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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일인자-23화 (23/309)

23화. 전설의 오꽝 (2)

“아니, 내 의견을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죄송하지만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

전지훈련을 앞두고 성운 라이온즈의 한승규 감독은 프런트와 충돌했다.

차명석 단장은 NA 자이언츠에서 통산 114승을 거둔 노진우를 투수 코치로 영입하기로 결정, 한승규는 왜 내 의견을 구하지 않았냐며 반발했다.

'이 사람 웃기네. 자기가 무슨 단장인 줄 아나.'

구단 팀장 이우석은 마음 속으로 코웃음 쳤다.

코칭 스태프 인사는 프런트가 결정할 일, 물론 감독의 의견은 들어볼 수 있지만, 감독의 추천을 받은 사람을 반드시 코치로 임명할 의무는 없다.

감독이라는 자가 구단 인사권을 쥐락펴락하려 하다니, 뭣보다 한승규 감독의 요구는 처음부터 들어주기 어려운 요구였다.

[그리고 신명철 코치님은 대표 팀 코치로 가셨습니다.]

"뭐,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네, 이미 통보하셨습니다.]

공식 발표가 나지 앉았을 뿐, 이미 신명철은 성운 라이온즈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그것도 모르고 투수코치로 추천했으니, 구단이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자네 국가대표 코치로 가는 거 사실인가?"

[그런데 왜 그러나?]

"아니, 그럼 미리 얘기를 했어야지. 난 자네를 투수 코치로 추천하려고 했는데"

[미안. 갑자기 그렇게 됐네.]

신명철 코치는 처음부터 성운 라이온즈에 남을 생각이 없었다.

감독에 취임한 것보다 박한우 감독을 몰아낸 게 더 기쁘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은 한승규, 이런 작자 밑에서 무슨 대업을 이루겠나.

제 딴에는 내 입장을 배려해준 것 같은데, 솔직히 가소로웠다.

'너 없어도 내 직장은 내가 잡는다.'

통산 108승을 거둔 내가 실력이 없어서 취직을 못하겠나. 국가대표 코치로 발탁된 것만 봐도 스스로 밥벌이 할 능력은 된다.

그런데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한자리 추천을 해주겠다니, 코치가 무슨 감투인가.

프로선수의 재능을 끌어내는 게 코치의 역할, 그것도 망각한 인간 밑에 들어갈 만큼 신명철 코치는 비굴하지 않았다.

'난 그럼 뭐지?'

한승규 감독은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에 당황했다.

감독이 되면 내 입맛대로 팀을 꾸릴 줄 알았는데 선수 선발부터 코치 영입까지 모든 실권은 프런트가 쥐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명장놀이는 실전에서 성적을 낸 감독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

한승규는 분명 뛰어난 커리어를 보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선수시절의 일이다. 감독으로 뭐 한 게 있다고 프런트가 그 뜻에 끌려 다닐까.

전임 감독이었던 박한우도 성운 라이온즈 역사를 대표하는 커리어를 세웠지만, 프런트와 사사건건 충돌, 자기 뜻대로 팀을 운영한 건 1년도 안 된다.

신임감독도 다를 게 없는 신세, 결국 코치진 개편은 차명석 단장의 뜻대로 흘러갔다.

전(前) 베어스의 타격 코치 이성한도 후보 중 한 명, 전 소속 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지만 일단 후보에 넣었다.

“앞으로 선수들을 어떻게 지도하실 생각이십니까?”

“선수에겐 각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성운 라이온즈가 그동안 거포를 양성하는데 집중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건 처음부터 무리인 전략이었습니다.”

이성한은 선수들의 개성을 살려주는 지도를 주장했다.

선수가 없다보니 어지간하면 고쳐 쓰려는 KBO,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개성을 상실했는가.

베어스 팬들은 이성한을 자리만 차지하는 무능한 코치로 여겼지만, 이성한의 나는 선수의 개성을 살려주는 스타일이라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그러다보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받은 것도 사실, 뭣 좀 고치려고 하면 선수의 개성을 죽인다고 하고, 지켜보면 일 안 한다고 하고,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가.

