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5화 (25/309)

25화. 전설의 오꽝 (4)

“이인영 선수 안녕하세요.”

“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전지훈련 인터뷰, 햇볕이 내리 쬐는 그라운드를 피해 야외 테라스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질문들, 몸 상태는 어떠냐 컨디션은 어떠냐는 물음에 슈퍼루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형식적인 답변을 이어갔다.

“헤어스타일 바꾸셨네요?”

“네?”

“전하고 달라졌잖아요. 아닌가요?”

기습질문에 김지영 아나운서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바뀌긴 했는데 이런 질문을 받는 건 예상 밖의 전개, 나름 신경을 쓴 스타일이라 알아봐주는 게 싫진 않았다.

“네,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게 아니잖아요.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죠.”

이인영은 저는 뭐 바뀐 게 없냐며 질문을 유도했다.

살도 많이 빠졌고 턱 선도 작년에 비해 날렵해졌는데 그건 알아봐 주지 않는 아나운서, 담당 pd는 역시 말주변이 좋은 선수라며 만족한 반응을 보였다.

‘페이스에 말렸네.’

김지영 아나운서는 포커 페이스를 유지했다.

선수의 반응에 맞춰 웃어주는 것도 아나운서의 역할이지만, 나보다 6살이나 어린 선수에게 끌려다니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 주도권을 이쪽으로 유도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클럽에서 팬들에게 성의를 표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여성 팬에게 특별히 친절한 이유가 있나요?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관중석의 반도 여성으로 채워져야 되는 데, 그게 안 되서 조금 안타깝네요.”

프로야구도 한 때 여풍이 불어닥친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비율, 이유가 뭘까. 친절하지 못한 팬 서비스? 잘생긴 선수가 없어서? 그것도 이유겠지만 이인영은 팬들이 원하는 야구를 못하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분들도 기본적으로 야구를 좋아하셔서 구장을 찾는 거잖아요. 저희가 재미있는 야구를 못하니까 실망하신 것 같은데 그걸 생각하면 서비스라도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지영 아나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겉보기엔 가벼운 면이 있지만 본심을 슬쩍 파보면 진지한 면도 있는 선수, 뭣보다 팬들을 구장으로 유도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그리고 관리도 확실히 중요한 것 같네요.”

“관리요?”

“네. 프로니까 야구야 당연히 잘 해야 되는 거고, 기왕이면 잘 빠진 게 보기 좋겠죠.”

야구선수는 왜 여성팬들에게 매력을 끌기 어려운 걸까. 술 담배에 찌들고 몸매 관리에 실패한 탓 아닐까.

큰 키는 기본이고 기본적으로 날렵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배구 - 농구 선수들, 그에 비해 야구는 불어난 체중에 조금 관대한 편이다.

남자가 몸매 좋고 예쁜 여자 좋아하듯이, 여자도 똑같은 마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선수들도 몸관리에 신경써야 하겠지. 이인영은 이 자리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는 그날까지 철저한 관리를 약속했다.

“체중이 많이 빠지셨는데 장타력에 영향이 있는 거 아닌가요?”

“그건 두고 보시면 압니다. 단언컨데 몸상태는 작년보다 좋습니다.”

풀타임 출전과 30홈런 달성까지 약속, 이건 나 자 자신과의 약속이라 절대 양보할 뜻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 * *

3월 14일, 성운 라이온즈는 후쿠오카 난카이 호크스와 연습게임을 치렀다.

후쿠오카는 최근 10년 동안 npb 우승을 3번 차지한 강팀, 특히 투수력이 좋아 도쿄 올림픽에 출전이 유력한 투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탐색전으로 손색이 없는 상대, 국가대표 출전을 노리는 이인영은 전력을 다했다.

[선구안이 나쁘지 않지만 원하는 코스는 적극 공략]

[큰 체격에 유연성이 좋아 스트라이크 존에서 빠지는 볼도 걷어냄]

[밀어쳐도 넘길 수 있는 파워가 인상적]

일본 대표팀을 이끌게 된 타케토 요시노리 감독도 사방에서 끌어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현장검증에 나섰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건강하다면 한국 대표 팀 유니폼을 입을 선수, 아니나 다를까 이인영은 첫 타석부터 인상적인 스윙을 선보였다.

