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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일인자-39화 (39/309)

39화. 불 붙여드립니다 (1)

대한민국 야구 대표 팀의 일본 출국을 앞두고 방송국은 이번 대회가 치러지는 룰을 간략히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더블 엘리미네이션으로 치러지는 대회, 본선에 진출한 6개팀이 A조, B조로 나뉘어 경기를 치르고 승자조는 승자 패자조는 패자끼리 각자 경기를 치른다.

말은 쉽지 얼핏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구조, 송호영 기자는 팬들을 위해 시나리오를 한 마디로 정리했다.

“두 번 지면 탈락입니다.”

“아, 그렇게 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한국 대표 팀이 두 번 패하는 모습을 보면 끝, 이런 저런 경우의 수가 있는 WBC보다 더 타이트한 구조라 선수들 입장에선 한 경기도 방심할 수 없었다.

"안 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복잡한 생각을 싫어하는 슈퍼루키는 기자들 앞에서 복잡한 생각은 집어치우겠다고 선언했다.

극적인 패자부활전? 경우의 수? 그런 건 승자 앞에서 무의미한 계산법이다. 어떤 종목이든 이기면 그만, 하지만 한국의 대전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한국은 쿠바, 이스라엘과 함께 B조에 편성, 쿠바야 오래 전부터 유명한 야구강국이지만, 최근 이스라엘의 약진은 놀랍다.

2017 WBC 본선 진출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신흥강국, 이번 올림픽에서도 본선 티겟을 거머쥐었다.

2017 WBC에서 이스라엘에게 패배한 경험이 있는 한국 대표 팀에겐 트라우마가 있는 상대, 그래도 팬들은 슈퍼루키의 당당한 모습에 안심했다.

“어쩌자고 그런 말을 했냐?”

“왜요? 혹시 감독님은 경우의 수 생각하셨나요?”

김정길 감독은 이인영에게 왜 그런 말을 했냐고 물었지만 본전도 못 찾았다.

전승으로 올림픽 우승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던 지난 2008년의 패기는 어디로 갔는가. 사실 김정길 감독은 시작부터 KBO와 선수차출 문제를 두고 삐걱거렸다.

감독에게 선수차출 전권을 줘야지 왜 거기에 위원회가 간섭을 하려는 건가.

여기에 한 술 더 뜬 여론의 간섭, 왜 이 선수를 안 뽑냐 저 선수는 안 된다 참견이 많은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선수차출 문제는 지난 2008년에도 있었던 일, 하지만 김정길 감독은 9전 전승으로 KBO 위원회와 여론의 입을 막아버렸다.

하지만 지난 프리미어12에서 대만에게 패하고 일본에게 연패하며 준우승을 머문 김정길 감독은 선수차출 명분과 지도자의 입지까지 잃어버린 상황, 거듭된 패배에 주눅이 들었는지 전승 우승을 부르짖는 애송이의 자신감에 가슴이 두근거린 게 사실이다.

나이를 먹었다고 10년 전의 패기를 잃어버린 건지, 승리만 생각하자는 어린 선수의 말에 아무 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이기자, 이기면 되는 거야.’

백전노장은 흔들리는 자신감을 바로 세웠다.

언제부터 내가 패배를 두려워했는가, 프로리그에서 통산 2000경기를 넘게 지휘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1회 뿐, 998승을 거두는 동안 무려 1034패를 경험했다.

그래도 통산 국제대회 성적은 13승 5패로 굉장히 좋았던 편, 덕분에 패배가 더 많아도 한국야구 내에서 입지는 높은 편이다.

필승의 명장이라 할 순 없지만 정말 이겨야 할 경기는 잡았던 역전의 용사, 프리미어12에서 당한 굴욕을 여기서 갚아주겠다는 의욕을 불태웠다.

“네 아버지는 요즘 뭐하시냐?”

“그냥 집에서 쉬고 계세요”

“그래? 집에 있긴 아까운 사람인데 ··· ”

화제는 어느덧 이인영의 아버지 쪽으로 흘러갔다.

