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36화 (36/309)

36화. 전설의 오꽝 (15)

“5구는 바깥쪽 볼입니다. 카운트는 원 볼 투 스트라이크”

“지금 타 구장 소식이 들어왔는데요. 페르난데스 선수도 오늘 연타석 홈런으로 시즌 12호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인영 선수는 16개죠. 차이가 꽤 있습니다.”

연타석을 쳐도 좁혀지지 않는 차이, 거기다 페르난데스는 경기를 마쳤지만 슈퍼루키는 현재진행 중, 모든 팬들의 관심은 투수 손을 떠난 공에 집중됐다.

따아악 ~ !!

센터 쪽으로 높게 가는 타구, 타구의 종착점을 예상한 이인영은 더그아웃을 향해 손가락 세리머니를 날렸다.

도망치지 않고 승부를 해준 투수에게도 경의를 표해야겠지, 최대한 빨리 베이스를 돌아 홈으로 입성했다.

“자, 다시 한 번 보시죠. 이렇게 KBO 역사에 새로운 한 획이 그어집니다.”

“2001년에 선화 이글스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지만 선수 개인이 기록한 건 이번이 처음이죠. 메이저리그 역사에도 없는 기록입니다.”

계속되는 원정 팬들의 환호성, 홈 경기는 아니지만 이인영은 더그아웃 밖으로 나가 팬들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홈에서 이뤄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상하게 원정경기에서 홈런이 잘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경기가 끝난 후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덤덤한 소감을 밝혔다.

“이인영 선수, 5연타석 홈런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 어떤 선수도 기록하지 못한 대기록을 달성하셨는데요. 이인영 선수는 오늘 기록이 본인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운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딱히 운이 좋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무슨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작년에 아버지 말대로 즉석복권 5장을 구매한 적이 있는데 전부 꽝만 나왔거든요. 거기다 부상도 당했고 ··· 운보다는 실력으로 살아가는 타입입니다.”

인터뷰를 지켜보던 팬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5연타석 홈런을 친 선수가 복권은 5개 연속 꽝을 뽑았다니, 뭔가 웃기지 않은가. 이때 한 팬이 인터넷에 의미심장한 댓글을 남겼다.

[별명 오꽝이 추가, 복권도 5꽝, 홈런도 5꽝]

-> 오꽝이, 괜찮은데? ㅎㅎ

-> 오꽝이 확정, 다음 경기에서 6연 타석 치고 육꽝 승격 가자

그 동안 별의 별 별명이 붙었지만 이제 오꽝으로 굳어지는 분위기, 어감 상 뭔가 멍청하게 들렸지만 나름 귀여운 별명이라 슈퍼루키는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He reached an all-time maximum of homers in five consecutive at-bats]

이 소식은 바다 건너 미국까지 흘러갔다.

한국야구에서 벌어진 일이라 의미 없다며 폄하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어쨌든 대단한 기록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 뭣보다 2년 전부터 이인영의 타격 재능을 높이 평가한 휴스턴은 대기록을 집중 조명했다.

당장 영입은 어렵겠지만 관심이 있는 선수, 호주에 머물고 있는 스카우터 제임스 셔먼을 한국으로 보냈다.

‘타일러 다빌러가 생각나는군.’

셔먼은 이인영을 보자마자 휴스턴의 전설적인 홈런 타자를 떠올렸다.

다빌러는 키가 5피트 10인치(실제 키는 174cm)밖에 되지 않았지만 무려 525홈런을 쏘아 올린 거포, 방망이를 눕힌 채 체중을 뒷발에 두고 스트라이드와 테이크 백 없이 치는 타격은 정확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런 자세에서도 홈런을 칠 수 있었던 건 무지막지한 손목 힘과 배트 스피드, 뭣보다 하체도 강해야 한다.

이인영이 하고 있는 타격도 다빌러와 비슷한 스타일, 하지만 상체의 힘에 의존하는 만큼, 어깨나 허리 쪽에 부상을 입을 확률이 높다.

여느 거포들이 말년에 무릎 부상으로 고전한 것과 정반대의 흐름, 실제로 다빌러는 선수 시절 내내 어깨 부상에 시달리며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은퇴를 했다.

