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1화 (21/309)

21화. 비운의 2인자 (21)

“이 자리를 빌려 프로야구 팬 여러분들, 그리고 성운 라이온즈 관계자, 이인영 선수에게 사죄를 표합니다.”

사고가 일어난 지 열흘 만에 kbo 총장은 공식기자 회견을 열었다.

프로야구 구단의 부실한 시설관리 민낮을 드러낸 사건, 해외에서도 이 사건을 두고 조롱과 비난을 쏟아냈다.

한마디로 국제적 망신, 뭣보다 향후 한국의 중심타선을 이끌어갈 선수가 다친 사건 아닌가.

몇 번을 고개를 숙인들 이미 벌어진 재앙을 되돌린 순 없었다.

[NA 자이언츠 해체 시켜라.]

[말기암 환자에 심폐소생술 한다고 달라지는 거 없다.]

일각에선 10개 구단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NA 자이언츠의 시설관리 문제는 이게 처음이 아니다.

불펜 문을 열던 투수가 손바닥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심지어 경기 중 음푹 파인 곳에 발이 빠진 선수가 넘어지는 웃지 못할 사건까지 발생, 과거의 잘잘못까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한국 프로야구 인기는 다시 한 번 번에 직격탄을 맞았다.

프로 구단이 구장관리를 이렇게 하는데 어느 선수가 몸을 날리는 플레이를 감수할까.

부끄러운 현실에 kbo 위원장은 온갖 질타를 감수해야 했다.

"향후 대응은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기자의 질문과 함께 터져나오는 카메라 플래시, 잠시 말이 없던 위원장은 문체부와 협의 중이라는 형식적인 말만 늘어놨다.

"시설관리 문제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 정도면 문제가 개선될 희망이 없는 거 아니냐는 팬들의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으음 ··· 그게 ··· “

날카로운 질문에 위원장은 얼굴을 붉혔다.

한 선수의 부상이 이런 여파를 불러올 줄이야. 그만큼 슈퍼루키의 등장에 야구 팬들이 관심을 보였다는 뜻이다.

제대로 시설 관리만 했어도 프로야구 흥행에 도움이 됐을 텐데 그 기회를 이렇게 차버리다니,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 * *

“그 자식들 다 옷 벗겨”

“네”

한편, NA 자이언츠의 모기업, NA 그룹은 신성민 대표는 물론 시설관리 팀까지 모두 목을 날려버렸다.

이인영은 지금도 자이언츠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있다.

거기다 문체부까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중, 기업 이미지까지 망칠 수 있는 사건이라 무조건 고개를 숙였다.

"이건 저희들의 사죄의 표시 입니다."

NA 그룹은 이인영의 부모와 은밀히 접촉했다.

이 사건을 최대한 조용히 끝내려면 피해자의 용서가 필요, 피해자가 우릴 용서한다고 한 마디만 하면 법적절차를 준비 중인 성운 라이온즈 구단도 합의에 나설 것 아닌가.

하지만 이인호의 입장은 단호했다.

"이봐요. 우리 아들이 지금까지 거둔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게 ··· 저희는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가 아니라 자세히는 ··· “

“3할 4푼 2리에 홈런만 17개입니다. 그쪽 중심타자들 홈런 다 합친 것보다 많다고요.”

뼈를 때리는 공격에 기업관계자는 입을 다물었다.

어이가 없지만 현실, 앞날이 창창한 선수의 발목을 날려먹고 이깟 몇 억으로 우리 입을 빌려 여론전을 펼치겠다는 건가.

이인호는 쌍욕 나가기 전에 그만 가시라며 불청객들을 내쫒았다.

‘하아 ··· 그냥 해외로 보내는 거였는데…’

아버지는 뒤늦은 후회에 사로잡혔다.

솔직히 아들이 프로야구 무대에서 그렇게 빨리 적응할 줄은 몰랐다.

내 예상을 아득히 초월했던 아들의 재능, 해외 구단에서 오퍼가 왔을 때 보냈어야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잠깐, 당신 지금 우는 거예요?”

“그런 거 아니야.”

아내의 물음에 이인호는 서둘러 눈가를 훔쳐냈다.

본인도 부상 이후 급격히 하락한 운동 능력 때문에 프로 생활에 애를 먹었는데 그 불운이 아들까지 옮겨 갈 줄이야. 생각할수록 속이 쓰리고 화가 났다.