이인호는 한때 김정길 감독 밑에서 선수로 뛰었던 몸, 장타는 많지 않아도 특유의 컨택 능력과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능력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선수로 기억하고 있다.

은퇴했어도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 기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름 즐겁게 지내고 계시니까요.”

“즐겁다고?”

“네,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계세요.”

이인호는 가장의 자리를 아들에게 넘겼다.

돈은 아들이 벌고 그걸 관리하는 건 아내 몫, 내가 할 일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은 것도 아니다.

내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언젠가는 해외로 뻗어나갈 아들, 그 미래를 위해 법률 공부를 시작했다.

KBO 리그는 2018년부터 공인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했다.

KBO 위원회가 주관하는 자격시험을 거친 사람들이 정식으로 자격증을 획득하는데 지금까지 자격증을 획득한 사람은 180여명, 그럼 이들이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걸까?

자격증을 얻었지만 선수를 만나지도 못하는 에이전트가 다수, 지인을 통해 선수를 소개 받지 못하면 야구장 출입도 불가능하다. 구단 티켓을 끊어야 야구장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게 팬이지 어떻게 에이전트인가.

거기다 일부 구단은 에이전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편, 선수는 구단 소유물이 아닌데 그 입장을 변호하는 에이전트를 방해자로 본다.

이런 환경에서 아들이 프로 팀에 권리를 주장하고 원활하게 해외로 진출할 수 있을까?

법률을 모르면 바보가 되고 구단에 끌려 다니는 스포츠 세계, 이인호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가 공부를 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네 아버지는 이제 너만 보고 사시는구나?”

“네,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투자할 가치가 있잖아요.”

김정길 감독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긴, 전반기에만 30홈런을 때린 타자가 아들인데, 투자 할 가치는 충분하겠지. 현장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다는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옛 제자가 가고자하는 길을 존중해줬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도쿄 올림픽 A조 예선 경기, 대한민국과 쿠바의 경기가 열릴 아즈마 야구장입니다. 박한우 위원님,”

“예”

“경기 전 방사선량을 직접 체크하신 걸로 아는데, 현재 아즈마 구장의 주위 환경은 어떻습니까?”

“글쎄요 ··· 일본에서 목표로 정한 방사선보다 낮은 수치가 나왔지만 그래도 조금 꺼림칙한 게 사실입니다.”

성운 라이온즈 감독에서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박한우 위원은 팬들에게 이곳 사정을 세세하게 전달했다.

직접 구입한 방사선 측정기로 이곳저곳을 검사해 팬들과 정보를 공유,

우승도 중요하지만 지금 뭣보다 중요한 건 선수들의 안전 아닐까, 박한우 위원은 하루 빨리 위험한 일정을 마치고 안전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코멘트를 덧붙여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그딴 건 줘도 안 먹어”

선수단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 IOC도 양심은 있는지 일본 식자재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각 나라의 대표 팀이 식자재를 공수하는 것은 허용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결정에 유감을 표했지만, 현지에 파견된 대한체육회 직원들은 급식 센터를 세우고 음식을 대표 팀에 공급하기로 최종결정을 내렸다.

[한국, 너무 민감하게 대응한다]

[일본의 식자재는 한국보다 안전하다]

당연히 일본 현지 팬들의 반응은 냉소적, 사방에서 비난과 야유가 쏟아졌지만 한국 대표 팀은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자, 1회 초 쿠바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야스마니 로페즈 ··· 원래는 이 선수가 좌익수로 나올 예정이 아니었죠?”

“네, 지금도 행방을 쫒고 있다고 하는데 이렇다 할 소식은 없습니다.”

드디어 시작된 경기, 쿠바 대표 팀은 패닉 속에서 경기를 치렀다.

1년 전만 해도 쿠바야구연맹은 미국 정부와 협약을 맺어 쿠바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왔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협약 무효화를 선언하면서 막혀버린 해외 진출, 미국 재무부는 메이저리그 법무팀에 공문서를 보내 앞으로 메이저리그는 쿠부야구연맹에 계약 상여금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선수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왜 야구연맹이 갈취를 하는 건가, 명분은 그럴듯했지만 사실은 쿠바 제재 해제를 두고 벌어진 정치적 갈등의 연장선, 해외 진출길이 막히자 쿠바 선수들은 다시 꿈을 위해 도주를 택했다.

