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전설의 오꽝 (7)
“잘 지냈냐?”
“어”
이곳은 성운 라이온즈와 선화 이글스의 경기가 열리는 라이온즈 파크,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은 나름대로 친목을 다졌다.
선화 이글스의 1라운드 1순의 지명을 받은 전인규는 이인영과 봉황기 결승을 두고 맞붙은 관계, 하지만 그게 전부라 대화를 이어갈 화제가 마땅치 않았다.
이인영도 붙임성이 없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건 팬이나 지인들에게 한정된 특성, 곧 경기를 앞둔 상대 팀 선수와 친목질을 할 정도는 못 됐다.
‘선배, 도와줘요.’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전인규는 선배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친목질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도민호, 윤활유 덕분에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너희들 국가 대표되면 자연스럽게 친해질 거다. 앞으로 만나면 아는 척 하고 그래”
“그럼 병역을 위해 잠깐 협력하는 사이로 해 둘 게요.”
이인영은 평소와 달리 비싼 척을 굴었다.
국가대표가 친목질을 위한 자리인가. 까놓고 말해 병역해결이 진정한 목적, 연예인들이 tv 앞에서 서로 하하호호 하는 것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이익을 누리기 때문 아닐까.
국가대표라는 틀 안에서 같은 이익을 누리다 보니 친목이라는 게 쌓이는 거겠지. 그 이상의 의미는 두지 않았다.
“너 오늘은 홈런 치지 마라. 우리가 지금 제일 안 나가잖아.”
“얘가 도루 안 하면 생각해 볼 게요.”
도민호가 은근슬쩍 압력을 넣었지만 슈퍼 루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선화 이글스는 올해도 순위권 싸움에서 뒤에서 1 ~ 2위를 다투는 수준, 특히 투수진의 부진이 심각하다.
평균자책점 6.54에 23경기에서 내 준 홈런이 30개,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장타력이 깨어난 이인영은 요주의 인물이다.
하지만 빠른 발과 주루 센스로 배터리를 흔드는 전인규도 성운 라이온지 입장에선 요주의 인물, 그렇게 양 팀은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플레이 볼!!]
“자 선화 이글스의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 됩니다. 선두타자는 전인규 선수, 올 시즌 타율 0.331, 홈런 없이 4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리드오프답지 않게 출루율이 높은 선수죠. 워커 선수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귀찮은 상대의 등장에 성운 라이온즈의 선발 존 워커는 바짝 긴장했다.
작년 시즌, 전인규는 이인영이 부상으로 나가떨어진 틈을 타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최종 성적은 타율 0.302, 홈런 1개, 39타점, 28도루, 특히 출루율이 리그 전체 6위(0.386)에 올랐을 정도로 발군의 선구안을 보여줬다.
올 시즌 출루율은 0.401, 투수가 피할 이유가 없는 똑딱이인데 이 정도 출루율을 기록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전인규는 컨택 능력이 워낙 좋은 편, 코너웍을 하다 카운트가 몰리면 볼넷이나 안타를 내주는 패턴이 반복된다. 이겨내는 방법은 정면 승부, 존 워커는 초구부터 빠른 볼을 밀어 넣었다.
따악 ~ !!
“좌중간으로 가는 타구가 중견수 옆에 떨어집니다!! 선두 타자 출루!! 전인규 선수는 오늘도 안타를 기록합니다.”
“참 스윙이 예뻐요. 마지막까지 어깨를 닫아놓고 타구를 밀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죠. 작년 시즌 신인왕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귀찮은 타자에서 귀찮은 주자로 바뀐 전인규,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넘겨야 할까. 좌익수로 출전한 이인영은 유격수 홍현구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출루한 주자는 보통 루에서 멀어지며 알맞은 곳에 자리를 잡는데, 야구에선 이걸 ‘스킵 플레이’라고 한다.
