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불 붙여드립니다 (2)
[한국 대표팀 이스라엘 격파]
[2승 무패로 A조 1위 확정]
이어지는 이스라엘과의 경기에서 한국은 투타의 조화를 앞세워 7대 2승리를 거뒀다.
이제는 B조 1위를 기록한 일본과의 경기, 여기서 이기는 팀은 자동 준결승전 진출권을 거머쥔다. 예선이라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경기, 전문가들은 나름대로 예측을 내놨다.
“지난 프리미어 12에서 대표 팀 타선이 일본을 상대로 장단 19안타를 치고도 2경기에서 7득점에 그친 이유는 중심 타선의 부진 때문입니다. 지금도 화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21타수 5안타 거기다 득점권에서 9타수 1안타를 처참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이래서야 이길 수가 없죠.”
“김정길 감독님도 대회가 끝난 후 그 부분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하셨는데, 이번 올림픽 예선에선 성과가 있었죠?“
“그렇습니다. 특히 이인영 선수가 이번 예선에서 6타수 4안타 4타점, 특히 득점권에서 아주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줬죠. 아직 홈런은 없지만 안타를 치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라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국은 그동안 한일전에서 실력 이상의 성과를 거뒀고, 이를 정신력에서 앞섰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그럼 일본은 승리에 대한 열정이 한국보다 없었다는 건가. 사실 정신력의 승리가 아니라 몇 몇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승패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2000년에 열린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과 마주한 한국은 대학 졸업 루키인 서동우 선수가 일본의 선발 아메미야를 상대로 2타점 적시타를 치며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본이 바로 따라붙으면서 스코어는 2대 2 동점이 됐다.
이후 양 팀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7회까지 4대 4 팽팽한 접전을 벌였고, 다시 서동우 선수가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2점 홈런을 때리며 역전에 성공했다.
일본 대표팀은 9회 말에 1점을 따라붙었지만 경기는 결국 6대 5 한국의 승리, 혼자서 4타점을 올린 서동우는 이때부터 일본 킬러로 명성을 날렸고, 2006 WBC에서 일본과 3번이나 맞붙으며 12타수 7안타, 2홈런, 6타점을 기록했다.
말 그대로 일본 킬러, 이후 서동우는 NPB에 진출했고 첫 시즌에 타율 0.319, 27홈런, 94타점을 기록하며 한일전의 활약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이후에도 2008베이징 올림픽, 2009 WBC에서도 한국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 하지만 지난 2013년을 마지막으로 대표 팀 유니폼을 벗었다.
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내려진 것, 이후 치료에 매진했지만 현역 시절 95kg이나 나갔던 체중이 80kg 이하로 줄어들면서 팬들을 경악하게 했다.
그리고 투병 3년 만에 39세의 나이로 요절, 통산 한일전에서 타율 0.500, 홈런 4개, 14타점을 올린 전설은 그렇게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사라졌다.
그 이후의 한국 대표 팀은 어떤가.
수많은 선수들이 제 2의 서동주를 자처했지만 결과는 참담, 그 누구도 한일전에서 서동주 만큼의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 결과는 대표 팀의 국제대회 부진, KBO 리그 질이 하락한 것도 원인이겠지만 역시 클러치 히터 본능은 타고 나는 법, 이인영은 대표 팀 타선의 비어있던 한 조각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의 활약만 보면 합격점, 한국 팬들의 기대감은 높아졌다.
“일본은 늘 한국에 앞서고 있었지만 자만심이라는 내부의 적에 발목을 잡혔습니다. 이번에는 다를 것입니다.”
한편, 12년 동안 일본 국가 대표 팀으로 활약한 타케토 감독은 기자들 앞에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 우리가 실력에서 앞서는데 왜 패배를 반복한 걸까. 그건 우리가 아시아 최고라는 자만심 때문,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승리는 확실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방심했다고 패배하나요? 웃긴 소리입니다.”
이인영은 타케토 감독의 발언에 비웃음을 날렸다.
실력이 있는 자가 승리를 하는 법, 패배에 이런저런 변명을 붙이는 건 구질구질한 변명일 뿐이다.
국가대표 시절, 한국을 상대로 통산 5번이나 패배를 맛 본 타케토 감독은 그런 식으로라도 위안을 삼고 싶은 거겠지, 일본은 당시 정신력에서 밀린 게 아니라 실력에서 밀렸다고 선을 그었다.