하지만 그게 코치의 운명, 타선이 잘 터지면 팬들에게 인정받고 그러지 못하면 욕먹는 신세 아닌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이인영 선수는 어떻게 보십니까? 개선할 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작년에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입니다. 기술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네가 팀의 중심이라는 신뢰를 표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기습 질문에도 이성한 코치는 나름의 주장을 펼쳤다.

코치가 선수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너무 간섭해도 안 되는 법, 이인영은 작년에 자신만의 스타일로 성과를 낸 선수다.

구단에서 팀을 대표하는 스타로 키울 생각이라면, 조금 부진해도 중심 타선에 꾸준하게 기용해주는 게 맞는 일, 귀를 기울이던 성운 라이온즈 팀장 이우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전화 드리겠습니다.”

“예”

그렇게 끝난 면접, 보고를 받은 차명석 단장은 바로 이성한을 타격 코치로 임명했다.

코치는 이렇게 깐깐하게 임명하는 사람이 왜 한승규를 감독으로 임명했을까.

사실 차명석 단장에게 감독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전임 감독이었던 박한우가 워낙 고집불통에 자기만의 스타일이 강했던 사람이라 자기 말대로 움직여 주는 장기 말이 필요했을 뿐, 마침 성운 라이온즈 감독 자리를 원했던 한승규는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그것도 모르고 이 선수 영입해 달라, 코치는 이 사람이 좋겠다, 간섭이나 하고 있으니 통할 리가 있겠나.

수틀리면 바로 잘리는 게 감독의 목, 차명석 단장은 벌써부터 기어오르려는 한승규 감독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자네가 앞으로 팀의 3번이야. 하늘이 무너져도 이건 변하지 않아]

그날 밤, 차명석 단장은 이인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성한 코치의 말대로 지금은 신뢰를 보여줄 때, 작년에 59경기만 뛰고 17홈런을 날린 선수 아닌가.

스스로 연봉인상을 거부한 것도 플러스 점수, 이인영은 감사하다는 말 외에 다른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이래놓고 버림받는 게 프로의 세계지.’

이인영은 ‘붙박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무슨 철밥통도 아니고 영원한 중심타자가 어디에 있나. 성적을 못 내면 밀려나는 게 현실, 내가 정말 한 달 동안 죽을 쒀도 팀이 기다려 줄까?

2군이나 안 내려가면 다행, 립 서비스 정도로 받아들였다.

* * *

“왜 한국에 남았어?”

“이제 와서 나가라는 거야?”

전지훈련 출국을 앞두고 이인영은 존 워커와 잡담을 나눴다.

존 워커의 작년 시즌 성적은 12승 10패 평균자책점 3.41, 괜찮은 활약이었고 뭣보다 189이닝을 소화하며 내구성도 합격점을 받았다.

이 정도라면 메이저리그 복귀는 몰라도 일본에서 오퍼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존 워커는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적극적인 구애를 펼친 건 성운 라이온즈 뿐, 달리 받아주는 곳이 없는데 어디로 가나. 눈치 없는 애송이의 트집에 존 워커는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 보게 돼서 반가워서 그런 거야.”

“그래, 너도 올 시즌은 부상 없이 보내라고”

존 워커도 지지 않고 상대의 약점을 찔렀다.

부상은 신기하게 당하는 놈만 당하는 법, 슈퍼루키가 올해는 부상없이 보낸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이인영은 성적뿐만 아니라 내구성도 증명해야 하는 입장, 둘은 서로의 약점을 자극하며 투지를 끌어올렸다.

어쨌든 성운 라이온즈 선수단은 작년처럼 미야자키 캠프에 둥지를 틀었고, 한승규 감독은 단장이 붙박이 3번으로 낙점한 이인영을 예의 주시했다.

내 기록을 넘겠다고 건방을 떤 녀석, 거기다 단장이 총애하는 녀석이라 눈에 차지 않는 건 당연했다.