진루나 복귀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준비 동작, 그런데 전인규는 스킵 플레이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최대한 루에 붙어 있다가 스타트를 끊는 편,
주자가 진루를 우선으로 생각하다 보면, 오버런이 되거나 역동작에 걸리면서 아웃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언제나 리터치를 염두 해야 하는 법, 하지만 이런 소극적인 플레이는 안정성을 보장해도 적극적인 주루플레이가 안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전인규는 뛰어난 타구 판단 능력과 빠른 발로 그 단점을 만회하는 선수, 이인영은 외야로 오는 타구는 내가 처리하겠다는 사인을 냈다.
홍현구는 수비 범위가 넓지만 때론 지나친 의욕으로 외야수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게 문제, 머리 위로 넘어가는 타구를 잡는다고 쳐도 그런 어정쩡한 자세에서 어떻게 송구가 되겠나.
전인규는 그 틈을 파고 들 수 있는 유력한 용의자, 범죄는 벌어진 뒤 수습하는 것보다 예방이 우선 아닌가.
이인영은 이 구역은 내 자리라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
딱 ~
“자, 번트를 댔어요. 1루 주자는 2루까지 진루, 타자 주자만 아웃처리 됩니다. 원 아웃 주자 2루, 선화 이글스가 득점 기회를 맞이합니다.”
“워커 선수의 표정이 밝지가 않네요. 아무래도 미국에서 오래 뛰었던 선수라 한국야구의 이런 특징에 익숙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본인도 그 점에 대해 어려움을 드러낸 적이 있죠. 하지만 익숙해 져야 합니다.”
2루까지 진출한 전인규는 포수의 움직임을 살폈다.
잘 보면 원래 자리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온 위치, 변화구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 아닌가. 눈치를 살피다 3루를 훔쳐버렸다.
“What the XXXX!!”
짜증나는 플레이에 존 워커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 야구도 경험해 봤지만 이렇게까지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선수는 처음, 통역을 대동한 투수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하면서 잠시 경기가 중단됐다.
‘확실히 짜증은 나네.’
이인영은 존 워커의 입장을 이해했다. 봉황기에서도 짧은 안타와 주루 플레이로 동산고의 우승을 가로 막았던 전인규, 저 자식을 막아야겠다는 의지는 더욱 불타올랐다.
딱 ~ !
이어지는 경기, 좌중간으로 애매한 타구가 날아왔다.
유격수 홍현구는 자기도 모르게 타구에 반응했지만, 자기 영역을 확실히 정해둔 이인영이 달려오면서 추격을 포기, 베이스 근처를 머물던 전인규는 멈칫 멈칫 하다 3루로 귀환했다.
‘아 ~ 안 통하네.’
전인규는 아쉬움을 삼켰다.
홍현구는 수비 범위가 넓은 편, 유격수가 잡으면 뛰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봉황기에서 몇 번 당해본 이인영은 그 속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게 문제,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존 워커는 무실점으로 1회를 넘겼다.
“자, 1회 말 성운 라이온즈의 반격으로 이어집니다. 선두 타자는 홍현구 선수, 올 시즌 타율 0.267, 홈런 2개, 4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이언츠와의 3연전에서 타율을 많이 끌어올렸죠. 역시 이 선수는 타구를 띄워서 좋을 게 없습니다. 뒤에 이인영 선수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출루만 해도 충분해요.”
홍현구는 2구를 때려 유격수 깊은 곳으로 보냈다.
잘 맞진 않았지만 코스가 좋았던 내야 안타, 이어지는 슈퍼 루키의 등장에 라이온즈 파크는 팬들의 환호로 들썩거렸다.
그에 비해 바짝 긴장한 선화 이글스 벤치, 중견수로 출전한 전인규도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바깥쪽, 먼 곳으로 들어갑니다.”
“최근 배터리들이 이인영 선수를 상대로 바깥쪽 승부를 고집하고 있는데, 이런 때일수록 몸 쪽을 던져야 합니다.”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힘으로 타구를 밀어낼 수 있는 선수라, 이렇게 단조로운 피칭으론 이겨낼 수가 없어요.”
