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7화 (17/309)

17화. 비운의 2인자 (17)

“이인호 위원님, 안녕하십니까.”

“네”

5월 24일, 이인호는 해설위원 은퇴를 발표한지 반 년에 방송국에 발을 들였다.

사실 이 자리에 서기까지는 많은 고민과 망설임이 있었다. 좁다면 좁고 넓다면 넓은 한국, 그래도 마이크를 잡은 이상, 언젠가는 아들의 경기를 중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좋든 싫든 아들의 플레이에 대해 한 마디 해야 하는데 좋은 말만 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지금이야 아들이 좋은 활약을 하고 있으니 칭찬 일색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참을성이 없다느니 뭐니 하며 의심의 눈길을 보낸 게 여론이다.

그걸 다 의식하면서 마이크를 잡아야 하나.

차라리 관두는 게 현명, 오늘도 해설위원 복귀가 아니라 아들에 대한 팬들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이인영 선수는 교과서적인 타격과 전혀 다른 스윙을 하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교과서적인 스윙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연스러운 스윙을 하도록 이끌어 준 것 뿐입니다.”

이인호는 주문호 위원의 물음에 철벽을 쳤다.

왜 kbo 선수들은 타격폼이 서로 비슷한 걸까. 한국 야구는 유망주 풀이 좁기 때문에 코치들은 어지간한 선수는 고쳐 쓰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지도 방식, 선수들마다 특징이 다 다른데 일관된 타격이론을 고집할 수 있을까.

흔히들 교과서적인 타격을 논하는데 이인호는 아들의 성장을 위해 그 교과서적이라는 논리부터 휴지통에 처박았다.

“사실 아들을 가르칠 때 고민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야구를 시작할 때 뒷발이 들려선 안 된다고 배웠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경기 중 그렇게 스윙을 하는 게 보였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배웠기에 납득할 수 없었던 자세, 하지만 이인호는 바로 수술용 칼을 들지 않았다.

저게 틀렸다면 그만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나름대로 연구를 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임팩트 때 뒷발이 꼭 고정 될 필요는 없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은 이렇게 말 하고 있었다.

그 일례가 오스틴 텍산스의 거포 마이크 맥니스, 맥니스는 지난 2014년부터 올해까지 무려 164개의 홈런을 때려낸 선수다.

맥니스의 특징은 넓은 스탠스, 그리고 몸통이 회전하면서 끌려나오는 뒷발이다.

스탠스를 넓게 쓰는 만큼 뒷발이 고정되면 파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는 게 본고장 전문가들의 분석, 그제야 이인호는 왜 한국 코치들이 뒷발이 들리는 현상을 좋게 보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스탠스를 넓히면 중심이 흔들린다는 이유로 스트라이드를 최소화 한 것, 하지만 매니스의 타격은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성운 라이온즈의 전설 박한우 감독도 선수 시절 뒷발이 들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스탠스를 넓게 쓴 건 아니지만 밀어치는 타격을 즐겨했던 타입, 파워가 떨어지는 밀어치기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하체를 좀 더 틀다보니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

그래도 잘만 쳤던 안타, 통산 2000안타를 친 선수에게 어떤 코치가 뒷발이 들린다고 면박을 줬을까.

결국 타격에 교과서적인 정답은 없었던 것, 그 때부터 아들의 스윙에 함부로 간섭하진 않았다.

다만 프로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을 뿐, 받아들이는 건 아들의 재량에 맡겼다.

나는 프로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덧칠을 약간 해줬을 뿐, 이인호는 아들의 활약이 내 덕분이라는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사실, 아들의 방식을 인정해 준 박한우 감독에게도 소소한 감사를 표했다.

사실 아들에겐 한 차례 위기가 있었다.

부진에 빠졌을 때 차명석 단장이 한승규 기술위원장의 조언대로 아들의 타격 방식이나 자세에 수정을 가하려고 했던 것, 다행히 박한우 감독의 저항으로 없던 일이 됐지만 그때 수정이 가해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KBO는 선수가 코치의 방식에 저항하기 어려운 환경, 섣불리 수술용 칼을 집어 들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지면 누가 책임질 건가.

잘 되면 코치 탓, 잘 못되면 묻히는 게 현실, 지나간 일이지만 이인호는 구단의 방식에 저항해 준 박한우 감독에게 내심 고마움을 느꼈다.

‘에헴 ~ 봤지?’

이 인터뷰 덕분에 박한우 감독은 어깨를 들썩였다.

귀가 얇은 단장 때문에 망칠 뻔한 예술 작품, 이인영의 아버지도 이렇게 지원사격을 해주고 있지 않은가.

거기다 최근 좋아진 팀 성적 덕분에 팬들은 박한우 감독의 연장계약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 3년 만에 이렇게 평가가 뒤집힐 줄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파워 게임에서 밀린 차명석 단장은 이때부터 박한우 감독의 스타일에 아무 참견도 하지 못했다.

이제 팀 운영은 내 뜻대로, 기세를 탄 과거의 전설은 스타플레이어가 좋은 감독이 될 수 없다는 명제에 도전장을 던졌다.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인가.’

이 사건으로 한승규는 또 망신을 당했다.

성운 라이온즈가 부진에 빠지면 박한우를 밀어낼 생각으로 언론 플레이를 펼쳤는데, 여론은 괜한 참견을 했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이대로라면 명예회복은 평생 불가능, 한국야구협회 기술위원장이라는 이름뿐인 지위가 무슨 소용인가.

어떻게든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자리가 나질 않고 불러주는 구단도 없으니, 박한우 감독을 향한 질투와 원망은 더욱 짙어졌다.

