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전설의 오꽝 (5)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2020 kbo, UA 베어스와 성운 라이온즈의 시범경기가 열리는 서울 상암동 야구장입니다. 저는 캐스터 이명한, 해설에는 김재건, 박한용 위원께서 도움을 주시겠습니다. 김재건 위원님,"
"네"
"3년 만에 시범경기 중계가 재개됐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람직한 결정입니다. 그동안 팬 여러분들께서 전지훈련이나 시범경기 결과를 접할 길이 제한적이었는데, 이번 결정이 프로야구 흥행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길 기원합니다."
"네, 그리고 저희가 특별한 손님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이 분은 박한용 위원께서 소개를 해주시죠."
"네, 이미 팬 여러분들은 다 알고 계실 텐데 조금 쑥스럽네요."
경기를 앞두고 중계석은 손님맞이로 분주해졌다.
13년의 미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UA 베어스 유니폼을 입게 된 임선우 선수의 kbo 데뷔전, 팬들은 격렬한 환호로 메이저리그 통산 114승 투수의 귀환을 반겼다.
"임선우 선수, 고국으로 돌아오신 것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베어스가 작년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는데, 임선우 선수의 합류로 2년 연속 우승에 더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올해 10승 이상 자신하십니까?"
"글쎄요. 한국 야구도 수준이 많이 올라와서 장담을 드리긴 어려울 것 같네요."
"하하, 메이저리그 100승 투수가 그런 말씀하셔도 별로 설득력이 없는데요."
훈훈하게 이어지는 분위기, 김재건 위윈은 현재 kbo 선수 중 누가 메이저리그 후발주자가 될 것 같냐는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일단 베어스의 김환희 선수 그리고 st 위너스의 박혁 선수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전부 투수를 지목하셨는데 야수 쪽에 눈에 띄는 선수는 없는 겁니까?"
"하하 ~ 저는 스카우터가 아닙니다. 이 이상은 괴롭히지 말아주십쇼."
인뒤뷰가 진행되는 동안, 빈자리는 거의 들어찼다.
해외파의 유턴, 달라진 포스트 시즌 배정 방식, 도쿄 올림픽 등 볼거리가 한층 풍성해진 2020 시즌, 등을 돌렸던 팬들은 올해 한번 더 속아주자는 마음으로 경기장을 찾았다.
'괜히 긴장 되네.'
성운 라이온즈의 한승규 감독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공식 경기는 아니지만 한국에서의 감독 데뷔전,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 입장이지만 그래도 지는 팀의 감독은 되고 싶지 않았다.
"감독님, 저 오늘 안타 몇 개 칠까요?"
그것도 모르고 한가하게 농담을 걸오는 애송이, 솔직히 이인영은 한승규 감독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배트를 잡아도 너보단 잘 친다며 면박을 준 사람, 그런 사람에게 누가 웃으면서 말을 걸까.
하지만 지금은 파워게임에서 패배한 이빨 빠진 호랑이, 경계할 가치가 없는데 적대해서 뭐 할 건가.
슬슬 약을 올리며 신경전을 이어갔다.
"몰라 인마"
"저 마음에 안 드시죠? 앞으로 더 마음에 안들 게 해드릴게요."
최종목표는 한승규 감독의 팀 프랜차이즈 기록 경신, 그 때가 되면 저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 올해는 별 일 없이 풀 시즌을 소화할 수 있도록 기원했다.
[플레이 볼!!]
"자, 성운 라이온즈의 선공입니다. 선두 타자는 홍현구 선수, 작년 시즌 성적은 타율 0.273, 홈런 14개, 50타점을 기록했습니다."
"이인영 선수 다음으로 팀 내 홈런 2위를 기록했죠. 그게 성운 라이온즈의 문제입니다."
"작년 시즌 팀 홈런이 겨우 84개였죠. 이인영 - 홍현구 이 두 선수가 전체 홈런의 30% 이상을 책임졌다는 건데, 홈런이 전부는 아니지만 가장 쉽게 점수를 낼 수 있는 수단 아닙니까. 어떤 식으로 득점의 활로를 열지, 이 경기에서 보여줘야겠죠."
홍현구는 초구부터 휘둘렀지만 타구는 내야를 넘어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출루율이 높은 스타일도 아니라 리드오프에서 얼마나 활약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다음 타자 김재완도 다를 건 없었다.