선화 이글스 배터리도 몸 쪽 승부를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인영의 타구는 최근 센터에서 좌중간에 집중되고 있다. 무리하지 않고 밀어내고 있는데도 장타를 때리는 괴물, 타이밍을 흔들려면 몸 쪽 승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대재앙이 벌어진다는 압박감이 문제, 결국 2구도 바깥쪽으로 들어갔다.
따악 ~ !!
“밀어낸 타구가 중견수 옆에 떨어집니다!! 깨끗한 안타, 이인영 선수가 8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갑니다.”
“제가 전인규 선수의 스윙을 보고 참 예쁘다는 말을 했는데, 이 선수는 그냥 경이롭습니다. 딱히 말로 설명이 안 돼요.”
“힘이 있는 선수는 어떻게든 잡아당기려고 하는데, 이 선수는 그런 게 없습니다. 성운 팬들은 제2의 한승규라는 평가를 하기도 하는데, 제가 보기엔 박한우 전 감독과 스타일이 비슷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한우 전 감독이 특유의 밀어치는 스윙으로 상당한 컨택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습니까. 이 선수도 그런 식인데, 파워가 더 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러 모로 신인답지 않은 스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쨌든 해설하는 입장에선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반갑네요. 전인규 선수도 그렇고 이인영 선수야 말 할 것도 없고 ··· 지난 프리미어 12에서 한국 대표 팀이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젊은 선수들이 활력을 불어넣어 줘야 합니다.”
전인규는 한숨을 내쉬며 타구를 내야로 보냈다.
장타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자존심이 상하지만 실력은 확실한 녀석, 작년에 부상으로 나가떨어지지 않았으면 내가 신인왕을 탈 수 있었을까.
하지만 부상 없이 길게 가는 것도 프로의 조건, 내가 저 녀석보다 뒤쳐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성운 라이온즈는 1회 말에 무사 주자 1, 2루 기회를 잡았지만 후속 타선이 받쳐주질 못하면서 1득점에 그쳤고, 경기는 한동안 팽팽하게 진행됐다.
따악 ~ !!
3회 초 선화 이글스의 반격, 이인영의 활약에 자극을 받은 전인규는 2번 째 타석에서도 내야를 빠져나가는 안타를 날렸다.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스코어는 1대 1 동점, 존 워커는 이제 포기했는지 그러려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잘못한 건가.’
성운 라이온즈의 포수 김재환은 생각을 정리했다.
대놓고 3루 도루를 시도하다니, 변화구를 던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거 아닌가.
잘 생각해보니 변화구 포구에 자신이 없어 한 발 앞으로 나가서 잡으려고 했던 게 원인,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 타석엔 좌타자 김민구, 도루를 저지하려면 옆으로 빠져서 송구를 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운 동작이라 미리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다.
‘아니야, 그게 아니지.’
3루 코치는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대놓고 빠져 앉으면 주심이 잡아줄 공도 안 잡아 줄 것 아닌가. 예상대로 초구는 볼 판정, 사인을 보내봤지만 닿지 않았다.
“자!! 뛰었어요!! 포수는 던지지 못합니다!! 다시 도루 성공!! 전인규 선수는 오늘 도루만 2개를 기록합니다.”
“역시 김민구 선수가 아직 부족한 점이 많네요. 그래도 지금은 안 던지는 게 맞았습니다.”
성운 라이온즈의 한승규 감독은 전인규의 플레이에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홈런 타자 출신이라 촉새 같은 플레이는 별로 좋아하질 않는 편, 뭣보다 대놓고 도루를 허용하는 배터리가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김민구 외엔 이렇다 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 뭣보다 단장이 밀어주는 선수라 허수아비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내가 또 도루 주면 성을 간다.’
김민구를 이를 갈며 포수 마스크를 바로 잡았다.
또 3루 도루를 내주면 그건 명백한 내 책임, 빠른 볼 사인을 내고 홈 플레이트 앞으로 한 발 뻗는 미끼를 던졌다.
‘미끼네?’
눈치 빠른 물고기는 이게 미끼라는 걸 눈치 챘다.
미끼만 잽싸게 먹고 튀는 것만큼 희열을 느끼는 도루도 없겠지, 빠른 발에 자신이 있는 만큼 알면서도 속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