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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일인자-27화 (27/309)

27화. 전설의 오꽝 (6)

[이인영, 첫 홈런은 언제?]

개막 후 2주가 지났지만 슈퍼루키의 홈런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장타가뭄에 시달려온 성운 라이온즈, 이인영은 그 갈증을 해결해 줄 희망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현재 모습은 그럴듯한 2루타 머신, 장타가 안 나오는 것도 아니라 팬들의 의문은 더해졌다.

[탄도가 너무 낮다.]

[줄어든 체중이 원인일수도]

[집중견제가 원인]

전문가들은 나름대로 원인을 분석했다.

작년에도 탄도가 높은 건 아니었지만 올 시즌은 타구가 1도 정도 낮아졌다는 분석, 6kg이나 줄어든 체중, 용병 호세 라미네즈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집중견제를 받는 것도 원인으로 지적됐다.

“왜 이렇게 바뀌었지?”

이성한 코치도 슈퍼루키의 타격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며 원인을 분석했다.

전지훈련 때만 해도 이인영은 특유의 레벨스윙에 마지막에 배트를 위로 들어 올리는 궤적을 접목시켜 비거리를 늘렸다.

그런데 지금은 공을 그냥 밀어낼 뿐, 스트라이크 존 앞에서 공을 때리지 못하고 타이밍이 약간 밀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타격으로도 안타를 때려낸다는 건 임팩트 순간에 손목을 이용해 타구를 파울라인 안으로 보내는 기술이 탁월하다는 뜻,

홈런은 안 나오고 있지만 이성한 코치는 이인영이 진짜 타격천재라는 걸 재확인했다. 각도가 아니라 타이밍의 문제, 조금만 지켜보면 홈런은 나올거라고 판단했다.

"20홈런도 어렵겠네. 누굴 넘어선다고?"

이 와중에도 한승규 감독은 내심 이인영의 홈런 침체에 미소를 지었다.

43홈런을 넘는다더니 10경기 동안 홈런 1개도 못 넘긴 녀석, 40홈런이 뉘집 동네 개 이름인가. 작년에 조금 쳤다고 프로 무대를 우습게 보다니, 뭣보다 저렇게 낮은 탄도로 홈런을 칠 수 있을 리 없었다.

"2번으로 넣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만"

한승규 감독은 자신만의 근거를 바탕으로 단장에게 타선 가편을 주장했다.

탄도가 낮은 탓에 병살 위험이 높은 스타일, 이대로 놔두면 병살 머신이 될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친구 올해 병살 몇 개 쳤습니까?]

"그게 ··· 한 두 개치지 않았습니까?

[없습니다. 감독이라는 사람이 자기 팀 선수 성적도 모릅니까?]

하지만 차명석 단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병살을 이유로 중심타자를 테이블 세터로 옮기라는 건가.

거기다 중심타자가 병살이 없다는 건 장기말 역할을 해줘야 하는 선수들이 제 몫을 못한다는 뜻, 차명석 단장은 차라리 병살이라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냥 그대로 가세요. 아직 10경기 밖에 안 됐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알겠습니다."

망신을 당한 한승규는 서둘러 통화를 마쳤다.

홈런에만 신경쓰느라 그 녀석의 세부지표는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게 사실, 정말 병살이 없는 건가. 기록지를 쭉 훑어봤다.

'없네. 왜 없지?'

정말 제로, 그럼 내 기억 속의 병살타는 뭔가. 다음 날, 이성한 코치에게 하나 치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아니 ··· 이 인간 어제 약주했나?'

치지도 않은 병살타를 찾고 있으니 기가 막힐 뿐, 가끔 자리에서 눈을 감고 있는 모습도 보였기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걸로 받아들였다.

“야, 감독님이 너 병살타 몇 개 쳤냐고 묻더라.”

“그래요? 한 10개 쳤다고 하시죠?”

이성한 코치의 말에 이인영은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날 테이블 세터로 내치고 싶은 것 같은데, 2번으로 가고 싶은 게 솔직한 속마음, 이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 홍현구

= 타율 0.241, 홈런 2개, 3타점, BABIP 0.230

■ 권준호

= 타율 0.250, 홈런 0게, 1타점, 출루율 0.300

경기마다 타순에 변동은 있지만, 홍현구와 권준호는 7번이나 테이블 세터를 이뤘다.

메이저리그는 최근 강한 테이블세터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어쨌든 그들의 주 임무는 출루, 그런데 홍현구는 BABIP이 타율보다 낮은 기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내야 플라이가 너무 많다는 뜻, 리드오프가 이런 스윙을 하고 있는데 중심타선이 어떻게 힘을 쓰겠나.

