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0화 (20/309)

20화. 비운의 2인자 (20)

“여기 이거 왜 이래”

“글쎄요. 얼마 전까지 이상 없었는데 ··· ”

이곳은 부산의 자이언츠 파크, 경기가 없는 날을 틈타 구단 시설 관리팀은 구장 이곳저곳을 점검했다.

kbo 위원회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약을 맺고 각 구단의 시설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문화체육부 차관이 야구의 성지라 불리는 자이언츠 파크를 방문 할 예정, 느닷없는 손님의 방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시설 팀은 하루 사이에 구장 전체를 둘러봤다.

다른 곳은 큰 문제가 없는데 틈이 벌어진 외야 펜스가 말썽, 심지어 가볍게 밀면 문처럼 열리기까지 했다.

보수 공사가 필요한 상황, 하지만 전문 건축자들이 아닌 설비 팀은 고정 핀으로 대충 틈을 메우고 그 위를 그물망으로 덮는 날림공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올린 이상 없다는 보고서, 구단은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차관님, 어서 오십쇼.”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6월 23일, 경기를 앞두고 NA자이언츠 구단 대표 신성민은 김민 차관과 악수를 나눴다.

NA자이언츠는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인기구단,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성적부진과 흥행실패로 위기를 맞고 있다.

부산 팬들의 민심이 떠나면서 직격탄을 맞은 프로야구 인기, 그래도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프로야구 아닌가.

2020 올림픽도 있고, 김민 차관은 프로야구 흥행을 위해 먼 길을 내려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인영 선수 같은 신인이 여기서도 빨리 나와야 할 텐데 말입니다."

"하하,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신성민 대표는 차관의 참견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매번 지기만 하는 경기를 누가 보러 오겠나. 하지만 올스타 투표 2위를 달리는 어느 녀석이라면 사정이 다르겠지.

예매율만 따져봐도 오늘 관중석의 분위기는 훤히 보인다.

차관 앞에서 있는 척 해보려고 무료 입장 이벤트를 개최했는데 팬들이 얼마나 응해줄지는 미지수, 신성민 대표는 특별석에서 외야 분위기를 살폈다.

“이인영 파이팅!!”

오늘도 홈런 가즈 ~ 아!!“

일찌감치 3루 응원석을 점령한 원정 팬들은 있는 힘껏 목소리를 높였다.

6월 들어 타율 0.333, 홈런 5개로 불타오르고 있는 슈퍼루키, 시즌 17홈런으로 kbo 전체 2위를 달리고 있다.

30홈런이 문제가 아니라 데뷔시즌 홈런왕을 노릴 기세, 1위와의 격차는 2개뿐이라 이 레이스의 결말은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자, 1회 초 성운 라이온즈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타자는 홍현구 선수, 올 시즌 타율 0.287, 홈런 4개, 17타점, 도루는 8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붙박이 리드오프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죠. 원래는 거포로 키우려 했던 선순데,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홍현구는 초구를 잡아당겨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날렸다.

대학시절 때만 해도 거포로 이름을 날렸지만, 프로 데뷔 이후 3년동안 218경기에서 타율 0.260, 홈런은 10개 밖에 때리지 못했다.

이런 선수를 정말 거포로 키워야 하나, 박한우 감독은 이도저도 아닌 스윙을 버리도록 강요, 그렇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홍현구는 데뷔 4년 만에 그럴듯한 타자로 성장했다.

처음엔 감독의 강요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야구가 잘 되면서 그런 감정도 사라졌다.

역시 사람은 잘 돼야 웃을 수 있는 법, 최근엔 술도 끊고 야구에만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2번 타자 - 좌익수 - 이 ‧ 인 ‧ 영]

드디어 등장한 공포의 루키, 박한우 감독은 6월 중순부터 이인영을 2번에 배치했다.