[네가 좀 어떻게 해봐라.]

[넵]

어머니의 sos 요청을 받은 아들은 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kbo 최고의 선수가 된 다음에 해외로 진출하겠다고 한 건 나 아닌가.

그런데 왜 아버지가 심적 책임감을 느끼시는 건지, 번지수를 잘못 짚으셨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빠, 저 이렇게 무너질 놈 아니에요. 보란 듯이 재활해서 내년에 더 좋은 활약 할 떼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내가 할 말이 없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도 부상 이후 보란 듯이 재기하셨잖아요.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래, 알았다.]

아버지를 다독인 이인영은 이를 악 물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죽이고 싶은 인간이 한 두 명인가. 하지만 그런 분노는 내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일, 마음을 다잡고 재활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이 뼛조각도 문제네요.”

“뼛조각이요?”

“네, 혹시 전에도 발목을 다치신 적 있습니까?”

“글쎄요. 딱히 기억은 ··· ”

수술을 앞두고 이인영은 성운 그룹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재검진을 받았다.

뼛조각이라니, 설마 이번에 당한 부상으로 뼈까지 다친 건가. 하지만 의사는 그런 건 아닌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뼈막이 벗겨진 게 시간이 지나면서 뼛조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그게 앞으로 그게 경기력에 영향을 줄까요?”

“네, 발목의 안정성에 영향을 줄 겁니다. 이 뼛조각이 이번 부상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순 없을 것 같군요.”

의사의 진단에 이인영은 뜨끔했다.

오래 전에 생긴 뼛조각이 이번 부상에 원인을 줬을 거라니, NA 자이언츠가 이걸 알면 너희도 책임이 있다고 물고 늘어질 것 아닌가.

이인영은 비열한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봤다.

“지금 하신 말은 진단서에 안 적어도 될 것 같은데요.”

“하하 ~ 알고 있습니다.”

눈치가 빠른 의사는 척 하고 알아들었다.

성운 그룹이 운영하는 병원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걸 발설해서 좋을 게 뭐가 있겠나. 근육은 수술을 안 해도 재활 치료로 회복이 가능한 수준, 뼛조각만 제거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진단 결과를 받은 성운 라이온즈는 소송을 취하하고 NA 자이언츠로부터 일정액의 보상금과 치료비를 받는 조건으로 이번 사건을 마무리 했다.

‘분하다. 다치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시작된 재활 훈련, 이인영은 빠르게 추락하는 팀의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4위를 넘어 3위까지 정조준 했던 팀이 순식간에 6위로 추락할 줄이야. 성적이 곤두박질치면서 박한우 감독의 입지도 위태롭게 됐다.

날 믿어준 분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게 이렇게 안타까울 줄이야. 혹시나 했던 소식이 7월 중순에 날아들었다.

[굴곡의 3년 7개월, 박한우 감독 공식 사임]

[신명철 수석코치가 대리]

박한우 감독은 끝내 유니폼을 벗었다.

양아들의 등장과 성적 반등으로 드디어 결실을 보나 했는데, 감독으로서의 내 운은 여기까지였던 모양, 다시는 감독으로 복귀할 일은 없을 거라며 못을 박았다.

외부 세상에 더 이상 귀를 기울였다간 내가 미칠 지경, 이인영은 뉴스도 보지 않고 재활 훈련에만 열중했다.

‘이 인간 괴물인가?’

치료를 돕는 물리치료사는 놀라운 회복속도에 경악했다.

일반인이라도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해 왔다면 회복이 빨리 되는 경우가 많다. 거기다 이 환자는 프로 선수, 회복이 빠를 거란 예상은 했는데 보통 일주일은 있어야 빠지는 붓기가 3일 만에 가라앉았다.

회복 속도가 일반인들과 차원이 다른 수준, 재활 치료 기간으로 최소 2달을 잡았지만 의사는 이런 페이스라면 7월 안에 끝날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 올해 안에 복귀할 수 있을까요?”

“그건 좀 참아주시죠.”

의사는 시즌 복귀는 생각도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젊은 선수들이 무리하게 복귀를 시도했다가 더 큰 부상을 입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거기다 이 환자는 190에 가까운 키에 덩치도 제법 큰 편, 어설프게 회복된 발목으로 복귀했다가 또 다치면 그땐 정말 운동능력을 상실 할 지도 모른다며 붙잡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구단의 뜻도 마찬가지라 이인영은 시즌 내 복귀를 접었다.

