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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일인자-41화 (41/309)

41화. 불 붙여드립니다 (3)

“한잔 할래?”

일본전이 끝난 그날 밤, 이인영은 선배들의 유혹을 받았다.

준결승전 진출을 확정지으면서 다른 나라보다 여유가 생긴 일정, 축하할 일이 없어도 술자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일본을 대파한 이런 기분 좋은 날을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가죠 뭐”

이인영은 선배들 뒤를 따라나섰다.

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주변 기분에 맞춰줄 줄도 알아야 하는 법, 거기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대한체육회에서 보내주는 식자재가 한정적이라 식사 메뉴도 다양하질 못하다.

가끔은 일탈해서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겠지, 술보다 배가 고픈 슈퍼루키는 안주를 집중공략 했다.

“너 여기 술 마시러 온 거 아니냐?”

“배 채우러 왔는데요.”

주위의 핀잔에 아랑곳하지 않고 안주를 쓸어 담는 녀석, 덕분에 꼬치를 굽는 장인의 손길은 분주해졌다.

“야, 네 덕분에 우리가 좋은 경기 한다.”

“아니에요. 저는 그냥 폭탄에 불이나 붙이는 것뿐이죠.”

선배들의 칭찬이 이어졌지만 이인영은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중심타선이 아무리 잘 쳐도 주자가 안 쌓이면 힘을 못 쓴다. 좋은 동료들의 활약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 뿐, 하지만 선배들은 폭탄도 도화선이 없으면 헛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넌 칭찬 받을 일을 했어. 평소처럼 자신 있게 말해도 돼”

“뭐 ···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제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2번은 사양 안 하는 녀석, 덕분에 술자리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우리 여기서 술 마신다고 뭐라고 하진 않겠죠?”

이때, 전인규가 쓸데없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는 식자재를 못 믿겠다며 한국에서 식료품을 공수해왔는데, 여기서 사케를 마시고 야키토리를 먹었다면 한국 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일본 여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렇게 먹을 거면서 왜 한국에서 식료품을 가져 왔느냐며 비아냥거릴 게 뻔하다.

듣고 보니 일리는 있는 말, 하지만 이인영은 친구의 걱정에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냥 먹어. 이기면 다 용서가 되는 거야.”

일본을 6대 1로 대파했는데 그까짓 사케와 야키토리 좀 먹었다고 팬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한국에서 식료품을 가져오기로 한 건 대한체육협회가 멋대로 정한 일이지, 선수들의 동의를 구한 일이 아니다.

어디서 뭘 먹든 그건 우리가 결정할 일, 뭣보다 한국 선수들이 뭘 먹는지 까지 걸고넘어질 정도면 일본이 그만큼 우릴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 아닌가.

아이돌 따라다니는 스토커도 아니고 미행은 정도껏 하라고 하면 그만, 선수들은 그 말이 옳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미에서 원 모어 플리즈 ~ ”

명분을 확보한 이인영은 계속 접시를 비워냈다.

오프 시즌 동안 6kg을 감량했고 시즌 중이라 몸 관리도 철저히 했지만 긴 시즌을 버티려면 먹는 것도 중요하다.

체육회에서 파견한 조리사들이 만든 요리는 솔직히 입에 안 맞는 편, 결승전을 위한 체력 안배라며 원 모어 플리즈를 연발했다.

[한국 대표팀, 식당에서 사케와 야키토리 즐겨]

그런데 다음 날, 설마 했던 기사가 터졌다.

어쩜 우리가 예상한 대로 행동하는 건지, 일본 여론은 일본 음식 먹을 거면 한국에서 식자재는 뭐 하러 공수해 왔냐며 비꼬았다.

더 웃긴 건 대한체육회 관계자들의 반응, 왜 그런 걸 먹었냐며 따지고 드는데 이인영은 불쾌한 반응을 내놨다.

“저희가 뭘 먹는 게 중요합니까? 아니면 메달 따는 게 중요합니까?”

“그건 ··· ”

“저희가 밖에서 밥 먹는 게 기분 나쁘면 음식을 잘 해 주시던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는데 입에 안 맞는다고 하는 선수들 많습니다. 신경 좀 써 주세요.”