[3번 타자 - 좌익수 - 이 ‧ 인 ‧ 영]
드디어 등장한 주역, 명성은 들었지만 진짜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연습경기라도 한국 팬들 앞에서 선보이는 첫 등판, 임선우는 정면 승부를 택했다.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게 들어가는 투심, 주심은 스트라이크를 줬지만 이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이저리거라고 서비스 주시는 건 아니죠?"
불만을 표했지만 답이 없는 주심, 대신 UA 베어스의 포수 오건무가 입을 열었다.
"주심이 맞다고 하면 맞는 거다. 아버지가 그런 건 안 가르쳐줬냐?"
"부모님은 건드리지 마시죠. 기분 나쁘니까."
오건무는 순간 움찔했다.
젊은 선수들이 많은 팀이라 후배 군기를 못 잡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는 일, 바로 몸 쪽으로 붙는 볼을 요구했다.
'그건 좀 위험한데'
임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바깥쪽으로 가기로 해놓고 왜 돌연 몸쪽인가. 상대 선수와 대화를 나누더니 틀어진 볼배합, 혹시 도발에 낚인 건가. 경험 많은 노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2구도 바깥쪽, 볼 판정이 나오면서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다.
'조금 더 붙여야 나오려나.'
베어스 배터리는 신중히 사인을 교환했다.
작년에 석달만 뛰고도 17홈런을 날린 건방진 루키, 전지 훈련 연습경기에서도 범상치 않은 변화구 대응능력을 보여줬다.
몸 쪽 승부는 거의 자살행위, 선택지가 한정적이라 초구를 잡고도 유리한 볼카운트를 선점하지 못했다.
따악!!
"타격!! 중견수 앞에 떨어집니다. 성운 라이온즈의 오늘 경기 첫 안타, 그 주인공은 이인영 선수입니다.”
“타구가 센터 쪽으로 갔다는 게 중요하죠. 이 타석의 승부는 이인영 선수의 완벽한 승리네요.”
KBO 리그 신고식을 치른 임선우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센터 쪽으로 간 타구, 타이밍을 완전히 뺏겼다는 뜻 아닌가. 사실 지금 과 같은 스윙은 메이저리그에서 크게 관심 받기 어렵다.
라이너 타구가 많은 선수는 높은 타율과 안정적인 생산력을 유지하지만, 홈런을 치기 어렵고 타구 속도가 빠른 만큼, 일단 야수 글러브에 걸리면 병살이 될 위험도 높기 때문이다.
괜히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어퍼 스윙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는 뜻,
작년에 홈런 좀 쳤던 선수라 타구가 좀 더 높게 떠 갈 줄 알았는데 원래 이랬었나. 생각보다 많은 홈런을 치긴 어려울 거라고 평가했다.
‘좋아 잘 되고 있어.’
그에 반해 이인영은 타구에 만족감을 표했다.
메이저리그는 지금 홈런을 치기 위해 어퍼 스윙이 유행을 타고 있다. 하지만 그게 홈런을 많이 치는 절대 공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온갖 정보를 뒤져내 그게 아니라는 걸 찾아냈다.
좋은 예가 시카고의 스캇 애들먼, 애들먼은 데뷔 첫 해 18홈런을 시작으로 25홈런, 31홈런, 그리고 작년 시즌 36홈런 시즌을 만들어 냈다.
다른 선수들처럼 타구 각도를 높인 덕분일까?
진짜 비결은 라이너 타구 비율, 데뷔 시즌 12%를 찍은 라이너 타구는 작년 시즌 16.8%까지 상승했다.
시카고의 홈구장 레드 게이트 스타디움은 좌타자들이 홈런치기 어려운 구장, 펜스가 먼 곳에 있는데 타구를 띄워서 뮐 어쩌겠다는 건가.
차라리 강하게 치는 게 현명, 자기만의 스타일을 밀어붙인 애들먼은 장타와 고타율,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성운 라이온즈의 홈구장 라이온즈 파크는 좌타자에게 유리한 구장, 그럼 나도 어퍼 스윙을 해야 하나? 고민 끝에 슈퍼루키는 그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서 평생 야구할 거 아니잖아.’
이인영은 애들먼을 롤 모델로 삼았다.