“감독님, 제가 술 한 잔 대접할게요.”

[재활 하는 놈이 술 먹어도 되냐?]

“전에 술 마실 때 부르라고 하셨잖아요. 오늘은 속상해서 조금 마시려고요.”

시간은 흘러 7월 25일, 이인영은 박한우 전 감독을 술자리로 유인했다.

지키기 못할 약속은 아예 안 하는 편, 서로 미처 못 다한 말도 있고 술자리에서 회포를 풀기로 했다.

“나 ··· 솔직히 너 입단했을 때 별로 안 좋아했다.”

“알고 있어요. 제가 그렇게 눈치가 없는 줄 아세요?”

양아들의 고백에 박한우 감독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하긴 머리가 다 큰 녀석인데 그렇게 눈치가 없겠나, 어른이라는 놈이 대놓고 싫은 척을 했으니, 그래도 모른 척 하고 감독의 뜻에 따라준 녀석이 고마웠다.

“감독도 그만 두셨는데, 앞으로 뭐 하실 거예요?”

“당분간 놀러 다닐 거다. 이 머리가 그냥 빠진 게 아니야.”

박한우 전 감독은 뿌리가 얼마 남지 않은 민둥산을 어루만졌다.

선수시절 때만해도 풍성했던 머리숱이 3년 만에 이렇게 될 줄이야, 감독을 하면서 얻은 건 ‘발암유발자’라는 조롱과 팬들의 야유 뿐, 이럴 줄 알았으면 돌아오지 않았을 거라며 술잔을 기울였다.

“너도 프로생활 하다보면 느끼겠지만, 그라운드가 영광만 있는 자리가 아니다. 3할을 치면 다들 스타라고 하는데 그래도 못 치는 타석이 더 많지 않냐? 잘 하든 못 하든 욕을 먹을 수밖에 없어. 나도 그랬고 ··· ”

“그래도 감독님은 한국시리즈 우승 4번이나 하셨잖아요. 제 앞에서 그런 말씀하셔봤자 설득력이 없어요.”

양아들의 격려에 박한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한승규의 그늘에 묻혀 2인자 인생을 살았지만 그래도 되돌아보면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나는 운이 좋았던 편, 안 좋은 얘기는 더 이상하지 않기로 했다.

“이건 제 생각인데 ··· 후임으로 한승규 기술위원장이 들어올까요?”

이때, 양아들이 던진 한 마디에 박한우의 얼굴은 굳어졌다.

시즌 중, 한승규가 차명석 단장과 접촉했다는 사실은 대략 눈치 챘다.

신명철 수석코치가 대리를 보고 있지만 언제 바뀔지는 모를 일, 감독을 그만둔 주제에 무슨 말을 하겠느냐만, 박한우는 한승규 그 자식만큼은 안 된다며 핏대를 세웠다.

“왜 그렇게 흥분하세요?”

“그 자식은 내가 잘 알아. 나도 좋은 감독은 아니었지만, 그 자식은 정말 최악이라고”

감독님은 그 사람을 왜 이렇게 싫어하는 걸까. 귀를 기울이던 이인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헉 ~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라. 말이 씨가 된다는 말도 있잖아. 부정 탄다.”

이인영은 전 감독이 따라주는 술을 말없이 기울였다.

이 분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승규는 절대 감독에 앉아선 안 될 사람, 다시는 그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 *

“감독님 축하드립니다.”

“하하 ~ 감독은 무슨, 사적인 자리에선 편하게 지내자고”

시간은 흘러 8월, 신명철 감독 대리는 신입 감독에게 인사를 건넸다.

성운 라이온즈를 이끌 새 감독은 한승규, 두 사람은 선수시절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라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자네, 감독 되는 거 예전부터 꿈 아니었나? 다시 한 번 축하하네.”

“솔직히 감독이 된 것 보다 박한우 그 자식을 밀어낸 게 더 기뻐.”

신명철 감독 대리는 마음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이게 지금 신입 감독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감독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할 사람이 옛 앙숙이었던 박한우를 밀어낸 게 더 기쁘다니, 나이가 들었으니 이젠 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개 같은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며 불만을 삼켰다.

차라리 얼마 전 사임한 박한우 감독이 훨씬 나은 편, 내년 시즌도 글렀다며 쓰디 쓴 술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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