까칠한 반응에 체육회 관계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한국은 일본과 정치적 문제 때문에 갈등을 빚는 중, 기싸움에서 안 밀리겠다고 식자재를 한국에서 공수해왔는데 정작 선수들 입맛에 맞는 음식은 못 해주고 있지 않은가.

할 말을 하는 루키 덕분에 선수들도 가슴 속에 담아뒀던 불만을 쏟아냈다.

따지고 들었다가 한 푼도 못 건진 체육회는 식단 관리에 신경을 썼고, 덕분에 선수들은 간만에 풍요로운 식사를 즐겼다.

* * *

[한국, 멕시코와 준결승전에서 격돌]

드디어 찾아온 결전의 날, B조 2위를 기록한 멕시코는 패자부활전에서 이스라엘을 꺾고 준결승전에 올랐다.

축구가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남미에서 멕시코는 그럴듯한 프로야구리그를 갖춘 나라다.

특히 중남미 윈터 리그는 자국 선수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산하 마이너리그 선수들도 투입되기 때문에 수준이 낮다고 할 수 없는 편,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패배하긴 했지만 멕시코는 마지막까지 팽팽한 접전을 보여줬다(6대 4).

방심했다간 큰 코 다치겠지, 한국 대표 팀은 나름대로 준비를 마치고 경기에 임했다.

“자, 멕시코의 1회 초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안드릭 니에토, 이번 대회에서 11타수 5안타, 타율 0.455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들었던 선수죠. 그리고 지금 소속은 애리조나 푸에블로 인디언스로 돼 있습니다.”

“아직 더 경험이 필요하다는 구단의 판단 하에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긴 했지만 언젠간 다시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도 있는 선수죠.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한국의 선발 투수는 이홍기(창원 레이더스), 최고 147km의 속구와 수준급의 체인지업을 던진다.

멕시코는 운동능력을 앞세우는 타자들이 많은 편, 그만큼 큰 스윙을 하기 때문에 김정길 감독은 이홍기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따악 ~ !!

하지만 이홍기는 니에토에게 안타를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이홍기는 슬라이더나 커브도 던지지만 기본적으로 빠른 볼과 체인지업을 앞세우는 투수, 전문가들의 지적하는 단조로운 피칭을 극복하기 위해 슬라이더도 던지는데 그런 어정쩡한 시도가 부진으로 이어지는 날이 많다.

“팔꿈치가 너무 틀어진다.”

사실 대표 팀 투수 코치를 맡은 신명철 코치도 이 점을 지적했다.

오른손 투수에게 왼팔 팔꿈치는 가늠쇠 역할을 하는데, 이홍기는 슬라이더를 던질 때 팔꿈치가 들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바엔 슬라이더를 포기하고 직구 구위에 신경 쓰면서 체인지업을 던지는 게 나은데, 본인은 왜 자꾸 구종을 추가하려고 하는 걸까.

실력은 있는데 여론의 귀에 흔들리는 팔랑 귀가 문제, 코치진이 사인을 주자 포수는 바로 볼배합을 바꿨다.

철저하게 바깥쪽을 찌르는 투구, 하지만 한국만큼 좌우 폭이 넓지 않은 스트라이크 존에 이홍기는 적응하지 못했다.

1회부터 안타 포함 볼넷 2개를 내주며 1사에 주자는 만루, 이반 칼로의 희생 플라이가 나오면서 멕시코가 선취점을 가져갔다.

딱 ~ !!

“아 ··· 여기서 다시 안타가 나오는 군요.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멕시코가 2대 0으로 앞서나갑니다.”

“원종우 선수가 올 시즌 1 ~ 2회 평균자책점이 4.62인데, 그 이후는 3.14로 아주 좋거든요.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에 민감한 선수라는 게 다시 한 번 증명되네요.”

“제가 봤을 땐 빠른 교체도 나쁘지 않습니다. 뭐 ··· 원종우 선수가 못한다는 게 아니라, 주심과 상성이 좋질 않네요.”

해설위원의 염려대로 김정길 감독의 생각은 깊어졌다.

초반만 잘 풀리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했는데 세상일이란 마음대로 안 되는 법, 일찌감치 불펜을 가동했다.

여기서 이겨야 결승전도 바라볼 수 있는 법, 단기전에서 선수의 자존심을 챙겨줄 여유는 없었다.