하지만 이제 갓 20살이 된 선수에게 어깨 부상을 염려하는 건 넌센스, 뭣보다 밀어 쳐도 담장을 넘길 수 있는 파워와 손목 힘에 큰 감명을 받았다.

따아악 ~ !!

“다시 높게!! 우측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이인영 선수의 시즌 20호 홈런!! 5월에만 무려 12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5월이 끝나기도 전에 20홈런을 넘긴 선수는 KBO 역사상 아무도 없습니다. 올해가 단축 시즌이라는 게 너무 아쉽네요.”

이인영은 셔면이 지켜보는 앞에서 시즌 20호 홈런을 작렬시켰다.

겨우 39경기 만에 달성한 20호 홈런, 풀 시즌이었다면 60홈런 이상도 노려볼 수 있는 페이스지만 올 시즌은 올림픽 때문에 20경기를 덜 치르게 됐다.

해설위원이나 팬들이 아쉬움을 표한 건 당연, 하지만 슈퍼루키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지 않겠어?’

짧고 강렬한 기억은 더욱 또렷하게 남는 법, 남은 경기를 세는 것보다 앞으로 써내려갈 기록에 집중하는 게 더 현명했다.

4 ~ 5월에 대활약을 펼친 이인영은 6월 10일부터 시작된 올스타 투표에서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6월 12일, 성운 라이온즈는 ‘이인영의 날’을 맞아 다양한 사전 이벤트를 준비했다.

팬 사인회는 기본옵션, 평소보다 1시간 30분 정도 일찍 출근한 슈퍼루키는 길게 늘어선 줄 앞에 자리를 잡았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 오꽝이가]

이인영은 덤덤한 표정으로 팬들이 붙여준 별명을 볼에 끄적거렸다. 계속 듣다보면 나름 정감이 가는 호칭, 사인 볼을 받은 팬들은 재미있다며 킥킥거렸지만 슈퍼 루키는 사인을 이어갔다.

“어? 전에 그 분 아닌가요?”

“네, 맞아요.”

이때 반가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전지훈련 클럽에서 만난 일본 여성 팬들의 등장, 내 이름으로 예약을 해주긴 했는데 정말 올 줄이야. 뒷사정을 모르는 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슈퍼루키는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며 악수를 권했다.

“당신 이제 일본에서도 유명해요?”

“정말요.”

“네, 그게 뭐였더라? ··· 오꽝이? 맞죠?”

또 등장한 문제의 별명, 이젠 해외 팬들에게도 알려진 건가.

유명세를 먹고 사는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전개, 이인영은 앞으로도 홍보 좀 많이 해주시라며 마지막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실전에서 활약하는 게 최고겠지, 사인회가 끝나자마자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경기에 대비했다.

스트라이드와 테이크 백 없이 타격을 하는 만큼 몸이 강하게 뒤틀리기 마련, 부상 방지를 위해 몸을 충분히 풀어주는 일은 잊지 않았다.

충분한 수분 섭취도 필수, 만발의 준비를 마친 슈퍼스타는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외야에 들어섰다.

오늘 라이온즈 파크에 발을 들인 손님은 리그 UA 베어스, 이인영에 이어 홈런 레이스 2위를 달리고 있는 호세 페르난데스는 특별한 환대를 받았다.

“자, 원 아웃 주자 1루에서 페르난데스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269, 홈런 15개, 40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 ~ 야유가 대단한데요. 본인도 아마 이인영 선수를 의식하고 있을 텐데, 여기서 뭔가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있을 겁니다.”

페르난데스는 초구부터 강한 스윙을 돌렸다.

하지만 한참 앞서가는 라이벌에 비해 떨어지는 컨택률, 뭣보다 6월 들어 2승 무패 평균자책점 1.45를 기록하고 있는 존 워커의 구위는 공략하기 만만치 않았다.

최고 구속 153km의 빠른 볼에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투심 등도 일품, 특히 페르난데스는 빠른 볼에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와아아 ~ !!”

결국 첫 타석은 헛스윙 삼진, 베어스의 공격은 의미 없이 끝나고 성운 라이온즈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이 세상에 ~ 성운 없으면 ~ ♩

무슨 재미냐 ~ ♪

해가 떠도 성운!! 달이 떠도 성운!!

성운이 최고야 ~ !!