이번에 대표 팀에서 이탈한 로베르토 구리엘도 그 중 한 명, 쿠바 정부는 실종 사건이라고 둘러댔지만 누가 봐도 이건 꿈을 위한 도주였다.

‘아쉽군.’

이인영은 이 사건에 아쉬움을 표했다.

구리엘은 메이저리그에서 예전부터 관심을 줬던 선수, 그 실력을 직접 볼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는데 도망을 쳤을 줄이야.

갈 땐 가더라도 얼굴이라도 한 번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경기에 집중했다.

타선의 허리를 잃은 쿠바 대표 팀은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1회 초 공격을 마무리, 대한민국 대표팀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타선은 몰라도 쿠바의 투수력은 그저 그런 수준, 전인규의 선두 타자 안타와 후속 타자 오재인의 진루타로 1사 주자 2루 기회가 왔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KBO 리그에서 타율 0.386, 홈런 30개, 62타점, 전반기에 일찌감치 30홈런을 달성했습니다.”

“이인영 선수의 실력을 쿠바가 모를 리가 없겠죠. 하지만 이런 견제는 늘 당했던 선수라 걱정할 건 없습니다.”

박한우 위원은 양아들을 향한 무한 신뢰를 드러냈다.

입단 했을 때부터 거포의 싹이 보였던 선수, 이 정도 투수의 공은 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생각보다 훨씬 타이트 한데?’

초구를 지켜본 이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국이라면 스트라이크 콜을 받았을 수도 있는 코스, 하지만 세계규격에 맞춘 스트라이크 존은 좌우 폭이 생각보다 훨씬 좁았다.

하지만 그만큼 위아래로 길게 늘어진 존, 거기다 이인영은 허리를 바로 세운 타격 폼이라 주심 입장에선 더 넓게 스트라이크 존을 책정할 수도 있다.

좌우는 철저하게 골라 치고 낮은 공은 적극 공략하기로 결심, 아니나 다를까 약간 낮은 싱커가 들어왔다.

따악 ~ !!

“잡아당긴 타구가!! 우익수 앞에 떨어집니다!! 전인규 선수는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들어옵니다!! 선취점 대한민국!!!! 산뜻한 출발을 알립니다!!”

“쿠바가 전체적으로 공부가 부족하네요. KBO 투수들이라면 절대 던지지 않았을 공입니다.”

박한우 위원은 깨알같이 쿠바 대표 팀을 깎아내렸다.

이인영은 올 시즌 낮은 코스에 타율 0.418, 장타율 0.758을 기록했다. 한 마디로 저승사자, 타격 메커니즘 자체가 허리 근처에서 임팩트를 끌어올리기 때문에 낮은 공은 위험하다.

그나마 바깥쪽 높은 코스를 던졌을 때 떨어지는 타율(0.245), 하지만 이건 허리를 세우고 몸 쪽 공을 적극적으로 치면서 일어난 결과다.

뭣보다 올 시즌 이인영은 바깥쪽 높은 코스를 제외하고 모든 코스에서 3할이 넘는 타율을 보여주고 있다.

박한우 위원은 공부 부족이라고 깎아내렸지만 사실은 상대가 약점이 거의 없는 괴물이었을 뿐, 한국 팬들도 쿠바 투수가 못 던진 게 아니라, 이인영이 잘 친 것뿐이라며 동정을 표했다.

[아이고, 또 맞았네]

[불쌍하다, 선수도 도망쳤는데 하필이면 한국을 만나가지고]

이인영은 2번 째 타석에서도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다른 타자들도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쿠바 투수진을 두들기는 중, 이날 한국 대표 팀은 장단 18안타를 몰아쳐 13대 0 완승을 거뒀다.

한국을 비난했던 일본 여론은 막강 화력 앞에 침묵, 역시 일본의 우승을 가로 막을 강력한 적이라는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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