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전설의 오꽝 (9)
“이인 ~ 영!! 이인 ~ 영!!”
경기는 흘러 8회 말, 팽팽해진 줄을 끊을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 볼넷 3개 포함 동점 홈런까지 때려내는 활약, 주자가 1루에 있는 상황이라 선화 이글스의 감독 김권중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런 녀석은 피하는 게 답이다.’
감독의 지시대로 배터리는 고의사구를 택했다.
타격할 때 앞발을 드는 건 테이크 백이 느리거나 타격 타이밍을 못 잡는 선수들에게 유용한 기술이다.
그에 비해 이인영은 두 발이 꼿꼿이 땅에 붙어 있는 편, 저런 자세에서도 타이밍을 잡아낸다는 게 뭘 뜻하는지 김권중 감독은 잘 알고 있었다.
“야 이 비겁한 놈들아!!”
“그 따위로 할 거면 집어치워!!”
4번 째 볼넷에 홈팬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야유와 오물 투척, 한 명이 쓰레기를 던지자 머뭇거리던 다른 관중들도 기꺼이 공범자가 됐다.
“우왓!!”
이때 선화 이글스의 중견수 전인규 근처에 뭔가 둔탁한 물체가 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먹다 만 맥주 캔,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전인규는 그 자리에서 눈만 깜빡거렸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흐려놓은 그리운드, 주범을 목격한 우익수 도민호[선화 이글스, 우익수]는 거친 항의로 대응했다.
“저 사람이 던졌어요!!”
“누구라고요?”
“저기! 저 흰 티 입은 사람이요!!”
문제의 관중은 주심의 지시에 따라 퇴장조치 됐다.
시즌 첫 관중 퇴장의 불명예는 성운 라이온즈의 몫, 그제야 분위기에 휩쓸린 공범들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여기 또 하나 있네.’
이인영은 1루 근처를 뒹구는 쓰레기를 주워 경기진행 요원에게 건넸다,
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라도 이런 추태는 구단, 더 나아가 선수들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 어제 사건도 있고 기분이 별로 좋진 않았다.
어쨌든 성운 라이온즈는 이 기회를 놓지지 않고 역전에 성공, 그렇게 경기는 끝났지만 후폭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6월 2일에 두고 보자.]
익명의 한 팬은 넷상에 테러를 예고하는 글을 올렸다.
그 날은 성운 라이온즈가 대전을 방문하는 날, 전인규를 다치게 할 뻔 했으니 우리도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는 논리에 대전 팬들은 들고 일어났다.
쓰레기가 던진 쓰레기에 그라운드가 오물천지가 된 것처럼, 그럴듯한 선동에 오염된 팬들, 이인영은 sns를 통해 직접 진화에 나섰다.
[똥 뭍은 놈이 화장실을 청소하겠다고 나서면 누구라도 비웃을 겁니다. 오늘 오물을 던진 팬이나 보복을 예고한 익명의 팬이 바로 똥 뭍은 인간이겠죠. 현명한 분이라면 그런 자들에게 동조해 공공장소를 더럽히진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다소 원색적이지만 핵심을 잘 찌른 글, 전인규도 이인영이 대전에서 험한 일을 당하는 건 원치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
당사자들이 합의를 봤는데도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팬들의 책임, 다음 날 두 선수는 평소처럼 인사를 주고받았다.
“네 말 대로라면 나 어제 똥 맞을 뻔한 거냐?”
“뭐 ··· 굳이 따지자면 그런 거지.”
전인규는 라이벌의 대답에 폭소했다.
맥주 캔이 날아왔을 땐 너무 놀라 화도 못 냈지만, 호텔로 돌아왔을 땐 내가 왜 그 자식의 면상을 갈아버리지 않았을까 라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라이벌의 해명 덕분에 더러운 거 안 맞아서 다행이라고 웃어넘길 수 있게 됐다.
“야, 그런데 넌 어떻게 이렇게 치냐?”
화제는 어느덧 야구로 흘러갔다.
전인규는 타격할 때 다리를 높게 드는 편, 투수가 발을 내릴 때 이쪽도 다리를 내려야 하기 때문에 솔직히 타이밍 잡기 좋은 폼은 아니다.
