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38화 (38/309)

38화. 전설의 오꽝 (17)

[2020 kbo 올스타전, 대전에서 열린다]

올스타전을 앞두고 이인영은 이글스 파크로 향했다.

도쿄 올림픽 때문에 작년보다 일주일 앞당겨진 행사, 올스타전이 끝나면 쉴 틈도 없이 대표팀 숙소에 합류해야 한다.

바쁜 일정의 연속, 하지만 슈퍼루키의 얼굴에 피곤함 따윈 드러나지 않았다.

학창시절을 보낸 곳에서 커리어 첫 올스타 출전을 치르게 되다니, 동산고 후배들도 응원을 오기로 약속하면서 가슴은 설렘으로 부풀어 올랐다.

일단 내일은 홈런 레이스에 출전해 가볍게 몸을 풀 예정, 예약을 잡은 숙소에서 수건을 배트 삼아 스윙 연습을 했다.

[지금 시간 되냐?]

이 때 날아온 문자, 언제 한 번 밥이나 먹자고 했으니 약속은 지켜야겠지. 이인영은 근처 식당에서 전인규와 얼굴을 마주했다.

선화 이글스를 대표하는 스타와 한국야구의 돌풍을 선도하는 홈런타자의 합석, 손님들의 시선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너 이거 먹을 줄 아냐?”

“어, 처음엔 못 먹었는데 지금은 괜찮아.”

이인영은 자연스럽게 막창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처음 먹어본 건 프로 들어와서 처음, 솔직히 이런 걸 왜 돈주고 사먹는지 이해 못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대구로 이사를 오고, 동료들과 술자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구 문화에 익숙해졌다. 대전에서 나고 자랐지만 지금은 대구 사람, 친구 귀에 속마음을 흘렸다.

“솔직히 막창은 대구가 더 맛있는 것 같다.”

“훗 그러냐?”

“어, 나중에 대구에서 다시 먹자.”

자연스럽게 연장된 식사 약속, 그렇게 두 선수는 좋은 음식을 앞에 두고 대화를 이어갔다.

“야, 우리가 지금 한 팀이었다면 어땠을까?”

“인생에 만약은 없는 거야.”

전인규는 은근 이인영과 한 팀이 되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내가 나가고 이 녀석이 불러들이는 패턴이 반복됐다면 선화 이글스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내지 않았을까.

이건 혼자만의 아쉬움이 아니라 대전 팬들이 틈만 나면 입을 모으는 주제, 하지만 이인영은 아쉬움 따윈 조금도 없었다.

인연이 없으면 무슨 짓을 해도 이어지지 않는 법, 인연이 아니었으니 이렇게 헤어지게 된 것 아닌가. 생각보다 냉정한 답에 전인규는 옅은 미소만 지었다.

“저기, 실례 안 되면 사진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이때 불쑥 끼어든 제 3자들, 사인에 비하면 훨씬 쉬운 일이라 이인영은 기꺼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 대구로 가셨어요. 저희들은 대전으로 오길 바랐는데”

팬들은 떠나는 순간까지도 아쉬움을 표했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저분들을 위해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잠시 고민하던 슈퍼루키는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 올스타전에서 확실하게 서비스 해 드릴게요.”

“서비스라뇨?”

“제가 앞으로 이글스 파크에서 치는 홈런은 모두 대전 팬들 가슴에 비수가 될 거니까요. 제 홈런을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건 이번 올스타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니까. 마음껏 즐겨주세요.”

팬들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하게 비수를 꽂는 발언, 그 말을 듣고 있는 전인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와아아 ~ !!”

다음 날 오후 2시, 빈틈없이 들어찬 관중석은 팬들의 환호로 들썩였다.

올스타 전야제 하면 역시 홈런 레이스, 출전 선수 명단에 오른 선수들은 한 자리에 모여 기념 촬영을 했다.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는 역시 성운 라이온즈의 이인영, 몇 개를 쳐야 저 녀석을 따돌릴 수 있을까. 경쟁자들은 머릿속에서 경우의 수를 따졌다.

일단 첫 타자를 보면 대략 감이 잡히겠지, 박종우(NA 자이언츠 : 시즌 홈런 11개) 타격에 관심이 집중됐다.

따악 ~ !!

“타격!! 하지만 멀리 가지 못합니다.”