“승부란 강한 자가 이기는 겁니다. 누가 더 강한지는 다음 경기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애송이의 도발로 후끈 달아오른 열도, 타케토 감독은 물론 일본에게 시비를 건 이인영은 경기 전부터 엄청난 아유에 시달렸다.
하지만 야유는 두려움의 또 다른 표현, 일본은 분명 자기들이 한국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겨도 본전이고 지면 개망신, 심리적 부담을 안고 있는 쪽이 누구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야유도 즐겁게 들렸다.
‘어우 ~ 졸려…’
일본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겁 없는 루키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마침 이 장면을 캐치한 중계카메라, 일본 중계진은 이게 무슨 무례라며 격노했고 일본 네티즌들도 저 애송이를 어서 빨리 처리하라며 폭발했다.
“자, 1회 초 대한민국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전인규 선수, 이번 대회에서 7타수 4안타, 홈런 없이 1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프리미어12에서도 일본 투수들을 상대로 좋은 타격을 보여줬거든요. 어떻게든 이인영 선수 앞에 찬스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전인규는 투 스트라이크를 헌납했지만 특유의 컨택 능력으로 승부를 풀 카운트까지 끌고 갔다.
8구만에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일본 투수들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타석, 후속타자 오재성도 아웃은 됐지만 좌익수 정면으로 가는 날카로운 타구를 보여줬다.
[レフト - 李仁永]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 ~ 역시 야유가 대단한데요.”
“제가 아는 이인영 선수는 이 정도로 겁먹을 성격이 아닙니다.”
“하하 ~ 무슨 근거라고 있으신지요?”
“당연하지요. 제가 직접 지도했던 선수니까요. 저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오는 겁니다.”
일본의 선발 아사노 아키사다는 초구를 바깥쪽 높은 코스에 던졌다.
그만큼 나를 의식한다는 뜻, 일본도 쫄았다는 걸 간파한 이인영은 느긋하게 다음 공을 기다렸다.
“2구도 바깥쪽 높게 들어옵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저 코스에 약하다는 걸 알고 있는 거죠. 하지만 주심은 잡아주질 않고 있습니다.”
카운트가 불리해지자 타케토 감독은 적극적인 승부를 주문했다.
여기서 볼넷이라도 내주면 저 녀석의 기를 살려줄 뿐, 포수 사인을 확인한 아사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라이크!!”
“와아아 ~ !!”
스트라이크 콜 하나에도 달아오르는 관중석, 하지만 타자가 떨어지는 유인구를 골라내면서 카운트는 쓰리 볼 원 스트라이크가 됐다.
이제는 정면승부 뿐, 이인영은 바깥쪽 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따아악 ~ !!
“밀어낸 타구가!! 센터 쪽으로 높게!! 담장을 넘어 ~ 갑니다!!!! 이인영 선수의 선제 솔로 홈런!! 이번 올림픽 첫 홈런을 일본을 상대로 기록합니다!!”
“유인구를 골라낸 게 역시 정면승부로 이어졌죠!! 이겨 놓고 치는 선수입니다!!”
홈런을 맞은 아사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깥쪽으로 제법 잘 붙인 공인데 밀어낼 줄이야, 거기다 바깥쪽 공을 칠 때 몸이 홈 플레이트 쪽으로 기울어지는 현상도 일어나질 않았다. 밸런스가 그만큼 좋다는 뜻, 도쿄 돔을 찾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했다!!”
그 사이, 김정길 감독은 더그아웃 펜스 앞으로 나와 하이파이브를 권했다.
지난 프리미어12의 중심타선 부진을 해결해 준 한 방, 동료들도 떠들썩한 반응을 보였지만 아직 보여줄 게 많은 슈퍼루키는 덤덤한 표정으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따아악 ~ !!
“어?!! 이 타구도 멀리 가는데요?!! 좌측 담장을 넘어 ~ 갑니다!!!! 스코어 2대 0!! 박종우 선수까지 홈런에 가세합니다!!”
“지금 제 주변은 난리가 났네요. 교체하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연타석 홈런에 경악한 홈 팬들은 저 자식을 끌어내리라며 폭발했다.