이인영이 집중 견제를 받고 있는 건 용병 호세 라미레즈의 부진도 원인이지만 답이 없는 테이블 세터도 책임을 피할 순 없었다.

“저 오늘 2번으로 나가도 되냐고 물어보세요.”

“정말 그렇게 하길 원하냐?”

“네, 지금은 그게 나을 것 같네요.”

이성한 코치는 답을 망설였다.

이인영은 올 시즌 붙박이 3번으로 확정된 선수, 뭣보다 이건 차명석 단장이 직접 지시한 일이다. 마음대로 바꿨다간 단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명확, 하지만 이인영은 지금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나야 아쉬울 거 없지.’

한승규 감독은 원하는 대로 해줬다.

본인이 원한 일이니 단장도 뭐라고 하지 못하겠지, 뭣보다 2번 기용은 한승규가 원했던 일이라 말릴 이유가 없었다.

“자, 성운 라이온즈와 NA 자이언츠의 올 시즌 첫 맞대결 경기를 보내드립니다. 1회 초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홍현구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시즌 타율 0.241, 홈런 2개, 3타점 ··· ”

[따악 ~ !]

“말씀 드리는 사이 초구 타격!! 내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유격수가 잡아서 1루에 송구, 원 아웃입니다.”

“공격적인 스윙이 나쁜 건 아닌데 너무 성급하네요. 지금도 너무 앞에서 맞았는데, 홍현구 선구는 조금 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자, 이제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시즌 타율 0.350, 홈런 없이 3타점, 성운 라이온즈의 유일한 3할 타자입니다.”

자이언츠 배터리는 철저하게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 배합을 택했다.

아무리 힘이 좋은 타자라도 밀어치는 홈런은 어려운 법, 그리고 경계해야 할 선수는 이 녀석뿐이라 좋은 공을 줄 이유가 없었다.

‘어설프게 도망가면 잡히는 거야.’

예상했던 코스, 사정범위라고 파악한 슈퍼 루키는 있는 힘껏 타구를 밀어냈다.

[따아악 ~ !!]

“밀어 낸 타구가!! 좌측 담장 스탠스로 빨려 들어갑니다!! 이인영 선수의 2020시즌 첫 홈런!! 자이언츠를 상대로 뽑아냅니다!!]

“맞는 순간 좌익수는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빠른 타구였어요.”

“지금 타구 각도가 19도, 속도는 180km가 나왔거든요. 그렇게 높게 든 타구는 아니었는데 ··· 외야에 계신 분들도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좌측스탠스에 꽂힌 타구는 비어 있는 관중석을 때리고, 다시 옆으로 튀어 식사를 하고 있던 커플을 가격했다.

맥주와 음식은 모두 공중분해,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주위에 있던 관중들도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야 홈런 볼을 추격했다.

그 사이, 이인영은 3루를 돌아 유유히 홈 인,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척 하다가 손을 치워버리는 장난을 쳤다.

‘확실히 효과는 있어.’

벤치에 앉은 슈퍼 루키는 지나간 기억을 되돌렸다.

정확하게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홈 플레이트 앞에서 때려내는 스윙이 필요, 지금은 바깥쪽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실투가 오면 재미없을 거라는 눈빛을 드러냈다.

하지만 제대로 데인 자이언츠 배터리가 확실하게 도망가는 볼 배합을 하면서 2번 째 타석은 볼넷, 3번 타자 호세 라미레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 지켜봅니다. 카운트는 노 볼 원 스트라이크”

“작년엔 멕시칸 리그에서 뛰었지만 4년 전, 트리플 A에서 31홈런을 친 경력이 있는 선수거든요. 장타력은 분명 뛰어난데, 문제는 변화구 대응 능력입니다. 지난 경기에선 폭투성 공에도 스윙을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 성운 라이온즈가 5월까지 기다려줄지가 의문이네요.”

“특히 좌투수에 약한 게 문제입니다. 심판들이 좌투수의 바깥쪽 공은 더 잘 잡아주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약하거든요.”

우타자가 좌투수에게 약하다니 말 다한 거 아닌가.

라미레스는 바깥쪽 공을 따라다니다 범타로 물러나는 패턴을 반복, 성운 라이온즈는 이날도 답답한 공격력에 허덕였다.

‘이것 봐, 난 분명히 경고했어.’

한승규 감독은 이건 다 단장 책임이라고 불만을 중얼거렸다.