“글쎄요. 스타트를 잘 끊어야 흐름을 타는데 일단 출발은 좋지 않습니다.”

박종우는 홈런 하나치지 못하고 순식간에 아웃카운트 7개를 쌓았다.

원래 치라고 멍석 깔아주면 더 안 나오는 게 홈런, 거기다 첫 타자라는 부담감 때문인지 타구는 담장 근처도 가지 못했다.

아웃카운트 9개를 적립하고 나서야 첫 홈런을 개시했지만 이미 예선전을 통과하긴 어려운 수준, 홈런 1개로 예선전을 마무리한 박종우는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타자 진상우(한진 타이거스 : 시즌 홈런 14개)도 사정은 마찬가지, 박종우보다는 많이 때렸지만(2개), 뚝뚝 끊기는 흐름에 관중석 분위기는 싸늘해 졌다.

아웃카운트 7개 이후에 치는 홈런은 하나마다 100만원의 성금이 적립되는데 이러다간 성금 없는 이벤트가 될 지경, 팬들은 후속 타자 이인영의 활약에 기대를 걸었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86, 홈런 30개, 62타점, 모든 타격 지표에서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전반기에 20홈런을 넘긴 유일한 선수죠. 화끈한 홈런쇼 기대해 보겠습니다.”

이인영은 초구부터 휘둘렀지만 타구는 낮게 깔려 외야로 뻗어나갔다.

2구도 사정은 마찬가지, 슈퍼 루키까지 홈런 가뭄에 전염된 건가. 이때 팬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한 한방이 우측 펜스로 날아들었다.

[따아악 ~ !!]

“오 이번에도 멀리 가는데요?!! 담장을 넘어갑니다!!”

“벌써 2개네요. 한 개만 더 치면 일단 준결승전 진출 확정입니다.”

[따아악 ~ !!]

“말씀 드리는 사이 이번에도 우측 펜스를 넘어갑니다!! 홈런 3개째!! 나눔 올스타팀의 선두로 올라섭니다.”

“분위기를 탔네요. 이대로 계속 가야 됩니다.”

이인영은 그 자리에서 홈런 4개를 연달아 우측 관중석에 박아 넣었다.

앞선 두 타자와 차원이 다른 장타력, 게임을 마친 박종우와 진상우는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20개 아웃카운트 동안 겨우 3개 때렸는데, 저 녀석은 벌써 4개라니, 괜히 비교 되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다.

따아악 ~ !!

“뭐야?!!”

“또 가?!!”

눈 깜짝할 사이에 홈런 5개, 팬들의 환호가 높아지자 게임을 지켜보는 선수들도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아악 ~ !!]

“이번에는 센터 쪽 높게 가는 타구!!!! 백스크린을 때리는 홈런입니다!! 연속 6홈런!! 이인영 선수가 경쟁자들을 향한 무력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간제한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러다 오늘 밤새도록 때리겠습니다.”

해설위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7번째 홈런이 우측 담장을 넘어갔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에릭 데이비스(선화 이글스 : 시즌 홈런 17개)는 이미 포기 모드, 8번째 홈런에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타임’

한참 힘을 쓰던 이인영은 잠시 타석에서 벗어났다.

홈런을 치는 것도 좋은데, 기왕이면 성금이 걸린 타이밍에 홈런을 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미 준결승전 진출은 확정, 7개까지 아웃카운트를 쌓고 다시 진심배팅을 시작했다.

[따아악 ~ !!]

“자 ~ 이 타구는 높게 떠서 우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9번째 홈런!! 성금 100만원이 적립됩니다.”

“역시 생각이 있는 선수네요. 기왕이면 의미 있는 홈런을 치는 게 좋겠죠.”

10번째 홈런이 터져 나오자 팬들은 열화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이런 타격을 앞으로도 대전에서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따져봤자 죽은 자식 나이 세기일 뿐, 대전 팬들의 아쉬움을 잘 알고 있는 슈퍼 루키는 온 힘을 다해 배트를 돌렸다.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느새 13홈런, 중계 카메라는 멍하니 앉아 있는 데이비스의 얼굴을 비췄다. 최소 13개를 쳐야 결승전에 진출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 15번째 홈런은 희미하게 남아있는 희망마저 불살라버렸다.

따아악 ~ !!