어떤 공이든 다 쳐내려고 하는 게 양아들의 단점이자 장점, 타격은 검증됐으니 이젠 인내심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출루율이 높은 홍현구 앞이라면 녀석도 좀 더 신중하게 볼을 고르겠지. 2번에 배치하면서 출루율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자기만의 히팅 존이 확실한 녀석이라 시간을 주면 결과를 낼 거라고 믿었지만 이렇게 빨리 적응할 줄은 예상 밖, 놀라울 정도로 착착 맞아떨어지는 육성계획에 박한우 감독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떨어지는 볼, 카운트는 원 볼 투 스트라이크가 됩니다.”

“좋은 공을 안 주네요, 그만큼 이 선수를 상대 팀 선수들이 인정하게 됐다는 뜻이겠죠.”

최근 투수들은 이인영은 거른다는 생각으로 피칭을 하고 있다.

신인 주제에 올 시즌 밀어 친 좌월 홈런이 3개나 있는데, 특히 지난 6월 17일 경기에선 밀어 쳐서 상암 스카이 돔 상단 광고판을 직격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무려 121m를 날아간 타구, 밀어 쳐서 이 정도 타구를 날린다면 힘이 얼마나 좋은 건가.

1군에서 몇 경기 뛰고 2군으로 내려갈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리그를 폭격하는 중, 이 정도면 볼넷을 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컨택 능력도 뛰어난 선수라 정면 승부는 생각도 못 했다.

‘참아야 한다.’

쏟아지는 볼넷 속에서 슈퍼 루키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눈앞에 싱싱한 연어들이 폴짝거리고 있는데 바라만 보려니 미칠 노릇, 발톱을 바짝 세우고 먹잇감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길 기다렸다.

따악 ~ !!

“밀어낸 타구가!! 파울 라인을 벗어나는군요. 날카로운 스윙을 보여줍니다.”

“확실히 볼넷보다는 치고 나가겠다는 생각이 강한 선수입니다. 배터리는 그 점을 노려야겠죠.”

카운트는 이제 2볼 2 스트라이크, 자이언츠 배터리는 생각을 정리했다.

스윙 각을 짧게 수정해야 공략할 수 있는 몸 쪽 공, 스윙이 짧은 만큼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릴 위험이 크고, 당연히 바깥쪽 공은 타격하기 어렵게 된다.

히팅 존을 넓게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 그래서 많은 타자들이 자기만의 존을 정하고 타격을 한다.

그런데 지금 타석에 들어선 이 자식은 어떤가. 홈 플레이트에 바짝 붙은 위치, 이런 자세에서도 장타를 날릴 자신이 있다는 건가.

이인영은 전형적인 스테이 백(stay back) 히터, 상체가 뒤로 눕혀진 만큼 스윙거리가 확보된다. 겉보기엔 간결하게 돌아 나오는 스윙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것, 거기다 최대한 볼을 자기만의 존에 끌어놓고 치기 때문에 밀어치는 타구도 적지 않다.

고타율과 장타를 모두 잡아낸 비결이 바로 이것, 카운트가 2볼 2스트라이크라도 배터리 입장에선 결정구를 던지기 쉽지 않았다.

“떨어지는 볼, 참아냅니다. 풀 카운트, 이인영 선수가 승부를 길게 끌고 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나쁜 공이 아니었는데 배트 컨트롤이 ··· 신인답지가 않습니다.”

포수가 던진 볼을 받아든 서기석은 캡을 벗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유인구를 던져봤자 통할 것 같지 않고 정면 승부를 해야 하나.

포수의 선택은 승부, 서기석은 각오를 다졌지만 미처 다스리지 못한 망설임에 발목이 잡혔다.

바운드 볼이 되면서 볼넷, 무사 주자 1 - 2루 기회를 잡은 성운 라이온즈는 1회부터 2점을 내며 앞서나갔다.

‘역시 한국 야구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군.’

문체부 차관 김민은 슈퍼루키의 활약에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미어12 - 2020 도쿄 올림픽 - 2021 WBC까지, 앞으로 한국 야구의 인기와 위상을 끌어올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KBO와 협력관계에 있는 문체부 입장에서 한국 야구대표팀의 국제대회 활약은 중요한 일, 이인영은 그 선봉에 설 선수라 관심이 가는 건 당연했다.