실력이 확실한 용병 타자가 있었는데, 그 추천을 무시한 건 차명석 단장 아닌가. 이인영 한 명만 바라보고 시즌을 시작한 게 원인, 지금은 일단 참겠지만 팬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여론전을 펼치겠다며 칼을 갈았다.

하지만 답이 없는 타선은 자이언츠도 마찬가지, 홈런을 날린 이인영 외엔 누구도 홈을 밟지 못했다.

“자 ··· 다시 볼넷인데요. 정윤호 선수가 연속 볼넷을 내줍니다.”

“이제 홍현구 선수 타석인데, 출루가 되면 다음 타석이 이인영 선수거든요. 자이언츠는 여기서 승부 걸어야 됩니다.”

경기는 흘러 5회 초, 성운 라이온즈는 둘도 없는 기회를 잡았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혼자 태풍에 나부끼는 투수, 홍현구는 초구를 지켜보는 신중함을 보였다.

2구도 빠지면서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가운데로 들어오는 3구를 걷어 올렸지만 배트 밑에 걸린 타구는 높게 튀어 올랐다.

병살에 대비하고 있던 유격수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고, 2루수가 달려들었지만 내야를 빠져나가는 걸 막은 게 고작, 3루 코치가 2루 주자를 3루에 붙들어 세우면서 1사 주자 만루가 됐다.

“자!! 성운 라이온즈는 최고의 상황에서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첫 타석 홈런, 두 번째 타석 볼넷, 100% 출루입니다.”

“왜 이 타이밍에 바람이 외야로 부는 거죠? 뭔가 심상치가 않네요.”

갑자기 바뀐 바람방향, 하늘도 홈런을 원하고 있는 건가.

홈 팀 입장에선 절대 사양하고 싶은 시나리오, 자이언츠는 투수교체로 분위기 전환을 노렸다.

‘걸리면 끝이다.’

자이언츠 배터리는 삼진 따윈 바라지 않았다.

내야 플라이 하나면 대환영, 하지만 이인영처럼 타구 스피드가 빠른 선수를 상대로 내야 플라이를 유도하는 건 삼진을 잡는 것만큼 어렵다.

아니, 처음부터 플라이를 유도하는 볼 배합이 존재하나?

메이저리그에서 커터를 주무기로 하는 투수가 비상식적으로 높은 내야 플라이를 유도하긴 했지만 그건 예외 중의 예외, 플라이를 유도하는 피칭이란 없다고 봐도 좋다.

지금 이 상황도 마찬가지, 그래도 자이언츠 팬들은 실낱같은 희망에 의지했다.

“바깥쪽, 다시 볼입니다. 자이언츠가 점점 수세에 몰리는데요.”

“들어가야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제가 이 상황이었어도 그렇게 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이인영 선수의 존재감이 정말 거대하네요.”

“작년에 홈런 17개 중 4개를 밀어 쳐서 넘긴 선수 아닙니까. 바깥쪽이라도 방심할 수가 없어요.”

2구도 빠지면서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더는 도망갈 곳이 없어진 자이언츠는 승부를 걸었다.

[따아악 ~ !!]

“걸린 타구가!! 센터 쪽!! 먼 곳으로!! 날아!! 갑니다!!!! 오늘 경기 2번째 홈런!! 스코어 5대 0!! 이인영 선수는 오늘 혼자서 5타점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조금 높았는데 용서가 없네요. 그동안 전문가들이 이인영 선수의 침묵을 두고 이런저런 의견을 내놨는데, 전부 폐기 처분해야겠습니다.”

최악의 결과에 침묵에 빠진 홈팬들, 배트를 그 자리에 내려놓은 슈퍼루키는 천천히 1루로 향했다.

때론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도 있는 법, 홈을 밟는 순간까지 외야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포스, 중계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던 성운 라이온즈 팬들은 왜 이런 멋진 게임이 홈경기가 아니었느냐는 아쉬움을 표했다.

[다음엔 홈에서 좀 쳐주길]

-> 동감, 홈에서 홈런 본지 너무 오래 됐다.

-> 슈퍼 루키 발동 걸렸다. 다음 홈에선 3연 타석 가자.

-> 기왕이면 하나 더 받고 4연 타석

자이언츠와의 원정 3연전에서 타율 0.600, 홈런 3개, 9타점을 쓸어 담은 이인영은 단숨에 홈런 레이스 공동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덕분에 한껏 높아진 팬들의 기대치, 다음 홈경기에선 팬들에게 홈런을 선물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작년에도 홈(5개)보다는 원정(9개)에서 홈런이 많았던 타입, 다음 경기 홈런은 장담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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