“이 타구는 다시 한 번 우중간을 넘어갑니다!! 16번째 홈런!! 혼자서 성금 8백만 원을 적립하고 있습니다!!”

“KBO 관계자들은 이쯤에서 그만 치길 바라야겠는데요. 정말 하루 종일 칠 기세입니다.”

9번 째 아웃카운트를 적립한 슈퍼루키는 다시 한 번 숨을 골랐다.

확실히 조금 지친 몸, 분위기를 살피던 포카리 걸은 음료수와 수건을 들고 타석으로 향했다.

땀이라도 닦아주고 싶었는데 수건을 홱 집어가더니 얼굴을 닦고 다시 타석으로 가버리는 선수, 몸을 몇 번 뒤틀며 스트레칭을 마친 이인영은 타격을 재개했다.

“I think I have to quit, Somebody stop him.”

= 나 안 할래, 그러니까 누가 가서 좀 말려 봐”

17번 째 홈런, 데이비스는 목에 걸고 수건을 내려놨다.

쳐도 정도껏 쳐야지 저렇게 쳐버리면 뒤에 있는 나는 어쩌라는 건가, 팀 동료인 전인규가 이제 그만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인영은 타격을 계속 했다.

20까지 가서야 멈춘 광란의 질주, 엄청난 괴력을 보여준 이인영은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퇴장했고 포카리 걸은 차갑게 식혀둔 수건을 슈퍼스타의 어깨에 걸쳐줬다.

“자, 나눔 올스타 팀의 이인영 선수와 인터뷰를 해 보겠습니다.”

“이인영 선수, 오늘 엄청난 홈런 쇼를 선보여 주셨는데, 첫 올스타전이라고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닌가요?”

“어느 팬과 한 약속이 있어서요.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팬이라뇨?”

“제가 이글스 유니폼을 입지 않은 걸 매우 아쉬워 하셨거든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이곳에서 대전 팬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만이라도 제 홈런에 기뻐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이 TV를 통해 보고 있던 대전 팬들은 격한 아쉬움을 표했다.

한 때 우리 손 안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파랑새, 게시판은 다시 송호영 단장을 비난하는 글로 넘쳐났다.

그 사이, 데이비스는 나름 애를 써봤지만 5개에서 멈춘 카운트, 이렇게 나눔 올스타 조의 최종 우승자는 이인영으로 결정됐다.

드림 올스타 조의 최종 우승자는 UA 베어스의 호세 라미레즈, 하지만 7개로 슈퍼루키의 임팩트엔 미치지 못했다.

결승전의 즐거움은 내일로 미뤄졌고, 다음 날 오후 2시 본격적인 축제의 막이 올랐다.

“자, 1회 초 나눔 올스타 팀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전인규 선수, 올 시즌 타율 0.342, 홈런 1개, 21타점, 도루 18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인규 - 이인영 선수가 힘을 합친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죠. 도쿄 올림픽에서 반드시 터져줘야 하는 조합입니다.”

전인규는 2구를 받아쳐 유격수 깊숙한 곳으로 타구를 보냈다.

발이 워낙 빨리 이 정도면 무조건 안타, 아니나 다를까 유격수가 송구를 포기하면서 밥상이 차려졌다.

[2번 타자 - 좌익수 - 이 • 인 • 영]

“우와아아 ~ !!”

전인규는 홈팬들의 반응에 약간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과 한 팀이 되지 못한 건 나도 아쉽지만 그래도 이 대전을 대표하는 최고 스타는 나 아닌가. 언론 플레이에 놀아나 외도를 하다니, 착잡한 마음을 뒤로 하구 1루에서 멀어졌다.

올스타전에서 피하는 승부를 하는 건 경기를 찾아준 팬들을 우롱하는 짓, 선발로 나선 제이슨 크라울리는 초구부터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했다.

따아악 ~ !!

“자!! 이 타구는!! 낮고!! 빠르게!! 담장을 넘어갑니다!! 이인영 선수의 투런 홈런!! 어제는 홈런 레이스!! 오늘은 실전에서 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역시 스타는 스타네요. 팬들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먼저 홈을 밟은 전인규는 오른 손을 내밀었지만, 이인영은 친구의 머리를 툭툭 치고 더그아웃으로 도망쳤다.

도쿄 올림픽에서도 자주 봐야 하는 장면, 젊은 한국 야구의 두 기둥은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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