레벨스윙에 가까운 궤적이지만 몸을 뒤로 눕히며 어퍼 스윙으로 바꾸는 폼이 인상적, 파워에만 의지하는 선수가 아니라 공을 멀리 보낼 수 있는 기술까지 갖추고 있다.

걸리면 분명 위험하지만 변화구 대응력은 어떨지, 타케토 감독은 나름대로 공략법을 고민했다.

“슬라이더가 약점일 수도 ··· ”

요즘 일본 투수들은 메이저리그처럼 빠른 볼과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는다.

투수들의 평균 구속이 상승한 결과, 타케토 감독은 이인영이 빠른 볼은 잘 공략하지만 슬라이더엔 약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치고 나가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1, 2구를 몸쪽으로 붙이고 슬라이더를 던져 범타를 유도하는 게 좋겠지

특히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사용하는 공은 메이저리그 공인구처럼 공기의 저항을 더 강하게 받기 때문에 슬라이더 변화가 더욱 뚜렷히 드러난다.

빠른 볼 제구와 수준급의 슬라이더를 갖춘 모리사다를 붙이면 잡아낼 수 있겠지, 예상대로 후쿠오카의 선발 니시노는 몸 쪽으로 붙이는 투구를 택했다.

‘예상했던 패턴이네.’

2구를 지켜본 이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속이 올라오면서 몸 쪽 승부를 즐기게 된 일본 투수들, 뭣보다 일본 타자들은 선천적으로 몸 쪽 공을 잘 치기 어렵다.

몸 쪽 공을 공략하려면 간결한 스윙으로 걷어내야 되는데, 몸통이 가냘픈 동양인들은 간결한 스윙으로 타구를 밀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타자의 몸통을 팽이, 팔을 줄로 비유해 보자,

팽이를 강하게 돌리려면 줄을 그만큼 많이 감아야 하는 건 상식, 그런데 팽이가 얇으면 아무리 줄을 많이 감아도 추진력이 안 생긴다.

몸통이 얇은 아시아권 타자들이 강한 스윙을 해도 추진력을 얻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것, 타자들도 몸 쪽 승부를 즐기는 투수들에 맞춰 몸집을 키우고 있지만 몸통은 그렇게 쉽게 커지는 게 아니다.

한 마디로 타고나야 하는 것, 이인영은 그 체격을 타고 났다.

이 싸움에서 지면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가 들어오겠지, 다음 공도 몸 쪽으로 들어오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따아악 ~ !!

“엇?!!”

경쾌한 타구에 다케토 감독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우중간을 가로지르는 대형홈런, 몸 쪽으로 붙이면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판단을 이렇게 깨버릴 줄이야

슬라이더를 던지더라도 일단 카운트를 잡아야 할 것 아닌가. 저 공을 이렇게 넘겨버린다면 생각보다 귀찮아지는 공략 법, 바깥쪽을 집중적으로 찌르고 포크볼로 잡아내는 대안을 생각해 냈다.

따악 ~ !!

하지만 한국의 슈퍼루키는 바깥쪽 공도 문제없이 밀어내는 타격을 선보였다.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약점을 찾기 어려운 선수, 다케토 감독은 큰 숙제를 안고 관람을 마무리 했다.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귀찮은 선수야. 니시테츠가 왜 그렇게 영입에 열을 올렸는지 알 것 같아.”

경기가 끝난 후, 후쿠오카의 아사노 감독과 타케토 감독은 얼굴을 마주했다.

두 사람은 한때 배터리를 이뤘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 연구 대상이 타자인 만큼 현역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머리를 굴려봤지만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계속 볼을 던져서 조급하게 만드는 건 어떤가?”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지.”

아사노 감독은 심리전을 주장했다.

지난 프리미어 12에서 확인했지만 한국 타자들은 일본 투수들의 빠른 볼과 낙차 큰 변화구에 속수무책으로 나가 떨어졌다.

이인영이 오늘처럼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한다고 해도, 뒤를 받쳐줄 선수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본인이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면 알아서 무너지겠지, 올림픽 본선에서 만난다면 좋은 공은 주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인영, 3경기 연속 홈런 행진]

타케토 감독이 경계를 하는 만큼, 이인영은 전지훈련 연습경기에서 놀라운 장타력을 선보였다.

