그 어느 타자가 병살타를 계산에 두고 타격을 하나, 적어도 본인은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의심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실력입니다. 제가 그렇게 소극적인 생각을 했다면 칠 수 있는 홈런도 못 쳤겠죠.”
우문현답에 성운 라이온즈 팬들은 열광, 질문은 계속됐다.
“앞으로 50경기 정도 남았는데요. 올 시즌 몇 홈런까지 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뭐 ··· 제가 칠 수 있을 만큼 치겠죠.”
“구체적인 수치로 말씀해주실 수 없나요? 아니면 목표라든지 ··· ”
“일단 팀 프랜차이즈 기록은 깰 겁니다. 그 이상은 그 다음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평소보다 간략하게 끝난 인터뷰, 마지막까지 더그아웃에서 기다리고 있던 임완수와 손뼉을 마주친 이인영은 호텔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 * *
“그러니까 무조건 거르란 말입니다.”
이곳은 선화 이글스의 구단 사무실, 팬들의 항의에 몰린 송호영 단장은 죄 없는 감독을 몰아세웠다.
왜 상황을 그 지경까지 몰고 간 건지, 거기다 한창 불이 붙은 타자를 상대로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바보가 어디에 있나.
이건 멍청한 투수와 당신의 어설픈 선수기용 탓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피하면 팬들이 더 실망할 텐데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어제 그렇게 두들겨 맞고 도망치면 누가 봐도 노골적 아닙니까?]
“그래서? 또 쳐 맞겠다는 겁니까??”
[맞더라도 당당한 승부를 해야 합니다. 그런 야구는 팬들을 더욱 실망시킬 뿐입니다.]
하지만 송호영 단장은 감독의 뜻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이인영이 홈런을 칠수록 내가 바보가 되는 느낌, 다른 경기는 몰라도 대전에서 홈런포가 터지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전 타석 고의사구를 지시했다.
‘뭐 이런 XX이 ··· '
선화 이글스의 감독 김권중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바보는 이게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르는 건가? 아니, 어쩌면 팬들의 화살이 내게 향하도록 하려는 수작일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지시를 내리는 건 감독, 고의사구가 나오면 팬들이 누굴 욕할지 훤히 보이는데 내가 왜 이런 요구를 들어줘야 하나.
앞에선 알았다고 했지만 뒤에서 다른 생각을 품었다.
“무조건 승부해라. 피하면 우리가 기세에서 밀린다.”
“알겠습니다.”
다음 날, 선화 이글스의 선발로 낙점된 장성호는 감독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이인영을 상대로 4타수 1안타로 그럭저럭 잘 대처한 편,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위해 내가 앞장서야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자, 오늘은 장성호 선수가 선화 이글스의 선발로 나섭니다. 시즌 12경기 등판, 5승 4패 평균자책점 4.50, 흔들리는 선발진에서 그나마 제 역할을 해 주고 있습니다.”
“어제 팀이 대패했기 때문에 본인도 마음가짐이 남다르겠죠. 하지만 기세가 오른 성운 라이온즈를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해설위원의 말대로 선두 타자 홍현구는 3구를 받아쳐 우중간에 떨어지는 안타를 날렸다.
올림픽 대표 팀에 뽑혔지만 김정길 감독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중용 받진 못했다. 그래도 공격력만 따지면 KBO 최고의 유격수 중 한 명, 2021 WBC에선 반드시 주력 선수로 인정받겠다며 무력시위를 이어갔다.
여기에 올 시즌 희생번트 1위(8개)를 기록하고 있는 임완수가 주자를 2루로 보내면서 이인영은 첫 타석부터 득점권을 맞이했다.
‘의심하지 않는 게 실력이라고? 그럼 이것도 쳐보시지’
장성호는 초구부터 몸 쪽 깊숙한 공을 던졌다.
하지만 엉덩이를 뒤로 빼며 가볍게 피하는 타자, 이인영은 차분하게 2구를 기다렸다.
1루가 비어있지만 장성호는 도망치는 투구를 하지 않는 선수, 기다리면 치는 공은 온다고 생각했다.
“오우 ~ 지금은 맞을 뻔 했습니다.”
“장성호 선수가 원래 위협구를 잘 활용하긴 하죠. 그래도 지금은 조금 위험했습니다.”
타석에서 물러난 이인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해보자는 건가? 기분은 나쁘지만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 편, 어디 한 번 해보자는 눈빛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