본때를 보여주라고 했더니 오히려 당하고 있으니, 당황한 타케토 감독은 2회부터 무라사메 켄이치를 올렸다.
최고 159km를 던지는 일본의 필승 계투 중 한 명, 프리미어 12에선 한국 대표 팀을 상대로 4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한 적도 있다.
구위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괴물, 이렇게 빠른 공은 거의 본 적이 없는 한국 타자들은 빠른 볼만 던져도 타이밍을 놓쳤다.
일본은 2회 말에 1점을 내며 추격을 개시, 프리미어 12에서도 앞서고 있다가 역전을 당한 한국 대표 팀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자, 이제 한국의 3회 초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선두 타자는 이인영 선수, 첫 타석에서 센터 쪽 담장을 넘어 가는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이번 대결은 힘과 힘의 승부가 되겠네요. 이인영 선수도 빠른 볼에 강점이 있고, 무라사메 선수도 절대 승부를 피하는 타입이 아니거든요. 초구를 보면 답이 보일 겁니다.”
무라사메는 155km 빠른 볼을 스트라이크 존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이런 선수가 국내에 있었던가. 슈퍼루키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에 흥미를 느꼈다.
딱 ~ !!
“다시 빠른 볼!! 파울 라인 벗어납니다. 일단 따라가는군요.”
“자, 이제 노 볼 투 스트라이크인데, 좋은 공은 주지 않을 겁니다. 이인영 선수는 슬라이더를 조심해야 되요.”
하지만 박한우 위원의 예상과 달리 일본 배터리는 빠른 볼 사인을 주고 받았다.
슬라이더 타이밍에 빠른 볼을 던져 헛스윙 삼진을 유도하는 건 무라사메의 특기, 뭣보다 그렇게 잡아내야 더 멋지다고 생각했다.
따아악 ~ !!
“なんだと(뭐라고)?!!”
하지만 중심에 제대로 걸린 타구,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한 무라사메는 고개를 떨궜다.
좌측 담장을 너머 관중석 상단에 처박히는 초대형 홈런, 타구를 잠시 응시한 이인영은 배트 투척과 함께 런 웨이를 시작했다.
무라사메의 공을 이렇게 받쳐 놓고 돌려버린 타자가 있었던가. 한국산 괴물의 비상식적인 배트스피드에 타케토 감독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녀석은 정면에서 달려들 상대가 아니다’
타케토 감독은 이후 배터리에 철저하게 피하는 승부를 지시했다.
무라사메의 구위가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선수들은 말 할 것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분위기 싸움에서 완전히 밀린 일본 대표팀은 끌려가는 경기를 했고, 김정길 감독은 필승조를 전부 투입해 빗장걸기에 나섰다.
거기다 타선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면서 한국 대표팀은 7회까지 5대 1 리드를 유지, 오늘 2홈런을 때린 이인영은 8회 초 공격에서 1사 주자 1 - 2루 기회를 맞이했다.
여기서 피하면 1사 주자 만루, 추가점을 내주면 힘든 상황이지만 타케토 감독은 볼넷을 지시했다.
[日本にとって シェイム]
= 일본의 수치다.
이 결정에 일본 네티즌들은 폭발했다.
승패를 떠나 반드시 잡아야 할 녀석을 피해버리다니, 일본 야구 역사상 최악의 굴욕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반면 한국 쪽은 축제분위기, 6대 1 완승을 거둔 한국 대표 팀은 준결승전 진출을 확정지으며 메달권에 성큼 다가섰다.
“일본을 무시한 행동입니까?”
경기가 끝난 후, 한 일본 기자는 이인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기미가요가 나오는 타이밍에 하품을 하다니, 너무 무례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국산 괴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일본인도 아닌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혹시 지금도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애국가 앞에서 하품을 했다면 모를까, 내가 왜 기미가요 앞에서 하품을 했다고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건가.
슈퍼루키는 못 다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하품이 나와서 한 건데 왜 그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밉게 보면 미운 점만 보이기 마련이죠, 그리고 딱히 일본 팬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충분한 답이 됐길 바랍니다.”
인터뷰를 마친 슈퍼루키는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건방져도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뭣보다 실력이 있는 녀석,
그리고 비난의 화살은 타케토 감독에게 집중됐기에 이 발언은 큰 주목을 받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