“자!! 한 점 따라가자!!”

“예!!”

2점을 내 준 한국의 1회 말 공격, 선수단은 도민호(선화 이글스) 캡틴의 구령에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지면 동메달 결정전으로 추락, 기자들 앞에서 금메달을 안고 돌아간다고 했는데 여기서 무너질 순 없었다.

하지만 전인규를 필두로 하는 테이블 세터진은 멕시코의 선발 산체스의 싱커에 막혀 전멸, 폭약이 안 채워졌는데 도화선을 끼워 넣으면 뭐 하나, 얼마 전 술자리에서 타선의 도화선 역할을 자처했던 이인영은 홀로 투수와 마주했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번 대회 성적은 타율 0.750, 홈런 2개, 6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낮은 공을 잘 치는 선수라산체스 선수와 상성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기대를 해 봐야겠네요.”

예상대로 산체스는 싱커를 앞세웠다.

멕시코리그에선 보기 드문 언더핸드 투수, 거기다 싱커가 좌타자 기준으로 바깥쪽으로 흘러가는 궤적이라 타자 입장에선 투심에 가까웠다.

생각보다 치기 까다로운 유형, 이인영은 3구를 밀어 쳤지만 좌익수 플라이 아웃이 되면서 한국의 1회 말 반격은 성과 없이 끝났다.

‘이거 위험한데’

이후에도 이어지는 산체스의 호투, 흐름을 빼앗긴 대표 팀의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게 이런 결과로 이어질 줄이야. 타선이 5회까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자 한국 여론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사케에 야키토리 먹고 방사능에 중독됐냐?]

-> 내가 왜 이 말 안 나오나 했다. 아직 중반인데 그냥 좀 지켜보면 안 되냐?

-> 한국인들의 냄비근성 오지죠? 역시 종특이야.

-> 못 하면 욕하는 게 팬들이지 무슨 종특이야, 어쨌든 전인규 - 이인영은 이번에 메달 못 따면 좀 뼈아플 듯

메달도 메달이지만 군 혜택이 걸린 대회,

동메달을 따도 혜택은 주어지지만 고작 6개 팀이 참가한 대회에서 동메달 땄다고 박수쳐줄 팬이 몇 명이나 있을까.

선수 입장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결과, 한국 야구의 미래를 책임질 21세 듀오는 6회부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따악 ~ !!

“유격수 옆을 빠져나가는 안타!! 전인규 선수가 드디어 오늘 경기 첫 안타를 기록합니다!!”

“여기서는 보내기 번트 댈 이유 없죠. 이인영 선수 앞에 최대한 주자를 쌓아둬야 합니다.”

해설위원의 주장대로 김정길 감독은 번트를 대지 않았다.

한 점 따라 붙겠다는 생각으로 가도 되지만, 1루를 비우면 멕시코도 무리하게 승부하지 않겠지. 이인영에게 승부를 걸도록 강요했다.

“아 ~ !!”

하지만 후속 타자 도민호는 내야 플라이를 치고 말았다.

캡틴이라는 놈이 실전에서 못해주고 있으니, 속상한 마음에 배트를 바닥에 내리치며 1루로 향했다.

인필드 플라이가 선언되면서 2사에 주자는 1루,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서자 멕시코의 감독 라시엘 멘도자는 중견수를 내야로 끌어내렸다.

이인영의 장타력은 분명 뛰어나지만 오늘은 산체스의 투구에 2타수 무안타로 막혀 있다.

땅볼만 나오면 이대로 이닝 종료, 뭣보다 2아웃 주자 1루라 무리하게 승부를 할 이유가 없다.

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유인구 퍼레이드, 결국 이인영은 3번 째 타석도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더블 스틸이라도 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이인영은 곁눈질로 더그아웃을 살폈다.

지금 2루에는 도루 센스가 탁월한 전인규, 1루에도 도루를 할 수 있는 내가 버티고 있다.

주자 2명을 득점권에 보내고 안타 한 방에 동점을 노리는 게 최선, 하지만 김정길 감독은 아무런 사인도 내지 않았다.

‘뛸래?’

'OK'

21살 듀오는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방망이가 안 되면 뛰어서라도 내야하는 득점, 모험을 걸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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