무수한 연습 덕분에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폼을 간결하게 바꾸고 싶은 게 사실, 거의 그 자리에서 때려내는 라이벌에게 조언을 구했다.
“글쎄, 그냥 이렇게 치는 거야.”
이인영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타격 폼을 선보였다.
스탠스는 비교적 넓게, 스트라이드 없이 간결한 테이크 백으로 타이밍을 잡는 타격, 전인규는 다리를 안 쓰고도 타이밍을 잡는 방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타격 폼, 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잘 봤다는 말은 덧붙였다.
“우리는 운명이 서로 엇갈린 거 같지 않냐?”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알면서 왜 그래?”
전인규는 마음속에 담아뒀던 본심을 털어놨다.
이인영이 고교 생활을 보낸 곳은 대전, 이변이 없었다면 1라운드 지명을 받고 선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을 거다.
그런데 단장의 변덕으로 지명을 받은 건 전인규, 이 결정에 누구보다 실망한 사람이 바로 선화 이글스의 감독 김권중이다.
30홈런을 때려낼 재능이 있는 선수를 두고 똑딱이를 영입하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선택인가. 전인규도 좋은 활약을 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섭섭한 게 사실, 별로 감독의 눈에 띄기 위해 야구를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선수 입장에선 섭섭했다.
“나도 감독한테 미움 받는 건 마찬가지야.”
“정말이냐?”
“내가 전지훈련에서 감독한테 무슨 말 들었는지 아냐? 내가 지금 방망이를 잡아도 너보다는 잘 친다고 하는데,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선수 자존심을 그렇게 깔아뭉개는 감독도 있냐?”
“헐 ~ 진짜냐? 뭐 그런 인간이 다 있어?”
“그러게 말이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 ”
이인영도 속마음을 털어놨다.
동병상련이라고 감독의 눈에 안 차는 건 서로 비슷한 입장, 차라리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런 푸대접 때문에 더 잘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기는 것도 사실, 비슷한 입장이니 열심히 해보자며 서로를 격려했다.
“나중에 시간 나면 밥이나 한 번 먹자.”
“그래”
한층 더 가까워진 사이로 맞이한 3차전, 전인규는 첫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며 좋은 페이스를 이어갔다.
저 녀석에게 뒤질 순 없는 일, 이인영도 타석에서 집중력을 발휘했다.
“다시 볼입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이인영 선수가 최근 5경기 장타율이 9할이 넘거든요. 홈런 4개에 2루타도 2개 ··· 도망친다고 해도 뭐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어제 경기에서 추태를 보인 홈 팬들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로 응원을 이어갔다.
하지만 볼 세례에 속이 상하는 건 사실, 반면 슈퍼루키는 차분하게 다음 볼을 기다렸다.
따악 ~ !!
“타격!! 파울 라인을 벗어납니다. 지금도 강한 타구였어요.”
“이인영 선수의 타격 폼은 낮은 스탠스에서 순간적으로 힘을 극대화 시키는 메커니즘이거든요. 특히 무게 중심을 뒤에 두고 강한 하체에서 나오는 원심력을 이용해 배트 스피드를 내는데, 가볍게 쳐도 쭉쭉 뻗어나는 느낌이 듭니다.”
“놀라운 건 저 자세에서도 밸런스를 유지한다는 거죠. 키가 거의 190에 가까운 선수인데, 이런 스윙을 한다는 건 운동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증거입니다.”
선화 이글스의 선발 손영호는 철저하게 바깥쪽을 고집했다.
타격 메커니즘을 따져보면 이인영은 낮은 공에 약점을 보일 선수가 아니다. 오히려 치기 딱 좋은 코스, 타구 각도가 낮은 게 유일한 흠인데, 작년에도 인플레이 타구가 평균 13도에서 형성됐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타구가 빠르게 날아갔다는 뜻, 내야수는 물론 외야수도 긴장의 끈을 놓질 못했다.
따악 ~ !!
“My!!”
정면으로 날아오는 타구, 우익수는 거의 그 자리에서 타구를 잡아냈다.
어찌어찌 넘어간 첫 타석, 선화 이글스 선수단이 긴장을 푸는 사이, 이인영은 외야를 한번 훑어보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당신 얼굴을 보면 없던 힘도 생겨’
너는 절대 나를 넘을 수 없다고 한 감독의 얼굴도 빠르게 훑어봤다.