* * *

따아악 ~ !!

“우와아 ~ !!”

시간은 흘러 2019 시즌은 6월에 접어들었다.

4월에 잠시 주춤했지만, 5월 들어 홈런포를 가동하기 시작한 슈퍼 루키, 6월 첫 경기부터 시즌 11호 홈런을 쏘아 올렸다.

수치만 따지면 무려 37홈런 페이스, KBO 역사상 신인이 40홈런을 쏘아올린 경우는 제로다. 그 금단의 영역에 이인영은 발을 들일 것인가.

이제는 계약금 7억 원도 싼 값이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 2020 도쿄 올림픽이 코앞이라 한국 야구팬들은 혜성처럼 등장한 거포 유망주에 열광했다.

“자, 이인영 선수가 오늘 경기 2번 째 타석을 맞이합니다. 첫 타석은 솔로 홈런, 시즌 타율은 0.357까지 상승했습니다.”

“홈런도 홈런이지만 타율이 말이 안 됩니다. 수위타자 급 수치를 보여주고 있는데, 투수들은 상대하기 정말 싫겠네요.”

첫 타석부터 홈런을 허용한 한진 타이거스 배터리는 노골적으로 도망가는 피칭을 택했고, 성이 난 홈팬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야!! 야!! 말래?!! 말래?!!”

말래는 ‘맞고 싶냐?’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상대 팀의 견제가 심해지면 나오는 야유다.

그런데 맞기 싫으면 도망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상황에 맞지 않는 응원, 잠깐 딴 생각을 하던 슈퍼 루키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번에도 볼넷인가.’

쓰리 볼이 되자 반쯤 타격을 포기했다.

이제는 심심하면 나오는 볼넷, 쓰리 볼에서 홈런을 친 타자에게 누가 스트라이크를 던지겠나. 예상대로 바깥쪽으로 빠져 앉는 포수, 천천히 1루로 걸어 나갔다.

“너 왜 인사 안 하냐?”

이때, 한진 타이거스의 1루수 진상우가 시비를 걸어왔다.

같은 고등학교를 안 나왔어도 선배 대우를 해주는 게 이 세계의 룰, 별로 힘이 드는 일도 아니라 이인영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게 야구 좀 한다고 버릇이 없네. 네 선배들이 그렇게 가르쳤냐?”

그래도 시비는 계속 됐다. 너무 잘 하니까 견제 한 번 해보겠다는 건가. 슈퍼 루키는 바로 반격에 나섰다.

“그렇게 예의를 따지시는 분이 선배한테 대들었나요?”

2년 전, 진상우는 몸에 맞는 볼을 던진 투수에게 욕을 한 것도 모자라 방망이를 든 채 마운드 돌진을 시도했다.

상대는 자기보다 2살이나 더 많은 윤재영, 진상우는 윤재영이 나보다 나이가 적은 줄 알았다며 사과했지만 팬들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며 일축했다.

선배한테 욕설까지 한 인간이 후배한테 대접을 받길 바란다니, 코웃음을 치며 1루에서 멀어졌다.

“너 다음 타석 머리 조심해라.”

욱한 진상우는 협박을 이어갔다. 생각할수록 건방진 자식, 이닝이 교체되자마자 후배 투수에게 빈볼을 지시했다.

‘내가 왜? 자기가 던지는 것도 아니잖아.’

지시를 받은 조헌영은 인상을 구겼다.

저격 대상은 프로야구의 핫이슈를 이인영, 문제가 생기면 내가 다 뒤집어 써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안 던지면 내가 보복을 당할 상황, 별 수 없이 빈볼을 택했다.

‘던질 테면 던져 봐.’

5회 말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3번 째 타석을 맞이한 이인영은 차분하게 정면을 응시했다.

던지면 맞고 나가면 그만, 초구부터 몸 쪽 깊숙한 공이 들어오자 보호대를 풀어 젖히며 1루로 걸어 나갔다.

“잠깐!! 자네!! 이봐!!”

당황한 주심은 타자를 불러 세웠다.

맞지도 않았는데 왜 걸어 나가는 건가. 하지만 이인영은 자신이 왜 걸어 나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까 저 사람이 1루에서 저한테 머리 조심하라고 협박했어요.”

“그게 무슨 소린가?”

“빈볼 예고했다고요. 그냥 지금 나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교통사고도 예방이 중요하듯, 빈볼도 예방이 중요한 법, 꼭 맞고 나서 1루에 나가야 되는 건가?

주심은 얼른 타석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했지만, 이인영은 돌아가 봤자 결과는 다르지 않다며 고집을 피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박한우 감독은 현장으로 출동, 주심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1루 코치를 불러들였다.

“저 자식이 협박한 거 사실인가?”

“네”

“아니 그럼 얘기를 했어야지, 이 사람아!!”

박한우 감독은 1루 코치의 증언을 토대로 주심에게 항의를 표했다.

고의 빈볼은 KBO에서 강력하게 규제하는 사항, 교통사고가 난 다음에 1루로 보내야 속이 시원하겠냐는 양아들의 의견도 적극 반영했다.

‘나 참 ··· 이건 또 무슨 경우야?’

주심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심판 경력 10년 동안 이런 경험은 처음, 한참을 고민하다 1루수 진상우에게 경고를 날렸다.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요?!!”

진상우는 그런 적 없다고 펄쩍 뛰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홈런을 친 선수가 맞지도 않았는데 1루로 걸어 나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정황상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났던 게 사실, 한진 타이거스의 감독까지 현장에 나오면서 분위기는 더욱 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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