“너 그렇게 해서 내 기록 넘겠냐? 공이 날아오면 이렇게 쳐야 되는 거야. 그게 아니라고”

훈련을 지켜보던 한승규 감독은 관심을 가장한 시비를 걸었다.

거기다 홈런을 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참견까지, 그런데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이론도 아니다.

요약하면 공이 날아오면 딱 ~ 하고 치라는 거, 이게 무슨 지도인가. 박한우 감독을 통해 한승규가 어떤 사람인지 대략 파악한 이인영은 바로 반격에 나섰다.

“감독님과 똑같은 스윙 하면 43개 밖에 더 치겠어요?”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전 감독님 기록을 넘고 싶다고요. 그러니까 감독님이 하던 스타일로 해선 안 된다는 뜻이죠.”

이성한 코치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대놓고 감독과 충돌할 줄이야, 붉게 달아오른 한승규 감독의 얼굴을 보아하니 뭔가 일이 터질 분위기, 아니나 다를까 고성이 이어졌다.

“야, 넌 네가 나보다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당연하죠. 제가 잘해야 감독님도 좋은 거 아닌가요?”

선수가 잘해야 감독도 체면이 서는 법,

박한우 감독은 양아들이 자신의 연속안타 기록을 위협할 때도 잘한다 하며 박수를 쳐줬다.

그런데 한승규 감독은 자기 팀 선수라도 내 기록을 위협하는 게 싫은 모양, 그럴듯한 말대꾸에 한승규는 제대로 된 반격도 못하고 씩씩 거렸다.

“훗 ~ 내가 지금 쳐도 너보다는 잘 해 인마. 20개도 못 쳐본 녀석이 잘난 척은 ··· ”

“그럼 지금이라도 선수로 뛰시는 게 어때요? 제 자리 양보해 드릴게요.”

이인영은 한 마디 툭 던지고 다시 훈련에 열중했다.

내가 지금 쳐도 너보다는 잘 한다? 선수 자존심을 깔아뭉개고 무시하는 사람이 무슨 감독인가. 차라리 전임이었던 박한우 감독이 100배는 더 감독다웠다.

[그 자식은 예의를 차리면 사람을 우습게 본다. 절대 고개를 먼저 숙이면 안 된다.]

이인영이 이렇게까지 막나가는 이유는 박한우 감독의 조언 때문이었다.

탐색전으로 상대를 파악하고 만만하다 싶으면 자기 뜻대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게 한승규의 인간성, 그냥 조용히 넘어갔으면 아무 말 안 했을 텐데, 훈련하는 선수 옆에서 시비를 거는 이유가 뭔가.

싹이 보이는 인간성, 어차피 실권은 단장에게 있고 이 사람은 허수아비 아닌가. 이렇게 나온다면 대우를 해 줄 이유가 없었다.

‘헐 ~ 세게 나오는데 저 자식’

‘저러다 무슨 일 나는 거 아냐?’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동료 선수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고작 2년 차에 접어든 선수가 감독 앞에서 저런 태도를 보이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다 혹시 무슨 일 터지는 거 아닐까.

다행히 한승규 감독이 말없이 자리를 뜨면서 큰 사건으로 번지진 않았지만, 이 소식은 차명석 단장 귀에 들어갔다.

곳곳에 심어 놓은 눈과 귀가 몇 개인데 이런 큰 사건을 놓치겠나. 녹음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있습니다.”

녹음 파일에 귀를 기울이던 차명석 단장의 얼굴은 조금씩 달아올랐다.

또박또박 말대답을 한 이인영도 잘못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이게 지금 감독이라는 사람이 할 행동인가.

성운 라이온즈 전설이라 감독으로 추대해줬더니, 시즌 전부터 팀 인사에 개입하고 제멋대로 행동, 거기다 팀 선수들에게 격려는커녕 조롱 섞인 참견을 하고 있으니,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조치할까요?”

“됐어, 내가 직접 가야겠어.”

차명석 단장은 바로 미야자키 캠프로 날아갔다.

이 구단의 보스가 누구인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가르쳐줄 예정, 칼날은 한승규 감독을 겨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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