처음엔 못마땅했는데 구석에 앉아 있으면 나름대로 자극이 되는 사람, 다음 타석은 한 방 때려내겠다는 의욕을 불태웠다.
‘하아 ~ 진짜 스트레스다.’
그렇게 경기는 흘러 2회 말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이글스의 선발 손영호는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타석에는 이인영, 거기다 하필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걸렸다.
첫 타석에선 잡아냈지만 타이밍이 맞았던 타구, 장타를 의식한 포수는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다.
따악 ~ !!
“밀어낸 타구가!! 좌중간으로!! 중견수!! 중견수가!! 펜스 앞에서 잡아냅니다!! 전인규 선수의 멋진 플레이!! 이글스가 큰 고비를 넘어갑니다.”
“지금도 스타트가 조금만 늦었으면 머리 위로 넘어가는 타구가 될 수도 있었는데, 역시 전인규 선수의 중견수 수비는 탁월하네요.”
잘 치고 있는데도 글러브에 걸리는 타구, 슈퍼루키는 다소 신경질적인 얼굴로 더그아웃에 들어섰다.
역시 낮은 탄도는 한계가 있는 건가.
애들먼을 모델로 삼아 타구 속도에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조금 흔들리는 결심, 그래도 시즌을 넓게 보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렸다.
“자!! 여러분들!! 다시 한 번 응원의 목소리 부탁드립니다!!”
“와아아 ~ !!”
경기는 이제 6회, 홈 팬들은 3번 째 타석을 맞이하는 이인영을 향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운이 없었을 뿐 오늘도 타격감은 괜찮은 편, 어제 극적인 동점 홈런을 쳐준 것처럼 여기서도 마법이 일어날 거라 믿었다.
‘안 주네, 안 줘’
투 볼이 되자 이인영은 약간 낮춘 허리를 높게 들었다.
지금 페이스면 147볼넷으로 시즌을 마무리 할 기세, 한 경기당 하나 이상을 얻어내는 꼴인데 시즌 초반만 해도 이렇진 않았다.
최근 홈런 좀 친다고 완전히 겁을 먹은 배터리, 배짱 있는 투구를 할 선수가 이렇게 없단 말인가. 씁쓸한 얼굴로 볼넷을 받아들였다.
이날 슈퍼 루키는 안타 없이 볼넷만 하나 얻어내고 경기를 마무리, 다음 경기도 홈이라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어.’
오늘 선화 이글스는 경기 막판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야수도 사람인 이상 가금 움직여야 집중력이 유지되는 법, 그런데 오늘은 투수진이 볼넷을 7개나 내주면서 투수 교체도 자주 이뤄졌다.
볼넷의 여파가 이렇게 무서운 것,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다음 상대 팀도 많은 생각을 하고 경기에 임하겠지, 기다리면 칠 공은 들어온다며 조급함을 다스렸다.
“여보, 아침 아직 안 됐어?”
“조금만 기다려요.”
어김없이 찾아온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아들은 아침밥을 독촉하는 아버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 잠이 덜 깬 얼굴, 이인호는 그런 아들을 빤히 쳐다봤다.
“너 어쩐 일로 조용하냐?”
“네? ··· 뭐가요?”
“아니, 밥 언제 되냐고 늘 그랬잖아?”
“ ······ 기다리면 엄마가 차려주시겠죠.”
어머니는 곁눈질로 아들을 힐끗거렸다.
학창 시절부터 집에 오면 밥부터 찾았던 아들, 부지런한 어머니는 그동안 다른 집보다 늘 일찍 식사를 차려냈다.
오늘은 늦잠을 자느라 상차림이 조금 늦은 편, 배고프다는 징징거림은 각오했는데 아들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아들 ~ 할 일 없으면 숟가락하고 젓가락 좀 놔.”
“엄마, 타자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법이에요. 밥 올 때까지 절대 안 움직일 거예요.”
말도 안 되는 궤변에 어머니는 헛웃음을 지었다.
집에 오면 손가락 하나 안 움직이는 건 누굴 닮았는지, 찔리는 게 있는 이인호는 아내의 눈빛 공격을 피해 거실로 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