걸렸다 하면 담장을 넘어가는 수준, 매끈한 기럭지에서 저런 파워가 나오는 게 가능한가.

하긴, 작년에도 54경기만 뛰고 17홈런을 날린 선수, 전문가들은 건강하다면 30홈런은 문제없다는 전망을 내놨다.

물론 다른 타자들이 뒤를 받쳐줘야 가능한 수치, 집중견제를 받는다면 20개 정도에서 멈출 수도 있다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만큼 타자가 부족한 성운 라이온즈, 하지만 차명석 단장은 걱정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작년에는 타선이 강했나? 새삼스럽게 뭘…’

작년 시즌, 슈퍼 루키는 하위 타순 - 리드 오프 - 클린 업 - 어느 자리에서도 제 역할을 해 냈다.

치고 나가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유인구도 곧 잘 걷어내는 편, 거기다 주루 플레이도 좋아 후속 타선의 타격에도 좋은 영향을 줬다.

한승규 감독이 원했던 거포 용병은 영입하지 못했지만 멕시칸 리그에서 타율 0.337, 홈런 24개를 기록한 호세 라미레스가 20홈런 정도만 쳐준다면 집중견제도 피할 수 있겠지.

여론의 걱정은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 * *

“저 왔어요.”

“그래, 배 안 고프니?”

“차려주시면 먹을 게요.”

전지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슈퍼루키는 어머니가 챙겨준 밥상을 받았다.

한창 먹을 나이인데 요즘 들어 줄어든 아들의 식사량, 몸매 관리한다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먹어서 어떻게 힘을 쓰냐는 질타에 아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미소를 지었다.

“전에는 무식하게 많이 먹은 거예요.”

“그래도 좀 더 먹어라. 너 이거 예전엔 혼자 다 먹었잖아.”

“뭘 그렇게 많이 하셨어요.”

이인영은 밥통을 가득 채운 갈비찜에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도 적게 먹는 건 아닌데 예전 식탐을 생각하면 경악할 수준, 소파에 앉아있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이미 한가득 먹었다.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

아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아내가 지겹도록 했던 반찬, 아버지는 갈비찜에 눈길도 주지 않았고, 다행히 옛 뱃심이 남아 있던 슈퍼 루키는 밥통을 완전히 비워냈다.

“에효 ~ 얼굴이 반쪽이 됐네. 너 얼굴이 원래 그렇게 작았니?”

어머니의 아부에 이인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보다 얼굴 작고 비율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긴, 엄마 눈엔 아들이 제일 잘난 게 당연한 건가. 어디 가서 그런 말씀 하시면 사람들이 속으로 욕한다고 한마디 하려다 그만 뒀다.

“내가 얼굴이 작잖아. 그러니까 작은 거지.”

깨알 같이 파고드는 아버지의 자랑,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이번에도 아들은 입을 다물었다.

“아빠, 계속 그렇게 집에만 계실 거예요?”

“네가 엄마 운전기사라 하라며?”

“아버지는 감독 욕심 없어요? 남들은 코치 연수 한다고 유학도 가고 그러는데 ··· 제가 보내 드릴까요?”

“됐다 이 녀석아.”

이인호는 못 들은 척 하고 소파 위에 몸을 눕혔다.

감독 욕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 그렇다고 아무나 시켜주진 않는다.

프로 경력 13년에 1500안타 달성, 코치 생활도 3년이나 했지만 그것만으로 인정받기엔 세상이 만만치가 않다.

뭣보다 미래가 밝은 아들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만큼, 주위 사람들의 눈치도 신경 쓰이는 게 사실, 아들도 날뛰는데 나까지 날뛰면 사람들은 어떤 눈길을 보낼까.

보기 좋다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 뭣보다 이인호는 아들의 계약금을 7억 원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별의 별 말을 다 들었다.

아버지가 너무 극성이라 아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둥, 아들 잘 키웠으니 이젠 코치에서 감독 루트 타는 거 아니냐는 둥, 다 아들 잘 되라고 한 행동이지 내가 튀자고 한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그게 아니라는 게 문제, 내가 조용히 있어야 아들이 빛을 본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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