시간이 되면 만나서 악수라도 나눌 예정, 간만에 팬이 된 기분으로 여유롭게 경기를 지켜봤다.

‘저건 뭐지?’

1회 말 NA 자이언츠의 공격, 레프트 필드로 나간 이인영은 그물망이 덮여진 펜스에 주목했다.

그동안 여러 구장을 방문했지만 이런 디자인의 펜스는 처음,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경기에 집중했다.

따아악 ~ !!

‘엇?’

초구부터 멀리 날아오는 타구, 드라이브가 걸린 타구라 무리하지 않고 펜스 플레이를 노리는 게 나았지만, 이인영은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팔을 힘껏 뻗어 낚아챈 타구, 그리고 펜스에 몸을 기댔지만 고정 핀으로 대충 수습한 펜스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펜스 너머로 사라진 선수, 이때까지만 해설위원들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겼지만 사건 현장은 이내 어두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음 ~ 이게 무슨 일인가요. 이인영 선수가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아 ··· 부상인가요? 성운 라이온즈 입장에선 생각하기도 싫은 악재가 터지고 말았네요.”

보호 펜스 밖으로 뛰쳐나온 박한우 감독은 고개를 떨궜다.

가뜩이나 덩치도 큰 선순데 그대로 맨땅에 추락했으니 충격이 컸겠지. 그것보다 펜스가 저렇게 무너졌다는 게 납득이 안 됐다.

놀란 건 문체부 차관 김민도 마찬가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눈빛에 신성민 대표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으악 ~ !!”

“걷지 마!! 걷지 마!!”

한편, 이인영은 코치진의 부축을 받으며 더그아웃 바로 앞까지 왔다.

어떻게든 걸어보려고 했지만 얻은 건 극심한 통증 뿐, 급히 인근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정밀 진단을 받았다.

결과는 발목 염좌 2도, 완전 파열은 면했지만 수술과 장기결장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에 성운 라이온즈 구단관계자들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뭐 그런 XX들이 다 있어?!!”

이 소식을 접한 차명석 단장은 펄펄 뛰었다.

신인왕을 넘어 국가대표 승선까지 노리던 선수를 말 그대로 보내버린 사건, 거기다 조사에 착수한 문체부 직원들이 NA 자이언츠가 비전문가들을 시설관리팀으로 임명했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대구 팬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올랐다.

신성민 대표는 공식 사과하고 이인영 선수의 치료비를 전액 책임지겠다고 밝혔지만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비난 여론, 차명석 단장도 기자들 앞에서 NA 자이언츠 구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7억을 들여 영입한 유망주,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이인영이 잘못한 거다. 펜스 플레이로 잡을 타구를 왜 몸을 날려 일을 키우나?]

-> 이 말이 맞다. 이인영이 너무 무거웠던 게 잘못이지. 살 좀 빼라

어처구니없는 건 일부 부산 팬들의 반응,선수가 타구를 끝까지 쫒아가 잡아낸 게 잘못인가.

자기 지역 팀이라고 무조건 감싸는 언론 플레이 때문에 NA 자이언츠는 안 들어도 될 욕을 얻어먹었다.

거기다 분개한 어느 대구 팬이 길거리에서 부산 시민을 폭행한 사건까지 발생, 부산에서도 보복 범죄가 일어나면서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졌다.

“사과는 받지 않을 겁니다.”

이 와중에도 이인영은 NA 자이언츠의 사과를 받을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 부상 때문에 내가 입은 손해가 얼마인가.

1군 등록 일수도 못 채우는데 이게 훗날 FA 계약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를 일, 뭣보다 이 사건의 책임자들은 사과만 했지 법적으로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KBO위원회와 문체부도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니 조용히 넘어가진 않겠지. 싸움이 길어지면 손해를 보는 쪽은 상대방이라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