타구가 빠른 만큼 병살이 많아지고 홈런이 될 타구가 안타나 아웃으로 둔갑할 일도 많아지겠지.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어퍼 스윙에 집중하는 선수는 내야 뜬공이 많아지는 법,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한다면 병살이 되더라도 강한 타구를 치는 게 나았다.
“안타를 치다보면 나오는 게 홈런이다.”
아버지도 동의한 일, 억지로 쥐어짜낸다고 홈런이 나오나.
홈런 짜내려다 필요한 안타까지 내다버리는 건 아닌지, 누가 뭐래도 지금 스윙을 이어가기로 했다.
따악 ~ !!
“이번엔 우측으로 가는 타구!! 중견수 옆에 떨어집니다. 이인영 선수는 오늘 2타수 2안타, 고감도의 타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단순히 홈런만 치는 선수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죠. 부상만 조심하면 됩니다. 다른 건 요구할 게 없어요.”
이인영은 이날 2타수 2안타에 볼넷 한 개를 기록하고 교체됐다.
전직 메이저리거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실력을 과시한 경기,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은 슈퍼 루키는 호텔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여기 사인 좀 해주세요!!”
“저도요!!”
사방에서 날아드는 사인 요청, 가던 길을 멈춘 이인영은 여기저기서 솟아나는 손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냥 놔둘 것”
시즌 전, 차명석 단장은 코칭스태프에게 비밀지령을 내렸다.
전국구 인기는 유니폼 판매량과 직결되는 법, 서울에 인기 씨앗을 뿌리고 있는데 그걸 왜 말리나. 하지만 선수시절 사인 안 해주기로 유명했던 한승규 감독은 길어지는 사인회에 짜증을 표했다.
그렇다고 단장의 지령을 외면할 수도 없는 일, 출발 시간을 1시간이나 넘기고 나서야 성운 라이온즈 선수단은 겨우 호텔로 향했다.
“야, 어지간히 해라.”
“너무 많이 해주면 값어치 떨어져. 그리고 다음 경기 생각도 해야지”
“그럼 저 떼놓고 가세요. 택시 타고 알아서 찾아 갈게요.”
동료들의 참견이 이어졌지만 이인영은 웃어넘겼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사인 하다가 버스 놓쳐서 택시 타고 지방까지 내려간 선수가 있다. 작년 시즌 지휘봉을 내려놓은 박한우 감독이 그 주인공,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감독에 취임한 게 우연일까.
감독이 되면서 현역 시절의 명성을 다 깎아먹었지만, 지금도 팬 서비스만큼은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한다.
그 정도는 못해도 흉내는 내봐야겠지, 그렇다고 동료 선수들에게 피해를 줄 순 없는 일 아닌가.
이 문제를 두고 나름대로 고심을 했다.
‘그럼 자가용 끌고 다니면 되겠네.’
운전은 기사를 고용하면 그만, 생각에 그치지 않고 구단에 정식으로 건의를 했다.
“안 될 것 없지."
차명석 단장은 자가용 운행을 허락했다.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야구 선수가 시즌 전용 자가용에 운전기사까지 끌고 다니나, 하지만 지금 이인영의 인기는 어지간한 연예인을 능가하는 수준, 구단 부담으로 자가용과 운전기사를 지원해 줬다.
덕분에 더 높아진 명성과 인기, 깨달은 게 있는지 다른 선수들도 사인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하기 시작했다.
“제 사인 받으셨어요?”
“아니요.”
“주세요. 해드릴게요.”
이젠 거의 사인을 당하는 수준, 이런 노력 덕분인지 개막전 당일 라이온즈 파크는 2만 1천 관중이 꽉 들어차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연 평균 8000명을 겨우 넘겼던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면 경악할 일, 팬들의 호응이 높아지면서 차명석 단장은 성운그룹의 인정을 받게 됐다.
기업 내에서 맡길 자리가 없어서 프로 구단 단장으로 보냈는데, 의외로 능력이 있는 건가.
선수를 잘 활용하는 것도 마케팅 능력, 내부회의에서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그게 정말 입니까?”
[그래, 잘 해보라고, 올 시즌 성과 있으면 내년에는 그룹에서 한자리 하게 될 거야.]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는 라인을 통해 기업 정보를 입수한 차명석 단장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난 3년 동안 단장으로 성과를 못 내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오다니,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슈퍼루키를 더욱 신뢰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