아니야!! 아니야!! 오꽝이가 ~ 최고 ~ 야 ~ ♬

그세 또 바뀐 응원가, 잠깐 피식거리던 슈퍼루키는 자세를 잡았다.

“자 이인영 선수의 타석입니다. 시즌 타율 0.387, 홈런 22개, 53타점, 타율, 홈런, 타점 모두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오늘이 이인영 선수 생일이라고 하죠. 구단도 그걸 따서 기념일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뭔가 의미 있는 하루가 됐으면 하네요.”

초구가 볼이 되자 사방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라이온즈 파크에서 슈퍼루키에게 볼을 던진다는 건 욕을 먹어 마땅한 일, 하지만 선발 펠리페 바스케스는 신중한 투구를 이어갔다.

OPS가 1.2를 넘는 선수를 상대로 도망치는 투구를 하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 뭣보다 투 아웃에 주자는 없는 상황, 무리한 승부는 하지 않았다.

결국 첫 타석은 볼넷, 다른 선수들이 받쳐주질 않으면 오늘도 집중견제를 피하기 어려웠다.

따아악 ~ !!

성운 라이온즈가 주춤거리는 사이, 페르난데즈는 존 워커와의 2번 째 맞대결에서 선취점을 내는 시즌 16호 홈런을 쏘아 올렸다.

UA 베어스의 리그 1위를 지탱하고 있는 3번 타자의 존재감, 잊을 만 하면 쫒아오는 페르난데스의 추격에 이인영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의식한다고 나오는 게 홈런인가. 안타를 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법, 3회 말 2번 째 타석도 차분하게 볼을 골랐다.

“바깥 쪽, 이번에도 볼입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확실히 견제가 심하네요.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볼을 고르는 거 보면 대견합니다.”

2번 째 타석도 볼넷 출루, 베어스의 1루수 김동환은 성이 난 관중석 을 살폈다.

여차 하면 뭐 하나 날아올 분위기,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 선배 만났는데 아는 척도 안 하냐?”

김동환도 이인영과 같은 동산고를 나왔다.

하지만 후배에 비해 존재감은 없는 편, 4 ~ 5월 연속 월간 MVP를 수상한 이인영은 자기 이름으로 모교에 300만원 상당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모교에서도 김동환보다는 이인영을 띄워주는 분위기, 약간 질투가 난 선배는 너무 잘나가는 후배를 슬쩍 찔러봤다.

“저희 학교 나오셨어요? 그건 또 처음 알았네요.”

후배의 도발에 김동환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차라리 물어보지 말 걸 그랬다며 후회했지만, 그래도 말을 텄다는 데에 의미를 뒀다.

“페르난데스가 은근 너 의식하는 거 아냐?”

“뭐가요?”

“내가 여기서 뛰었으면 30홈런 날렸다고 그러더라.”

김동환은 고급 정보를 흘렸다.

베어스의 홈구장 ‘어반 UA 스타디움’은 홈런을 치기 제법 까다로운 구장이다. 그에 비해 좌타자에게 유리한 라이온스 파크, 페르난데스는 20살을 갓 넘긴 꼬맹이에게 뒤지고 있는 게 분했는지 동료들 앞에서 내가 그곳에서 뛰었다면 어쩌고 저쩌고를 연발했다.

30이 다 된 어른이 어린애를 견제하다니, 이인영은 코웃음을 쳤다.

“비거리는 제가 한 수 위라고 전해주세요.”

이인영의 올 시즌 홈런 평균 비거리는 125m, 페르난데스의 118m를 훨씬 상회한다.

거기다 홈구장에서 8개, 원정에서 무려 14개를 쳐냈는데 홈의 덕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나.

김동환은 까불지 말라는 후배의 도발을 페르난데스에게 전달했다.

‘건방진 꼬맹이, 본때를 보여 주마.’

30이 다 된 어른은 꼬맹이의 어린애의 도발에 넘어갔다.

두 번째 타석에서 홈런을 쳤으니 이번 타석도 자신만만, 하지만 빠른 볼을 앞세우다 피홈런을 허용한 존 워커는 다양한 변화구를 앞세워 페르난데스의 타이밍을 흔들었다.

결과는 헛스윙 삼진, 에이스가 마운드를 지탱하는 사이 성운 라이온즈 타선은 대반격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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